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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수 있다면 난 무엇을 포기할 수 있나 포기한 뒤에 남은 것들은 무엇?모바일에서 작성

책레(37.228) 2015.05.30 19:36:32
조회 65 추천 0 댓글 1


더 늦기 전에 출발하기로 하고 마당으로 나섰다. 고추밭 주인이 전구를 켜서 마당을 밝혔다. 고추며 감이며 고구마며 호박이며 그 많은 자루를 싣고 보니 차가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 타이어 아래쪽이 빵빵하게 눌려서 못이라도 박히는 날엔 속절없이 터질 것 같았다. 누군가 내 팔뚝을 톡, 톡, 두드렸다. 노부인이 내 얼굴을 바짝 들여다보고 말했다.
자고 가.

밥 줄게.

누군가 도와줬으면 해서 둘러보았지만 오제도 오제의 어머니도 짐을 확인하느라고 바빴다.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서 있다가 다음에 와서 자고 갈게요, 라고 말했다. 몇 겹으로 왜곡된 안경 속에서 노부인의 눈이 슬프게 일그러졌다.

다음에 오냐.

네.

정말로 오냐.

네.

나 죽기 전에 정말로 올 테냐.

……


오긴 뭘 오냐 니가, 라고 토라진 듯 중얼거리는 할머니 앞에서, 안 하느니만 못한 말이자 약속도 아닌 약속을 해버린 나는 얼굴을 붉혔다. 오제의 어머니가 자동차 뒷좌석에서 머리를 내밀더니 할머니, 우리 이제 간다고 말했다.

고추밭 주인은 마지막으로 헛간 벽에 널어 말리고 있던 시래기를 한 두름 따서 가져왔다. 아무에게나 나누어주는 것이 아니라며 한사코 거절하려는 오제 어머니의 무릎에 시래기 두름을 던진 뒤 차 문을 닫고 뒤로 물러났다. 돌을 튀기며 마당을 빠져나가는 동안 나는 내 무릎을 바라보았다. 얼마쯤 멀어진 뒤에야 사이드미러를 통해 보니 아흔 살 노부인이 조그맣게 마당에 서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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