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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기지촌, 일제 성노예제 이식한 국가 폭력의 기억

미군위안부(61.34) 2019.11.28 17:3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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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덕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
 

이 책은 미군 위안부, 속칭 "양공주"로서 살아온 김정자 선생이 자신이 인신매매된 뒤로 떠돌아다닌 전국 곳곳의 미군 기지촌을 활동가들과 함께 다시 찾아가서 당시 상황을 설명한 증언록이다. 그녀가 친구에게 속아 납치되고, 포주와 깡패들에게 구타당한 장소들을 촬영한 사진과 함께 당시의 상황이 설명되는 대목은 너무나도 무겁고, 김정자 선생을 비롯한 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이 한국 시민 사이에서 공유되지 못하는 현실은 독자에게 고립감과 분노를 준다.

한국 시민은 한국·한민족을 괴롭힌 외부 집단을 비난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한국 정부가 자기 나라의 힘없는 국민을 괴롭힌 사실을 직시하는 동시에, 정부의 그러한 행동을 모른 척 하거나 암묵적으로 지지해온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는 데는 익숙하지 않다. 다른 나라에서도 다수의 시민은 자기 정부가 저지른 국가범죄에 침묵하지만, 그래도 "양심적 시민"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어서 목숨을 걸고 자기 사회의 감추어진 역사를 밝혀내 왔다. 예를 들어 자신이 일본군 성노예였음을 최초로 증언한 배봉기 선생의 경우,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를 입은 오키나와 시민의 연대의식에 힘입어 삶을 이어왔고, 가와다 후미코 선생과 같은 일본 언론인들을 통해 본격적으로 그 존재가 알려졌다. 

<한겨레> 2015년 8월 7일자 보도 ‘우리가 잊어버린 최초의 위안부 증언자…그 이름, 배봉기’에도 언급되어 있듯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식모로 팔려간 뒤 일본 제국 곳곳을 떠돌던 배봉기 선생은 29살 되던 1943년에 위안부 모집 업자에게 속아서 오키나와까지 오게 된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배봉기 선생이 사기를 당해 일본군 성노예가 된 것은, 이번에 소개할 책의 증언자인 김정자 선생의 삶과도 유사하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의붓아버지·형제에게 성폭행당한 뒤 친구에게 속아 파주 연풍리 용주골로 인신매매된 그는, 자신과 같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미군 위안부가 된 여성들이 많은데도 한국민은 자신들을 비난하기만 한다고 하소연한다.

"어, 그 양갈보들 죽었대, 이렇게 알고 있잖아? 어, 이 사람들이 그 생활에서 이렇게 힘이 들어서 자살을 했구나...... 또 내가 악착같이 살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몸에 병이 들어서 죽는 언니도 있어. 난 그런 것들을 반의반만 국민들이 알아줘도 참 감사할 것 같애. 난, 우리한테 욕했던 사람들 몇 명은 어머! 이랬었구나! 이렇게. 우리가 지금까지 책도 안 내고, 아무 것도 안 냈어. 그러면 이 사람들의 머리에 스쳐가는 건, 미군부대 앞에서 양색시한 여자들, 그렇게 인정하고 있을 거야. 그거 뭐, 부모 속 썩이고, 뭐 양갈보로 나왔는데,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야. 그게 아니거든. 가난해서 나왔지. 그래, 부모 동기간 먹여 살리려고 나온 사람도 있고, 팔려온 사람도 있고, 한국사람한테 버림을 받아서 나온 사람도 있고, 신랑하고 잘 사는데 폭행으로 못 있어서 나온 사람도 있고, 많어. 다 (양)색시라고 아유, 저 여자 못된...... 아유, 저거? 바람이 나서 나왔어? 저거? 아이고...... 그럼 그렇지 뭐, 이렇게 인정하지 말아달라는 거지. 그럼 돌아가신 언니들이 복통(통곡)을 할 거야. 돌아가신 사람들, 미군 손에 죽은 사람들도 있고, 그 사람 얼마나 미군 손에 안 죽으려고 발버둥을 쳤을 거야?" (307-308쪽)

김정자 선생의 이러한 증언을 기록한 것은 기지촌 여성들의 고통을 사회에 알리고 그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조직된 새움터라는 모임이다. 이처럼 주한미군이 안정적으로 한국에 주둔할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운영 관리한 미군 위안부에 대해, 한국의 뜻있는 시민들도 결코 무관심하지는 않았다. 나아가, 일본군 성노예 제도를 해방 후의 한국군에 도입한 한국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김귀옥・강정숙 선생 등에 의한 선구적인 연구가 있어왔다. 하지만 한국군 위안부와 미군 위안부 문제는 여전히 한국 사회 일반에 잘 알려져 있지 않고,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베트남 국민 학살 문제와 마찬가지로 한국 군부는 한국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김정자 선생의 증언에서 보듯이, 미군 위안부 희생자들에 대해서는 한국 시민 일반에서도 "양색시"니 "양갈보"라는 식의 차별적 인식이 여전히 널리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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