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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비아 전투에 대해서 번역해 보았는데요...고수님들 고칠 데 좀 봐주세요...

도펠졸트너 2007.01.07 22:30:38
조회 248 추천 0 댓글 2

영어판 위키백과에서 찾아서 번역을 한 번 해보았는데요...아무래도 제가 관련지식도 부족하고, 위키백과가 완전한 정보를 갖춘 곳도 아닐 거라는 생각에 역갤 고수분의 고견을 듣고 싶어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외국어도 잘 몰라서 번역한 이름들이 어색하기도 할 겁니다. 엉성하더라도 좀 잘 봐주시고, 고칠 부분 지적해주시면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1525년 2월 24일 아침에 벌어진 파비아 전투는 이탈리아 전쟁(1521~1526)에서 결정적인 전투였다. 파비아 근처의 미라벨로 평원에서 샤를 드 란노이가 명목상 지휘하던 합스부르크 가(家)의 군대가 발루아 가(家)의 프랑수아 1세가 이끄는 프랑스 군대를 공격했다. 4시간 동안의 격전 끝에 프랑스 군대가 궤멸되었다. 프랑수아 1세를 포함한 다수의 프랑스 병사가 포로로 잡혔으며, 프랑수아 1세는 결국 굴욕적인 마드리드 조약(1526)에 서명함으로써 이탈리아, 플랑드르, 부르고뉴 지방에 대한 영향력을 포기하게 되었다. 전투 전 상황         프랑스는 이탈리아 전쟁을 일으켰으나 비코카 전투(Battle of Bicocca, 1522)로 인해 롬바르디아 지방을 잃게 된다. 이를 되찾기 위해, 프랑수아 1세는 보니베의 영주 기욤 구피에를 시켜 1523년 침공을 단행한다. 하지만 구피에는 세시아 전투(Battle of Sesia, 1524)에서 황제군에게 패해 퇴각하게 된다.         카를 5세 밑에서 복무하던 “황금양털의 기사” 샤를 드 란노이는 페르난도 다발로스, 페스카라 후작, 그리고 최근 프랑수아 1세를 배신하고 카를 5세 휘하로 들어온 부르봉 공(公) 샤를 3세를 보내 프로방스 지방을 공격했다. 초반에는 성과를 거두었으나, 황제군은 마르세유 공방전(Siege of Marseille, 1524)에서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프랑수아 1세가 병력을 이끌고 아비뇽에 도달하자 이탈리아로 후퇴한다.         1524년 10월 중순에, 프랑수아 1세는 4만이 넘는 군사를 이끌고 알프스를 넘어 밀라노로 진격했다. 프로방스 공략의 손실을 채 회복하지 못하고 있던 다발로스와 샤를 3세의 군대는 비교적 먼 곳에 위치해 있었다. 프랑스군은 황제군의 방해를 무시한 채 소규모 부대단위로 이동했으나, 황제군의 주 병력을 전투로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샤를 드 란노이는 밀라노를 지키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10월 26일 병력을 롬바르디아의 도시 로디로 퇴각시킨다. 밀라노에 입성해 트레모아 가(家)의 루이 2세에게 도시의 관리를 맡기고 나서, 프랑수아 1세는 파비아로 진격한다. 파비아에는 안토니오 데 레이바가 지휘하는 황제군이 있었다. 이들은 대략 9천명이었는데, 그중 대부분은 안토니오 데 레이바가 성당 접시를 녹인 것을 팔아 고용한 용병들이었다.         프랑스의 주 병력이 10월 말 파비아에 당도했다. 11월 2일경, 프랑스의 몽모랑시 장군은 티치노 강을 건너 파비아의 남쪽에서부터 공격해 들어가 포위망을 완성했다. 전초전과 포격이 이어졌고, 성벽이 점점 파괴되기 시작했다. 11월 21일, 프랑스군은 성벽이 무너진 두 곳을 통해 도시 내로 진입하려 했으나, 많은 수의 사상자만 내고는 퇴각하고 말았다. 잦은 비와 화약의 부족으로, 프랑스군은 수비군이 굶주림에 지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12월 초, 휴고 데 몬카다가 이끄는 스페인 군대가 제노바 근방에 도착한다. 이들은 제노바 내에서 벌어지는 친(親)발루아 파와 친(親)합스부르크 파 사이의 갈등에 간섭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프랑수아 1세는 살루초 후작에게 막대한 병력을 딸려 보내 스페인군을 막게 한다. 다수의 프랑스군과 안드레아 도리아가 지휘하는 친(親)발루아 파 함대에 의해, 스페인군은 항복하고 만다. 그 직후 프랑수아 1세는 교황 클레멘트 7세와 밀약을 맺는데, 교황의 나폴리 정복을 돕는 대가로 카를 5세를 돕지 말라는 것이 밀약의 주 내용이었다. 프랑수아 1세는 부하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알바니 공작에게 군사를 붙여주어 교황을 돕게 했다. 란노이는 피오렌추올라 근처에서 프랑스의 파견부대를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프랑스에 고용된 지오반니 데 메디치의 악명 높은 용병부대 “흑부대”와 맞닥뜨려 황제군은 상당한 피해를 입고 퇴각해야만 했다. 메디치는 페라라 공작이 모은 화약과 포탄을 가지고 파비아로 귀환했지만, 그라우뷘덴 출신의 5천에 가까운 스위스 용병들이 그들의 고향에 쳐들어온 란츠크네히츠 용병부대를 막기 위해 군에서 이탈함에 따라 프랑스군은 난처한 상황에 직면한다.         1525년 1월, 란노이는 게오르크 프룬츠베르크가 이끄는 만 오천의 란츠크네히츠 용병부대를 증원받고 공격을 재개한다. 다발로스는 산 안젤로의 프랑스군 기지를 점령하고, 파비아와 밀라노 사이의 프랑스군 연락망을 두절시킨다. 그동안 란츠크네히츠는 소규모 부대단위로 벨지오조소로 진군하여, 메디치와 구피에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마을을 점령한다. 2월 2일경, 란노이는 파비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까지 접근한다. 프랑수아 1세는 병력의 대부분을 성벽으로 둘러싸인 미라벨로 평원에 주둔시키고, 레이바의 주둔군과 란노이의 지원군 사이에 군사를 배치한다. 소규모 전투가 2월 내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메디치는 심각한 부상을 입고 회복을 위해 피아첸차로 퇴각한다. 메디치와 흑부대가 군에서 이탈한 상황에서 프랑수아 1세는 병력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밀라노 주둔군을 소환해야 했지만, 소규모 전투만이 계속될 뿐이었다. 2월 21일, 황제군의 지휘관들은 물자의 고갈과, 프랑스군이 그들보다 훨씬 더 수가 많다고 잘못 판단하여, 자신들의 체면을 살리고 프랑스군의 사기를 꺾어 안전하게 퇴각하기 위하여 미라벨로 성(成)을 공격한다. 전투         2월 23일 저녁, 평원의 동쪽 성벽 밖에서 진을 치고 있던 란노이의 황제군은 성벽을 따라 북쪽으로 진군하기 시작한다. 같은 때에, 황제군의 대포들이 란노이의 진군을 프랑스군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프랑스의 포위망을 향해 포격을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황제군의 공병들이 평원의 성벽을 파괴했다. 아침 5시경, 알폰소 다발로스 지휘하의 화승총병 3천이 평원에 도착하고 빠른 속도로 미라벨로성에 육박했다. 황제군의 경기병대는 프랑스군의 움직임을 방해하기 위해 성벽이 파괴된 틈으로 진입해 들어갔다.         그러는 중, 프랑스 기병대가 황제군 기병대를 발견하고 곧 교전이 벌어진다. 스위스 장창병들이 프랑스 기병대를 돕기 위해 달려왔고, 그들은 스페인 포병들을 압도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6시 30분경 도착한 데 바스토의 화승총 사수들을 발견하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게오르크 프룬츠베르크가 이끄는 6천의 란츠크네히츠와 맞닥뜨리게 된다. 7시경, 대규모 전면전이 벌어진다.         란노이가 직접 지휘하는 스페인․황제군 중갑기병대과 다발로스가 이끄는 스페인 보병대는 숲속을 뚫고 서쪽으로 이동하여 프랑스군이 야영하고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프랑스군은 한동안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7시 20분경 다발로스의 군사들이 스페인 전열에 대한 포격에 착수하던 프랑스 포병대에게 발각되고 나서야 상황을 파악한다. 프랑수아 1세는 중갑기병대를 란노이의 기병대에 돌격시키고, 스페인군을 쫒아버린다.         그러나 프랑스 기병대의 무모한 돌격은 포병대의 포격을 방해했을 뿐만 아니라, 기병대와 보병부대 사이의 거리를 너무 벌려놓았다. 다발로스는 후퇴하던 스페인 병력을 재정비하고, 샤를 3세, 프룬츠베르크, 데 바스토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프룬츠베르크의 란츠크네히츠는 수적으로 자신의 부대를 압도하는 스위스 보병들을 격파했다. 프랑스의 장수들은 더 이상 군사들을 통제할 수가 없었으며, 프랑스 병사들은 점점 전장에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종반         8시경, 황제군의 장창병들과 화승총 사수들이 프랑스 기병대를 포위했다. 주위의 나무들 때문에 재빨리 도망칠 수 없었던 프랑스 중갑기병들은 철저하게 학살당했다. 흑부대도 프룬츠베르크의 란츠크네히츠에게 포위되어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았다. 프랑수아 1세는 화승총병들에게 사로잡혀 포로가 되었다.         이러는 동안, 안토니오 데 레이바는 주둔군을 출격시켜,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던 몽모랑시 휘하의 3천 스위스 병사들을 격파한다. 패잔병들은 티치노 강을 건너 도주를 시도하지만 막대한 수의 사상자만 발생할 뿐이었다. 9시경, 전투는 종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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