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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는 국제 사기꾼

홍길동(65.49) 2022.12.10 15:56:32
조회 871 추천 1 댓글 1
														


6.25는 스탈린이 주도하여 일으켰다.
남침계획인 선제타격계획서는 소련군사고문단이 작성했다.
소련군의 존재를 철저히 감추고 참전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개전시 북한 2군단 7사단에 소련군을 숨겨두었다.
소련군은 테크니컬 수백대를 주축으로 하고 js-2전차, su-14자주포, su-76자주포를 배속시켰다..
7사단은 실전경험 있는 중공군의 정예중 정예로 소련군( 603 모터찌크연대 )을 보호하고 감추어 주는 부대다.
소련군은 북한군이 서울을 공략 하기 전에 우회(강원도 인제-홍천 경유)하여 수원 인근으로 내려갈 계획이었다,
테크니컬 수백대가 서울에서 후퇴하는 국군을 배후에서 공격하여 섬멸할 계획이었다.
그래야 소문나지 않고 소련군이 개입하여 신속하게 적화통일이 가능하니까...

그러나 계획대로 되지 않는것이 현실이다.
6월27일 인제에서 홍천으로 남하하던 소련군 전차부대가 홍천북쪽 ​작은말고개에서 국군 6사단에게 박살났다.
이 전투는 말고개 육탄용사들이 전차에 수류탄을 집어 넣어 10여대를 파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57밀리 대전차포가 선두전차를 격파하여 나머지 전차의 길을 막아 최대의 전과를 올린 전투다.

파괴된 전차가 길을 막아 남하할수 없자 소련군은 오던길을 되돌아 양구를 거쳐 춘천으로 방향을 돌렸다.
중공군인 7사단은 소련군을 보호하고 감추기위해 소련군과 함께 행동한다.
6월25일 부터 춘천시를 점령하지 못하고 헤매는 2사단을 제치고 소련군이 춘천공격 선봉에 섰다.
소련군은 6월 27일 밤중에 춘천시내를 점령했다 ( 소련군 노출을 막기위해 야음을 틈타 진입했다 )
소련군( JS-2전차 5대, SU-14자주포 9대, SU-76자주포 3대, 저격차량 수백대)이 춘천 소양교를 건넜다.

전차 자주포 등 모든 차량은 전조등을 끄고 소양교 상공에서 비행기가 떨어뜨리는 조명탄에 의지했다.
소련군이 나타나기 전에는 전차가 목격되지 않았고 북한군 장갑차가 격파된적 있다.
소련군은 자신들을 감추기 위해 저격차량 적재함에 있어야 할 저격수를 밀폐된 수송차량으로 별도 수송했다.
전차와 자주포 뒤를 따르며 보호하는 병력은 7사단(중공군)을 배치하여 소련군의 존재를 철저히 감추었다.
su-14 자주포 위에는 중공군도 올라타 소련군과 섞여서 구분이 안되었다.

말고개에서 소련군 전차가 격파된 사실은 매우 중요하여 즉시 스탈린에게 보고 되었다.
소련군 전차 격파는 소련군이 국군에게 발각 되었고 미 군사고문단에게 통보 되었음을 뜻한다.
스탈린의 관심 사항은 미국이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지 눈치를 보기에 바빴다.
더 이상 소련군이 진격도 못하고 6월28일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에게 후속 명령도 내리지 못했다.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하고도 3일간 허송세월 한 계기가 되었다.
스탈린은 6월27일(미국시각) UN본부 안보리 소련대표에게 회의 불참을 지시했다.
미국이 말고개 소련군 증거를 제시하면 망신을 당하기에 이를 모면하려는 조치로 생각한다.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스탈린은 7월4일 소련군을 철수하고 김일성을 최고사령관에 임명하여 전쟁을 떠 넘겼다.
즉 7월3일 까지 스탈린이 전쟁을 주도하고 7월4일 부터 김일성이 전쟁을 주도했다.
그리고는 울화가 치밀어 북한 2군단장과 예하 사단장의 강등 조치를 지시했다. ( 소련군을 보호하지 못한 책임 )
징계사유는 6월27일 밤중에 소련군을 따라 춘천시내에 진입한 7사단과 2사단이 서로 총질하고 싸운 원인도 있다.
이어서 소련 군사고문단을 소환하고 라주바예프를 북한에 파견하여 소련군 흔적을 철저히 지웠다.

라주바예프 보고서에 말고개 전투 내용이 없으니 장기적 안목의 기만전술이다.
한국전쟁 자료에 북한 2군단 독립전차연대의 전차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기록이 있으며 정확하게는 그들이 7월4일 철수했다.
나는 7월4일 SU-14자주포 한대가 북쪽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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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고문단설치에관한협정을 확인해 보자.

북한의 남침이 우려되는 시기에 이승만 대통령은 북진통일을 외쳐댔다.

국군의 무기가 부족하여 능력도 없으면서 무리한 주장이다.

중화기(공용화기)는 턱없이 부족하고 소총도 부족했다.

미국은 한국이 전쟁을 벌일것을 우려하여 군사원조를 안했다.

한국은 다급하여 우리를 못믿으면 군 통수권을 미국이 가져가고 무기를 달라고 애원했다.


이렇게 하여 1950년 1월 26일 군사고문단설치에관한협정이 체결됐다.

서문에 한국의 요청에의해 미국이 승인한다고 명시하여 성격을 분명히 했다.

협정서 제1조에 중요한 내용이 있으며 문장해석이 난해하게 하였다.


미국이 제공하는 군사원조를 유효하게 사용( 북침을 못하게 )하기 위해

군사고문단이 국군과 경찰의 조직 통할과 훈련에 있어서 대한민국정부를 고문하고 원조한다는 내용이다.

핵심은 군사고문단이 국군과 경찰의 조직 통할에 있어서 대한민국정부를 고문한다는 것이다.

국군과 경찰의 통솔은 군사고문단이 대한민국정부(대통령)보다 높은 위치라는 뜻이다.

군사고문단은 미국 대사관 소속으로 국무부의 지휘를 받는다.

국군과 경찰의 통수권이 미 국무장관에 있다는 협정서다.

한국과 미국사이의 협정서는 영문과 한글을 병기하여 작성한다.

영문과 한글 문장의 해석에 이견이 있어 다툼이 있을수 있다.

협정서에 별도의 내용이 없으면 영문이 우선하는 것이 관례다.

군사고문단설치에관한협정서는 한글이 우선한다는 내용을 넣었다.


이렇게 하여 미국이 통수권을 가져갔으나 6.25까지 군사원조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방의 국군은 무장이 제대로 되었으나 후방의 국군은 중화기가 없고 소총도 없는 장병이 있었다.


맥아더는 스탈린의 남침 준비를 사전에 모두 알고 있으면서 모른척 했다.
공산군이 남침하면 이를 잘 이용하여 자신을 영웅으로 만들고 미국 대통령에 출마 하려고 했다.
한국이 공격 당하면 국군이 파죽지세로 밀리고 대전까지 밀렸을때
맥아더가 기막힌 세기의 작전(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반전시키는 극적인 시나리오를 구상 했다.
풍전등화의 대한민국을 구출한 영웅이 되어 명성을 떨친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것이 목적이다.
애치슨선언으로 맥아더는 한반도에 개입할수 없는 상황이지만 이를 완전히 무시했다.
주한 미 군사고문단을 첩자로 휘어 잡아서 공산군 남침이 임박할때 국군의 전력을 약화 시켰다.

맥아더는 1949년말 부터 드라마를 위한 준비에 들어 갔다.
어쩌면 그 전에 표무원 강태무의 월북사건도 계획의 일환인지 모를 일이다 ( 그들이 남침을 충동질 )
맥아더는 원수계급으로 대통령의 군 통수권 일부인 장성급 진급결정권을 위임받고 있었다.
영관급이하 진급결정권은 미국의 동부권역과 서부권역으로 나누어 관리했다.
서부권역 진급결정권도 맥아더에게 있었다.
이것을 잘 이용하여 극동지역 미군으로 구성된 모든기관 대부분을 자기의 첩자로 만들었다.
그중 군사고문단장 직무대행 라이트 대령은 자기가 소속된 국무부를 배신하고 맥아더의 심복 노릇을 했다.
군사고문단은 국군을 지휘 통제하는 막강한 지위였다. ( 군사고문단 설치에 관한 협정서 제1조에 명시 )

6.25전 라이트 대령은 대한민국 국방부나 육군본부를 방문할때 어김없이 자동차에서 헨리 대령이라는 명찰로 바꾸어 달았다.
이것은 한국인 운전사가 육군본부 정보국에 제보하여 알게 되었다.
육군본부 정보국은 라이트 대령이 의심스러워 신상정보를 수집했다.

비행기를 발명한 라이트형제중 동생이 유명 소설가의 미망인을 건드려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의 아들이 라이트 대령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즉 라이트 대령은 라이트 형제의 적절치 못한 손자가 되는 것이다.
라이트 대령은 조상에 대한 자부심이 있으나 자신의 계급은 대령인 반면에
맥아더 사령부에 또 다른 라이트 라는 사람이 준장 계급으로 있는것이 불만이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별을 달아 보려고 노력했다.
장성급 진급 결정권이 있는 맥아더의 심복이 되고 자기가 소속된 국무부를 배신하게 되었다.
라이트 대령은 6.25직전 채병덕 참모총장을 종용하여 비상경계령을 해제하고 땐스파티를 열게하여 공산군의 남침에 대응할수 없도록 만들었다.

멋진 드라마가 진행되려면 공산군 남침시 국군이 파죽지세로 밀려야 된다.
그래야 맥아더가 정의의 사도 수퍼맨 역할을 할수 있다.
국군의 전력을 떨어뜨려 남침에 대응하지 못하도록 해야 맥아더의 소원을 이룰수 있다.

1949년말경 군사고문단이 국군에 지급된 57밀리 대전차포 철갑탄을 회수했다 ( 전차를 방어하지 못하도록 )
12월 10일쯤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홍천지역에 주둔하던 8연대 대전차포 중대는 이상하게 생각하여 철갑탄을 숨기고 반납하지 않았다.
고문관에게는 도난당하여 반납할것이 없다고 둘러댔다.
철갑탄은 대장간에서 가공할수 없어 훔칠 필요가 없지만 핑계가 먹혔다.
고문관이 "그러면 그렇지 한국군은 형편없는 군대다" 하며 도난을 인정했다.
그후 6.25 이틀전 8연대가 다른곳으로 가고 2연대가 이동해 오자 대전차포 중대는 그대로 2연대에 예속되었다.
그리고 6월27일 말고개에서 숨겨 두었던 철갑탄을 사용하여 소련군 전차를 시원하게 박살 냈다.

맥아더는 인천상륙시 필요한 병력을 확보하기 위해 1949년말 부터 일본 정치권을 꼬득여 비밀리에 일본 경찰예비대를 모집 했다.
요시다 시게루 총리가 주관하여 맥아더 몰래 비밀리에 모집한다고 소문냈다.
그러나 맥아더의 감시망을 피하는건 불가능 하므로 뒷거래가 의심된다.
맥아더가 본국의 훈령을 무시하고 일왕을 비롯하여 많은 전범을 처벌하지 않은것은 흑막이 있을것이다.
6.25발발시 1진은 훈련을 마친 상태였고 2진이 훈련에 들어갔고 전체 병력은 6만명이었다.
훈련은 상륙훈련으로 추정되는데 어디에도 언급이 없고 비밀이여서 아쉽다.

군사고문단은 국군 지휘부에 명령하여 국군의 전력을 떨어뜨리는 이른바 10대 불가사의 조치와 정비를 가장한 장비후송을 지시 했다.
군사고문단설치에 관한 협정서에 국군과 경찰의 모든 업무는 군사고문단 지시에 따르도록 명시되어 있다.
참모총장이라 하여도 이를 거부할수 없다.
따라서 모든 지시는 군사고문단에서 나왔고 책임은 군사고문단에 있다.
군사고문단은 국무부 소속으로 국무부 명령에 충실해야 하나 맥아더의 지시에 따랐다는 사실이 비극이다.

6.25 발발하자 맥아더가 즉시 개입하여 국군에게 무조건 대전까지 후퇴하도록 명령했다.
맥아더는 우리에게 명령할 아무런 권한도 없고 애치슨 선언에 따라 대한민국 내정에 관여할수 없다.
맥아더는 우리의 명령 라인이 아니기에 명령으로 볼수 없고 요구 사항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에게 명령할수 있는 사람은 군사고문단을 지휘하는 미 국무장관 이외는 없다.
국군은 맥아더가 뭔데 우리에게 명령하는가? 웃기고 있다 했어요.

한편으론 북한군의 전차를 기존 대전차 무기로 상대할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미 군사고문단중 국무부 충성파는 본국에 새로운 대전차 무기 지원을 긴급하게 호소했다.
미 군사고문단중 맥아더파는 맥아더의 지시에 따라 일본으로 철수 했지만 소수인 국무부 충성파는 한국에 남아서 작전을 지도했다.
미국은 새로운 대전차무기(3.5인치 로켓포) 3문을 긴급하게 공수하여 6월26일 늦은 시각에 한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트루먼 대통령의 특별지시에 따른것이다.
군사고문단은 1사단 7사단 6사단에 각각 한문씩 배치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에 도착하지 않고 엉뚱하게도 후에 대전에 나타난 맥아더 군대가 갖고 있었다.
맥아더가 중간에서 빼앗아 갔다고 볼수 밖에 없다.

그런데 6월26일 새벽부터 서울 북쪽의 국군이 싸우지 않고 무기를 소지한채 모두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국군의 무기( 중화기,공용화기 )가 부족하여 전방의 국군은 무기가 있으나 후방의 국군은 무기가 없다.
적의 남침시 방어계획은 무기가 없는 후방의 국군을 활용하도록 되어있었다.
후방의 국군을 일선에 예비대로 보내는것이다.
일선부대의 국군이 쓰러지면 예비대가 무기를 이어 받아서 싸우도록 헸다.
지휘계통 혼란이 있을수 있으나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런 무기( 특히 기관총 )를 갖고 모두 도주하여 예비대는 무기가 없었다.
무기를 버리고 도주하면 주워서 싸울수 있으나 그럴수도 없다.
예비대를 아무리 보내도 계속 무너질수 밖에 없다.
채병덕 참모총장이 전방 사단장을 질책하자 그들은 맥아더의 명령에 따를것을 주장하기 시작 했다.
참모총장의 명령을 거역하고 우리의 명령라인이 아닌 맥아더의 명령에 따르겠다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참모총장은 대노하여 2사단장을 그자리에서 해임했다 ( 쌍욕을 하고 채찍으로 때렸다고도 한다 )
이것을 축차투입하여 국군이 녹아났다고 왜곡하여 채병덕을 비난한다.

6월26일 위급한 전시지만 원로회의와 지휘관회의를 열어서 맥아더의 황당한 명령에 대해 대책을 토론했다.
결과는 맥아더의 요구를 거부하며 만약 일본군이 상륙작전을 핑계로 우리의 영토에 들어오면 우리는 그들을 상대로 싸우겠다고 선언했다.
육본 정보국은 맥아더의 계획을 파악하고 있었다.
채병덕 참모총장은 회의 결과에 힘을 얻어 맥아더의 요구를 강경하게 거부했고 일부 지휘관은 회의 결과에 불만을 품었다.
그들은 채병덕이 북한과 내통 한다느니 빨갱이라느니 하며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 극히 심각한 상태였음 )


다시 말하지만 채병덕 참모총장은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할것을 지시 했고, 일부 지휘관은 맥아더의 명령대로 대전까지 철수 할것을 주장했다.

참모총장은 6월26일 오전까지 맥아더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하고 우왕좌왕 했었다.
원로회의 결과에 힘을 얻어 오후부터 강경한 자세로 돌아섰다.

채병덕 반대파는 장군이 전사하자 진실을 감추고 한강 결전론이니 서울 고수론이니 하며 사실을 왜곡하여 죽은 사람을 비난했다.
시흥지구 전투사령관 김홍일 장군이 대전으로 도주하는 국군을 잡아서 배치한것이 한강방어선이다.
잡히지 않고 빠져나간 국군도 많을것이다.
중화기가 없는 후방사단으로 한강방어선 구축은 생각도 안했다.
처음부터 한강결전론은 존재하지 않았다.

6월26일 맥아더는 채병덕 참모총장의 강경한 반항을 확인후 참모총장의 경질을 결심하고 고분고분하게 생각하는 정일권을 수소문 한다.
정일권이 미국시찰을 마치고 하와이에 체류한다는 정보에 따라 하와이 주재 영사관에 소재파악을 의뢰하여
군용기로 정일권을 태워 6월28일 수원비행장에 내려 놓았다.
맥아더에 의해 차기 참모총장으로 내정된 것이다.

맥아더는 채병덕 참모총장을 통하여 국군을 지휘하는것이 불가능하게 되자 다른방법을 택했다.
6월27일 아침 수원에 ADCOM(극동군사령부 전방지휘소)를 멋대로 설치하여 작전명령서를 각 사단에 직접 전달했다.
미 합참의장이 맥아더의 한국전 개입금지를 명령했으나 맥아더는 이를 무시하고 멋대로 ADCOM을 설치 했다.
합참의장 명령은 대통령 명령인데 노골적으로 항명했다.
미국정부는 맥아더를 버리고 더이상 명령이나 지원을 하지 않았다.

6사단장은 6월26일 원로회의장까지 가서 발언권이 없기에 밖에서 회의장을 지켜보았고
심야 지휘관 회의에 참석하여 회의 결과를 확인하고 다음날 새벽에
2연대(홍천)로 직행했다.

그리고는 결정사항대로 물러서지 말것을 지시했다.

6월27일 오전 수원의 극동군사령부 전방지휘소 소속 극동군 사령부 연락장교단이 6사단에 찾아왔다.
맥아더의 작전명령서를 전달했고 작전명령은 무조건 대전까지 철수하라는 것이다.
6사단 참모진이 연락장교단을 영접했고 우리의 영토를 허무하게 내어줄수 없다고 항의했다.


연락장교단은 국군을 회유했다.
국군이 맥아더의 명령에 따른다면 북한군을 대전까지 유인하여 끌어 내린후 인천으로 상륙하여 퇴로를 차단한다.
그러면 북한군은 독안에 든 쥐로서 완전히 섬멸할수 있다.
학살에 가깝지만 38선 남쪽에서 침략자를 소탕 하는건 정당방위로서 국제적으로 비난받지 않는다.
그 다음은 북한에 병력이 없기에 국군은 외국의 도움 없이 통일할수 있다.
맥아더는 38선을 넘을수 없으니 그이상 도울수 없다.
북한군 유인과 섬멸작전은 맥아더가 책임지고 처리 하겠으니 국군은 걸리적 거리지 말고 맥아더의 명령에 따라 달라는 주문이었다.

섬멸작전은 공군력을 활용할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인천상륙은 틀림없이 일본경찰예비대를 동원 할것으로 국군은 예상했다.
북한군은 현재 우리의 적이지만 그들도 우리와 동족인데 일본군을 끌어들여 우리의 동족을 몰살시키려는 계획에 절대로 동의할수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가 실패하면 우리만 낭패되고 맥아더는 아무런 책임도 없다.
국군은 흥분하여 우리의 영토를 한치도 양보할수 없다고 항의했다.

맥아더의 회유작전이 실패하자 즉시 협박작전으로 나왔다.
국군 지휘관 모두가 과거 일본군 경력이 있기에 이것으로 협박했다.
말을 듣지 않으면 일본 전범으로 현장에서 체포하여 군사재판에 넘기겠다고... ( 맥아더는 연합군총사령관 직위도 있었음 )
이것은 7연대장이 필자의 아버지에게 하소연한 극비 내용이다.
6사단장이 6월27일 아침에 물러서지 말것을 명령했으나 몇시간 안돼서 할수없이 철수명령을 내렸다.
이 몇시간 사이에 말고개에서 소련군 전차를 격파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마지못해 철수하는 것이니 눈치를 보며 조금만 철수했다.
전쟁사는 이것을 UN군이 올때까지 지연전을 펼쳤다고 해괴한 논리로 설명한다.

6월27일 채병덕 참모총장은 맥아더의 협박에 시달리다 눈이 번쩍 뜨이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미 국무부가 맥아더의 시나리오를 모두 파악하였고 이를 저지하는 작전을 시행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판단은 이러하다.
맥아더가 드라마를 진행하여 절정기(인천상륙 쑈)에 도달하려면 2~3개월 걸릴것이다.
미국 본토에 있는 공수부대를 비밀리에 38선에 투입하여 38선을 장악하면 북한군이 남하하지 못하고 맥아더의 계획은 물거품이 된다.
공수부대 출동은 국방부에서 주관해야 하지만 맥아더가 원수계급으로 본국의 훈령을 거부하고
국방장관이 이를 감싸고 도는 상황이라 진행이 어려워 국무부 주관으로 출동시킨다.
대통령의 서면승인은 사후에 받기로하고 구두승인을 받았다.
공수부대가 38선 장악후 대통령이 발표할 예정이다.

공수부대는 락카산부대( 187공수연대 )다.
한국에는 국무부 소속 군사고문단이 있으므로 군사적 문제는 해결된다.
공수부대를 38선에 투입하는 D-day는 한국시각7월2일(미국시각 7월1일)이다.
7월1일은 미국 독립기념일이 있는 7월의 첫날이라는 의미가 부여 되었다.
맥아더가 알면 방해할 것이므로 맥아더 몰래 진행한다.

미 국무부는 맥아더의 도청을 피해 주한 미 대사관의 비화통신망을 이용하여 주한 군사고문단중 국무부 충성파에게 작전지시 했다.
군사고문단은 채병덕 참모총장에게 국군으로 편성된 특공대를 침투시켜 대기하다가 공수부대 투입을 엄호하고 집결지로 안내할것을 요청했다.
채병덕 참모총장은 여기에 모든 기대를 걸고 비밀리에 특공대( 패스파인더 ) 편성하여 침투할것을 지시했다.

어떻게 되었는지 맥아더는 모든 사실을 알았고 6월29일 허둥지둥 한강방어선 시찰을 핑계로 한국에 왔다.
이것은 애치슨선언 위반이며 본국에 대한 항명이다.
실은 채병덕 참모총장을 협박하여 공수작전을 불발시키려는 의도다.
협박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 정일권을 데리고 나타나서 말을 듣지 않으면 참모총장을 교체한다는 암시를 주었다.

전쟁사에는 채병덕 참모총장이 6월29일 공국진 대령에게 특공대 침투를 지시했다는 내용이 있다.
그러나 맥아더가 눈치채고 29일 왔으니 6월28일 지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6사단 특공대 침투는 6월30일 별도로 지시했고 2연대(홍천)는 전차잔해가 통행에 방해되어 제외 되었다.
8사단은 원주로 이동지시 되어 작전에서 제외 하였다.

정일권은 평소에 6월29일 맥아더가 한강방어선을 시찰했으며
자신이 참모총장 자격으로 맥아더를 수행했고 맥아더와 한국군 병사와의 대화 목격담을 말했다.
맥아더가 일방적으로 정일권을 참모총장에 임명했다고 볼수있다.
회고록 작성과정에서 이것이 문제될것 같으니 말을 바꾸었다.
하와이에서 맥아더가 제공한 수송기를 타고 6월29일 수원에 도착했으나 구름이 많아 착륙하지 못했다.
일본으로 회항 했다가 6월30일 다시 수원에 와서 착륙했다.

그러나 6월29일 맥아더 전용기는 수원비행장에 착륙했기에 모순이 있다.
그리고 6월 30일 귀국했다 하면서도 6월29일 맥아더와 한국군병사 대화 목격담을 그대로 살리는 우를 범했다.
귀국시 채병덕 참모총장과 공군참모총장등 여러명이 마중나왔다 하고
모두들 정일권이 귀국하기를 학수고대 했다 등 격에 안맞는 얘기가 많다.
적어도 6월29일 이전에 귀국했거나 6월29일 맥아더와 함께 귀국했다고 보아야 한다.

6월30일 채병덕 참모총장은 작전국장을 비행기에 태워 원주의 6사단에 보내 밀명을 전달했다.
7연대는 춘천지역에 19연대는 이천지역에 특공대 침투작전을 펼치고,
6사단본부와 2연대만 충주로 철수하여 맥아더의 요구를 들어 주는척 하며 대신에 강릉의 8사단을 원주로 이동하는 눈가림 작전을 폈다.
작전국장이 6사단장에게 공수작전 개요를 설명하고 특공대 침투지시를 전달했다.
사단장은 돌파구가 마련되었다는 기쁜 마음에 즉시 특공대 편성을 지시하고 모든 전투력을 여기에 집중했다.
6사단에 파견된 군사고문단이 특공대편성을 주관했고 여기에도 맥아더 첩자가 있는걸 몰랐다.
6사단에서 벌어지는 일이 실시간으로 맥아더 귀에 들어갔다.

즉시(6월30일) 맥아더는 노발대발 하여 이승만 대통령에게 항의 전화를 걸었다.
대통령은 다급하여 즉석에서 참모총장을 해임하고 후임에 맥아더가 점찍은 정일권을 임명했다.
이어서 대통령 소관이 아닌 작전국장도 해임했다.
훗날 채병덕의 죽음에 대하여 경남 하동에서 전사한것이 아니고
대구에서 미군기의 폭격으로 사망했고 그날 맥아더가 대구에 있었다는 주장이 있다.
그만큼 앙심을 품었다는 얘기가 된다.

7월1일 19연대는 이천으로 이동하여 밤중에 특공대를 침투시키려 하였다.
참모총장에 새로 부임한 정일권이 6월26일 2사단장에서 해임된 사람을 19연대에 급히 보내 특공대 침투작전을 방해했다.
이제 와서는 이천지구 전투사령부 운운하며 사실을 엉뚱하게 왜곡한다. ( 6사단 예속 19연대로 전투사령부? )
19연대가 6사단에 복귀한 사실은 어떻게 설명 할 것인가 ?
7연대 특공대( 2개 중대 )는 춘천지역 침투에 성공했으나 맥아더 첩자가 특공대 정보를 북쪽에 넘겨 특공대원 대부분이 전사했다.

강릉의 8사단은 채병덕 참모총장 명령에 따라 원주로 이동중 참모총장이 정일권으로 바뀌었고 대구로 철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8사단이 무전으로 분명히 철수명령을 받았는데 그런 명령을 안했다고 오리발 내밀며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한다.
정일권이 맥아더의 명령에 따랐으니 정황상 정일권이 명령한것이 맞다.

그리고 7월2일 공수부대는 오지 않았다. ( 미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길목은 맥아더가 지키고 있다 )
38선 인근에 침투한 특공대는 미국에서 오는 공수부대를 기다리다 장렬히 전사했다.
이날 일본에서 이륙한 머스탱 전투기 10대가 대구 비행장에 내렸다.
무엇을 뜻하는지 충분히 추정할수 있다.

전사한 특공대원에 아버지(경찰관)도 포함되었고 아버지는 7월1일 밤에 춘천에 침투하여 적진에 고립된 우리 가족을 찾아 왔다.
이때 모든 상황을 나에게 구두로 전달했으며 나는 이 이야기를 머리속 깊이 각인해 놓았다.
이제는 전사하신 모든 특공대원을 대신하여 진실을 만천하에 폭로한다.

7월1일 참모총장에 부임한 정일권이 극동군사령부 전방지휘소장 처치와 합의한 내용이 있다.
ㅇ 국군은 경부국도 동쪽을 담당하고 미군은 경부국도와 서쪽을 담당한다.
    ☆ 미군이 경부국도를 통해 북한군을 유인하도록 국군은 물러나 있으라는 뜻이다.
    ☆ 합의사항에 불만을 품은 국군일부가 물러나지 않았다.
        7월3일 미군기가 평택역을 폭격하여 많은 국군이 사망했다 ( 오폭이라고 거짓말 한다 )
       수원 ~ 평택사이 국군을 모두 폭격했다.
    ☆ 이렇게 하여 7월5일부터 스미스 부대가 북한군을 대전까지 유인했다.
       ㅇ 맥아더가 빼앗아간 3.5인치 로켓을 스미스부대에 안주었으니 방어가 목적이 아니다.
    ☆ 북한군은 이것도 모르고 미친듯 남하하여 맥아더의 가위작전에 말려들었다.
        ( 북한군을 유인하여 끌어내린후 퇴로를 차단하는 작전을 "가위작전"으로 정했음 )

9월15일 맥아더가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자 트루먼 대통령의 조치사항이 있다.
   ☆ 오마 브래들리 합참의장을 원수(5성 장군)로 진급시켜 맥아더에게 위임한 권한을 박탈했다.
   ☆ 맥아더를 감싸고 도는 존슨 국방장관을 해임하고 마샬 장군을 임명했다.
      ㅇ 전쟁사는 이부분을 감추고 맥아더 띄우기만 열중이다.

트루먼 대통령은 맥아더의 한국전 개입금지 항명때 부터 맥아더를 반란군 취급했다.
맥아더를 UN군 사령관에 임명 하지도 않았다.
맥아더와 존슨 국방장관이 작당하여 자기들 맘대로 주일미군을 한국전에 끌어 들였다.
일본경찰예비대를 동원할 계획이었으나 국군의 반발을 고려한것 같다.
그중 일본 경찰예비대가 얼마나 포함 되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들이 UN군이라고 일방적으로 명명했다.
UN의 공식 입장은 UN이 그런 군대를 만든 사실이 없다.
미군이 UN깃발을 멋대로 가져다 썼다한다.

6.25발발시 맥아더에게 주어진 임무는 미국인의 소개다.
미국인 소개작전에 방해될때만 해.공군력 사용이 허가되었다.
미국인 소개작전은 극동방위와 성격이 달라 애치슨선언에 저촉되지 않는다.
맥아더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한국전쟁에 개입하였다.
전쟁에 개입하여 불법으로 동원한 해,공군력을 승인받은것으로 왜곡한다.

또 한명의 맥아더 똘마니 하우스만이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고문을 맡으며 한국전쟁사를 엉뚱하게 바꾸었다.
하우스만의 군사고문 신분은 위장신분이고 CIA요원으로 국군은 알고 있었다.
하우스만은 한강방어선이 형성되자 현장에 나타나 빨리 철수하도록 협박하고 다니는 악명높은 인물이었다.



*원본
https://mgyungho.tistory.com/19

https://blog.naver.com/icchip/22290745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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