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이중적 의식구조를 벗어버리면 병은 더 이상 운명이 아니다

박유진 2009.03.06 11:33:46
조회 2772 추천 2 댓글 3

 병은 팔자 때문이 아니다

 

 인간을 괴롭히는 것 가운데 병(病)이 있다. 중병에 걸렸을 때 우리는 운명의 힘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자잘한 병, 이를테면 감기라든가 가벼운 외상 같은 것은 그런 대로 참아나갈 수 있다. 그러나 중병 또는 불치병에 걸렸을 때 인간은 운명의 힘 앞에 무릎을 꿇게 되고 자연히 신(神)을 부르게 된다.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종교적 기적의 힘에 의지하여 병을 고쳐보려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사실 예수 같은 이만 해도 당시 민중들의 고질병을 많이 고쳐줬기 때문에 ‘하느님의 아들’이란 칭호까지 얻게 됐다고 볼 수 있다. 신의 힘, 또는 신비한 영력(霙力)의 힘에 가장 솔깃해질 때가 바로 고질병 또는 불치병을 고쳤을 경우인 것이다.


 그러나 고질병에 걸린 사람이 신앙의 힘으로 병을 고쳐보려한다고 해서 백 퍼센트 다 낫는 것은 아니다. 그냥 죽어버리거나 병이 더 악화되는 수도 있는데, 그럴 경우 사람들은 금세 ‘하느님의 뜻’ 또는 ‘죽을 팔자(또는 운명)’를 운위하게 된다.


 종교를 안 가졌던 사람이 병에 걸려 급작스레 종교인이 된 후 혹 병이 나으면 하느님(또는 부처님 등등)의 ‘은총’ 때문이고, 그냥 죽어버리면 하느님의 ‘뜻’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좀 우습다. ‘은총’이나 ‘뜻’이나 매한가지기 때문이다.


 하느님이라는 말을 운명이라는 말로 대체해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죽어가던 사람이 살아난 것도 그렇게 될 운명 때문이었고, 그냥 죽어버린 것 역시 그렇게 될 운명 때문이었다는 말이 되므로, 어쨌든 둘 다 ‘결과론적 자위(自慰)’로 끝나버리는 것은 매한가지라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병을 방치해둘 수도 없는 일이다. 일단 의학의 힘에 의지하여 병을 고쳐보려고 노력해야 하고, 그 다음엔 종교든 뭐든 모든 수단을 다 강구해봐야 한다. 의학의 힘으로 병을 고쳤든 신앙의 힘으로 병을 고쳤든, 내 보기엔 둘 다 결국 ‘치료’의 결과로 나타난 현상이다. 의학에 의한 치료가 육체적 치료라면 신앙에 의한 치료는 심리적 치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병이 낫는 것과 안 낫는 것은 운명(또는 하느님의 섭리) 때문이 아니라 치료의 성공 또는 실패에 따른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같은 병이라도 의사를 잘 만나면 고치는데, 의사를 잘못 만나면 죽거나 오래 끄는 수가 있다. 나와 나의 모친은 의사를 잘못 만나 여러번 사서 고생을 했다. 이런 때도 우리는 곧잘 ‘인연’ 타령이나 ‘팔자’ 타령을 하게 되고, 의사를 잘못 만나게 된 것 역시 운명이 정해준 길을 따라간 것에 불과하다는 체념적 결정론에 빠져드는 수가 많다.


 병고(病苦) 못지않게 괴로운 옥고(獄苦)나 법고(法苦)도 마찬가지다. 판사를 잘 만나면 같은 죄라도 형을 덜 받게 되고, 판사를 잘못 만나면 형을 더 살게 되거나 그 사람이 진짜 무죄일 경우 억울한 형벌(때에 따라서는 사형까지도)을 받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나라에서는 의사나 판사의 잘못을 별로 추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환자든 피의자든 다 자기 팔자 때문에 그런 결과로 이끌려들어간 것이라고 체념하는 사람이 많아서일 것이다.


 요즘 들어 의사의 민사적, 형사적 책임을 따지는 일은 그래도 꽤 많아졌으나, 판사는 설사 무죄한 사람을 사형시킨 오판을 저질렀다는 게 뒤에 밝혀졌다 해도 전혀 책임을지지 않는 체재로 되어 있다. 기껏 책임진다는 게 ‘도의적 책임’ 정도라서, 그저 옷 벗고 변호사가 되면 그뿐이다. 정말 신(神)에 가까운 황당무계한 특권이요, 뻔뻔스런 직업이기주의라고밖에 볼 수 없다. 어이없는 법적 폭력들이 그대로 방치되는 현상 역시 우리나라 국민들이 지나치게 체념적 운명론에 빠져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

추천 비추천

2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주위 눈치 안 보고(어쩌면 눈치 없이) MZ식 '직설 화법' 날릴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4/29 - -
107 <붙이는 글> 마광수의 ‘시대를 앞서간 죄’ [68] 운영자 09.04.03 14761 55
106 운명은 야하다 [14] 운영자 09.04.02 12403 17
105 창조적 놀이정신은 운명극복의 지름길 [3] 운영자 09.04.01 4578 7
104 시대상황에 맞는 가치관은 따로 있다 [7] 운영자 09.03.30 3910 8
103 패륜범죄, 대형참사 빈발의 원인은 따로 있다 [9] 운영자 09.03.27 4928 8
101 ‘위대한 설교자’보다 ‘위대한 놀이꾼’이 필요하다 [5] 운영자 09.03.26 3881 6
100 ‘투쟁’에 의한 역사발전의 시대는 가다 [4] 운영자 09.03.25 2999 3
99 진정한 속마음이 왜곡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4] 운영자 09.03.23 3684 4
98 민심을 바로 읽어내는 것이 급하다 [2] 운영자 09.03.20 2487 1
97 상투적 도덕은 필요없다 [2] 운영자 09.03.19 3033 1
96 왜 이렇게 비명횡사가 많은가 [2] 운영자 09.03.18 3152 5
95 이중적 도덕관 탈피해야 개인과 사회가 건강해진다 [22] 운영자 09.03.17 3057 8
94 그릇된 관념에서 비롯되는 ‘집단의 병’ [4] 운영자 09.03.16 3149 2
93 현대병의 원인은 권태감과 책임감 [5] 운영자 09.03.13 3870 5
92 ‘인격 수양’ 안해야 마음의 병에 안 걸린다 [11] 운영자 09.03.12 5742 18
91 억눌린 욕구가 병이 된다 [7] 운영자 09.03.11 5596 6
90 ‘무병장수’의 현실적 한계 [5] 박유진 09.03.10 3492 3
89 인간 있는 곳에 병 있다 [4] 박유진 09.03.09 2554 3
이중적 의식구조를 벗어버리면 병은 더 이상 운명이 아니다 [3] 박유진 09.03.06 2772 2
87 자유만이 유일한 해결책 [4] 운영자 09.03.05 3120 3
86 참된 지성은 ‘지조’가 아니라 ‘변덕’에서 나온다 [3] 운영자 09.03.04 2716 3
85 ‘관습적 윤리’에서 ‘개인적 쾌락주의’로 [2] 운영자 09.03.03 2786 4
84 ‘편의주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 [2] 운영자 09.03.02 2380 2
83 개방적 사고에 따른 문명과 원시의 ‘편의적 결합’ [4] 운영자 09.02.26 2593 1
82 문명이냐 반문명이냐 [3] 운영자 09.02.25 2780 1
81 진리로 포장되는 ‘권위’의 허구 [3] 운영자 09.02.23 2629 3
80 원시와 문명의 ‘편의주의적 결합’은 우리를 참된 자유로 이끈다 [2] 운영자 09.02.20 2023 1
79 솔직한 성애의 추구는 운명극복의 지름길 [2] 운영자 09.02.19 2472 5
78 ‘타락’도 ‘병’도 아닌 동성애 [3] 운영자 09.02.18 3986 10
77 선정적 인공미 가꾸는 나르시스트들 늘어나 [5] 운영자 09.02.17 3020 5
76 개방사회가 만든 자연스런 관음자들과 페티시스트들 [3] 운영자 09.02.16 1622 1
75 삽입성교에서 오랄 섹스로 [9] 운영자 09.02.13 6343 1
74 ‘성적 취향’의 다양성을 인정하자 [2] 운영자 09.02.12 1351 1
73 생식적 섹스에서 비생식적 섹스로 [4] 운영자 09.02.11 2021 4
72 ‘성욕의 합법적 충족’을 위해서 결혼하면 실패율 높다 [3] 운영자 09.02.10 1844 7
71 결혼은 환상이다 [2] 운영자 09.02.09 2058 6
70 작위성 성억압은 개성과 창의력을 질식시킨다 [2] 운영자 09.02.05 1075 3
69 전체주의적 파시즘은 집단적 성억압의 산물 [3] 운영자 09.02.04 1602 2
68 쾌락으로서의 성을 부끄럼없이 향유하라 [5] 운영자 09.02.03 2125 3
67 변화를 인정할 수 있을 때 발전을 이룬다 [2] 운영자 09.02.02 1179 1
66 결국 현재의 욕구에 솔직하라는 역의 가르침 [2] 운영자 09.01.30 1475 1
65 ‘주역’을 아는 사람은 점을 치지 않는다. [7] 운영자 09.01.28 2611 5
64 회한도 희망도 없이 현재를 버텨 나가라 [2] 운영자 09.01.23 1738 1
61 ‘역설적 의도’로 막힌 세상 뚫어보자 [3] 운영자 09.01.15 1595 5
63 쾌락주의에 따른 동물적 생존욕구가 중요하다 [3] 운영자 09.01.19 1540 2
62 음양의 교화(交和)가 만물생성의 법칙 [2] 운영자 09.01.16 1208 1
60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 지닌 동양의 민중철학 [2] 운영자 09.01.14 1158 1
58 궁하면 변하고, 변하다 보면 통한다 [2] 운영자 09.01.09 1729 3
57 햇볕이 뜨거울 때 우산을 쓰면, 신기하게도 비가 내린다 [2] 운영자 09.01.08 1173 1
56 잠재의식과 표면의식의 일치로 얻어지는 생명력 [4] 운영자 09.01.02 1572 2
123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