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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턴테이블 세팅하는 노인 (老人)앱에서 작성

ㅇㅇ(223.62) 2021.09.13 14:59:21
조회 2441 추천 30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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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십여 년 전이다. 턴테이블도 없이 한정판 레코드를 사러 가는 길에, 레코드샵으로 가기 위해 지나가는 길 맞은편 조그만 가게에 앉아서 오디오를 파는 노인이 있었다. 옳거니, 턴테이블을 한 기 사 가지고 가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턴테이블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세팅해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만지작거리고만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세팅하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톤암을 만지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한정판 레코드 마감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세팅하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만진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시간이 없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한정판 마감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세팅해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턴테이블이란 제대로 세팅해야지, 대충 세팅하다가 그만두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카트리지를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라이타를 꺼내 담배를 피우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턴테이블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세팅이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턴테이블이다.


한정판을 놓치고 플미를 주고서 사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商道德)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가게 앞에 놓인 궤짝 스피커를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였다.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집에 와서 턴테이블을 내놨더니 친구는 정석으로 세팅했다고 야단이다. 웬만한 턴테이블들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친구 것과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친구의 설명을 들어 보니, 안티스케이팅(Anti-Skating)이 맞지 많으면 어느 한쪽으로 바늘이 치우치며 같은 침압이라도 편마모가 심하며, 오버행(Overhang)이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소리가 이상해지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명기(名機)는 혹 세팅이 어긋나면 잠시 보고 교정용 매트로 카트리지를 조정한 다음 곧 나사로 조이면 다시 붙어서 좀체로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기기는 세팅이 한 번 어긋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턴테이블을 만들 때, 질 좋은 재료를 잘 조립해서 정성스럽게 마감한 뒤에 검수한다. 이렇게 검수하기를 세 번 한 뒤에 비로소 하자가 없는 것을 포장한다. 물론 날짜가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중국산 양산형을 써서 대충 조립한다. 금방 만들어진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며칠씩 걸려 가며 턴테이블 만들 업체가 있을 것 같지 않다.

LP(Long-Playing)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레코드를 사면 복사판은 얼마, 가요판은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한정판 음반은 두 배 이상 비싸다. 한정판이란 정해진 수량만 찍고 다시는 나오지 않는 음반이다. 눈으로 보아서는 딱 그 수량만 찍었는지 아니면 더 많이 찍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정해진 수량만 찍고 끝내는 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두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음반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래커판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대중가요의 예술품을 만들어 냈다.

이 턴테이블도 그런 심정에서 세팅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젊은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오디오가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김흥국의 레게의 신 이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돌아가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있었던 가게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있었던 가게 문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가게 앞의 궤짝 스피커를 바라보았다. 든든한 우퍼는 금방이라도 중후한 소리를 뿜을 듯이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 우퍼를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턴테이블을 만지다가 유연히 궤짝 스피커를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부구로운줄알아야지(不九魯運茁斡亞野地)!" 노무현(盧武鉉)의 명언이 새어 나왔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아들이 가방턴을 사가지고 들어와 있었다. 전에 팝송, 가요반을 턴테이블로 빙빙 돌리면서 듣던 생각이 난다. 제대로 된 턴테이블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삐걱거리며 톤암 교정하는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10년 전 턴테이블 세팅하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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