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세대에 대해

식초 · 2024.04.17 14:00:04

요즘 애들은 패기가 없고 비리비리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선뜻 부정하기 힘들다. 앞 세대는 지금보다 위험하고 궁핍한 시대를 맨 몸으로 돌파했다. 잘살아 보겠다는 일념으로 수도권의 공장, 중동의 건설 현장, 베트남의 전쟁터에 뛰어들었다. 그에 비해, 요즘 세대는 따뜻한 사무실에서 잔소리 좀 들으면 바로 사표를 던져 버린다.

요즘 세대는 정말 나약한지도 모른다. 설령 그렇다고 해서, 요즘 세대가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요즘 세대가 나약한 데에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과거는 진보를 체감하는 시대였다. 일부 부유층을 제외하면, 앞 세대는 어린 시절에 70년대하면 떠오르는 전원주택에서 많은 형제, 어른과 부대끼며 살았다. 그러다가 수도권으로 올라와서 일자리를 얻고, 20층, 30층까지 올라가는 새 아파트로 이사해서 나만의 공간에서 나만의 가정을 꾸렸다. 앞 세대가 보는 세상은 분명 더 나아지는 곳이었다.

지금은 퇴보를 체감하는 시대다. 요즘 세대는 부모님과 아파트에서 살다가 집안 사정 탓에 낡은 빌라로 이사하거나, 집에서 멀리 떨어진 대학교나 직장에 다니기 위해 낡은 원룸, 고시원에 혼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운 좋은 소수를 제외하면, 나만의 공간에서 나만의 가정을 꾸리는 엄청난 사치를 누릴 수 없다.

대학만 나오면 삶을 즐길 수 있다는 약속을 믿고 열심히 공부하더라도, 요즘 세대 대부분은 휴일도 보장받기 힘든 중소기업에 취직해야 한다. 앞 세대와 비교했을 때 취직하는 데에 더 많은 노력과 비용을 쏟지만, 그 결실은 조부모 세대가 먹던 밥처럼 영양가가 별로 없다.

사람은 마음 깊숙한 곳에서 자신이 들이는 노력과 예상되는 결과물을 비교하며 움직이기 마련이다.¹ 이기적이라는 뜻이 아니다. 우리가 아무 때나 의도적으로 노력을 쏟기 어렵다는 뜻이다.

우리 뇌는 에너지를 철저하게 관리한다. 만약 긍정적인 보상을 예상하지 못하거나 주변에 위험 요소가 많다고 느끼면, 뇌는 에너지를 지출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침대에서 일어나서 공부에 집중하거나 진취적으로 기회를 찾지 않는다. 당장의 안전이 최우선 목표이기 때문다.² 이런 상황에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해 봐야 소용 없다. 뇌는 이성보다 감각을 믿기 때문이다.

요즘 세대의 무기력은 의지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요즘 세대의 뇌는 철저히 안전 보장에만 집중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요즘 세대가 더 불안을 많이 느끼고 예민하다는 점은 심리학적으로 확인된다.³ 요즘 세대는 뇌신경계 단계에서 진취적인 행동을 방해받고 있는 셈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의욕을 북돋아줄 수 있을까? 방법은 없다. 그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으샤으샤 파이팅”을 수백만 번 외칠 수는 있지만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동기를 부여할 수는 없다. 그 누구의 배를 고프게 하거나 목이 마르게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⁴

물론, 요즘 세대 중에도 진취적인 사람은 있다. 사람마다 타고난 기질이 다르고 마주친 행운이 다른지라, 누군가는 밝은 미래를 믿고 악착 같이 노력해서 결국 더 나은 삶을 쟁취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누군가가 해냈다고 해서 모두가 해낼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 중에서 자신이 왜 성공했는지 다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과학자들도 다 밝혀내지 못한 인간의 행동 원리를 일반인이 전부 설명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인지 편향적이다. 운이 좋아서, 또는 남들이 갖지 못한 기회가 있어서 성공했어도, 자신의 노력만 바라볼 수 있다. 개인이 노력한 덕에 힘든 상황을 극복했다고 단정짓는 것은 전형적인 귀인 오류다.⁵

자수성가 이야기는 믿을 만한 게 못 된다. 떵떵거리며 자신의 모험담을 푸는 사람은 어쩌다가 성공한 소수이지, 똑같이 노력했지만 운이 나빠서 실패한 다수가 아니다. 운 좋은 소수의 모험담은 항상 과다대표되기 마련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면을 살펴보면 우리가 전혀 눈치채지 못한 행운이 잇따른 경우가 많다."⁶

흔히 앞 세대는 공장이든 공사장이든 아무데나 가서 일하다가 더 나은 기회를 찾으면 되지 않느냐고 쉽게 이야기하지만, 요즘 세대는 그런 모험에 몸을 던질 수 없다. 경제적으로 불안한 핵가족의 일원은 일하다가 다쳐도 친척이나 지인에게 이자 없이 병원비와 생활비를 빌리기 힘들다.⁷ 혹여나 온 몸을 던져서 일했다가 과로사하면 장례식에 와 줄 사람도 많지 않다. 아무데나 가서 일하는 것은 너무 위험한 도박인 셈이다.

애초에, 앞 세대 중에도 그런 도박에 성공한 사람은 많지 않다. 정말 성공한 사람이 그렇게 많다면, 폐지를 줍거나, 경제적으로 불안해서 은퇴하지 못하거나, 홀로 하루종일 텔레비전이나 유튜브만 보는 사람이 이렇게 많아서는 안 된다. 불평등과 빈곤, 사회적 혼란을 보면, 앞 세대가 요구하는 도박은 앞 세대 대다수에게도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다 주지 못했다.

따지고 보면, 앞 세대가 요즘 세대보다 강인했다는 생각은 근거가 부족할지도 모른다. 정말 앞 세대가 강인하게, 자신의 의지로 험한 시대를 개척했다면, 우선 정서적으로 건강해야 한다. 스트레스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성숙한 방어기제를 활용하고, 마음이 여유로워야 한다. 이러한 정서 건강은 강인함을 보여주는 핵심 증거다.

그런데, 앞 세대는 마치 트라우마에 걸린 듯한 모습을 보여줄 때가 많다. 금방 흥분해서 소리지르고, 자기 잘못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음모론에 빠진다. 다시 말해 스트레스에 건강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실제로 우울증이나 알코올 중독 같은 정신장애에 걸린 앞 세대가 너무 많다.⁸

어쩌면, 앞 세대는 마구잡이로 헤엄치다가 운 좋게 구호선을 발견했을 뿐, 자신의 근력, 자신의 의지, 자신의 계획으로 파도를 극복하며 육지까지 헤엄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앞 세대는 앞 세대 나름 누릴 수 있었던 행운, 보호, 기회 덕에 힘든 시대를 견딘 것일 수도 있다. 산업화 시대가 지금만큼 살기 편했다는 뜻이 아니다. 희망을 주입하는 국가, 의지할 수 있는 대가족 등 지금과는 다른 환경에서 살았다는 뜻이다.

부모의 잔소리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자녀를 위한 소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도가 좋다고 해서 곧바로 좋은 행동이 되지는 않는다. 자녀가 공부는 안하고 게임만 한다면, 취직도 안 하고 집에서 드러누워 있다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한다면, 자녀의 뇌가 당장의 안전에만 집중하느라 에너지를 긴축하고 있다고 봐야지, 글러먹었다고 봐서는 안 된다. 요즘 세대의 나약함은 요즘 세대 잘못이 아니다.

참고자료.

1. 데이비드 바드르, 생각은 어떻게 행동이 되는가, 김한영 옮김, 해나무, 2022, 328p.

2. 브릿 프랭크, 무기력의 심리학, 김두완 옮김, 흐름출판, 2023, 89p.

3. 장숙랑, 3장 세대간 감염된 절망에 관하여, 가장 외로운 선택, 북하우스, 2022, 127p

4. 헤닝 벡, 틀려도 좋다 [전자도서], 장혜경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2019.

5. 리처드 니스벳, 마인드웨어, 이창신 옮김, 김영사, 2016, 60p.

6. 리처드 니스벳, 마인드웨어, 이창신 옮김, 김영사, 2016, 61p.

7. 2020년 사회통합실태조사, 한국행정연구원, 57p

8. 2021년 정신건강실태조사, 보건복지부, 6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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