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엔비엔푸에서 프랑스는 왜 패했는가? 이 질문은 수없이 제기되어 왔다. 그렇지만 이 질문을 뒤집어서 베트남민주공화국이 왜 승리했는지 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전술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고립된 분지에서 싸우기로 한 프랑스군 사령부의 결정과 프랑스군의 예상을 뛰어넘은 베트남민주공화국의 성공적인 보급 작전이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그렇지만 더 넓은 관점에서 이 문제를 조망할 필요가 있다. 베트남인들의 투쟁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식민 지배에서 해방되기를 바라는 민족주의에 기인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디엔비엔푸는 베트남인민군이 대규모 정규군, 중화기, 병참 체계를 동원해서 잘 준비된 프랑스군의 방어 요새를 함락시킨 전투였다. 베트남인민군이 이러한 전투를 수행할 수 있고, 또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베트남민주공화국이 강력한 동원 능력을 갖춘 국가가 되었음을 증명한다. 디엔비엔푸 전투는 베트남 민족주의의 승리인만큼이나 베트남 전시 공산주의의 산물이었다. 프랑스의 측면에서 보자면 인도차이나 전쟁에 대해 프랑스인 대다수가 보인 냉담한 태도와 소수의 사람들이 펼친 적극적인 반대 운동으로 인해 프랑스 정부가 전쟁 수행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기 곤란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같은 점을 종합해보면 인도차이나 전쟁과 디엔비엔푸 전투는 보편성과 특수성을 동시에 가진 사건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베트남민주공화국이 거둔 승리는 다른 식민지들에서도 저항 운동을 고취하였고, 탈식민지화를 거스르기 힘든 역사적 흐름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디엔비엔푸로 인해 인도차이나에 대한 프랑스의 영향력뿐 아니라 프랑스 식민지 제국 전체가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다. 또한 인도차이나 전쟁은 많은 프랑스인이 제국의 미몽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프랑스 사회 자체의 탈식민지화가 시작되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였다.
그렇지만 인도차이나 전쟁과 디엔비엔푸 전투는 탈식민지화의 역사 속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특수한 사례이기도 하다. 인도차이나 전쟁은 탈식민지화 전쟁이었을 뿐 아니라 그와 동시에 동서 냉전 속에서 벌어진 ‘국제화된 내전’이기도 했다. 이 전쟁 속에서 베트남민주공화국은 총력전을 수행할 수 있는 전시 공산주의 국가로 탈바꿈하였다. 이는 베트남과 마찬가지로 전쟁을 통해서 독립을 쟁취한 인도네시아나 알제리에서는 나타나지 않은 현상이었다. 이 국가는 그 후로 미국마저 물리칠 정도로 강력했다. 그러나 그 힘은 인민에 대한 강도 높은 동원을 바탕으로 하였으며, 그것이 때로는 베트남인들에게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이러한 괴물 같은 국가가 처음으로 자라난 것은 바로 식민 지배를 재확립하려는 프랑스에 맞서서 싸운 전쟁의 과정에서였다.
출처: 정재현, 「1954년 5월 7일 디엔비엔푸 요새의 함락과 프랑스 식민지 제국의 해체」, 한국프랑스사학회 제116차 연구발표회, 2023년 2월 25일, 159~1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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