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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평양의 봄 - 5

박윾동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11.27 11:5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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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편: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militerature&no=206&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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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기에는 악취가 섞여 있었다. 지린내, 인분 냄새, 썩어가는 고깃덩이 냄새가 뒤섞여 숨 쉴 때마다 기분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개천의 14호 관리소에 들어온 지 6년이 넘었지만, 진일보는 냄새에 적응할 수 없었다. 그는 춥더라도 창문을 열어 환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경비대원들은 이틀 전부터 수용자가 창밖을 내다보지도 못하게 했다.

  “여보, 무슨 일이 있는 거 아니오?”

  혜연이 물었다. 악취와 함께 계속되는 아내의 질문에 그는 짜증이 났다. 

  “거, 좀 기다려 보라. 선생님들이 어련히도 생각이 있지 않겠어?”

  일보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틀 전, 공장 안에 갑자기 작업중지 명령이 울려 퍼졌다. 그날의 작업이 시작된 지 5시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수용자들은 모두 공포에 질린 채 조회장으로 몰려갔다. 일과가 갑자기 중단되는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었다. 탈출을 시도한 자가 생긴 것이다. 

  보위지도원들은 그자가 살던 집 주변에 거주하는 가족과, 같은 작업조에 배치된 이를 모두 조사한다. 명단에서 호명되는 사람은 보위부 건물 지하로 사라졌다가 죽어서 나오거나, 살아나와서 고문 후유증에 곧 죽는다. 

  그러나 조회장에 모인 그들에게 보안부장은 즉시 집으로 돌아가라고 명했다. 수감자들은 영문을 모르는 상태로 하모니카 집에 들어갔다. 이후 내려오는 지시는 없었다. 일보와 가족들은 남은 하루 내내 집안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하루 15시간의 노동을 수년 동안 빠짐없이 해오다가 쉴 수 있게 되니, 잘못된 골목에 들어선 것처럼 덜컥 겁이 났다. 

  “저 옷 좀 어찌해야겠습니다. 이 등짝에서 냄새가 너무 납니다.”

  아들 평헌이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가만있으라. 넌 사내놈이 그런 걸 참지 못하고 여기서 어찌 살려는 거야?”

  “육 년이나 살았으면 살 만큼 살지 않았습니까?”

  “그 입 함부로 벌려대지 마라.”

  “대체 언제까지 이 다 무너져가는 소굴에서 이러고 있어야 합니까! 이럴 거면 차라리….”

  따귀 맞는 소리가 좁은 집안에 울렸다. 평헌이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핏줄이 튀어나온 일보의 손이 떨렸다. 

  “우리 가족 다 죽는 꼴 보고 싶으면 계속해라.”

  평헌은 자리에 옹송그리고 누워서 흐느꼈다. 일보가 집안을 둘러봤다. 부스러지는 콘크리트 벽의 금 간 부분을 따라 마른 진흙이 발렸다. 다섯 사람이 누우면 꽉 차는 바닥에 한기를 막기 위해 짚과 풀로 만든 가마니가 깔렸고, 한쪽 구석에 닳아 빠진 쇠그릇들이 차곡차곡 포개져 있었다. 그릇은 가족의 식기이자, 옥수수에 인분으로 만든 거름을 줄 때 쓰는 바가지였다. 그릇 옆에 아궁이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들이 평양에 있을 때 살았던 아파트에 비하면 개집만도 못한 곳이었다. 

  하룻밤 만에 이 지옥으로 떨어졌을 때, 일보도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었다. 하루하루 관리소에서 시간을 보낼 때마다 그 생각은 떠난 적이 없었다. 오로지 가족만을 생각하며 버텼다. 사회에서 자살한 자의 가족은 연좌제로 출세길이 막힌다. 관리소 안에서는 조금 달랐다. 가족은 처형장으로 끌려가 발등과 뒤꿈치에 대못이 박히고 나무 기둥에 묶인다. 그러면 그들을 둘러싼 다른 수용자들이 돌을 던져 죽였다. 

  비록 구렁텅이 안에 빠져있더라도 일보는 그런 상황만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자살을 암시하는 말조차 가족에게 해가 될 수 있었다. 혜연도 마찬가지 마음으로 버텨냈을 것이다. 그녀가 평헌의 눈물을 닦아줬다. 그의 등에서 시작한 검은 얼룩이 너덜너덜한 바짓단까지 흘러내려 있었다. 

  “애한테 너무 그러지 마시오. 시체 당번은 처음 아니오.”

  “시체 당번은 저만 했어? 나도 하고 당신도 했는데, 왜 저 혼자만 유세를 떨려 해?”

  “평헌이는 애잖습니까. 당신도 알면서.”

  “나는 인민학교 때 공개총살 보고도 아무렇지 않았어. 저 중학교 들어갈 나이 넘어간 놈이 정신은 약해 빠져서…….”

  일보의 주장을 듣던 혜연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녀가 아들의 얼굴을 보듬었다. 일보는 알았다. 혜연도 아들의 등까지 쓸어주지는 못했다. 등에 묻은 얼룩이 썩은 고기 냄새의 원인이었다. 다른 사람이 잡은 쥐를 훔치려다 일어난 다툼 때문에, 훔치려던 자와 쥐를 잡았던 자 둘 다 교수대에 목이 매달렸다. 썩어갈 때까지 본보기로 방치되어 있던 시체 중 한 구가 평헌의 등에 업혀 매장지로 옮겨졌다. 늘 그랬듯이 시체에서는 썩은 즙이 줄줄 흘러나왔다. 시체 당번 일을 끝내고 돌아온 평헌은 그날 유독 말이 없었다.

  “우리 은설이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은설이 얘기가 왜 나오니.”

  “누나한테 의지할 수도 있고 얼마나 좋아요. 이렇게 혼자서 끙끙대는 것보다 낫지.”

  “그 아이 얘기는 그만하라.”

  “아직도 면을 찾습니까?”

  “너 뭐라고 했니?”

  일보가 아내를 돌아봤다.

  “은설이가 받아온 강냉이는 결국 받아먹었으면서, 아직도 남은 체면이 있느냔 말입니다.”

  “악지바리 다물라! 콱 쪼개버리기 전에.”

  “아이고 불쌍한 우리 은설이…….”

  혜연이 울먹거렸다. 그러나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관리소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눈물이 나오지 않게 됐다. 멎어버린 생리현상은 여러 가지였다. 일보는 수년간 성욕이 생기지 않았고 혜연은 이른 나이인데 생리가 끊겼다. 옥수수알 한 주먹과 썩은 채소로 끓인 맹탕 국만 먹고 하루에 15시간씩 일하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눈에 거슬리면 때리고 욕하는 경비대와 보위지도원도 큰 몫을 차지했다. 

  어쩌면 다행이었다. 딸 은설의 몸이 빨리 망가졌다면 아직 살아있었을지도 몰랐다. 평양에서 비교적 유복한 생활을 했던 덕에 일보의 가족은 살이 오른 상태로 수용소에 들어왔다. 죄수복을 입기 전, 온 가족이 알몸이 됐을 때 은설을 보던 보위원의 눈빛을 그는 기억했다. 그자의 시선은 은설의 몸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 며칠 뒤, 보위원 사무실 청소를 끝내고 집에 들어온 은설이 몇 시간을 울다가 지쳐 잠들었다. 다음날부터 매일 사무실 청소로 불려나가자 일보와 혜연은 이유를 알게 됐다. 시간이 지나고 은설의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

  “평헌이가 옷 못 갈아입은 거, 사실은 당신 때문 아니오?”

  혜연이 입을 열었다. 

  “뭐야?”

  “당신이 가구 공장에서 옷만 안 찢어 먹었어도 평헌이 갈아입을 옷 남아 있었을 겁니다.”

  “야, 그게 왜 내 잘못이야. 태성이놈이 연장질 서툴러서 찢어 먹은걸.”

  “그러니까 왜 쓸데없이 남을 돕느냐 이 말이오. 지 아들 썩은 물 뒤집어쓰고 지내게.”

  “그런 놈들 일을 야금야금 가져와야 강냉이밥 한 숟갈이라도 뺏어올 수 있는 거 아냐. 내가 그저 등신처럼 태성이놈 잘되라고 그러는 줄 알아?”

  “그거 도와서 강냉이밥 두 그릇은 가져왔댔습니까? 실속도 없는 걸 뭐 그리 들이밉니까. 꼭 저 아비 닮아가지고서는 ”

  “이 쌍년이…….”

  “당신 아바이 때문에 이 꼴 난 거 아니오! 먹을 알도 없는데 아무 데나 기웃거리더니….”

  “네 언니년이 남조선 영화 팔아먹다 단속 걸렸겠지!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어머니, 아바이, 그만들 하십시오.”

  평헌이 일어나 두 사람을 말렸다. 

  “이제 와서 그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부모는 입을 다물었다. 일보가 고개를 푹 수그렸다. 진일보. 공화국을 사회주의 강성대국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라는 의미로, 아버지가 지은 이름이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당에 충성을 바쳤다. 충성은 돈이었다. 라디오 수입으로 번 돈이 당 간부들에게 보내졌다. 그들은 만족했다. 

  다만, 아버지에게 사람을 가려서 사귀라고 그들은 충고했다. 아버지는 부딪히는 사람 없이 두루두루 잘 지냈고, 권력 중심에서 벗어나 있는 자들과도 가까웠다. 누군가 노동당의 중심부로 가기 위해 아버지를 디딤돌로 삼아버렸는지도 몰랐다. 중국에서 라디오를 들여오는 사람이었으니, 보위국에 팔아넘길 죄목은 얼마든지 지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혹은 혜연의 언니가 팔던 USB가 보안성에 발각됐을 가능성도 있었다. 남조선의 퇴폐적인 자본주의 문물을 퍼뜨리는 행위는 최소 교화소행이었다. 아니면 다른 가족이었을까? 누가 뭘 잘못했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밤, 총을 들고 들이닥친 보위원들이 10분 안에 짐을 싸서 나오라고 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가족은 개천 근처의 이 산속에 영원히 파묻혔다. 썩은 내가 다시 신경을 찔렀다. 아들의 등에 묻은 얼룩처럼 콧속에 자국이 생긴 것 같았다.

  “창문을 열어야겠다.”

  “여보, 가만히 있으시오. 무슨 해를 당할 줄 알…….”

  쿵, 하고 멀리서 폭발음이 들렸다. 폭발음은 몇 번 더 땅을 울리며 지나갔다. 세 사람이 가만히 앉아 창문을 바라봤다. 차가운 햇살에 먼지가 반짝였다. 

  “십팔호에서 사고가 났나 봅니다.”

  평헌이 일어섰다. 그의 뒤를 따라 일보와 혜연도 창틀로 다가갔다. 바로 맞은 편에 있는 하모니카 집의 가족들도 작은 창가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종소리가 울렸다. 집합 신호였다.

  “빨리 가자.”

  일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연이 나무문으로 손을 뻗었다. 바깥에 나온 일보는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차가운 공기가 기도를 타고 들어왔다. 그러나 여전히 오물 냄새가 희미하게 섞여 있었다. 줄줄이 늘어선 하모니카 집에서 사람들이 쏟아져나왔다. 집 사이 골목길이 금세 북적거렸다. 사람과 함께 그들의 냄새도 공기를 메웠다. 

  “무슨 일인 것 같소?”

  “십팔호 관리소 광산에서 일이 난 거 아니겠습니까?”

  “우리 것이 아니고?”

  “여기 광산이었으면 소리가 더 컸겠지.”

  혜연이 옆집 여자와 추측을 주고받았다. 

  “주택별로 빨리빨리 모이라!”

  골목 앞에 보위지도원이 서 있었다. 그 뒤에는 소총을 든 경비대원 두 명이 버티고 있었다. 수감자들은 입을 다물고 재빨리 정렬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보위원이 두 줄로 선 대열 옆으로 지나가며 머릿수를 셌다. 

  “따라오라.”

  노래기처럼 길게 이어진 줄이 천천히 나아갔다. 먹은 게 없어 걸어갈 힘이 달리는 와중에도 일보와 가족들은 가능한 발을 끌지 않으려 노력했다. 신발 대신 발에 두른 새끼줄이 닳아 없어지면 쉴 시간에 새끼줄을 또 만들어야 했다.

  “야, 빨리 가라 게으름 피우지 말고!”

  뒤에서 둔탁한 소리와 함께 여자의 비명이 들렸다. 일보를 포함한 누구도 돌아보지 않았다. 다른 데에 정신을 팔았다간 똑같이 얻어맞는다. 

  “일어나라 이 쌍간나년아.”

  경비대원이 쓰러진 여자를 몇 번 더 다그쳤다. 금속이 맞부딪히는 소음이 났다. 익숙한 소리에 일보는 긴장으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총성이 계곡에 울려 퍼졌다. 대열은 잠깐 주춤했다가 다시 움직였다. 

  “총탄 맛 보기 싫으면 빨리빨리 걸으라!”

  앞사람의 걸음이 빨라졌다. 일보는 곁눈질로 옆의 혜연을 살피며 속도를 높였다. 걷기만 해도 숨이 차올랐다. 그는 원인을 파악하려 이리저리 생각해봤다. 단순한 탈출시도가 아닌 더 큰 무언가가 보위성의 귀에 들어간 게 틀림없었다. 개인의 탈출이 아니라 집단의 탈출계획이 발각됐을까? 아니면 누군가 빼돌린 옥수수와 감자를 들켰나? 여자 여럿이 임신해버린 걸까? 

  마지막 가정이 맞을 가능성이 컸다. 탈출을 계획하거나 작물을 훔치는 것보다 임신하기가 더 쉬웠다. 서너 명이 임신하면 그 여자만 낙태 당하고 끝이지만, 비슷한 시기에 그보다 더 많은 여자가 임신하면 노동은 안 하고 연애질에 정신이 팔렸다며 연대책임을 물었다. 

  은설의 배가 불러왔던 시기가 그랬었다. 여섯 명이 임신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보안부장은 잡생각을 떨쳐주겠다며 하루 동안 식량 배급을 끊었다. 그날, 일보와 가족들은 은설이 보위성 본부의 누군가에게서 받아온 옥수수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입을 댔다. 은설과 임신한 여자들은 경비대에게 끌려가고 영영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도 밥만 안 줬지 작업은 계속됐다. 총성이 또 계곡을 채웠다. 원인을 알 수 없으니 마음속의 불안은 더 크게 자라났다. 

  대열은 경비대 막사 앞 연병장으로 들어섰다. 수감자들이 연병장 모래 위를 차곡차곡 채웠다. 일보는 고개를 숙인 채로 숨을 골랐다. 주변의 모두가 얼굴을 땅바닥으로 향한 상태였다. 그는 아내와 아들이 어떤지 보려고 눈을 돌렸다.

  “너.”

  일보 옆에 선 경비대원이 말했다. 그가 움찔했다.

  “너, 나오라.”

  어찌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었다. 혹시나 들킨 것인가? 그는 분명 눈알만 움직였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고개가 돌아갔는지 돌이켜봤다.

  “나와, 이 새끼야!”

  몸이 덜덜 떨렸다. 분명 일보의 기억엔 머리가 움직인 적이 없었다. 발소리가 다가왔다. 눈을 질끈 감았다. 심장이 요동쳤다. 

  “내가 움직이게 만들어? 이 개새끼.”

  경비대원은 일보를 밀치고 갔다. 옆 대열에 선 누군가가 개머리판에 맞아 쓰러졌다. 

  “나랑 눈 마주친 걸 내가 모를 줄 알았니? 날 등신으로 봐?”

  때리는 소리와 신음이 한동안 이어졌다. 곧 신음은 멎고 퍽퍽 때리는 소리만 계속됐다. 

  “너희 둘, 이거 끌어내.”

  그자의 시신이 대열 밖으로 끌려 나왔다. 두 수감자는 일보에게서 몇 발짝 떨어진 곳에 시신을 내려놨다. 피범벅이 된 시체의 얼굴이 보였다. 가구 공장의 같은 라인에서 일하던 태성이었다. 일보는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태성을 도와주면서 그의 배급을 조금씩 가져갔다. 일 재주는 없어도 유일한 말동무였다. 다시 땅바닥으로 눈을 돌렸다. 안타까움은 고장 난 형광등처럼 잠시 깜빡이다 사라졌다.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안도감만이 무겁게 마음 한구석을 채웠다. 은설이가 가져온 옥수수를 먹은 이후로 가슴 속의 양심은 거의 지워졌다. 

  “여기서 이러면 어찌하니? 이따가 치우기 힘들게.”

  젊은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언젠가 들어본 목소리였다. 

  “예, 제가 직접 처리하겠습니다.”

  뒤쪽에서 군홧발 소리가 다가왔다. 스쳐 지나가는 남자의 다리가 보였다. 광을 내 번쩍이는 신형 군화, 얼룩무늬 군복과 허리에 찬 권총이 눈에 들어왔다. 기억났다. 삼 년 전쯤 들어온 보위성 군관이었다. 그가 오고 나서 관리소의 규정은 더 팍팍해졌다. 이전에는 보위원이 지나갈 때 모자를 벗고 허리만 숙이면 됐었지만, 이제는 무릎 꿇고 양손을 뒤에서 맞잡은 채로 이마를 땅에 박아야 했다. 공개처형 횟수도 두 배 정도 늘어났다. 언제나 그 군관이 처형을 진행했다. 

  “아, 아, 잘 들으라.”

  조회대에 달린 스피커가 쩌렁쩌렁 울렸다. 보안부장이었다. 

  “풍계 지구 농업 담당반에서 서역이 발생했다.”

  일보의 눈이 크게 뜨였다. 흑사병이 돌면 수감자 중 살아남을 사람은 거의 없었다. 

  “너희 거러지 만도 못한 새끼들이 자꾸 쥐를 잡아 처먹으니 이런 문명 시대에 서역이 도는 거야. 네놈들은 네놈들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찾는 쥐만도 못한 것들이다. 먼저 번에 교수형 했던 두 놈 기억나나? 오늘부로 쥐를 먹다 걸리는 놈들은 몽땅 돌맞이형에 처한다. 쥐 잡는 새끼를 보고하면 강냉이 오백그람을 상으로 주겠다.”

  일보의 눈이 더 커졌다. 옥수수알 500그램이면 하루 배급량의 두 배가 넘었다. 반드시 잡아내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하려는 순간, 의심이 들었다. 쥐고기를 포기할 만큼 엄청난 보상인지 그는 곰곰이 생각했다. 연병장에 모인 수감자들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쥐는 그들이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고기였다. 

  그리고 이렇게 공개적으로 첩자를 모집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조금 이상했다. 그동안 전염병이 생겼을 때는 발생한 거주구를 격리하는 게 전부였다. 전에 없던 제안을 던지는 데엔 분명 숨은 이유가 있었다. 전투기가 날아가는 소음이 들렸다. 

  “저 소리가 들리나? 요 며칠 동안 항공군과 반항공군의 합동훈련이 진행 중에 있다. 훈련의 일환으로…….”

  전투기 엔진 소리가 고막이 따끔할 만큼 크게 울렸다. 놀란 일보는 바닥에 쓰러질 뻔했다. 그는 필사적으로 버텼다. 여태 살면서 이렇게 큰 규모로 오랫동안 하는 공중훈련은 들은 적이 없었다.

  “그 개대가리 박아!”

  “고개 든 놈 이리 나오라!”

  소음이 잠잠해지자 여기저기서 고함이 들리고 얻어터지는 소리, 총소리가 뒤따랐다. 일보 바로 뒤에서 누군가 총에 맞아 쓰러졌다. 그의 눈동자는 가족의 상태를 보려고 바쁘게 흔들렸다. 다행히 혜연과 평헌은 무사했다.

  “지금 움직인 것들은 봐주지 말라. 이 새끼들은 인민군대 훈련을 볼 자격이 없다.”

  일보는 총성이 들린 횟수를 세려다가 포기했다. 몇 달 동안 처형될 사람들이 잠깐 사이에 죽어 나갔다.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한동안 이어지던 소란이 사그라들었다. 시체는 그 자리에 방치됐다. 뒤쪽의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가 연병장 모래를 적셨다. 붉게 물든 모래가 일보의 발뒤꿈치에 닿고 점점 퍼져나갔다. 피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심장이 크게 뛰었다.

  “훈련의 일환으로 당 중앙에서 귀한 분이 관리소를 시찰하시기로 하였다. 그분께 너희들의 더러운 병을 옮길 수는 없다. 오늘 내로 위생관리를 끝낼 것이다. 전원 옷 벗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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