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군림팬픽]기다리기 귀찮아서 썼다 매종도 나귀타는 이야기 - 1편

점소이甲(122.43) 2019.07.18 00:37:05
조회 1351 추천 28 댓글 9

기다리기 귀찮아서 써버렸다.


처음엔 그냥 웃자고 패러디로 썼는데 쓰다보니 진지가 과해서 노잼이 되었다.

무갤동도들이 너른 마음으로 해량해 주시기를 바란다.

재미없으면 욕설을 던지고 재미있으면 백원을 던지라.




================================================================================






- 제 999장 검선승려(劍仙乘驢)



차창!

우윳빛 검광이 맑은 하늘을 가릴 듯 찬연히 피어오르더니 한 가닥 신음이 터져 나왔다.


“으음.....”



중인들이 깜짝 놀라 바라보니 진산월과 석동의 대결은 이미 끝나 있었다.

진산월의 백의는 석동이 날린 대라장천의 검기에 스쳐 곳곳에 상처가 나고 가느다란 핏줄기 몇이 내비쳤으나 낯빛은 멀쩡했고 별다른 내상도 없어 보였다.

반면 석동은 그 보기 좋던 허연 수염과 대춧빛 얼굴은 어디 간 데 없고 창백한 얼굴에 수염은 토해낸 선혈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한편에서는 조익현이 야율척의 일장을 맞고 왼쪽 갈비뼈가 부러진 채 주저앉아 신음하고 있었다.

왼손으로 옆구리를 움켜쥔 조익현의 얼굴은 경악으로 잔뜩 일그러져, 우물처럼 깊던 눈에서는 절망과 고통만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내.... 내 대라삼검을 단 일초에 완파하다니......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로구나”

"훌륭하구려, 진 장문인. 확실히 강호는 우리 늙은이들의 것이 아니라......"



그때였다.

히히힝!

어디선가 말울음 소리와 함께 언덕너머에 한 인영이 나타났다.

그 인영은 비루먹어 금시라도 쓰러질 듯한 당나귀를 탄 노인이었다.

헌데 노인이 가볍게 당나귀의 배를 한번 걷어찬 순간 당나귀는 어느새 눈 깜박할 새 백 여장을 달려와 그들의 지척에 당도해 있는 것이 아닌가?

실로 어느 누구도 이처럼 늙고 초라한 당나귀가 이와 같이 빠르게 달릴 수 있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당나귀는 늙고 초라했지만 그 위에 올라탄 노인은 그렇지 않았다.

눈썹과 머리가 모두 눈처럼 희게 세었으나 키가 크고 팔은 곧았으며 허리는 꼿꼿했다.

눈은 고적하고 다른 세상을 보는 듯했다.

마치 신선을 연상케 하는 풍모였다.


노인은 당나귀에서 천천히 내려 조익현의 앞에 우뚝 섰다.

그 노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조익현의 얼굴이 크게 변하였다. 그는 움직이지 않는 몸을 간신히 세워, 평소의 그답지 않게 몹시 정중한 자세로 예를 올리는 것이었다.


“조익현이 사부님을 뵈옵니다.”


노인은 무덤덤한 얼굴로 그를 한번 힐끗 쳐다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쓸모없는 녀석이구나......”


그는 고개를 돌려 다시 석동을 바라보았다.

"......더욱 한심한 자로다. 내가 남긴 셋을 다 얻어 대성하지는 못할망정 항렬을 따지면 여덟 배분이나 차이가 나는 어린아이 하나도 당해내지를 못하다니..."


중인들의 대부분은 대체 무슨 소린지 몰라 어리둥절하였으나 몇몇 사람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노인을 멍청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들 사이를 가르고 한 사람이 천천히 노인에게 다가왔다.

그는 노인을 똑바로 바라보며 정중히 포권을 하는 것이었다.


“종남파 이십일대 장문인 진산월이 삼가 사조를 뵙니다.”

그는 바로 진산월이었다.

노인은 진산월을 보자 슬그머니 웃더니 물었다.


“내가 누군지 알겠느냐?”

"감히 말씀드립니다만, 태을검선 사조님이 아니신지 짐작할 뿐입니다."


그 한 마디에 중인들 사이에서 큰 충격이 흐르고 지나갔다.


- 태을검선!!!


태을검선 매종도.

종남 역사상 최고의 고수이자 고금제일고수!

백 년간 무림을 쥐고 흔들었던 절대의 초식 대라삼검의 창시자!

이미 이백년 전의 인물로, 분명 화산의 태을선거에서 무덤 속의 백골이 되어 있어야 할 매종도가 중추절에 나귀를 타고 이 곳에 나타난 것이다.


“한눈에 나를 알아보다니, 참으로 총명한 아이로구나”

"8대의 배분과 대라삼검을 남긴 사람이 자신이라는 말씀을 듣고 짐작하지 못한다면 본파의 장문으로서 자격이 없을 것입니다."

"겸손이 지나치구나. 굳이 말하자면 너에게는 8대조가 되는 셈이겠다만, 나의 대라삼검을 그렇게 쉽게 깨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운이 좋았던 것 뿐입니다."



두 사람은 다른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양 서로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한 번의 인사 이후 진산월은 평소처럼 허리를 꼿꼿하게 편 채였다.

십이대 제자 매종도와 이십일대 장문인 진산월.

사실상 배분을 논하기도 힘든 9대조에 대한 진산월의 태도는 실로 정중하였으나 음성에는 은근한 냉기가 떠돌고 있었다.



“제자는 사조에게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매종도의 얼굴은 아까 조익현과 석동을 바라볼 때와는 달리 마치 손자를 보는 듯한 자애에 가득차 있었다.


“무엇이든 말해 보거라.”

“사조께서 남기신 대라삼검으로 인하여 지난 이백년 간 강호는 큰 혼란에 수 차례나 빠졌습니다. 사조께서 본파에서 자취를 감추신 후부터 본파는 이백년 간 계속 내리막을 걸었고, 거의 모든 무공이 사라져 수년 전에는 본산을 뺏기는 수모를 겪어야 했었지요. 어떤 연유로 그리하신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매종도는 변함없이 미소가 그득한 얼굴로 말했다.


“너는 내가 왜 이백년 전 실종되었는지가 궁금한 것이로구나? 그 당시 나는 이미 천하제일고수로 성가를 드높이고 있었다. 그리고 중년에 이르러 나의 심득을 삼초의 검법으로 정립하게 되었지. 그러나 그 검법을 사용해볼 대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나를 일러 검선이라 했던가......그래, 저 화산에 홀로 선 선인봉처럼 나는 외롭고도 고고한 존재였지. 그래서 나는 나의 대라삼검과 겨루어 볼 만한 상대를 만나고 싶었다. 모든 것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

진산월은 묵묵히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사실 내가 가장 염두에 두었던 것은 동문 사제인 정립병이었다. 정립병은 유일하게 평생에 네 맞수가 될 만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의 검은 날카로울지언정 도가 부족하고 치열함이 빠져 있었다.

그러기에 나는 사매 조심향에게 편지를 내어 그녀를 정립병을 끌어내기 위한 미끼로 활용하였지. 덕분에 그는 혈삼객이라는 외호로 활동하면서 높은 검경을 얻었


으나 이후 갑자기 실종되어 나를 놀라게 하였다."


"자신의 검도를 시험하고자 문도간의 우애를 어지럽히고 본파를 소란스럽게 하셨단 말씀입니까?"

진산월의 목소리에 평소에 듣지 못하던 강한 한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검에 평생을 바친 자로서 자신의 검이 벗할 곳을 찾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 이후 나를 찾아 밖으로 헤매던 우 사형이 나의 종적에 가깝게 달하였기에 조 사매를 통해 그에게 암수를 쓸 수밖에 없었다. 안타까운 일이었지."

"......"

진산월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으나 몇몇 사람들이 가만히 몸서리를 치기 시작하였다. 칠음진기가 그의 심상에 맞추어 주변의 공간을 얼리기 시작한 것이 틀림없었다.


"사형제들을 포기한 나는 화산에 은거한 후 몇몇을 거두어 제자로 두게 되었다. 이백년 간 많은 제자를 두었지만 하나같이 실망스러웠다. 사매였던 조심향의 집안 아이들이 그나마 재주가 있어 몇몇을 거두었으나......한 녀석은 뛰쳐나가 화산에 적을 두고 어리석은 꿈을 꾸더니 그대로 스러졌고, 그나마 진경이 있었던 것은 저 조익현 뿐이었지만...대라삼검을 익힐 재주는 있을지언정 그것을 깰 재주는 가지지 못하였지."

"조익현에게 취와미인상을 통해 대라삼검을 전한 것은 사조셨군요."

"그렇다. 그리고 취와미인상을 강호의 귀재에게 보임으로써 대라삼검을 얻을 만한 인재를 찾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설마 저 아이가 서장까지 손을 뻗칠 줄은 생각도 못하였지만 말이다."


매종도는 힐끗 조익현을 쳐다보았다. 조익현은 분노와 여러 가지 감정, 지난 백년 간의 회한이 겹쳐 필설로 형용하기 힘든 표정을 보이고 있었다.


"결국 저 석동이란 아이나, 그 제자인 모용단죽도 대라삼검을 얻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만큼의 진경에는 다가가지 못했지. 익현은 세 초식을 다 익히는 데 결국 일백 년이 걸렸고, 석동은 겨우 한 초식으로 만족할 뿐이었다. 두 사람은 높은 검의 경지로 가기보다 서로 다툴 뿐이었지. 하물며 내 일에 협조하는 대가로 대라삼검의 일부를 얻어간 조심향은 더욱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육합귀진신공을 완성하지 못하였다고 내게 보다 쉽게 익힐 수 있는 새로운 신공을 달라고 보챘으니......쯧!"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천양신공입니까?"


"그렇다. 본파의 구양신공에서 양강(陽岡)한 부분을 차지하는 구결을 극도로 확대하여 무상한 위력을 보일 수 있게 한 편법이지. 사실 그녀가 이를 오래 익히면 천양신공의 양강한 기운이 태음신맥의 음기를 자극하여 어느 쪽이건 폭주하여 견디기 힘들게 된다. 이미 본파의 신공에 정심하여 그런 부분을 모를 리가 없었건만...그녀는 욕심에 눈이 멀어 자신의 명을 단축함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까지 대가 끊어지게 만들었지."

그는 잠시 석동과 멀찍이 서 있던 모용단죽을 바라보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이백 년의 기다림은 결코 헛되지 않은 것 같구나. 왜냐 하면 하나는 내가 그간 온 천하를 뒤져 나의 대라삼검을 능가하는 새로운 무공을 찾아낼 수 있었다는 점이며, 또 하나는 본파의 무공을 대성하여 나의 대라삼검을 쉽게 꺾은 사손과......"

오래도록 진산월을 바라보던 눈이 야율척으로 향하였다.

"단 일장으로 대라삼검의 무한한 변화를 제압해낸 천하의 기재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야율척의 눈은 평소의 민활함이 없이 굳은 채로 매종도를 응시하고 있었다.


매종도는 다시 진산월에게로 눈을 돌렸다.


"너를 보는 나의 마음은 매우 기꺼웁다. 나는 너의 검을 보았다만, 본파의 오대 장문인이셨던 곽일산 사조께서 생전에 말씀하셨던 유운검법의 무궁한 변화를 터득한 듯하구나. 곽일산 사조는 나도 존경하여 마지 않는 분이니, 그 분의 검이 창천하에 새롭게 빛을 보는 것은 흥겨운 일이다."

진산월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도 굳어 있었다. 아니, 평소에 볼 수 없었던 맹렬한 투지를 담은 신광이 그의 눈빛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곽일산 사조만이 아닙니다."

"음......?"


매종도의 얼굴에 처음으로 흔들림이 생겼다.

진산월의 손이 허리춤에 걸린 검에 가 있음을 본 것이다.

햇살을 받아 빛나는 그 검은 이백 년 전 그의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었다.


"그렇군. 그것은 정립병의 검이로구나. 그의 진전을 얻었느냐?"

"그의 진전이 아닌 본파의 진전입니다. 정 사조에게서 제가 얻은 것은 한 사람을 넘기 위한 수십 년의 고련이자 한이고, 검도의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한 노력과 마음가짐이었습니다. 저의 유운검결은 곽일산 사조가 시작하셨고 정립병 사조가 다듬은 것이지요. 저는 거기에 약간 손을 얹은 것에 불과합니다."

"겸손이 지나치구나. 무슨 일이건 마무리가 가장 중요한 법이지."

"그렇지요. 그러기에 저도 이제 마무리를 지으려 합니다."

"...네가? 어떤 마무리를 말이냐?"

매종도의 얼굴에 궁금함이 그득했다. 그는 즐거워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높은 무도를 지행하는 것은 무인으로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조는 개인의 무도를 위하여 본파의 우애 깊던 사형제를 갈라 놓고 본파의 무공을 절전하게 하였으며, 많은 제자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또한 이백년 간 단지 몇 개의 검초 때문에 중원과 서장의 많은 강호인들이 서로 갈라져 싸웠고 구대문파가 질시하게 되었으니 강호에는 협이 사라져 그저 약육강식과 혼란함에 사로잡혔습니다."

"무도에 몸을 바친 강호인답지 않은 말을 하는구나. 그래서 어찌하겠다는 것이냐?"


진산월의 고적한 눈은 어느 때보다 빛났고 목소리는 단호하였다.

"본파의 장문인으로서 본파의 문호를 정리하고 질서를 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이어 그의 시선은 한 쪽에 조용히 시립해 있던 동중산에게로 향하였다.

"중산!!"

"네, 장문인."

"본파에 속한 제자로서 문도간의 화합을 깨고 분란을 일으킨 자는 어찌 처분해야 하느냐?"

"모든 직위를 빼앗고 10년간 면벽에 처합니다."

"본파의 제자에 대한 살상을 조장한 자는 어찌하느냐?"

"무공을 폐하고 감금하여 다시 세상에 나오게 못하게 엄중히 감시합다."

"저 자는 비록 사조이나 자신의 사익을 탐하고 제자들의 살해를 조장하였으며 본파의 수많은 무공을 절전하게 하여 십 대에 걸쳐 피해를 입혔다. 치죄할 방법을 말하여라."

"네, 무공을 폐한 후 본파 심처에 감금한 후 제자들에게 알려 엄중한 본보기를 세워야 할 일로 압니다."

".....만약에 그 제자가 말을 듣지 않는다면?"

"............"

"......말하거라."

"............장문인의 영을 거역함이니 그 죄가 배에 달하여 목숨을 거두어 문파의 법도를 세우는 것이 마땅합니다."

"...장문인으로서 내 직접 시행하리라."



그의 눈이 다시 매종도를 향하였다. 그는 여전히 미소를 잃고 있지 않았으나 그 눈빛은 약간 흔들리고 있었다.

"내게 적지 않은 죄가 있을지는 모르나 이는 무도에 몸을 담은 자로서 부끄럽지 않은 일이다. 본파를 천하제일문파로 올려 놓은 것에는 분명 나의 공이 있다. 그런데도 네가 감히 나를 치죄하려 드는구나."

"사조께서 하신 일 때문에 지난 이백 년간 본파의 많은 제자들과 많은 강호인들이 죽거나 다치고, 많은 한을 낳았습니다. 어떤 장문인은 겨울날 헤매다 얼어죽기도 하고, 또 어떤 장문인은 제자를 위한 영약을 구하다 절벽에서 떨어져 죽기도 했지요. 사조의 검초 때문에 많은 이들이 한을 품고 서로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강호에 떳떳하게 서야 할 정파를 맡고 있는 입장에서 용납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요."

"검을 차고 강호로 나선 이상 언제 이슬처럼 흩어질지 모르는 것이 강호인의 인생이거들...이백 오십년 넘게 살아온 네게 그 십분의 일도 살지 못한 네가 훈계를 하려 하는구나, 허허헛. 그러나 좋다. 나는 나의 역작인 대라삼검을 넘는 무공을 찾아 겨루고자 이백년 간 강호를 헤매이며 무공과 인재를 찾았느니라. 그 결실은 대라삼검을 넘어선 자에게 처음 사용하고자 하였는데, 상대가 설마 본파의 제자가 될 줄은 생각하지 못하였구나."


매종도는 천천히 나귀 안장에 걸려 있던 한 자루의 검을 꺼내었다. 태을선거에서 진산월이 그의 검을 거두지 못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본인이 갖고 있는데 누가 이를 챙길 수 있었을까?


진산월이 매종도에게 다가가려 할 때였다.


"비키시오, 진 장문인."

아율척의 목소리였다. 그는 평소의 능글맞음과는 거리가 먼 모습으로 진산월의 앞을 막고 섰다.

"오늘 우리의 대결을 정리하기 전, 모든 일의 원흉인 저 자만큼은 내 손으로 제거해야겠소. 모두가 자유로운 강호무림을 위해서 말이오."


옛적 일로 강호무림이 정체되는 것을 싫어하던 그였다.

백 년 전도 아닌 이백년 전의 천하제일고수가 이백 년의 무림을 좌지우지한 것으로 모자라 중요한 대결의 날에 나타나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것은 광대한 자존심을 가진 그에게 견디기 힘든 일일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진산월의 목소리 또한 단호했다.

"당신의 생각을 모르는 바는 아니오. 그러나 이는 문파의 일이오. 문도의 잘못을 정리하여 강호의 도리를 바로 세우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문파를 맡은 장문인인 내가 직접 해야 할 일이오."

"하지만......!"

"이는 본파의 문호를 정리하는 일이니 아무리 야율 대협이라도 끼어들 수 없소."

"............자신은 있는 거요?"

"걱정 마시오. 당신과의 약속은 잊지 않고 있소."

"......!"


한참 동안 진산월을 쳐다보던 야율척은 피식 웃었다. 형수 오가장에서의 첫 만남에서 교리가 보여 주던 웃음이었다.

"알겠소. 장문인을 믿도록 하지. 그러나 잊지 마시게나. 서장과 중원의 싸움은 당신과 내가 없이는 안 된다는 걸 말이오."


진산월도 마주보고 잠시 피식 웃은 다음에야 매종도를 향해 다가섰다.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던 매종도는 태연했다.

"결국 너와 검을 겨루게 되는구나. 이백년 전 어느날 밤 종남산에서 정립병과 겨루던 생각이 나는군. 그 때 이후로 이렇게 피가 끓어본 적이 없었다. 참으로 간만에 내 상대가 될 만한 무인이 강호에 나타났으니 지난 이백년의 노력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로구나. 하물며 그것이 본파의 제자라니 이렇게 흥겨울 수가 없다."

진산월은 조용히 걸어 그의 정면을 향하여 섰다.

"...나는 피를 끓는 즐거움이 아닌 문호를 바로 세우고 제자들의 고통에 대한 대가를 받으려는 것 뿐입니다. 사조께서는 준비하십시오."

"......"


이후는 두 사람 모두 말이 없었다. 한 쪽은 검을 검집째 손에 든 채로, 한 쪽은 허리에 찬 채로 선 자세였다.

두 사람이 마주보고 선 거리는 십 장. 그러나 주변 백 장은 이미 둘이 뿜어내는 무형지기로 은은한 아지랑이와 소용돌이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백 장 주변에 서 있던 중인들 중에도 견지 못하고 더욱 물러서는 사람이 많았다.

그 기세의 여파는 실로 무서워, 멀리 종남산에 머물러 있던 전풍개와 전흠 조손이 현청건강기를 바탕으로 한 성라검법을 연무하던 도중에 칠공에서 피를 흘리고 쓰러질 정도였다.



모용단죽은 생각했다.

`단 한 초......`

두 사람의 승부는 단 한 초에 판가름날 터였다.

두 사람 모두가 평생의 절학인 단 한 초식에 모든 것을 걸 터. 두 번의 검은 없을 일이었다.

`그러나 과연, 진산월이 매종도의 검을 꺾을 수 있을까......?`

진산월은 물론 당금 천하제일고수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상대는 당세 천하제일을 넘어 고금제일의 무공을 자랑하던 매종도였다.

모용단죽의 가슴은 불안함으로 가득 찼고, 허공에 침묵만이 가득했다.

두 사람을 지켜보는 중인들의 가슴은 쇠망치를 달아놓은 듯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문득 진산월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맑은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매종도는 검을 앞으로 쑤욱 내밀었다.

버──어──언──쩍!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세상은 온통 빛의 물결 속으로 빠져든 듯 했다.

그 빛은 너무도 광대하고 강렬하여 중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아 버렸다.

허나 모용단죽은 필사적으로 눈을 뜨며 속으로 부르짖었다.


(이것은 전설의 태양광검이다!)


태양광검!

강호의 수천년 역사, 단 한번 무림에 나타난 적이 있다는 전설 속의 무공이었다.

눈부시게 찬란한 태양이 피어나듯 온 누리를 비추는 순간, 상대는 영문도 모르고 쓰러진다는 신화 속의 검!

범인이라 불리던 백년제일검사 남궁산이 단 한 번 사용했다는 전설의 태양광검!

그것이 바로 매종도에 의해 다시 나타날 줄이야......

모용단죽의 수려한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아...... 아무것도 태양광검을 막을 수 없다......!)


그 순간 모용단죽은 거의 눈을 뜰 수도 없는 빛의 폭풍 속에서 진산월이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았다.

이상하게도 용영검 또한 움직이지 않았다.

허나 다음 순간 모용단죽의 눈에 천지사방이 뿌연 구름이 이는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그토록 찬란하게 세상을 밝히던 빛의 물결이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다.

중인들은 영문도 모르게 허겁지겁 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조금 전의 자세 그대로 서 있었고, 용영검도 진산월의 허리에 자리한 검집에 꽂힌 채였다.

누구도 무엇이 어떻게 된 것인지를 알지 못했다.

그때 문득 매종도의 입에서 미소가 떠올랐다.


“너는 정말 뛰어난 아이다. 네가 설마 심검의 경지에 올랐을 줄은 몰랐구나.”


심검이란 말에 중인들은 눈을 부릅떴다.

진산월은 담담하게 답하고 있었다.


"구름은 곧 마음이니, 유운검의 움직임은 마음에 따릅니다. 구름은 천지육합 어디나 가리지 않고 흐르니 제 마음에 따라 검이 가는 것 뿐입니다."


문득 매종도의 이마에서 붉은 선혈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하나 그 입가에는 만족한 듯한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이백년......이백년에 걸쳐서 정립병이 나를 꺾은 셈인가......나..... 나는 이제서야 외롭지 않구나.......!”

"......"


털썩!

그의 몸은 마치 배례를 올리듯 바닥에 고꾸라졌다.

"......대종남...십이대 제자 매종도가......삼가 장문인께 죄를 청...하오니......이 죄인을 베어 문호를 바로 세우시고......부디 천하에 종남의 이름을 드.....높...이......"

그의 몸은 잠시 떨더니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 다음편에 꼐속

추천 비추천

28

고정닉 3

2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비난 여론에도 뻔뻔하게 잘 살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6/03 - -
공지 한국 무협 작가 50인의 신무협 111선. - by 아해 [152] Dic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7.28 265224 148
공지 무협 갤러리 이용 안내 [99] 운영자 05.05.30 66041 20
429850 회귀수선전 극초반인데 재밌네 ㅇㅇ(46.165) 03:50 19 0
429849 쟁선계 거의 다 봐가는데...세계관 동일한거 있음? ㅇㅇ(221.164) 06.08 25 0
429848 용비불패 대마교전을 고수에서 풀어낸게 너무 아쉬운듯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8 33 1
429847 학사신공 보는 중인데 이제 대진 넘어갔다. [1] 무갤러(117.55) 06.08 33 0
429846 3D 범인수선전 금동 이렇게 표현했네 무갤러(121.160) 06.08 37 0
429845 장영훈 작가님 절대회귀 스토리 얼마나진행된걸까요? 무갤러(112.170) 06.08 28 0
429844 나우는 적패거리가 너무 약한게 아쉽더라 무갤러(211.222) 06.08 35 0
429843 화경 현경 이런건 정확히 어떤의미임? 무갤러(121.159) 06.08 42 0
429842 여기가 틀딱도서관인가요? 무갤러(211.234) 06.08 32 2
429840 천산기 주인공 성격은 그다지 매력적이진 않네 ㅇㅇ(84.16) 06.08 30 0
429838 무협의 협이 짤에서 말하는 거라면 [6] ㅇㅇ(183.109) 06.08 167 0
429837 황용이 무공에 집착했으면 [2] 무갤러(61.98) 06.08 67 0
429836 김용 딱 두작품 읽어봤는데 머가 명작이냐? [9] ㅇㅇ(106.101) 06.07 127 0
429835 사도련이 사파모임이잖음 ㅇㅇ(118.235) 06.07 44 0
429833 어렸을때 본 무협지 제목찾습니다 ㅠㅠ [4] 무갤러(112.162) 06.07 100 0
429832 김용 소설 중에 껄리는 밀프 많이 나오는 소설 머임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7 83 1
429831 열혈강호에 자하신공은 [3] 무갤러(118.235) 06.07 71 0
429830 ~~당 = 당주, ~~문 = 문주, ~~가 = 가주, ~~방 = 방주 [10] 무갤러(118.235) 06.07 115 0
429829 '구결'이 뭐냐 [8]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7 127 1
429828 검기 검강.. 창은 뭐라고하냐 [2] ㅇㅇ(118.235) 06.07 94 0
429827 '일초 반식'이 뭐냐 [6]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7 96 0
429826 배분이 한 배(輩) 뒤진다는게 무슨 말이냐 [1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7 121 0
429825 낙향문사전에서 학사검전으로 어떻게 세계관이 이어지는거야?? 무갤러(106.101) 06.07 52 0
429824 혹시 엄마나 아빠의 제자를 부르는 호칭이 따로 있어? [2] 무갤러(120.142) 06.07 67 0
429823 군림천하 옛날에 개재밌었는데 에효.. (106.102) 06.07 77 0
429822 혹시 진주언가가 어느정도 비중있게 나오는 소설 없음? [6] ㅇㅇ(118.235) 06.07 95 0
429821 남자가 성적으로 흥분하면 몸에서 냄새가 분비되는가? [1] 책사풍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7 97 0
429820 시간이 엇갈리는 로맨스 무협 아는 사람? [1] 무갤러(124.53) 06.07 53 0
429819 대몽주 통령계약 거북이 [1] ㅇㅇ(185.80) 06.07 42 0
429818 황용을 프사로했다가 여사친이랑 멀어짐.. [3] ㅇㅅㅇ(118.103) 06.07 111 0
429816 악인지로 읽는데 [1] ㅇㅇ(42.82) 06.07 61 0
429815 학사신공 20권에서 하차햇는데 하차한 이유.txt [1] 무갤러(180.229) 06.07 96 0
429814 김용의 최고 능력치는 [1] 무갤러(175.214) 06.07 81 2
429813 북검전기 스포부탁드림 무갤러(112.212) 06.06 99 0
429812 묵향 1부는 정통무협 취급임? [2] ㅇㅇ(118.235) 06.06 128 0
429811 옛날 용대운작품이 취향인데 [3] ㅇㅇ(42.82) 06.06 127 0
429809 나이먹고 묵향 다시 봐도 재미 없을까? [5] ㅇㅇ(183.100) 06.06 123 0
429807 주선 좋아하던 여자가 딴 남자랑 밀회하네 ㅇㅇ(2.58) 06.06 52 0
429806 어검술 쓸수있으면 그냥 암기쓰는게 낫지 [4] ㅇㅇ(211.36) 06.06 114 0
429805 신법의 묘리가 보통 머머있지 무갤러(211.223) 06.05 48 0
429804 군협지 주인공 정이 안붙네 [2] ㅇㅇ(118.235) 06.05 83 0
429803 화산파 오의 ㅇㅇ(222.117) 06.05 110 1
429802 책사풍후 만화 "책사풍후" 책사풍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5 82 0
429801 자결 초식이 뭐냐 [7]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5 133 0
429800 어검비행에 대해 문득 드는 생각이 [1] ㅇㅇ(115.138) 06.05 79 0
429798 무협 꼴리는 제목. 하나만 뽑아봐 무갤러(124.63) 06.05 78 0
429797 솔직히 요즘 무협 재능없어도 화경은 기본아님? [1] ㅇㅇ(59.9) 06.05 101 2
429796 요즘 한국 무협들 웬만한건 다읽었는데 ㄹㅈㄷ 명작 추천좀 [5] 황금돼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5 156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