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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담 25. 오해모바일에서 작성

ㅇㅇ(1.247) 2019.04.10 21:44:59
조회 660 추천 3 댓글 3


25.  오해

서커스단에서 자문단 일행과 나오던 길이었다.

장하나.

저 멀리 환하게 웃고 있는 하나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눈물을 글썽이며 그를 바라보는.
서진은 당황해서 급히 고개를 돌렸다.
또 시작이다.

지나가는 사람을 하나로 착각하는 일은 너무나도 자주 있었다. 긴 머리의, 가냘픈 뒷모습만 보면 가슴이 철렁하곤 했다. 혜라를 처음 보던 날도 실수할 뻔 하지 않았던가.
하나가 곧 귀국한다는 권비서의 말을 들은 뒤로 착각은 더 심해졌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지만, 혹시 예정보다 일찍 돌아온 하나가 날 보러 와 주진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가 있었다.

하나는 다음주에나 입국이다. 게다가 날 보며 저토록 환하게 웃어주다니.
서진은 진심으로 당황했다.
\'망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어. 강박사님이라도 뵈러 가야되나.\'

\'지금은 외부인사들과 함께다. 정신을 차려야 돼.\'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네, 상무님?"
"뭐라고요? 죄송합니다. 제가 잘 못들었어요."
"점심 어쩌실 거냐고요.."
정말 대단하다. 혜라의 끈질김에 서진은 어이없는 웃음이 새어나온다.
"그래요, 합시다. 식사. "
그러곤 권비서를 향해 지시했다.
"권비서, 약소하게나마 자리를 준비해보지."
"네, 상무님."

신경을 쓰지 않으려해도 자꾸만 저 쪽이 신경쓰인다. 어쩔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다시 한 번 하나 서 있던 쪽을 슬쩍 본다.

역시..
하나는 없다.
마음이 허전하다.
그래도
웃는 모습, 정말 예뻤는데. 가슴이 아리도록.
아쉬움이 남았다.


"언니, 미안해. 거의 다 갔는데 피곤해서 집으로 왔어."
"아냐, 잘 했어. 근데 아침에 서두르느라고 집이 엉망인데 괜찮겠어?"
"그럼, 완전 편하구만."
"그럼  조금 쉬고 나서 기획안 준비해. 시차 적응해야지. 그리고, 왠 여우 하나가 등장해서 정신 바짝 차려야겠드라. 준비 진짜 잘 해야돼~"
"응,? 여우?"
"그런 게 있어. 퇴근할 때 떡볶이에 순대 사 갖고 갈게~"



오랜만의 서진은, 하나의 상상속에서와는 달랐다.
슬퍼보이지도 힘들어 보이지도 않았다.
조금 야위었나 싶기도 했지만
좀  그을린 피부가
왠지 전보다 남자다워진 느낌이랄까.
멀리서봐도 일행 중 돋보이는 자태와 카리스마가 하나와는 더 멀게 느껴져 가슴아팠다.

외면.
그런 그가 하나를 외면했다.
원망이었을까.
혼돈의 한 가운데 그를 두고 도망쳐버린,
끝까지 그를 알아보지 못 했던,
나에 대한 원망의  눈빛이었을까.

그리고.
그의 곁에 누군가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한눈에 봐도 세련되고 아름다운 그녀.
그저 동료나 사업 파트너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서진에게 주눅들지 않고 얘기할 수 있는 자신감과 당당함.
멋있었어.
멋진 여자였다. 서진에게 잘 어울리는.
그리고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가 서진에게 갖고 있는 명백한 호감을.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다. 서진이 보여준 희미한 미소가.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상무님은 원래 이렇게 말씀이 없으신가봐요?"
"대체로 그런 편이죠."
원더호텔에서의 식사. 점심이라 간단히 파스타를 골랐다.
"음, 음식이 맛있네요. 쉐프가 바뀌었나?"
"네,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자주 오시나봐요."
"아뇨, 이렇게 비싼 델 어떻게요? 가끔 오늘처럼 얻어 먹는 날 오는 거죠."
"인기가 많으신가보네요. 초대받을 기회가 많으시다는 걸 보니?"
"많다기보단, 가끔 있죠. 구상무님이 제일 밥 얻어먹기 힘들었던 분이라는 것만 기억해주세요, 호호"
혜라는 생각보다 재치있고 소탈했다. 낯을 많이 가리고 말수 적은 서진과도 이야기가 잘 통했다.
"상무님은 소문이랑 많이 다르시네요."
"제 소문이 어떤데요?"
"까칠하고 냉정하다고. 조금 재수없는 분이라고 들었는데.."
"하하, 그래요?"
"근데 생각보다 부드러우셔서 놀랐어요. 말씀도 조곤조곤 잘 하시고. 좀 지나치게 단문이긴 하지만."
"제가 낯을 좀 가리거든요. 이 정도면 말 정말 길게 한 거에요."
"근데, 소문이 맞는 것도 있네요."
"뭔데요?"
"엄~청 잘 생겼다고. 그리고 여자 보기를 돌 같이 한다고."
"하하, 그래요?"
서진 앞에서 이렇게 대놓고 외모를 칭찬한 사람은 흔치 않다. 쑥스러움에 웃음이 나왔다.
"여자 보기를 돌 같이 한다는 말은 어디서 나온 말일까요? "
"그래서 선도 안 보시는 거 아니었어요? 지난 번에 구상무님이 선 안본다고 마다하신 사람이  바로 저거든요, 호호."

식사는 맛있었다. 혜라 말대로 쉐프가 바뀐 덕분인 듯 했다. 디저트도 깔끔하고 고급스러웠다.
"혹시 선 때문에 마음 상하셨으면, 죄송합니다. 전 맞선 상대에 대해서 아는 바도 없었고 그저 선을 보고 싶지 않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서진은 혜라와의 개인적인 관계는 분명하게 선을 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왜요, 마음에 두신 분이라도 있으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서진은 망설임없이 대답했다.
"호호, 그냥 한 번 찍어본 건데, 상무님 정말 솔직하시네요. 마음에 둔 사람때문이다..
그럼 제가 하나 더 맞혀볼까요?"
"..."
"그 분 혹시, 다음 주에 오신다는 서커스단 단장님 아니세요? 미모가 출중햐시다는?"
"..."
"호호, 상무님 너무 귀여우세요. 말씀을 안 하시는 거 보니 그 분이 맞긴 한데..  상무님 혼자만 좋아하시는구나?  쌍방은 아닌거죠? 호호"
잠시 웃던 혜라는 이내 정색했다.
"혹시 상무님의 개인적인 감정을 놀리는 것처럼 들리셨다면 죄송해요. 상무님처럼  모든 걸 다 가진 완벽한 분이 기다리는 분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해서 그래요."
"제가 모든 걸 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식사 다 하셨으면 일어날까요? "

오늘도 또 철벽.
\'역시, 쉽지 않네..\'
혜라는 기회있을 때마다  서진에게 호감을 표시했다. 물론 번번히 서진의 철벽에 가로막혔다.
하지만 무례하지도, 상대방이 무안하지도 않게 자신의 감정을 가감없이 드러내며 담담하게 거절하는 모습이 싫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외부활동을 통해 많은 기업임원들, 재벌가 자제들도 많이 만나보았던 혜라였다. 거만함이나 허세없이,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을 평가하거나 효용을 따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 대해주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쉽지 않을 것이다, 서진처럼 모든 것을 가진 사람에겐 연애나 결혼조차 일종의 비지니스일 테니까.
\'그 서커스 단장이라는 사람,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혜라는 몹시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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