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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영훈 에세이] 세계를 향하여

운영자 2006.02.07 12:03:37
조회 1968 추천 0 댓글 2

  4. 도시 계획 전문가, 세계로 향하다

  
세계를 향하여

  1964년 유학 생활 시작 무렵, 뉴욕 Far Rockaway에서 세계 박람회를 처음 보고 언젠가 한국에서 열릴 엑스포를 꿈꾸었다. 1972년 미국 유학 생활 끝 무렵에는 뮌헨에서 올림픽을 처음 보고 언젠가 한국에서 열릴 올림픽을 꿈꾸었다. 그리고 그 꿈은 ’88 서울 올림픽과 ’93 대전 엑스포를 통해 꿈이 아닌 현실이 되었다.

  ’88 서울 올림픽은 동서 이념의 벽을 허문 20여 일 동안의 잔치였고, ’93 대전 엑스포는 남북 간의 기술의 방법을 자연과 친화적으로 승화·발전시킨 100일간의 잔치였다. 그 짧은 잔치를 끝낸 지금, 나는 다음 밀레니엄의 지구촌 문명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동서와 남북의 글로벌 잔치를 잘 일궈낸 이 민족이 이제는 열흘 단위, 백일 단위의 잔치가 아니라 지구상의 북동서남(北東西南, NEWS) 모든 민족과 국가와 인종이 사통팔달(四通八達)로 교류하는 ‘지구촌 문명(GVC, Global Village Civilization)’을 이루고 그리하여 화이부동(和而不同), 홍익균정(弘益均正), 무경광평(無境廣平)하는 시대를 꿈꾼다. 100일이 아니라 21세기 100년, 2000년대 1,000년을 생각할 일이 우리 앞에 있다.

  2000년대는 싫든 좋든 전 인류가 나라의 경계 없이 살아가야 하는 지구촌 문명 시대다. 이것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심리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자국이나 자국민의 입장이 아닌, 지구촌 전체와 인류의 공동체 의식과 입장이 전제되어야 함을 뜻한다. 지구촌 문명 시대에 향후 100년, 1,000년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과정의 하나가 세계 시민의 도시(World Citizens’ City)를 만드는 일이다.

  나는 이집트 정부의 의뢰를 받아 시나이 반도에 신문명 도시(STV, Sinai Technology Valley)를 계획하였다. 그 작업이야말로 올림픽과 엑스포를 넘어 세계로 시선을 돌려야 하는 시기에 내게 부여된 중요한 경험이자 시험이었다. 지난 2,000년 넘게 갈등을 겪어 온 지역, 그중에서도 모세가 십계명을 계시 받은 아시아의 최서단 끝 지역, 수에즈 운하를 넘으면 아프리카 땅으로 이어지는 이 역사적 교통 요충지 7,200ha에 20만 인구의 새 삶터의 도시 설계와 개발 전략을 짜는 일은 결코 예사롭지 않았다. 나는 주한 이집트 초대 총영사인 모하메드 숄카미와 여러 번 단란한 대화를 나누었고, 그에게 한국과 이집트 간의 국교 정상화도 이룰 겸 시나이 반도 천년 계획의 기본 구상을 전했다. 후일 그들이 내 이름을 따서 ‘KWAAK π Millennium Plan’이라고 명명한 이 계획은, 나일강과 지중해안을 따라 T자 형태로 발전한 지난 7,000년 역사를 바탕으로 이제 시나이 반도 해안을 따라 V자 형태로 다음 1,000년을 개발하는 아이디어다.

  이집트 정부는 1994년에 시나이 반도 신도시 사업을 국가 계획에 포함시키고 1995년에 외교 채널을 통해 협력 사업이 가능한지 그 타당성 여부를 정태익 주이집트 총영사를 통하여 한국 정부에 타진하였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대외 협력 지원 창구인 한국 국제 협력단(KOICA)의 타당성 검토를 거쳐 양국 간 국가 협력 사업으로 추진되기에 이르렀고, 1997년 4월부터 정식으로 계획 수립에 들어갔다. 나는 이집트 정부가 이 계획을 공식적으로 발주하기 이전부터 주한 이집트 대사 내외를 수시로 만나 시나이 반도의 역사적·지형학적 의미를 강조한 바 있다.

  “시나이 반도를 통해 21세기 새로운 인류 화합의 문명 패러다임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고 그 지역 종교 분쟁의 평화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인류 문명의 발상지였던 이집트가 21세기에 해야 할 가장 적절한 이집트다운 일이다.” 이것이 내 주장의 골자였다. 아울러 나는 인도양과 대서양으로 가는 길목이자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이 만나는 지점이 시나이 반도이고, 또 역사적으로 문명의 발상지인 만큼 새 천년을 내다보는 밀레니엄 계획을 세우기에 적합한 지구적 거점(Glocale, global과 local의 합성어)이라고 덧붙였다. 내 얘기를 들은 이집트 대사는 1992년 본국 정부에다 내 의견을 전했고, 이집트 정부는 곧 나를 초청하였다. 우리의 방문에 알 아하람(Al Ahram) 신문을 포함한 현지의 언론은 물론 당시 무바라크 대통령과 이베이드 총리 등 고위 관계자가 큰 관심을 보였고, 우리 부부는 국빈에 가까운 기대 이상의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공식적인 초청은 알 아하람 회장 명의로 되어 있어서 대화는 주로 그 회장실에서 이루어졌지만, 우리의 대화 내용은 수시로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보고된 모양이었다.

  시나이 반도를 방문했을 때 나는 이집트 내무부 장관과 경제계 대표, 시나이 주지사 등과 함께 지중해 연안의 휴양 도시 엘 아리쉬(El Arish)에서 이틀 동안 회의를 가졌다. 오랜 분쟁 지역인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가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도 ‘시나이 반도 밀레니엄 계획(KWAAK π Millennium Plan)’을 설명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나이 반도는 역사적으로나 지형적으로나 이집트만의 것일 수 없습니다. 지금껏 살아온 모든 인류와 앞으로 살아갈 지구촌 사람들의 것입니다. 인류를 위해 시나이 반도를 봉정하십시오.” 내 말을 듣는 순간,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잠시 호흡을 멎은 듯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그날은 마침 팔레스타인이 처음으로 자치를 인정 받는 날이었다. 나는 팔레스타인기, 이집트기, 이스라엘기가 함께 게양되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인류의 운명을 보았다.

  내가 환경그룹과 함께 도시 환경 설계를 한 STV는 ‘KWAAK π Millennium Plan’의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하는 일이었다. 유목 시대와 농업 시대가 살아 숨쉬는 지역이 전체 대상 면적 7,200ha의 반 이상을 차지하도록 계획하였고, 그 목표는 산업 시대와 정보화 시대의 4개 문명대가 같이 있는 특유의 문명 도시를 만드는 일이었다. 나는 이 도시의 해안과 산의 자연적 연결이 신도시로 인해 훼손되지 않도록 6개 구역의 시가지 사이사이에 자연 농업 지대를 배치하였다. 여기에는 태양열을 이용한 에너지원 확보, 첨단 과학 기술이 적용된 식수 공급 방법 등이 적용되도록 하였다. 인근 운하와의 연계 방안에 있어서는 STV의 모든 어린이들이 부모의 경제나 사회 여건과는 아무 상관없이 모두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체육 휴양지로 계획하였다. 사막 위에 만들어지는 첨단 문명의 도시지만, 동시에 유목민들이 낙타를 타고 도심을 활보할 수 있는 그런 도시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나는 필리핀 수빅만의 이코노폴리스(Econopolis) 계획, 나이지리아의 아부자(Abuja) 신수도 계획에 참여하였다.

  최근에는 알제리아의 시디 압델라(Sidi Abdellah) 신과학 기술 도시 계획에 관여하고 있다. 사하라 사막의 대부분이 포함된,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큰 면적을 가진 알제리아는 오랜 식민지로 고난이 심했었다. 이제 21세기로 비약하려는 그들의 포부에 엔진을 달아 주는 계획이 바로 시디 압델라 신과학 기술 도시 계획으로 지중해 연안까지 연장 발전하면서 세계 시민이 배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로마 시대의 Tipaza도 인근에 있어 세계 시민의 도시로 그 잠재력이 크다. 조만간 아프리카 마다가스칼 북쪽 인도양의 세이셸(Seychelles) 군도를 세계 평화시로 만드는 작업도 시작할 예정이다. 올랜드(Oland), 페낭(Penang) 같은 기존의 섬 지역도 세계 시민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자유 지역으로 네트워킹을 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이런 작업을 위해 지금 내 손에는 한국 지도와 함께 세계 전도가 들려져 있다. 한반도가 과거 역사 속에서 이리저리 세계의 변방으로 밀리며 세계 문물과 사조의 맨 끝처럼 되어 있었던 현실에 이제 종지부를 찍어야 하며, 나는 그 일의 한 부분을 담당하기 위해 그 지도 두 장을 꼭 쥐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경제가 성립되기 때문에 더욱 많은 ‘세계적 생각’을 해야 하고 그만큼 지구의 여러 곳에서 활동해야 한다. 그래서 세계와 한국을 하나의 개념으로 생각하는 일을 나는 ‘THINK(The International Network of Koreans)’라고 부르고, 세계 곳곳에서 우리의 물건을 파는 한상(韓商)과 세계 도처에 퍼지는 우리의 한류(韓流) 문화를 생각한다. 세계의 중심이 될 내 조국의 모습을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국운의 날개를 펴 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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