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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두던 자리

엠제이(27.113) 2015.07.15 21:19:22
조회 166 추천 3 댓글 8

  연양갱이 없었다. 분명히 두 번째 서랍에 뒀는데 그게 없었다. 첫 번째, 세 번째 서랍과 옷장과 옷장 안에 있는 옷들의 주머니를 모두 뒤져봤지만, 정말 없었다.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와 내가 무슨 낙이 있긴 하나, 고기도 채소도 이가 아파 우물거리지도 못하는데, 그저 고것 하나 빨아먹는 것이 내 유일한 낙이었다. 원망스러운데 누굴 원망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난 조금 더 찾다가 포기했다. 양갱이를 찾는 것은 물 건너갔다. 방이 좁았기에 더 뒤져볼 곳도 없었다. 문득 방이 좁다는 게 화가 났다. 방이 좁지만 않았으면 아직 좀 더 찾아볼 곳이 있었을 거다. 이렇게 무기력한 기분으로 주저앉아 있지 않아도 되었을 거다. 전이 더 좋았는데 대체 이사를 왜 한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사 오기 전에는 방이 조금 더 넓었다. 작은 침대도 있었고, 서랍장도 두 갠가 있었다. 연양갱과 젤리를 가득 담아 둘 수 있었다.

  젤리를 생각하는 바람에 단 것이 더 생각난다. 전에 승일이 생일이라고 손녀가 사온 케이크가 떠올랐다. 그 불여시 년의 얄미운 낯짝이 한 번 더 떠올랐다. 승일이 놈은 크게 썰어서 한 조각씩 먹으면서, 나랑 손녀한테는 씹히는 것도 뭐도 없게 쪼그맣게 조각내 줬다. 그나마도 위에 올려있던 생크림은 다 떼서 줬다. 그래, 저들끼리만 단거 먹고 싶다 이거지. 서랍에 있던 연양갱도 이 년이 몰래 가져간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단 걸 좋아하고 날 싫어하는 건 며느리 년 밖에 없다.

  그 생각이 들자, 나는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소파에는 승일이가 옆으로 누워, 테레비를 보고 있었다. 저런 자세로 자주 누워있으면 분명히 허리에 무리가 갈 텐데, 싶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뭐, 나중에 후회하라지. 조용히 지나가는데 녀석이 말을 걸었다. 뭐 찾으세요? 고개만 돌린 채 그렇게 묻는다. 연양갱이 없어졌어, 하고 말하니, 두시던 자리에 있을 텐데, 하고 다 들리게 중얼거린다. 있던 곳에 있으면, 내가 찾을 이유가 어디 있을까. 멍청한 아들이 조금 걱정된다. 나는 관심이 없어졌는지 티비를 다시 바라보는 녀석의 모습을 확인한 후, 며느리 방문을 열었다.

  그래, 며느리 방은 넓었다. 책꽂이를 그렇게 많이 들여다 놓고도 내 방보다 넓다. 무슨 니쳉인가 뭔가 하는 책상이랑 또 무슨 메이커라는 푹신한 의자도 있다. 기껏 테레비 극본인가 뭔가 쓰는데 뭐 그렇게 큰 공간이 필요하단 말인가. 나는 의자에 풀썩, 주저앉는다. 무슨 털로 만들었는지 쿠션이 푹신푹신하다. 몸의 부분을 구석구석 받쳐줘, 내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게 만들어줬다. 이런 의자에 앉으면 잠이 와서 글을 제대로 쓰긴 쓸까. 일하는 것에도 도움 안 될 의자가 뭐라고 자기 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봤을 땐 승일이 놈한테 힘들다며 앵기는 꼴부터 다 수작질이다. 내가 없으면, 멍청하고 우둔한 그 놈이 저 여시 년에게 휘둘릴 꼴이 선명하다. 얼마 전에도 며느리 고 년은 내가 시원한 물이나 한잔 좀 떠오라고 했더니, 팔팔 끓인 게 분명한 뜨거운 물을 들고 왔다. 목도 안 좋으신데 찬 물 마시면 안 되세요, 라고? 그거 마시고 목 다 타는 줄 알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책상 서랍을 뒤졌다. 별로 대단한 건 없었다. 무슨 극본, 무슨 극본. 이 애는 극본밖에 쓸 줄 모르나? 소설도 쓰고, 시도 쓰고, 그래야 승일이한테 옷 한 벌이라도 사 입힐 것 아닌가. 온갖 종이로 가득 찬 서랍을 뒤적거리는 것은 피곤한 일이었다. 마지막 서랍까지만 보고 쉬려고 생각하는데 이상한 게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상조보험에 대한 안내 책자였다. 왜 이런 곳에 이런 것이 있을까. 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의자에 몸을 기댄채 그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고 있는데, 조금 후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승일이었다. 그는 연양갱을 내밀며 그것이 두 번째 서랍에 있었다고 말했다. 놀라서 두 번째 서랍? 하고 말하자, 승일이가 웃으면서 답했다. 네. 늘 두시던 그 자리에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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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엽편 3탄. 현재 생산되는 엽편이 없으므로, 쌓여있던 엽편이 동나는 순간 이 글은 끝나게 될 것이다. 솔직히 단편은 여기 올리긴 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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