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출가와 탈가족주의의 의미

운영자 2008.11.10 15:43:09
조회 855 추천 2 댓글 4

  불교가 운명을 이기고 관습을 이기고 폐쇄적 도덕을 이겨나갈 수 있는 종교라는 것은, 여러 고승들의 탈(脫)가족주의적 성향을 보면 잘 드러난다. 사실 세속의 윤리로 보면 석가는 아버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처자식까지 버린 ‘철면피’였다. 그런데도 그는 과감히 왕궁을 떠났고 스스로 자유자재한 행동의 영역을 확보할 수 있었다. ‘처자식과의 이별’은 상투적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슬프고 괴로운 일이지만, 개인적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홀가분한 ‘해방’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시집 ‘님의 침묵’으로 유명한 만해 한용운이 본부인을 버리고 출가한 다음, 한참 뒤 다시 다른 여자에게 새 장가를 든 것은 그 과정이 아직까지도 수수께끼로 되어 있다. 그는 출가 후 ‘불교유신론’을 통해 승려도 결혼해야 한다고 그토록 강력히 주장했는데, 그렇다면 왜 그는 본부인과 자식을 다시 거두어들이지 않은 것일까?


  일설에 의하면, 만해는 본부인이 출산을 하려고 할 때 미역을 사오겠다는 핑계로 집을 도망쳐 나와 그 길로 입산(入山)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 뒤로 그는 승려의 결혼을 주장하면서도 본부인과 자식한테는 지극히 냉정하게 대했다. 그러므로 내 보기에 그는 불법을 배우러 집을 나선 것이 아니라 본부인에게 정이 없어 집을 뛰쳐나간 것으로 여겨진다.


  ‘가족을 버리는 것’이 일반적 세속윤리에서는 비윤리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이에 반하여 그것이 석가의 경우든 만해의 경우든 불교에서는 아주 당연한 것으로 용납된다. 이런 사실 자체가 불교가 갖고 있는 반운명론적(反運命論的) 속성을 잘 나타내주는 것이라 하겠다. 운명이란 결국 각종의 윤리, 관습, 규율 등의 총화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색(色)을 가장 경계하는 것이 불교라고 되어 있으면서도, 원효같은 이의 경우는 오히려 색을 몸소 실습했기 때문에 얼렁뚱땅 더 존경받는 것이 불교다. 경허 선사의 예도 마찬가지인데, 이처럼 불교는 원래 융통성을 많이 가지고 있는 종교인 것이다.

>

추천 비추천

2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경제관념 부족해서 돈 막 쓸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5/13 - -
107 <붙이는 글> 마광수의 ‘시대를 앞서간 죄’ [68] 운영자 09.04.03 14799 55
106 운명은 야하다 [14] 운영자 09.04.02 12423 17
105 창조적 놀이정신은 운명극복의 지름길 [3] 운영자 09.04.01 4590 7
104 시대상황에 맞는 가치관은 따로 있다 [7] 운영자 09.03.30 3923 8
103 패륜범죄, 대형참사 빈발의 원인은 따로 있다 [9] 운영자 09.03.27 4937 8
101 ‘위대한 설교자’보다 ‘위대한 놀이꾼’이 필요하다 [5] 운영자 09.03.26 3893 6
100 ‘투쟁’에 의한 역사발전의 시대는 가다 [4] 운영자 09.03.25 3011 3
99 진정한 속마음이 왜곡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4] 운영자 09.03.23 3696 4
98 민심을 바로 읽어내는 것이 급하다 [2] 운영자 09.03.20 2493 1
97 상투적 도덕은 필요없다 [2] 운영자 09.03.19 3055 1
96 왜 이렇게 비명횡사가 많은가 [2] 운영자 09.03.18 3164 5
95 이중적 도덕관 탈피해야 개인과 사회가 건강해진다 [22] 운영자 09.03.17 3075 8
94 그릇된 관념에서 비롯되는 ‘집단의 병’ [4] 운영자 09.03.16 3158 2
93 현대병의 원인은 권태감과 책임감 [5] 운영자 09.03.13 3891 5
92 ‘인격 수양’ 안해야 마음의 병에 안 걸린다 [11] 운영자 09.03.12 5755 18
91 억눌린 욕구가 병이 된다 [7] 운영자 09.03.11 5606 6
90 ‘무병장수’의 현실적 한계 [5] 박유진 09.03.10 3502 3
89 인간 있는 곳에 병 있다 [4] 박유진 09.03.09 2566 3
88 이중적 의식구조를 벗어버리면 병은 더 이상 운명이 아니다 [3] 박유진 09.03.06 2783 2
87 자유만이 유일한 해결책 [4] 운영자 09.03.05 3130 3
86 참된 지성은 ‘지조’가 아니라 ‘변덕’에서 나온다 [3] 운영자 09.03.04 2724 3
85 ‘관습적 윤리’에서 ‘개인적 쾌락주의’로 [2] 운영자 09.03.03 2800 4
84 ‘편의주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 [2] 운영자 09.03.02 2390 2
83 개방적 사고에 따른 문명과 원시의 ‘편의적 결합’ [4] 운영자 09.02.26 2601 1
82 문명이냐 반문명이냐 [3] 운영자 09.02.25 2789 1
81 진리로 포장되는 ‘권위’의 허구 [3] 운영자 09.02.23 2639 3
80 원시와 문명의 ‘편의주의적 결합’은 우리를 참된 자유로 이끈다 [2] 운영자 09.02.20 2029 1
79 솔직한 성애의 추구는 운명극복의 지름길 [2] 운영자 09.02.19 2481 5
78 ‘타락’도 ‘병’도 아닌 동성애 [3] 운영자 09.02.18 4002 10
77 선정적 인공미 가꾸는 나르시스트들 늘어나 [5] 운영자 09.02.17 3034 5
76 개방사회가 만든 자연스런 관음자들과 페티시스트들 [3] 운영자 09.02.16 1631 1
75 삽입성교에서 오랄 섹스로 [9] 운영자 09.02.13 6351 1
74 ‘성적 취향’의 다양성을 인정하자 [2] 운영자 09.02.12 1360 1
73 생식적 섹스에서 비생식적 섹스로 [4] 운영자 09.02.11 2028 4
72 ‘성욕의 합법적 충족’을 위해서 결혼하면 실패율 높다 [3] 운영자 09.02.10 1854 7
71 결혼은 환상이다 [2] 운영자 09.02.09 2068 6
70 작위성 성억압은 개성과 창의력을 질식시킨다 [2] 운영자 09.02.05 1082 3
69 전체주의적 파시즘은 집단적 성억압의 산물 [3] 운영자 09.02.04 1616 2
68 쾌락으로서의 성을 부끄럼없이 향유하라 [5] 운영자 09.02.03 2131 3
67 변화를 인정할 수 있을 때 발전을 이룬다 [2] 운영자 09.02.02 1191 1
66 결국 현재의 욕구에 솔직하라는 역의 가르침 [2] 운영자 09.01.30 1481 1
65 ‘주역’을 아는 사람은 점을 치지 않는다. [7] 운영자 09.01.28 2640 5
64 회한도 희망도 없이 현재를 버텨 나가라 [2] 운영자 09.01.23 1748 1
61 ‘역설적 의도’로 막힌 세상 뚫어보자 [3] 운영자 09.01.15 1611 5
63 쾌락주의에 따른 동물적 생존욕구가 중요하다 [3] 운영자 09.01.19 1550 2
62 음양의 교화(交和)가 만물생성의 법칙 [2] 운영자 09.01.16 1217 1
60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 지닌 동양의 민중철학 [2] 운영자 09.01.14 1167 1
58 궁하면 변하고, 변하다 보면 통한다 [2] 운영자 09.01.09 1739 3
57 햇볕이 뜨거울 때 우산을 쓰면, 신기하게도 비가 내린다 [2] 운영자 09.01.08 1182 1
56 잠재의식과 표면의식의 일치로 얻어지는 생명력 [4] 운영자 09.01.02 1584 2
123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