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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피우다

ㅇㅇ(223.62) 2018.09.24 13:19:02
조회 206 추천 0 댓글 1


불을 피우다


장작을 팬다.

장작을 패기 전, 그동안 아비가 느릿느릿 지겟짐 지고 해온 나무들을 일단 적당한 크기로 잘라야 한다.

땔깜을 다듬을 때는 장작패기보다 이 톱질이 더 힘들다.

대장간에서 사온 큰 톱과 철물점에서 사온 작은 톱 두 개를 헛간에서 찾는다.

요전날에 줄로 갈아놓은게 어느건지 헛간 문지방에서 톱날을 살펴본 뒤 적당한 걸 꺼내와 놓고는 스삭스삭 굵은 통나무들을 썬다.

모탕 옆에 차곡차곡 썰어 놓고는, 이제부터 장작을 팬다.

두툼한 통나무 한쪽 끄트머리를 모탕에 올려놓고 도끼로 팬다.

참나무는 잘 나간다. 한방에 훅 나간다.

낙엽송도 잘 나간다. 결이 휘긴 하지만 한방 혹은 두방에 나간다.

소나무도 잘 나간다. 결이 심하게 휘긴 하지만, 그래도 잘 나간다. 반듯한 소나무는 그렇다.

하지만 옹이박힌 소나무는 잘 나가지 않는다.

나무는 결이 있는데, 옹이가 이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때는 옹이 부분에 날을 넣어 몇 번을 패 겨우 쪼갠다.

날이 슬슬 저물고 있다.

그만 패야 겠다.

벽에 그간 패온 장작들 위에 모탕 옆에 흐드러지게 쌓아놓은, 이번에 팬 장작들을 보기좋게 쌓는다.

그리고 모탕 주변의 나무 부스러기와 껍찔들을 망태기에 담아 쇠죽 끓이는 아궁이로 간다.

아궁이에는 큰 가마솥이 걸려있는데,

여물간의 카터기로 잛게 썰은 짚을 삼태기로 두 번 고봉으로 붓고,

여기에 음식을 하면서 나온 구정물에 다시 맑은 물을 부어 이걸 끓이는 것이다.

불을 피운다.

그 불은 소에게 여물을 쑤어주는 불이 되고, 오랫동안 풍으로 누워있는 할비의 뜨끈한 금불이 될 것이다.

이따금 구진할때면 웃방 큰 박스에 담아둔 고구마나 항아리에 차게 담아둔 밤을 구워먹는 숯이 될 것이다.

땔감의 에너지는 알뜰하게 쓰인다.

불을 피우는 방법은 그간 뽀개온 마른 장작을 꺼내 쓰는데,

두툼한 장작을 야궁이 양옆으로 포진시키고,

그 위에 삭정이 혹은 잔가지들을 손으로 약간 작게 분지른 뒤 공간을 적당히 배분하여 또한 적당히 쌓고,

아래 빈 공간으로는 그간 읽다가 이딴 것도 소설이냐 하며 욕하면서 본, 혹은 읽다가 건너뛴 소설책 두어장 정도

찢어 불을 붙이고 이를 쏘시개 삼아 밀어 넣는다.

그렇다 두 어장 정도면 충분하다.

마른 나뭇가지들에 이어 불이 붙는다.

나뭇 가지들을 적당히 분질러 더 넣는다.

부지깽이로 불씨를 뒤적이며 공기의 공급을 원할하게 화력을 돋군다.

불이 어느정도 붙게 되면 그 위에 적당히 공기가 공급되도록 장작을 쌓아 올린다.

장작을 쌓아 올릴 때는 마치 공수 양면에 완벽한 장기판의 말들처럼 한다.

한 7~8개 정도 두툼한 장작과 얇팍한 장작을 적절히 쌓아 올리면 금불로나 소죽 끓이는데 충분하리라.


장작에 불이 옮겨 붙는데는 나무마다 차이가 있다.

일단 잘 말라야 한다.

허나 항상 바싹 잘 말라 있을리는 없다.

그냥 그럭저럭 말린 상태의 장작들을 땐다.

이들 중 가장 차이가 나는 나무라면 소나무와 참나무 일 것이다.

소나무는 송진과 나무껍데기 때문에 잘 붙는다. 옹이가 있는 곳은 검은 연기를 내며 활활 잘 붙는다.

그러다 이런 부분들이 소진되고 나면 한동안 불꽃이 줄어든다.

이에 반면 참나무는 처음부터 불이 잘 붙지 않는다. 오랫동안 그 밑에 얇은 나뭇가지들이 타고 없어질 때마다

넣어줘야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차츰 불이 붙는다.

불이 붙으면서 아궁이 바깥으로 약간 삐져나온, 톱에 잘린 면으로 쉬이이익 소리를 내며 눈물을 흘린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타는게 참나무다.

참나무는 오래 탄다. 파란 불꽃을 내며 오래 탄다.

낙엽송은 탁탁탁 불꽃을 튀기며 노란 불꽃을 내며 활활 잘탄다.

한결같이 잘탄다.

낙엽송 장작의 경우 오랜 건조가 필요없다.

장작이 어느 정도 타서 숯이 되어 떨어지면 나머지를 아궁이 깊숙이 밀어 넣는다.

불곁에 오래 있다보면 얼굴이 화끈화끈 뻘개진다.

고개를 들어 가마솥을 보면 김이 솥뚜겅에 맺힌뒤 응결하여 솥뚜겅을 시작으로, 솥 바깥에 역시나 울고 있다.

솥뚜겅을 아궁이 벽에 세워둔다.

벽에 걸린 쇠죽갈구리를 이용해 이리 휘 저리 휘 그리고 꾸욱 눌러 잘 범벅시킨다.

그리고 죽통에 배추조각이나 고구마껍질, 푸성귀가 조금 섞인채 쇠죽을 퍼 담는다.

죽통에 가득 담고, 쇠물박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물 두 바가지 정도 넣는다.

죽통을 들고 외양간에 간다.

소가 밥 때 인걸 벌써부터 알았다는 양 미리 여물통 앞에 서 있다.

크고 까만 눈동자를굴리며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

여물통에는 점심때 먹다남은 녹색 빛깔의 얼어붙은 물과, 쉰냄새의 쇠죽이 약간 있다.

갈구리로 긁고, 쇠물박에 담아 거름밭에 내다 버린다.

깨끗한 물을 부어 한번 여물통을 헹궈준다.

그리고 여물통에 쇠죽을 쏟는다. 탈탈 털어넣는다.

소가 달려든다.

그러나 먹지는 않는다.

김이 모락모락 난다고, 뜨겁다고 겁을 내는건 아니다.

날이 워낙 추워서 금방 식는데다가, 겨우 미지근한 쇠죽에서 김이 날 뿐이니까.

사료가 없으면 맛이 없어서 먹질 않는다.

그래. 고소한 사료. 고소한 냄새가 나는 사료.

도라무통으로 만든 사료통에 쇠물박 반바가지 넘게 훔친뒤, 여물통에 쇠죽에 조금씩 조금씩 뿌리면서 갈구리로 뒤적뒤적 섞는다.

소가 달려든다.

쇠죽에 주둥이를 쳐박는다.

그런데 그것은 그대로 여물을 훔쳐 씹는게 아니라, 사료만 핥아 먹고 있다.

그런 소를 노려보고 동시에 쓰으으읍 입소리를 내며 쇠물박으로 소의 머리를 한대 때린다.

그러면 알아 들을 터.

소는 눈을 껌뻑이고 신경질을 내며 물러난다.

사료만 핥아 먹느라 움푹 눌린 부분을 갈고리로 뒤적여 풍성하게 한다.

소가 다시 여물통에 다가와 그제서야 쇠죽을 먹는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 그 큰 눈알을 굴려 나를 바라본다. 약간의 흰자위도 보인다.

나는 빙긋 웃는다.

다시 쇠죽 끓이는 부엌으로 돌아가 뚜겅이 열린 가마솥과 아궁이를 번갈아 본다.

가마솥은 김을 허옇게 내뱉고 있고, 아궁이 속은 장작은 많이 사그라들어 있다.

아직 아궁이 입구쪽에 있어서 덜 탄 장작을 거무튀튀 재에 묻어 허옇기도 고물개로 안에 쑥 밀어 넣는다.

장작에서 만들어진 숯들이 샛노랗게 열과 빛을 낸다.

아까 장작 뽀개고 남은 나무부스러기, 나무 껍질들을 아궁이 속으로 탁탁 털어 넣는다.

그리고 다시 고물개를 이용하여 그 부스러기들도 쑥 밀어넣는다.

탁탁탁 튀는 소리를 내며 불꽃이 작은 활기를 띈다.


복빗자루를 이용하여 바닥에 있는 부시러기들을 처리한다.

가까운 부분은 아궁이로 밀어넣고, 먼쪽은 내일 아침 땔용으로 모아놓는다.

또 여물간에 가서 삼태기에 한가득 짚여물을 담아와 가마솥에 넣어둔다.

그리곤 물뜨다 살금살금 흘러내린 물로 담벼락과 바닥에 꽁꽁 얼음이 언 우물에 가서 두레박으로 물을 푼다.

속의 우물은 아무리 추워도 얼지 않는다.

물은 양동이에 가득 담아 쇠여물 가마솥에 쏟아 붙는다.

솥뚜껑을 덮는다.

아궁이를 다시 확인한다.

이정도면 내일 조금만 뎁혀 바로 소가 먹을 수 있는 아침꺼리는 될 것이요,

금불은 아픈 할비가 뜨듯하게 겨울밤을 보낼 것이다.

나는 장작 두 개를 새로 꺼내 아궁이에 깊이 가로로 밀어 넣고,

쇠죽 끓는 부엌을 나와 문을 닫는다.

우물에 가서 찬물로 세수를 한다.

장작을 패고, 쇠죽 쓰며 달궈진 몸이라 얼음장 물이 그다지 차갑진 않다. 시원하다.

날은 어느덧 깜깜한 밤이 되어있고, 고개를 들어보니 별이 반짝반짝 하늘에 얼어붙어 있다.

세수하면서 물 묻은 앞머리칼은 어느새 고드름으로 뭉쳐 있다.

이제 안방의 금불을 땔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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