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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쓰는리뷰 : 잔인한 안도

이응(119.204) 2020.03.05 21:4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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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안도




“/당신들이 준 혈액 샘플, M3형 바이러스가 맞습니다. 환자는 양성, 그리고 의사 둘 중에 한 명도 양성반응입니다./”


두 남자는 눈을 마주치지 않았어.

미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영이 시진을 돌아봤지만 엄습하는 불안감을 간신히 억누른 시진은 대영과 눈조차 맞추지 못하고 곧바로 연구원을 쳐다보고 물었어.


둘 중 누가 양성반응이 나왔느냐고.


“Yoon Myung-ju?”


M3가 맞다는 연구원의 대답과 감염된 의사가 명주라는 답이 나오는 그 사이, 시진의 가장 깊숙한 내면에서는 어떤 바람이 튀어나왔을까.


그들이 가져온 샘플이 M3가 맞다는 결과지를 들고 나온 연구원.

그에 시진의 심장은 덜컥 내려앉았어. 그토록 아니길 바랐건만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은 거야.

그리고 이어지는 ‘둘 중에 한 명’이라는 말.


그 순간 시진은 과연 그 한 명이 누구이길 바랐을까.


아니, 그건 너무 이기적이지.

시진은 그런 끔찍한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어.

그는 그저 그 한 명이 누군가는 아니길, 제발 바랐을 뿐이야.


유시진은 총알이 빗발치는 데를 뚫고 전우를 구하러 가는 걸 주저하지 않아.

작전지역에서 임무가 다 끝나고 난 후 퇴각할 때에도 그는 부하들을 먼저 보내고 자신이 제일 마지막 순번으로 작전지를 빠져나오곤 했어.

언제나 그래왔어.


전우들을 위해서라면 시진은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을 수 있어.

대영을 구하기 위해, 또는 명주를 구하기 위해서, 아니면 그 외의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그는 자신의 목숨을 걸 수 있어.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달라.

여기는 전쟁터가 아니야. 총알이 날아들지도 폭탄이 터지지도 않아.

그저 공포스러운 적막만이 흐르는 낯선 나라일 뿐이지.


그리고 그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PCR 검사를 할 병약 실험실을 찾는 것 밖에 없어.


전염병 때문에 누군가의 생명이 사그라드는 건 군인인 그가 막을 수가 없어.

그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고…….


차라리 핀이 뽑힌 수류탄이라면 그가 몸으로 덮어 막아내고, 총알이라면 대신 맞아줄 수 있지만 질병은 그럴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야.

형체 없는 살인자는 막아선 시진을 그대로 지나쳐 사람들을 죽일 거야.

그리고 그는 즐비한 시체들을 속수무책 망연하게 지켜보아야만 하겠지.


그가 대적할 수 없는 그 적군이 만약 모연과 명주 중 한 명만을 포로로 원한다면 그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정해져 있어.
그 한 명의 포로가 그가 될 수 있다면 그것만큼 기쁜 일이 없겠지만 그 적군은 절대 그를 바라지 않아.

그런 상황에서 그는 절대 모연을 보낼 수 없어.

그렇다고 둘 다 보낼 수 없으니 다 같이 죽자고 할 수도 없지.


유시진이라는 사람에게 강모연은 무언가와, 또는 누군가와 비교해보고 재보고 따져봐서 그 중요성을 판단할 수 없는 존재야.

그냥 유시진의 인생에 강모연은 항상 존재해야 해.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물론, 그가 죽은 세상에서도 그녀만은 계속 잘 살았으면 좋겠어.


딴 놈 만나서 결혼하고, 아이 낳고, 손주까지 보면서 120살까지 사는 동안 유시진이라는 놈 이름은 한 번도 안 떠올리고 살아도 모연이 무탈하게, 행복하게 산다면 그걸로 그는 만족할 수 있어.


그에게 모연은 누구보다도 평화롭게,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누구보다도 환하게 잘 살아야 하는 사람이야.

그가 죽어버린 세상에서 그녀를 지켜줄 사람이 없을까봐 그게 제일 걱정이지.


그렇기에 시진이 ‘둘 중 하나’에서 ‘하나’가 제발 모연이 아니길 바라는 건 너무나 당연하고 어쩔 수 없는 감정이야.

그건 이기적인 것도 염치없는 것도 그가 모질어서도 아니야.


연구원의 대답에 시진이 가장 처음 한 생각은 ’다행이다.’였어.

그건 정말 그 본인도 어떻게 자제할 겨를 없이 그냥 드는 생각이야.


그 병에 결린 사람이 명주여서가 아니라 모연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거지.

물론 바로 다음 순간에는 대영에 대한 안타까움과 명주에 대한 걱정이 바로 그의 마음에 들이찼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의 마음 한쪽에는 어쩔 수 없는 안도감이 남았어.


시진도 이런 이기적인 자신이 실망스러웠지만 그도 사람이기에 그 생각은 막을 수가 없었어.


액운이 사랑하는 사람을 피해갔는데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어.

그게 기쁘지 않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지.

그러나 그건 이기심도 매정함도 아닌, 그저 간절함일 뿐이야.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을 죽음에게 빼앗기지 않고 싶은 간절한 마음…….



부대로 돌아오는 차 안, 시진은 대영 대신 운전대를 잡았어.

침묵만이 흐르는 사이 그는 입 한 번 떼지 않고 묵묵히 정면만을 보았어.

명주 걱정에 제정신이 아닌 대영에게 괜찮을 거라는 말도,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말도 차마 할 수가 없었어.

그 말은 지금 대영에게 절대 위로가 될 수도 없고, 그 말을 하는 사람이 그라면 더더욱 위로가 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조금 전만해도 두 남자는 하고 있는 생각, 바라는 것이 오직 하나인 아군이 확실했어.

아주 날이 잘 선 칼날 위를 맨발로 함께 걸으며 칼날이 발바닥을 점점 더 파고들어오는 섬뜩한 고통을 똑같이 느끼고 있었어.

그런데 연구원의 한 마디 말로 인해 한 남자는 그 고통에서 자유로워졌고, 한 남자는 이제 칼날이 발바닥을 베어내고 발목을 타고 오르는 고통 속에 전우도 없이 홀로 남겨진 거야.

두 남자의 처지가 이제는 너무도 달라졌어.
대영은 아주 검고 탁해진 눈으로 그저 조용히 차창 밖을 바라볼 뿐이고, 시진은 이성이 돌아온 총총한 눈으로 전면에 펼쳐진 어두운 도로만을 응시하며 운전대만 움켜쥐고 있었어.


“선배. 이 사람 좀 데리고 나가줘요.”


명주가 하얗게 굳은 얼굴로 그에게 대영을 부탁했어.

그녀 역시 혼자는 너무 무섭고 막막했지만 그녀를 품에 안고 조각상처럼 버티고 선 연인만은 살려야 했으니까.


만약 두 사람 모두 감염되지 않았더라면 중대로 돌아온 두 남자는 각자의 연인을 품에 꼭 안고 다행이라고 기뻐했을 거야.

둘 다 감염되었다면 함께 울었겠지.

하지만 한 쪽만 감염된 이 상황은 함께 슬퍼할 수도 한 쪽만 기뻐할 수도 없게 만들었어.


그래서 시진과 모연은 두 사람에게 아무 말도 해줄 수가 없는 거야.

자신이 무서운 전염병에 걸리지 않았다는 걸 안 모연도, 연인을 잃을 위험에서 벗어난 시진도 그저 눈맞춤 한 번으로 가슴을 쓸어내릴 뿐…….




이어지는 글 : 폭풍전야(暴風前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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