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 그냥 써보고 싶었어
참고로 오얏나무 한자 쓰는 이씨는 "리"씨가 맞다.
조선시대때 우리 조상들이 리을 두음을 잘 발음을 못해서
니은으로 발음했거든?
그런데 조선 말~ 해방 전까지는 리을 발음을 할 수 있는 조상들도 많았다
일제가 조선어 말살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조선인 두음법칙맹아론을 주장하면서
본래 조상들이 "니"라고 잘 쓰던 것에 한 번 더 두음법칙을 적용해서 "이"라고 바꿔버림.(이건 합리화 될 수 없다.)
이에 반발했던 조선어수호 독립운동가들은 "리"를 고집함
해방 후에 조선어수호해야한다는 국어학자들 대부분은 북으로 갔고
이남에는 이승만과 친미파들과 친일파들이 남았음
이승만도 원래는 "리"를 고집하다가 결국은 "이"를 썼고
사실 이씨 중에 한자음이 "리"인 오얏나무리씨 말고
다를 이자를 쓰는 밀양이씨와異 저 이자를 쓰는 태원이씨가 있음 伊.
태원이씨는 중국에서 넘어와서 그 수가 적었음
밀양이씨의 경우 족보가 없는데 왜냐하면 黑씨를 사용하던 토착왜구들이 조선에 정착하고 살기 위해서 급조한 "이"라는 성씨라서.
이남의 경우 친일파들과 토착왜구들이 학계와 정계와 법조계에 진출했고
그 자손들과 후손들이 조선땅에 정착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애를 썼음.
그 과정에서 행한 것이 "ㄹ"자 성씨들을 강제로 "ㅇ" 성으로 바꾸도록 문화적으로 제도적으로 진행했음.
호적예규가 만들어지면서 어느날 갑자기 리을자 성씨를 쓰던 사람들이 "ㅇ"나 "ㄴ(나씨)"를 쓰도록 강제로 전환을 당했음.
그러다가 2007년에 호적예규가 개편되면서 성씨에 두음법칙을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게 되면서 성씨변경신청을 하는 사람들이 생겼지.
그 중에 가장 많이 신청한 성씨가 류씨이고 이씨가 가장 저조했어.
아무래도.. 우리나라에 북한 혐오가 퍼지고 실제로 반공의식 고취시키는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도 빨갱이로 몰아 죽인 역사가 있다보니
북한과의 차별화를 하기 위해 부단히 애써야 했던 역사적 배경이 있지.
이씨들이 리씨 성씨를 사용하는 것을 꺼리게 된 배경이기도 하고.
이런 사정이 있어서
오얏리자 한자를 쓰는 가문의 어른들은 영문으로라도 Lee 표기로 성씨를 지켰거든.
공교육에서 한문교육을 도외시하게 되면서 아이들이 자기 이름 석자를 한자로 쓰지 못하는 상황에 이름.
오얏나무"리"가 한자 음가라는 것을 애들이 잘 모르지.
이남에 정착한 친일국어학자들은 두음법칙을 강제하며 북한과의 언어를 괴리시키기 시작하고 더불어 가문의식까지 괴리시키기 시작해.
그 과정에서 진행된 것이 바로 성씨에 대한 두음법칙 적용이야.
충무공이순신의 원래 조선식 이름대로라면 "니순신"이 맞지.
하지만 친일국어학자들의 노력으로 이순신이 되었고,
영문표기성은 오얏리씨 가문들이 고집해왔던 LEE나 rhee 가 아니라 "yi"가 되었지.
yi순신이라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아. 니순신이 존재했던 사람이지.
시간이 아주 오래 지나면 일본은 이렇게 주장할거야.
"이순신이라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역사왜곡이다. 임진왜란에서의 조선의 대승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던 허구였다."
리영희 선생은 리씨를 고집하며 사셨지.
성씨가 강제로 이씨로 개명당하고도 직접 소송해서 "리"씨를 되찾으셨고.
리씨를 쓰는 게 사실 맞아.
조선시대때 두음발음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니"로 불렸지만
조선후기~해방 전까지는 "리"라고 한자음대로 제대로 발음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았고
조선인들이 잘 쓰고 있었던 니를 굳이 이로 바꿔야할 정당성도 없었고.
실제 독립운동가들은 "리"를 수호했으니까(이승만도 사실 그랬지. 대선후보에 나올때 이름을 리승만을 썼으니까)
요약 ) 우리나라에서 성씨 두음법칙을 국어학계에서 강제하고 제도적으로도 강제했던 이유는 토착왜구가 급조해서 쓴 성씨인 "이"씨와
조선토박이들이 써온 성씨 "리"씨 사이의 차별성을 없애기 위한 조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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