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공개된 콜옵 신작인 콜드워의 트레일러가 화제다. 이 트레일러는 유리 베즈메노프의 인터뷰와 냉전의 여러 장면들을 보여주며 "자신의 역사를 기억하라, 기억하지 않은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는 미제 프로파간다라고 볼만한 요소들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애초에 미군의 제작지원을 받고 미국회사가 만든 게임이니 당연하겠지만.. 지금까지는 그나마 선을 지켰던 콜옵이지만, 작년에 나온 모던워페어 리부트에선 완전히 선을 넘고 노골적인 미제 프로파간다로 전락했다. 러시아군을 나치 수준의 전범집단으로 묘사하며, 더군다나 '지옥의 고속도로'같은 미군의 전쟁범죄를 러시아군이 한것으로 뒤집어 씌우기 까지해 러시아엔 판매되지 않을 정도였다.
헌데 이번 신작의 트레일러를 보면, 아예 명백한 프로파간다 게임으로 노선을 정한 모양새다. 유리 베즈베노프의 연설을 인용한건 한국으로 치자면 탈북자가 종편에 나와서 썰푼걸 영화 예고편에 쓴것과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베즈베노프가 '혼란화'에 대해 말하는 부분에 베트남전과 반전 시위 장면을 집어넣은건 반전 시위를 '공산주의자의 음모' 따위로 폄하하는 메카시즘적 발상이 연상될 뿐 아니라, 현재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과 관련지으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그러면서 '역사를 잊지 말라'고 강조하는데, 티져 트레일러만 봤을 뿐인데 게임의 내용이 모두 상상될 정도다.
이에 대한 서양 인터넷의 반응은 세가지로 나뉘고 있다. 좌파들은 당연히 이런 노골적인 반공 프로파간다에 역겨워 하는 반응이며, 대안우파들은 게임의 PC요소를 보며 '게임에 정치적 잣대를 들이밀지 말라!'라며 울부짖던건 잊은건지 매우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이 게임에 대해선 '이게 진짜 역사다 빨갱이들아!'라며 매우 환영하고 있다. 그리고 정치에 관심없는 일반 콜옵 매니아들은 '어차피 멀티가 메인이고 싱글은 곁다리인데 뭘 그렇게 신경쓰냐'라며 무덤덤한 모양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문제의 국가전복 4단계론에 대해 알아보자. 이 음모론을 주장한 유리 베즈메노프는 인도에서 활동하던 언론인이자 KGB 정보원으로 1970년 CIA의 도움을 받아 캐나다로 망명해 반공 작가로 활동했다. 망명과정이 흥미로운데, 델리에서 영화를 표 없이 보다가 경찰에게 걸렸는데 암표를 사오겠다고 뻥치고 그대로 그리스까지 도망갔다고 한다. 그러다 CIA와 접촉해 캐나다로 망명한 것이다. 국가전복 4단계론은 1984년 우익 음모론자인 에드워드 그리핀과의 인터뷰에서 처음 등장했다.(그리핀이 어떤 작자인지는 "문화 막시즘 - 미국의 타락"이라는 책에 공동저자로 올라와 있다는 것으로 갈음한다.) 베즈메노프는 이것이 KGB가 미국 체제를 전복하는데 사용중인 '이념적 전복' 방법이라며, 미국인들이 반공 의식을 고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여튼 베즈베노프의 음모론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혼란화: 청년세대를 용공분자로 세뇌
2.
불안정화: 용공세력이 국가를 장악해 시스템을
해체
3.
위기: 혁명 등 사회적 혼란으로 정권이 교체됨
4.
정상화: 새로운 공산 정권의 안정화.
이렇게 4단계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부분은 여러 극우 논객들의 요약들이 많은데, 인터뷰 전문을 번역했으니 직접 보자. 읽다보면 반공주의자들은 진짜 이런걸 믿는구나 싶어서 은근 재밌다. 근데 글자 수 제한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로 올림.
음모론의 핵심은 지금 미국 사회 곳곳에 빨갱이들이 암약하고 있고 이는 소련 빨갱이들의 음모이니 지금처럼 방심하다간 다 뒤지니까 정신차려라 미국놈들아. 그리고 공화당 레이건에 투표해라(마지막에 베즈베노프가 비난한 먼데일은 민주당 대선후보)라는 내용이다. 뭔가 한국 종편에서 탈북자들이 나와서 떠드는 얘기랑 일맥상통한다. 북한(소련)은 존나 좆같은 곳이고 지금 남한(미국)을 빨갱이들이 장악하려고 하고 있고 민주당은 빨갱이놈들이다 라는 일종의 공포마케팅이다. 베즈베노프외에도 다른 소련 출신 망명자들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고 한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몰이해야 그렇다 쳐도 이 음모론에 대한 신빙성은 알 수 없다. '적극적 조치'라는 전략은 KGB에서 실존했고, 소련이 미국에서 첩보활동을 벌인건 사실이지만, 이렇게 엄청난 공포심을 조장할 정도로 큰 성과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인터뷰이부터 우익 음모론자고, 베즈베노프같은 '망명자'들은 CIA로부터 막대한 포상금을 받으며, 이를 대가로 CIA의 의도대로 움직이기도 한다. 인터뷰 막바지에서 노골적으로 레이건을 지지하고 민주당 후보를 비난한 걸 보면 더욱 의심이 간다. 차라리 매카시처럼 '미국 사회에 암약하는 공산주의자 명단'이라도 공개했다면 어땠을까. 어찌됐는 그의 주장은 그저 '증언'에 불과하지만 믿는건 개인의 자유다. 스탈린이 소련 인구 2억중 1억명을 죽였다는 주장을 믿는 반공주의자들이 수두룩한데 뭐 어쩌겠나.
이 음모론의 핵심인 '미국 사회 곳곳에 암약하는 공산주의자들'은 문화 맑시즘 음모론과도 일맥상통하는데, 실제로 베즈베노프의 이 음모론은 많은 대안우파들의 이론적 근간이 되고 있으며, 그들에게 심심하면 인용되곤 한다. 심지어 한국의 극우에게도 알려져 북한=중국=문재앙=민주당=페미=공산당=pc...같은 주장의 근거로 자주 인용된다. 실제로 콜옵 트레일러의 여파로 어느 커뮤니티에서 국가전복 4단계론이 알려졌는데, 댓글이 '문재앙이 하는 짓이네'더라.
근데 글쓰는중에 콜옵 콜드워 트레일러가 또 나왔는데, 레이건 나오고 정의의 CIA요원들이 소련군 때려잡는 내용임. 하여튼 긴글 읽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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