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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추린 아프가니스탄 역사

고전압 2006.12.04 10:54:13
조회 748 추천 0 댓글 1


이 글은 2학년 때 간략한 자료조사 끝에 제가 제출한 보고서의 앞부분입니다. 전공과목도 아니고 하다 보니 대충대충 만들어서 냈습니다. ^^;; 내용은 기본적으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2000년도판)을 제 주관적 판단에 따라 짜집기한 것임을 밝혀둡니다. ===================================================================================== 1.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 개관 면적: 652,225㎢(남한의 6.5배, 남북 970km 동서 1050km-동쪽의 좁은 지역 제외) 인구: 2775만 5775(2002) 지역분류: 중동지방 (남아시아, 중동, 중앙아시아의 교차점) 농지이고 겨울이 추운 북부 평원지대(토차리스탄과 투르키스탄), 亞북극기후의 중부 힌두쿠시산맥 산악지대, 스텝·사막이고 겨울이 추운 남서부 고원지대로 이뤄진다. 그러나 남서부 고원지대에서도 1150km에 달하는 헬만드 강 덕분에 관개농업이 이뤄진다. 또 북부 평원지대 일부는 아시아에서 가장 좋은 조건의 농경지 중 하나이다. 고품질의 광물 자원이 대단히 풍부하나 수송·채광이 어려워 거의 개발되지 못했다. 북부지방에선 상당한 양의 천연가스를 생산중이다. 산업은 농경업, 전통직물생산 등에 집중되어있다. 2. 아프가니스탄의 민족 구성      1. 파슈툰(아프간)족(50%) 파슈토어(인도유럽어족 이란어파) 사용. 원래 유목민이지만 대부분 정착. 아프간에 612만, 파키스탄에 670만. 60여개의 부족으로 나뉜다. 남부와 동부지방에 많다.      2. 타지크족(27%) 원래 타지크어(페르시아어의 일종)을 사용하나 아프간 타지크족은 다리어(페르시아어의 일종)을 사용. 선사시대부터 농경민족이었다. 아프간에 320만, 타지키스탄(모국)에 235만, 우즈베키스탄에 65만, 중국 신장웨이우얼 자치구에 3만. 북서부 헤라트 주변에 산다.      3. 우즈베크족(10%) 우즈베크어(알타이어족 투르크어군 남동어군)를 사용하나 사실은 이란계와 투르크계, 몽골계의 혼혈족이다. 지금은 전부 정착했다. 아프간에 140만, 우즈베키스탄(모국)에 1400만, 중국에 1만3천. 힌두쿠시산맥 북쪽에 산다.      4. 하자라족(10%) 다리어를 사용하나 사실은 몽골족의 후손이다. 아직도 유목생활을 한다. 아프간에 150만, 이란에 15만. 중부 산악지대에 산다.      5. 종교 구성 하자라족(시아파 이슬람)을 제외하면 전부 수니파 이슬람으로써, 특히 우즈베크족은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열성적인 무슬림으로 알려져 있다.      6. 인구 분포 도시 인구는 카불-칸다하르-헤라트-마자르이샤리프의 순환도로변에, 농촌 인구는 관개농업을 할 수 있는 강변에 집중되어 있다. 인구의 45%가 15세 이하이며, 출생률·사망률이 매우 높다. 75~80%는 농경·목축을 하며 2백만 명 정도는 유목민이다. 3. 아프가니스탄의 간추린 역사 아프가니스탄은 서쪽으로 중동권의 페르시아, 동쪽으로 남아권의 파키스탄과 티베트, 북쪽으로 중앙아시아의 투르크멘·타지크와 맞닿아 문화교류의 교차점인데다가, 前述한 국가들을 내려다보는 지형의 고원 국가로써 군사적 중요성이 매우 컸다. 그래서 수많은 외부의 침탈에 시달렸다. 기원전 6세기에 페르시아, 기원전 4세기에 알렉산더 대왕, 그 후로는 페르시아와 인도의 마우리아 왕국의 지배를 받았다. 지금의 북부지방의 발흐 부근에 박트리아 왕국이 세워져, 한동안 인도 문화와 그리스 문화를 융합한 독특한 문화를 자랑하며 크게 발전했으나, 기원전 128년에 중앙아시아의 이란계 민족인 월지족(토차리족)에게 나라를 뺏겼고, 그 후 인도의 쿠샨 왕조(기원전 2세기)에게 지배당했다. 서기 4세기경에는 월지족의 후예인 에프탈족과 페르시아 사산 왕조의 경쟁무대가 되었다. 6세기엔 투르크인들이 에프탈을 물리치고 투르키스탄 지방을 점령했으며, 870년경 페르시아 사파르 왕조에게 점령된 후로 이슬람교가 뿌리를 내렸다. 몽골족의 원 제국이 일어설 때 점령된 후, 작은 제후국들로 분리되어 부분적으로 인도 무굴 제국이나 페르시아 사파위 제국과 같은 주변 강국에게 복속되었다. 북인도 지방의 델리-술탄왕조 시대(불안정한 이슬람교 왕국들이 난립하며 명멸을 거듭하던, 불안정한 시대)가 끝나가던 15세기 중엽에는 아프간 출신의 ‘바룰 로디’가 펀자브 지방에서 세력을 떨쳤다. 그는 마침내 동쪽으로 비하르 지방(벵골 서쪽)까지 지배하는 로디 왕조를 세웠으나, 75년 뒤 무굴 제국에 의해 멸망당했다. 또 로디 왕국 패잔병의 후손인 셰르 샤 수르가 비하르, 벵골을 점령한 뒤 델리를 공격하여 무굴 제국을 밀어내고 수르 왕국을 세웠으나, 얼마 못가 다시 무굴 제국에게 멸망당했다. 18세기 초 페르시아가 인도 세력을 몰아내자, 페르시아 왕의 경호대장이었던 아흐마드 칸 아브달 리가 아흐마드 샤 두라니로 이름을 바꾸고 드디어 아프가니스탄 전 영토를 지배하는 통일 왕국의 왕이 되었다. 그가 죽자 왕국은 다시 수많은 토후국으로 쪼개졌으나, 영국의 3차례에 걸친 대규모 침공을 무사히 막아내고 독립을 유지했다. 1919년에 다시 왕국이 세워졌는데, 신중하고 온건한 통치로써 대중의 지지를 얻어 70년대까지 평화로운 시대를 열었다. 70년대에 정당정치가 갑자기 흔들리게 되자, 소련의 사주를 받은 좌익계열 정당이 73년 쿠데타를 일으킴으로써 길고 긴 내전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좌익정당연합(PDPA)를 결성하여 공화국을 세우고 공산주의를 실행하려 하였으나, 곧 정당연합에 내분이 생기고 공산주의적 개혁에 반대하는 농민들이 여러 차례 반란을 일으켰다. 마침내 소련은 자신들의 의존국을 늘리려는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직접 침공해왔고, 이에 대항하여 공산주의 정권과 소련 세력을 몰아내려는 반군 단체들(무자헤딘)이 생겨나 게릴라전을 시작했다. 수백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여 파키스탄과 이란에 수용되었다. 한때 소련군이 도시지역과 지방 군사거점, 반군세력이 대부분의 농촌을 점거하여 대치했으며, 이 와중에 미국은 반군세력에 지속적으로 스팅어 미사일 등의 최신무기를 공급하여 소련을 몰아내고자 하였다. 마침내 소련은 88~89년에 걸쳐 철수했다. PDPA와 무자헤딘들의 내전은 계속되었고, 결국 92년에 공산주의 정권이 무너졌다. 이로써 소련의 팽창 야욕으로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14년만에 종식되었다. 사망자는 200만 명, 난민은 500만 명이 발생했다. 그러나 무자헤딘들은 제각각 민족이나 종교에 따른 자신들끼리의 싸움을 계속하여, 불안상황은 계속되었다. 4. 공산정권 괴멸 이후의 자세한 분쟁내용 1992년 4월 마침내 반군 세력이 모하마드 나지불라 대통령의 공산주의 정권을 무너뜨림으로써 14년(1978∼92)에 걸친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끝났다. 전쟁으로 인해 200만 명이 사망했고 50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으며 국토는 폐허가 되는 참화를 겪었지만 평화가 정착되지는 않았다. 민족이나 종교적 분파에 따라 나뉜 여러 게릴라 세력들 간의 크고 작은 분쟁이 계속되었기 때문이었다. 과도기에 대통령직을 맡았던 시브가 툴라 모자데디가 1992년 6월 게릴라 지도자들의 회의기구를 이끌던 부라누딘 라바니에게 권력을 넘겼으나, 유혈사태가 종결되지는 않았다. 근본주의자인 굴부딘 헤크마티아르가 이끄는 이슬람당은 카불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가했다. 또한 시아파 이슬람교 당파 8개가 연합한 통일당은 이란의 지원을 받았는데 과도정부에 대해 권력 분점(分店)에 대한 약속을 지킬 것을 요구했다. 미국 국무부 보고서에 의하면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정권을 장악한 측이 과거 적으로 분류된 사람들에 대한 인권 유린과 살인을 자행하고 있었다. 프랑스·이탈리아·불가리아가 자국 외교관들을 철수시키는 등 상황은 악화되었다. 파키스탄과 이란에는 여전히 수백 만 명의 아프가니스탄 난민이 있었다. 1992년 12월 30일 1,335명의 대표로 구성된 의회에서 라바니가 2년 임기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는데, 이에 대해 10개의 주요 반군 세력 중 5개가 의회를 비난하며 라바니를 대통령에 선출한 것은 전쟁을 의미한다고 했다. 의회는 오로지 이슬람교도에게만 정부의 일을 맡겼고 비(非)이슬람 기구 설치를 금지했으며 방송도 이슬람 율법에 따르도록 했다. 국방장관 아흐메드 샤 마수드 휘하의 정부군과 헤크마티아르를 따르는 헤즈브 이 이슬라미 사이에서 주로 발생한 끝없는 전투에도 불구하고 1993년 5월 22명으로 구성된 내각이 짜여졌으며, 수도 카불에 있는 마수드의 건물을 점령한 헤크마티아르가 총리로 지명되었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아프가니스탄은 주변의 이슬람 국가들에게 자금 등의 원조를 요청해 국가 정상화에 노력을 기울였다. 1994년 1월 헤크마티아르의 군대와 아브드 알 라시드 도스탐 장군의 군대가 연합해 수도 카불을 공격했다. 이 공격으로 카불은 잿더미가 되었고 카불 인구 200만 명 중 150만 명이 이 지역을 탈출했으며 카불 바깥지역에는 중앙정부의 통치력이 미치지 않았다. 1994년 3월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국제연합(United Nation) 사무총장이 튀니지의 전(前)외무장관 마흐무드 메스티리를 대표로 한 평화사절단을 아프가니스탄에 보내는 등 평화정착에 노력했으나 성과는 별반 없었다. 라바니 대통령의 임기가 1994년 6월로 끝이 났지만 그는 권좌를 내놓지 않았고 아프가니스탄 대법원은 그의 임기를 6개월 연장했다. 아프가니스탄 사태는 국제적으로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시아파 교도들과 이란에 있는 180만 명의 난민을 이유로 이란은 아프가니스탄 사태에 일정 부분 관여했으며,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란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걸 견제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내의 이란 견제세력을 지원했다. 파키스탄에는 150만 명의 아프가니스탄 난민이 있을 뿐만 아니라 파키스탄이 파슈툰족의 영원한 고향이었기 때문에 아프가니스탄 사태에서 더욱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밖의 나라들은 아프가니스탄 군벌 세력이 양성하는 테러리스트 및 아프가니스탄에서 상당량 생산·거래되는 마약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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