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3주 전의 일이다.

내가 막 장원에 초대되어 해독기나 돌리고 있을 때였다.

슬슬 해독을 완료하려던 차에, 첫 어그로가 걸린 조향사가 그만 하스터에게 잡히고 말았다.

해독기 옆에는 줄창 앉아서 해독만 하기로 유명한 용병이 있었다.

무난하게 해독기를 완료한 나는 같은 팀의 조향사가 의자에 묶이는 걸 보고 혹시나 잠식을 당할까 어서 출발해달라고 용병에게 요청을 했다.

용병은 어그로부심을 굉장히 잔망스럽게 부리는 것 같았다.

"제가 어그로 일때는 말이죠, 추진기 달고있는 키마 조커가 돌진해와도 이 공중아대로 손절을 시켰습디다. 제 아무리 조향사가 깝쳐봤자 어그로는 내 절반도 못 채우는 년이..."

"구출 좀 가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구출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자꾸 딴지놓을거면 연쇄구출마를 할테니 가서 의사나 알아보시우."

대단히 빡치는 용병이었다. 뭐라 더 깝쳐보지도 못하고 구출만 잘 해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해독기 옆에서 교정만 맞추고 있었다. 그러다 아대를 써서 구출하러 가는 것 같더니, 돌연 이명만 띄우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하스터는 이미 해독기 견제에 심취해 저 멀리 나가있는 상황이라 내가 보기에는 그냥 구출하여 아드각 맞추고 출구대기 하는게 더 나을 거 같은데, 자꾸만 의자 옆에 앉아 잘 보이지도 않는 하스터를 향해 구출심리전이나 걸고 있었다.

인제 잠식선에 도달했으니 그냥 심리전 잠시 미뤄두고 구출하고 함께 해독이나 하자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우측 상단에 뜨는 구출 잠식선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기다리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구출하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아드각이 맞춰져야 구출을하지, 그냥 구출하고 최후의 발악 띄운다고 게임을 이기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팀원을 아예 버리겠다는 것도 아니고, 이대로면 장원으로 날아가는 것도 금방인데. 용병, 외고집이시구먼. 시간이 없다니까요."

용병은 퉁명스럽게,

"할거면 당신이나 하슈. 난 아드각 찰 때까지는 안 하겠소. 내가 이 장원에서 몇명을 구출 한 줄은 알고 제깟놈이..."

하고 내뱉는다. 자존심이 상한듯한 용병도 용병이고, 어차피 그를 설득하는 새에 잠식 타이밍이 이미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하며 해독기 곁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아드각이 찰 때 까지만 마음대로 버텨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집중력이 흐려져서 공포를 처맞는다니까. 아드각도 제대로 만들고 써야지, 아드 터지고 둘 다 누우면 쓰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게임을 숫제 포기한 듯 태연스럽게 감정표현을 하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신기하게도 하스터의 촉수와 원거리 응시와 평타 견제를 아대 하나로 전부 뺀 용병은 거의 장원행 직전이 되어서야 조향사 겨드랑이를 이리저리 만져 보더니 아드각이 다 찼다고 구출을 한다. 사실 다 차기는 아까부터 다 차 있던 아드다.

혼자 출구에서 대기하다 만류상태로 텔타는 하스터에게 지레 겁먹고 탈출한 나는 팀원의 생사도 모르는 새 게임이 끝나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구출을 해 가지고 승률이 높을 턱이 없다. 팀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부심만 되게 부린다. 용병을 할 줄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병신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관전을 들어가보니 용병은 태연히 티배깅를 하며 개구멍 위에 서 있었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앞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용병다워 보였다.

급식 냄새 풍기는 감염이 아닌 스프링핸드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용병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바로 이어 경기 종료 후 채팅을 보았더니 용병에게 쏟아지는 좋아요가 일색이다. 하스터도 용병의 심리전이 참 잘 들어갔다고 야단이다. 심리전은 물론이거니와 아드각까지 이렇게 찰지게 잘 켜지는 경기는 처음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드각을 제외하고는 용병이 별로 잘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의자에 묶인 그 조향사와 같은 팀 선지자의 말을 들어 보니, 하스터를 상대로 심리전도 없이 덮어놓고 구출하다보면 촉수세례에 1+1 되는것은 물론이요 구출 직후에 둘 다 빨간테두리 뜨는것은 부지기수며, 아드각을 잘 맞추지 못하면 아드켜지고 만류처맞기 쉽단다. 요렇게 심리전을 쉴 새 없이 걸어주며 사방의 촉수로부터 제 몸 지키는 동시에 진중하고 고집스럽게도 아드각을 기다려서 구출이 물 흐르듯 되는 용병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용병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나는 그 용병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구출을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훌륭한 용병이 나 같은 좆뉴비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용병 장인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용병을 찾아가서 위스커씨에 보라스킨교환권이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장원주에 물어물어 그 용병의 uid를 찾았다.

그러나 그 용병에게 친추를 걸었지만 용병은 받지 아니했다. 게임 초반에 조금 찡찡대었던 일로 차단당한 듯 하였다.
나는 그 용병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다음 게임에서 만난 다른 용병의 플레이를 바라보았다.
병원 미로 인성존에서 대놓고 창틀을 넘다가 조커 돌진에 공포가 뜨는 용병신의 모습이 피어나고 있었다.

말도 되지 않게 미개한 게임이해도와 더불어 게임종료 채팅에 욕질을 해대는, 한 없이 한심해보이는 모습.

문득 깨달았다.

아, 그 때 그 용병이 지금 나와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구나. 열심히 해독하다가 자꾸 구출하러 나가라고 징징거리는 나의 모습에 눈을 흘기던 용병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5갤에 들어갔더니 공중아대를 시도하다 구출에 늦어 팀원을 장원행 시킨 용병신이 박제당해 대차게 까이고 있었다.

이제는 용병신새끼들 덕에 이미지가 더러워져 좀체 찾아볼 수 없는 광경이지만 오픈 초기에 용병을 1티어라며 빨아주던 생각이 난다.

공군 선지자 등쌀에 제대로 된 용병 장인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선지자 들고 티어부심 부려대는 씨발년들 덕에 용병해먹기가 유난히 힘든 것이 크다.



문득 3주전 해독기 돌리던 용병의 뒷모습이 생각난다





- 원작 '방망이 깎는 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