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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갤러들아 이거는 어때양모바일에서 작성

ㅁㄴㅇ(223.39) 2018.12.09 20:38:35
조회 152 추천 0 댓글 3




쓸쓸한 바다에서 만난 그는 마찬가지로 쓸쓸해 보였다. 모래와 바닷물이 만나는 곳을 따라 위태롭게 걷던 그는 이따금 밀려오는 파도를 피해 몇 발자국 휘청거리다, 괜시리 젖은 흙을 신발로 짓이기다, 또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기도 했다. 그에게 다가가 어루만지듯 조심스레 물었다. 무슨 일이 있나요.

그는 옅게 웃었다.

바다가 좋아서요. 전에 여기 살았었어요. 이 바다를 좋아했거든요.

맥락에 맞지 않고 담백한 답이 나는 꿈결처럼 슬펐다.

지금은 살지 않나요?
네. 지금은 살지 않아요.
아직 좋아하시죠?
네. 아직 좋아해요.
그런데 왜 지금은 살지 않는지 이유를 여쭤도 될까요?

그는 내 질문에 기지개를 한 번 켰다. 시선은 몽롱하게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깜빡거리는 눈이 슬프지 않아 슬펐다.

나는 이 바다의 모든 걸 다 좋아했어요. 해안선을 따라 걸을 때 바닷물이 내 신발을 적시는 느낌이 좋았어요. 한 움큼 쥔 모래가 반짝반짝 빛나서, 혹시나 손에서 빠져나올까 겁이 났어요. 이 바다에서 부는 바람은 차갑지 않았어요. 항상 장난치듯이 불어왔죠. 밤에 보는 이 바다는 특별해요. 파도에 비친 불빛이 너무 예뻤어요. 똑바로 보기가 힘들어서 눈을 감고 싶은데 차마 그럴 수도 없었어요. 너무 예뻐서요. 그러니까 정말로, 나는 이곳을 많이 좋아했어요.

그건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에요.

나는 조금 화난 어조로 말했다. 그가 비겁해 보였다. 이곳을 좋아한다면서 떠나버리고, 그러면서도 다시 찾아온다니. 그는 내 무례한 말투에도 미안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저게 대답인걸요.

네?

이 바다를 너무 좋아해서 지금은 살지 않아요.

그가 한 이야기 중에서도 특히나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그는 허탈함을 꺼내놓듯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바닷물이 내게로 다가올 때 나는 정말 행복했어요. 그렇지만 언제나 그럴 수는 없는 거잖아요. 물이 차면 다시 빠져야 하죠. 나는 그 썰물의 시간을 견디는 게 힘들었어요. 한밤 중에 저 멀리 달아나 있는 바다를 보는 게 슬펐어요. 곧 다시 온다는 걸 알아도, 그 시간이 너무 쓸쓸했어요.

모래의 바슬한 감촉이 좋았지만요, 신발 안에 스며드는 모래는 고통스러웠어요. 손끝에 닿은 모래는 이렇게나 선명하게 기쁜데 내가 볼 수 없는 곳의 모래는 불안하기만 했어요. 나는 그걸 참아내지 못하고 여러 번 신발을 벗어 모래를 털어냈죠. 그러는 동안 걸음이 여러 번 멈췄어요. 손으로 신발을 털어내려다 보니 내 손에 소중하게 쥐고 있던 모래도 날아가 버렸죠. 당연하고 웃긴 일이에요.

바람은 차갑지 않고 맑게 불었지만 나는 곧 겨울이 온다는 걸 알았어요. 그러면 더 이상 내가 알던 그 바람일 순 없겠죠. 어쩌면 겨울이 오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이 특별한 바다에 그런 기적이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결국 겨울이 와버린다면 나는 너무 추울 것 같았어요. 바람을 직접 맞는 게 좋아서 겉옷을 미처 챙겨오지 못했거든요.

파도에 비친 불빛. 정말 너무 예뻤는데. 도저히 시선을 뗄 수가 없어서 눈이 멀어버리는 줄도 모르고 있었어요. 나는 그 불빛을 앞에 두고 눈을 감아버릴 자신은 없었어요. 그래서 몸을 돌려버렸죠. 등 뒤에 여전히 불빛이 아름답다는 걸 알아도 이제 내가 확인할 수 있는 건 그림자뿐이니까, 그건 참을 만했어요.

나는 정말로 이 바다를 많이 좋아했고 그래서 이곳에서 더는 살지 않기로 결정했어요. 내가 떠나고 나니 이 바다도 더 이상 특별하지 않았어요. 모래도 바람도 파도도 불빛도 특별할 것 없는 그냥 당연한 일이었어요. 그리고 알게 됐어요. 이 바다는 이제 쓸쓸하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아름답거든요. 그거면 됐다고. 그래서 이젠 아무도 찾을 사람 없는 이 바다에 가끔 발이나 들러 보는 거예요. 그럴 땐 내 마음 속 바다도 되살아나거든요.

나는 무슨 말을 할 지 고민했다. 위로와 비난과 동정과 경멸 사이를 고민하다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

당신은 비겁한 사람이에요.

네, 맞아요.

당신은 예의와 참을성이 없고 변덕스러운 사람이죠.

그것도 맞아요.

당신은 성급한 결정을 했다고 밤마다 후회할 거예요. 그렇죠?

그럴지도 몰라요.

그는 쓰게 웃었다.

바다는 지금도 내 마음속에 있지만 거길 걸을 순 없는 거니까요. 가끔은 직접 보고 느꼈던 내가 좋아한 바다가 그립기도 하겠죠. 하지만 두려운 바다에서 지쳐 잠들기는 더 이상 싫어요. 나는 안락하게 잠들 수 있는 내 침대를 택했어요.

그는 마지막으로 충고하듯이, 안타까워하듯이 말했다. 그러니까 너도 이제 그만둬.

그리고 그는 자리를 떠났다. 나는 홀로 쓸쓸한 바다에 남았다. 그도 가고, 찬란하던 바다도 빛을 잃어버린 곳에 남겨진 빈 껍데기 같은 나. 잔해 같은 나. 고통 같은 바다. 사랑하는 바다.

꺼슬하게 어두운 색의 모래. 바람이 흐리다. 빛은 희미했다. 철썩, 하고 파도가 친다. 물이 움직인다. 흐르는 소리. 그것이 내게로 다가오는지 멀어지는지 미처 확인하기도 전에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이거 쓸 때는 넘모 슬펐는데 지금 보니 너무 뽕찬 거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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