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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돌아와, 마주하다 - 2 - (1)

노답인생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2.08.14 19:40:11
조회 35 추천 2 댓글 0

 치사토에게 가족이란 말은 있어야 할 조각이 사라진 퍼즐과 같았다.

 부친은 자신이 걸음마를 떼고 돌아다니기도 전에 죽어, 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사진을 통해 본 얼굴과 이름 뿐.
 아는 것이 너무나 없어 그에게 그리움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모친은 그렇게 충실한 어머니가 아니었던지, 어린 자신을 내버려두고 재가하여 1년에 한번 얼굴을 비출까 말까였다.
 그녀에 관한 기억은 조부모에게 양육비와 생활비를 건네주고 돌아가는 모습뿐.
 모친에 관한 걸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고, 찾으려들 필요도 이유도 찾지 못한 채. 지금까지 연락조차 하지 않으며 살고 있다.
 차라리 눈앞에서 안 보이는 편이 낫다 생각해, 의절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고등학교에 올라가기 직전, 조부가 지병으로 타계했다.
 무척이나 자상한 할아버지였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숨을 거두었을 땐 너무나 슬퍼서 온종일 소리내어 울었다.
 전차도부에 들어간 건 이때였다.
 슬픔을 잊으려, 무언가 몰두할 것을 찾으려 전차도부를 선택했다.

 치사토에게 가족은 오직, 할머니만이 남게 되었다.

 고교 졸업을 앞두고, 대학 진학과 관련해 크게 싸워 본가로부터 떨어져 나온 치사토에게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은 대학 4학년 시절의 이야기.

 하던 일을 모두 내팽개치고 부랴부랴 병원에 달려갔을 때. 할머니는 이미 고비를 넘나들고 있었다.
 그 병상 머리맡에서 밤을 새 기도했다.

 그날 크게 싸웠던 일이, 할머니와의 마지막 대화가 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기도가 조금은 통했던 것일까?
 혼수상태에 빠져있던 할머니는 새벽 중 눈을 떴다.
 그리고 수년 만에 돌아온 자신에게 희미한 목소리로 말했다.

 「옛 일은 모두 잊고, 굳세게 살아가거라.」

 이것이 마지막 말이었다.

 할머니의 심박수가 멎음을 알리는 소리에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처럼 소리 높여 울지 않았다.
 이를 꽉 물고 소리죽여 흐느꼈다.

 굳세게 살아가라는 것이 마지막 말이었으니, 그걸 지키고자 했다.

 묘비 앞에 가만히 선 치사토의 기억 속엔 꺼져가는 목소리가 남긴 말은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있었다.

 할머니가 말한 과거는 자연스레 이전의 일까지 포함하는 것이리라.
 고교시절의 기억은 엔도 치사토에게 그리움 반, 아픔 반이었지만 마지막에는 슬픔으로 뒤덮여있었기에, 그리움까지 함께 잊어버리고 살아왔다.
 전차도 역시 해당하는 얘기여서 그에 대한 모든 관심을 끊어버렸다.

 ─그 말에 따라 살아왔다.
 
 “할머니, 간만이에요.”

 그렇게 세월을 흘러, 치사토는 할머니의 묘 앞에 섰다.

 하얀 티셔츠 위에 후드점퍼, 아래에는 청바지와 운동화를 신은 채 작은 짐 가방을 옆으로 맨 모습.

 가벼운 배낭 여행이라도 떠나는 것 같은 차림이다.
 만약 할머니가 자신의 꼴을 보았다면 한 숨 쉬며 혀를 찼으리라.
 여성스러움이나 조신함과는, 지구와 화성의 거리만큼 떨어져있는 꼴이었으니까.

 「하는 짓이 선머슴이나 마찬가지니, 누가 널 데려가려하겠느냐?」

 라고, 어린 시절의 자신을 보며 한 숨 섞인 핀잔을 늘어놓곤 하셨다.
 그때는 잔소리처럼 여겨 귓등으로 흘렸던 목소리가 그리워질 줄이야.
 
 “오아라이 학원 전차도부가 전국대회 우승을 했데요.”
 
 그리고 묘비를 바라보며 치사토는 말하였다.
 
 “제 손으로 문을 닫았던 전차도부 말이에요.”

 잊어버리려하니 처음엔 더욱 괴로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니 괴로움은 모두 사라졌다.
 할머니의 유언대로, 옛날 일을 완전히 잊어버린 채 살아왔다.
 잊어버리니 괴로움도 슬픔도 모두 사라져서, 고통스러워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옛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오고 기억 속의 전차가 맹렬히 포화를 내뿜는 걸 보았을 때

 “쭉 잊어버린 채 살려했는데, 무리였나 봐요.”

 깊은 곳에 묻어버렸던 옛 기억이 다시금 머리를 들이 밀어왔다.
 그리고 거세게 치사토를 흔들어왔다.
 자신은 이곳에 있노라고, 더 이상 도망치지 말고 마주하라고 말하는 것처럼.

 치사토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발걸음에 끝에 이르러 무엇을 보든, 어떤 생각이 들든 그것과 마주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오아라이에 다녀올게요.”

 긴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을 할머니의 묘비 앞에서 털어놓는다.

 묻어두었던 모든 기억이 있는 그곳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마지막으로 남겼던 당부의 말을 어기는 한이 있더라도, 들이 밀어온 옛 기억과 마주하기 위해 치사토는 발걸음을 향했다.


 그렇게 이곳, 오아라이에 왔다.
 교통편을 타고, 연락선을 거쳐 학원함에 올랐다면 긴 시간이 소모됐겠지만 지인의 도움을 얻은 덕택에 반나절이 채 되지 않아 도착할 수 있었다.

 학원함의 거리를 걸으면서 자신의 옛 기억을 슬며시 돌이켜보았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과 그것을 겹쳐보았을 때 들어맞는 것은 없다.
 아주 가끔씩 기억 속, 옛 풍경과 들어맞는 것들과 마주치곤 했지만 말 그대로 아주 가끔의 일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20년의 세월동안 사람만 변하는 것은 아닐 터이니.
 사람이 변하면 그들이 살아가는 장소도 변하기 마련인 것을.

 그리고 걸어온 길, 변해버린 거리의 끝에 이르러 발걸음이 멈췄다.
 눈앞에 있는 것은 교문. 그 옆의 벽에 박혀있는 것은 커다란 현판

 「오아라이 여자학원 고등학교」.

 현판의 글귀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린다.

 방과후 부활동에 전념하고 있을 시각.
 귀가부들을 위해 열려있는 교문 밖에서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는 치사토.
 학원의 풍경은 너무나 많이 변해있다.
 눈앞에 드리운 교사 건물.
 자신의 기억 속의 모습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너무나 변해버린 이곳에서 자신이 찾고자 하는 옛 기억들을 찾을 수 있을까?

 오아라이로의 여정을 결심할 때만큼의 망설임이 찾아왔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치사토는 열린 교문 너머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바람이 불었다.
 바다의 내음이 섞여있는 바닷바람이다.
 불어온 바람이 뒤로 채 묶지 못한 잔 머리카락을 휘날려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괜한 것이었다 말해주는 것처럼 오아라이의 바람에, 옛 추억이 함께 휘날려 왔다.

 ‘옛날 같았으면 수위 할아버지가 튀어나와 막아섰을텐데.’

 학원을 지키던 수위로 일하던 노인에 대해 떠올려본다.
 학원을 몰래 빠져나갔다가 들어오는 아이들을 붙잡아 훈계하기도 하고, 쓴웃음 지으면서 몰래 들여보내주기도 하였던 분.
 밖에서 다른 짓을 하다가 몰래 돌아오던 학생들은 그 아저씨와의 기묘한 애증관계가 있었다.

 치사토도 종종 그들 중 한 명이기도 했다.

 지금이라도 어디에선가, 이제는 백발의 노인이 튀어나와 “어디서 온 뉘슈?”라고 묻지는 않을까 기대를 품어본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기대일 뿐.
 흘러간 세월이 있으니 그분 역시 세월을 따라 가셨을 것이다.

 ‘많이 변했구나.’ 하는 실감이 다시금 느껴져 왔다


 「엔도 씨, 넥타이를 똑바로 매주세요.」
 「엔도 양! 복장불량! 치마 안에 체육복 바지를 입고 등교하지 마세요! 벌점입니다!」

 등굣길마다 매의 눈으로 자신을 살피던 선도부의 지적.

 「너희들, 운동장에 전차를 몰고 나오면 안 돼!」
 「전차도부! 빨리 격납고로 돌아가지 못해─?!」


 운동장에 발뻗은 전차의 뒤를 쫓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선도부의 비명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치쨩! 선도부가 뒤에서 쫓아오는데 어떡하지?」
 「도망치면 돼. 미유키, 격납고까지 전진.」
 「안 돼! 나 지금 벌점이 엄청 간당거린단 말이야…….」
 「쫄보 같으니. 이래서 샌님들은 안 돼.」

 그리고 그들에게 쫓기던 이들의 목소리까지 들리는 것만 같다.

 집요하게 격납고까지 쫓아온 선도부들에게 붙들려 한바탕 훈계를 들은 뒤 벌점을 부여받곤 했다.
 벌점이 쌓이고 쌓여 휴일에 교내의 쓰레기를 줍는 것도 잦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마지막은 전차를 타고 빈 교내를 질주하곤 했다.

 “…….”

 달리는 전차의 해치를 열고 얼굴을 밖으로 내어, 바람에 휩싸이는 걸 좋아했다.
 친구들과 그걸 함께할 수 있어서 무척 즐거웠었다.
 그 시절을 떠올려, 옅은 미소가 치사토의 입가에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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