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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하면 변하고, 변하다 보면 통한다

운영자 2009.01.09 10:43:56
조회 1735 추천 3 댓글 2


 ‘주역’은 지금까지 대체로 두 가지 측면에서 연구, 활용되어왔다. 첫째는 점술서로서의 측면이다. 인생의 길흉화복을 64괘 384효(爻)의 상징적 지시에 의탁하여 판별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역’은 관상이나 사주, 점성술 등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특히 사주의 경우는 생년월일시에 따라 인간의 운명이 완전히 결정된다는 믿음 위에서 성립된 것인 만큼, 인간의 노력에 의한 운명의 변화를 인정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역(易)에 의한 점의 경우는 막연히 평생의 운수를 점친다거나 1년의 신수를 점쳐보는 것이 아니라, 도저히 판단할 수 없는 상황적 조건에 대한 대응방안만을 점친다.


 즉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나서 막바지에 이르러 앞으로의 진로를 결정지을 수 없을 때, 본능적 예감과 잠재의식이 시사해주는 상징적 조짐에 의지하여 앞으로의 마음가짐과 행동방향을 결정지으려는 것이다. 즉 자연의 법칙에 자신의 고민거리를 대입하여 장차의 행동방향을 결정하려는 것이요, 그 행동방향의 궁극적 목표는 운명의 적극적 창조다.


 예로부터 “모사(謨事)는 재인(在人)이요, 성사(成事)는 재천(在天)이라”는 체념적 인생관이 동양 민중들 의식구조 밑바닥을 형성해왔다. 하도 학정에 시달리고 굶주림과 재해에 지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천명(天命)을 스스로 창조해보려는 노력 또한 꾸준히 이루어져왔다.


 그러므로 막연히 장래의 문제를 점쳐보며 하늘의 뜻을 무작정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만 할 게 아니라, 스스로 운명의 변화주기를 알아가지고 당장의 역경은 무심하고 의연하게 넘겨 심리적 안정을 얻은 뒤, 미래를 보다 적극적으로 준비하려는 것이 역(易)을 이루게 만든 근본동기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무심(無心)이란 달관된 경지의 의연한 태도에서 나오는 무계산, 무계획을 가리킨다.


 이러한 ‘무심한 달관’의 경지, 또는 ‘심리적 안정’의 경지는 일단 일차적으로 음양의 변전원리(變轉原理)를 해득하는 데서 얻어진다. 밤이 가면 낮이 오고 여름이 있으면 겨울이 있다. 남자가 있으면 여자가 있고 상(上)이 있으면 하(下)가 있다. 즉, 천지 만물의 운행은 음과 양의 교대작용으로 이루어진다. 인간의 길흉화복도 이와 같다. 궁하면 통하고 통하다 보면 다시 궁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역’이 심리요법서로서 갖는 일차적 효용은, 곤경에 빠진 이가 점을 쳤을 때는 ‘궁즉통’의 원리에 따라 앞으로 곧 순경(順境)이 닥쳐올 것을 알려주어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고, 순경에 들어 오만한 자에게는 곧 곤경이 닥쳐올 것을 미리 경고해주어 스스로 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앞날을 대비하게 해주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주역’의 두 번째 측면은 일종의 철학서로서의 가치에 있다 하겠다. 서양의 ‘Metaphysics'를 ‘형이상학(形而上學)’이라고 번역한 것도 ‘주역’ <계사전(繫辭傳)> 상편에 나오는 “형이상자 위지도 형이하자 위지기(形而上者 謂之道 形而下者 謂之器, 형체를 초월한 것을 道라 이르고, 형체 안에 머무는 것을 器라 이른다)”에서 힌트를 얻은 것인 만큼, ‘주역’은 일종의 형이상학적 논리를 상징적 표현으로 응집시킨 동양철학의 진수라고 할 수 있다.


 ‘주역’은 영원무궁한 음양의 변화작용을 통하여 우주의 진상(眞相)을 파악하고자 한다. ‘주역’에서는 이러한 우주의 진상을 ‘도(道)’라고 표현한다. 역시 <계사전> 상편에서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 한번 陰하고 한번 陽하는 것을 도라 이른다)”라고 한 것은 서양의 원동자(原動者)나 신 등의 개념과 마찬가지로 도(道)라는 상징적 약속어를 통하여 우주의 생성, 발전 원리를 요약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주역’에서는 형이상학과 영이하학이 서로 대립하지 않으며, 철학과 과학이 분리되지 않는다. 종교, 문학, 철학이 자연스럽게 결합하여 하나의 종합적 사상체계를 이루어내는 것이다. 서구에서처럼 종교적 도그마의 힘을 빌리지 아니하고, 또 사변적, 분석적, 논리적 조작을 배제하여 실존의 본질을 인간 스스로 파악해내려는 노력의 결집이 바로 ‘주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의 결과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효용을 수반하게 되는데, 궁하면 통하고 통하면 다시 궁해지는 변전의 원리에 대한 수동적 자각만이 아니라, ‘영원히 통하게 되는’ 행복의 상태를 능동적으로 구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계사전’ 하편에 있는 “역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 시이자천우지 길무불리(易 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是以自天佑之 吉無不利也, 역은 궁해지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로부터 그를 도와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라는 구절은 그것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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