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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소설) 이끼[2]앱에서 작성

온돌똣뚯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4.16 01:40:07
조회 608 추천 11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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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주홍색 가로등만이 유흥가의 텅빈 거리를 밝히고 있을 무렵, 불빛 아래로 사복 차림의 안젤리아가 들어왔다. 그녀는 입고있던 자켓의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현재 위치를 확인하고는 다시 집어넣고, 소매 속에 넣은 꼬깃꼬깃한 종이를 펼쳐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메일로 보냈으면 이렇게까지 헤멜 이유는 없었을텐데. 걘 너무 신중해서 문제야... 어... 여긴거 같은데? 들어가보면 알겠지.'


그녀는 한 쪽만 남은 팔로 자신의 옷매무새를 다시 한 번 정리한 뒤, 아직 불이 켜져있는 칵테일 바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손님. 예약 하셨습니까?"


문에 달린 종이 딸랑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흰색 셔츠에 넥타이를 메고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은 안내원 인형이 안젤리아에게 다가와 물었다.


"아니. 자리 꽉 찼어?"


"자리가 없을리가요.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 인형은 그녀를 창가에 가까운 테이블로 안내 해 주었다.


"곧 바텐더가 올 겁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잠깐. 혹시 '루치아'라는 바텐더 불러줄 수 있어? 그 사람이 유명하다고 들었는데."


"잠시만요... 오, 손님께선 운도 좋으시네요. 매일 예약 세네 건은 있는 분이신데, 오늘은 일이 없으시네요. 바로 불러드리겠습니다. 그럼, 좋은시간 보내시길."


안내원은 친절히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원래의 업무로 돌아갔다. 안젤리아는 '루치아'를 기다리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짙은 갈색의 원목 테이블과 뒤에 진열된 수십가지의 술. 그것을 비치는 은은한 노란색 전등, 그리고 가지런히 준비되어 있는 유리 잔들...


그녀는 잔잔하게 들리는 재즈를 들으며 분위기에 잠시 녹아들었다. 


'일 때문에 온 것만 아니었으면 딱 좋을 분위기네.'


그러다 고개를 돌려 창을 바라보았다. 매끈매끈한 유리는 마치 정지되어 있는듯한 텅 빈 거리와 성한 곳이 별로 없는 자신의 몸을 비추었다. 


'조금 더 꾸미고 올 걸 그랬나...'


그녀는 주변에 비해 초라한 자신에 모습에 머쓱해하며 괜히 옷을 툭툭 털어냈다.


"안녕. 어디보자, 오랜만에 일 없어서 간만에 편하게 쉬고 있던 나를 불러낸 사람이...... 어? 안젤리아?"


붉은색 와이셔츠와 짙은 남색 블레이저, 그리고 검은색 바지를 입은 AK12는 처음엔 눈을 감은 채 손님에게 일부러 들리라고 꼽을 주며 오다 자신의 손님이 안젤리아인 것을 보곤 깜짝 놀라 붉은 눈을 드러냈다.


"안녕, AK12. 바깥이니까 루치아가 나으려나?"


"지금은 위장취업 중이니까, 루치아가 더 낫겠네. 아니, 그것보단 여긴 어떻게 찾은거야? 모든 곳에서 내 흔적을 없앴는데..."


"AN94가 알려줬어. 나한테만 알려준다고, 너한테 들키면 안된다고 우편으로 위치 알려주더라."


그녀는 아까 소매에 집어넣은 구깃구깃한 종이조각을 AK12에게 건네주었다. 그 종이를 든 AK12는 종이 위에 삐뚤빼뚤하게 적힌 글씨를 보곤 평소대로 눈을 감고 킥킥거렸다.


"아, 우리 귀여운 94 모습이 보인다... 분명 종이에 누군가 내가 일하는 곳 위치 적는거 볼까봐 어쩔 줄 몰라서 쩔쩔맸겠지?"


"얼마나 철저한지 작은 금고 안에 넣어서 금고째로 퀵 보냈다니까? 너 애 입단속을 어떻게 시킨거야?"


"나 입단속 하지도 않았어. 그냥 모르는 사람한테 내 위치 알리지 말라고 했지. 날 너무 나쁜 사람으로 보는거 아니야?"


"평소 네 행실을 봐라..."


"심심해서 장난치는 것일 뿐이야. 됐고, 불렀으면 술이나 마셔. 몇 잔은 사줄게. 근데 어짜피 보드카밖에 안 먹잖아?"


AK12는 테이블 아래 공간에서 주문표를 꺼내 안젤리아 앞에 차분히 올려두었다.


"라모스 진 피즈."


"...진짜?"


"성의 좀 보여봐. 강하게말야. 내가 한 쪽 팔이 없어서, 두 팔 쓰는 것 좀 보자."


"그러네. 팔에 달린 의수는 어따 팔아먹었어? 그거 녹여서 철괴 만들어도 돈 안돼는데."


"점검 맡겨놨어. 페르시카한테 맡겨둔 게 흠이긴 하지만. 뭐, 그래도 업그레이드 해 준다니까 감지덕지지."


"손가락에 손톱 붙여서 주는거 아냐? 물어 뜯어도 절대 안 부서지게 말야. 아 맞다, 손톱에 매니큐어 발라봐. 그럼 안 물어뜯지 않을까? 시험할 겸 라임 즙이라도 발라볼래?"


AK12가 생 라임에서 짜낸 즙이 담긴 지거를 안젤리아의 코 앞에 들이밀었다. 그러자 안젤리아는 불투명한 초록색 액체의 강렬하게 풍기는 신내를 맡곤 질색을 하며 머리를 뒤로 쭉 뺐다.


"아휴, 냄새 맡기만 해도 침 고인다... 됐어. 나 알아서 할게."


"알아서 하기는... 알아서 한다는 사람이 여태까지 남편감 안 얻어오나. 폐경 오기 전에는 결혼 해야지. 애도 낳고..."


안젤리아는 AK12의 말에 조금 움찔하며 무어라 했지만 셰이커 안에서 얼음이 부딪치는 소리에 완전히 묻혀버렸다.


"응? 뭐라고 했어?"


그녀의 험악한 입모양을 보고서도 AK12는 능글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됐어, 인마. 나머지 섞기나 해."


"이거 서운하네. 다른 애들은 이런 걱정 안해주잖아."


"때 돼면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신경 끄셔."


"교제하기 전에 꼭 연락 해. 내가 봐 줄테니까. 장모님 해 줄게."


AK12는 말을 끝맺고 얼음을 뺀 셰이커에 음료를 넣은 뒤 거진 10분간 강하게 흔들었다. 얼마나 강하게 흔들었는지, 잔잔한 웃음이 항상 있던 얼굴이 차가운 빙수를 먹어 머리가 아픈 것마냥 구겨졌다. 


셰이킹이 끝나고, 그녀는 긴 하이볼 잔에 음료를 따라 담은 뒤, 단단한 거품이 위로 올라올 때 까지 소다수를 부었다. 그 후 마지막으로 적당한 크기로 자른 오렌지 껍질을 쥐어 짜 오일을 뿌린 뒤, 잔의 끄트머리에 끼워 안젤리아의 앞에 밀어넣었다.


"주문하신 라모스 진 피즈 나왔슴다."


그리곤 뻐근해진 두 어깨를 빙빙 돌리며 안젤리아가 시음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왜 그렇게 쳐다 봐?"


"그냥. 생각해보니까 당신이 업무 외 시간에 술 마시는 건 처음 보는거 같아서."


"상대방 비위 맞춰주면서 마시는 것보단 이게 낫지. 너도 이런 일 하면서 느끼지 않아?"


"어. 매우. 높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잖아. 덕분에 인내심과 정보를 맞바꿀 수 있었지."


"내가 말해준 마약과 연관있는 놈들이야?


"지금까지 추려본 바로는, 진짜 확실한 놈은 2명 정도야. 나머지 하나는 완전히 반대고."


"반대?"


"너무 청렴해서 마약이 만들어진 경로를 추적하고 완전히 불태워버리고 싶지만 힘은 없는 사람. 고문해봐야 알겠지만,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거야."


"정보는 잘 정리해 둬. 놈들의 목을 쥐어 틀 올가미가 될 테니까."


"내가 또 정리하는데 일가견이 있지. 근데, 이 일은 언제까지 해?"


"아마 한 두 달 더. 자세한건 좀 이따 애들 다 오면 얘기하자."


"추가 손님은 돈 더 받는데, 괜찮아?"


"어... 어짜피 내 돈은 아니니까. 근데 그 돈 모아서 뭐하게?"


"지휘관 놀릴 장비들. 걱정 마. 당신 놀래킬 장난감도 있어. 놀라는거 찍어둔 다음에 지휘관한테 보내야지. 아, 벌써 당신이 놀라는 장면 2개나 모았어."


"...용광로 들어가고 싶냐?"


"장난이야, 장난... 인상 풀어. 가뜩이나 이곳저곳에서 구르느라 폭삭 늙었는데, 더 쭈글쭈글해질라."


AK12가 애써 웃으면서 속을 삭히는 안젤리아에기 검지와 엄지를 입술의 가운데에서 입꼬리까지 V자로 펼쳤다.


"그래서, 94랑 고릴라, 그리고 그... 은여우는 언제 와?"


"곧 도착할거야."


그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출입문에서 딸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오랜만입니다, 안젤리아."


회색 후드와 검정색 트레이닝 바지를 입은 AK15가 안젤리아를 향해 걸어왔다. 


"안녕. 나머지 둘은 같이 안 왔어?"


"RPK16은 급한 일이 생겨 오지 못한다 했고, AN94는..."


AK15는 뒤를 힐긋 쳐다보곤 다시 말을 이었다.


"같이 도착했습니다. 다만, 이 곳 근처를 돌아다니던 길고양이에게 간식을 두고 온다 했습니다."


그러자 젖은 유리잔을 마른 행주로 닦고 있던 AK12가 피식 웃었다.


"또 고양이 보러 갔나보네."


"'또' 라니? AN94가 여길 자주오나 보네?"


"응. 잔업 없을 때마다 와. 날 봐야 안심이 된다더라. 94가 오면 노가리 깔 상대가 늘어나서 좋아."


"돌봐주는건 좋은데, AN94도 너한테 의존하는 걸 줄여야 돼. 나중가면 혼자서 결정하는 것도 못할라."


"아냐. 이젠 혼자서 잘 하더라고. 저번에 그리폰 연회에 혼자 보냈는데 별 탈 없이 잘 지냈어. 내 소체 가져간 거 빼곤."


"소체...를 가져갔다는게 뭔 소리야?"


"캐리어에 숨겨서 가져갔어. 걱정 마, 소체 빼고 내가 들어갔으니까. 혼자 있기 불안해서 가져갔대."


안젤리아는 한 구석에 박혀 AK12의 소체를 보면서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는 AN94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러니 저절로 입꼬리가 상승했다.


"내 참, 어이가 없어서..."


"94는 이런 엉뚱한 면이 있어서 좋아. 항상 새로운 경험을 시켜주거든. 이 고릴라와는 다르게 말이야."


"나는 임무 수행의 효율을 높이는 방법을 선택할 뿐이다."


"으휴, 그러니까 앞뒤가 꽉 막혔다는 소리를 듣는거야. 다른 사람이 보면..."


AK12는 갑자기 하던 말을 끊고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바라보았다. 


"...왜?"


잔에 남은 술을 마시던 안젤리아도 고개를 돌려 AK12의 시선이 미치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 곳엔 노란색 길고양이에게 간식을 주는 AN94가 있었다.


"이걸 참아? 절대 못참지... 난 못참아."


AK12는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아내며 휴대폰을 꺼내 꼼지락거리는 그녀의 모습을 찍어냈고, 사진을 찍음과 동시에 터져나온 플래시가 AN94의 시선을 끌었다.


"아...!"


그녀는 AK15의 무표정, 안젤리아의 멍한 표정, AK12의 박장대소를 보고는 몇 초간 벙쪄 가만히 있다,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진 채 시야에서 급히 사라졌다.


"...제가 말한 게 저 일입니다."


"아... 진짜 상상도 못했네."


"이건 평생 소장이야. 조만간 AN94 컬렉션 하나 더 생기겠어. 이거 봐라, 진짜 많이 모았지?"


AK12는 자신의 휴대폰에 소장해 둔 사진들을 그녀들에게 보여주었다. 화면 속 AN94는 진중한 평소 모습과는 다른, 여러 방면의 모습이었다. 물론, 대부분이 동물과 관련된 사진이 더 많았다. 안젤리아는 역시나 피식 웃고 넘어갔다. 의외로 AK15가 굳어있는 안면근육을 잠시나마 풀었다.


"왠일로 너가 철판같은 얼굴을 풀었대? 너 얘 좋아하냐?"


AK12가 급작스럽게 휴대폰을 가져가며 묻자 AK15은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무뚝뚝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좋은 파트너다. 비효율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처음봤을 뿐이다."


"그냥 좋다고 하면 덧나냐... 오, 들어왔다. 안녕?"


그녀가 손을 흔든 방향엔 고개를 푹 숙인 채 쭈뼛거리며 오고있는 AN94가 있었다. 그녀의 소매주머니엔 츄르가 가득있었다.


"으... 미, 미안하다... 이런 추태를..."


"덕분에 재밌었어. 어서 앉아. 한 잔 쭉 들이키고 다 잊어버리렴."


AK12는 AN94를 AK15의 옆자리에 앉힌 뒤 술 3병을 꺼내 새로운 칵테일을 만들었다.


"천천히 마셔. '파우스트'니까."


그녀는 세 명의 손님 앞으로 술이 담긴 차가운 잔을 밀어냈다. 


"고맙다, AK12. 잘 마시겠다."


AN94가 감사인사를 하고 잔에 입을 대기도 전, AK15는 단숨에 잔을 비우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너... 그걸 한 번에 마셨어?"


"그렇다. 문제있나?"


"네 뒷수습이 문제가 될 수도 있겠네. 이거 50도 언저리야. 그렇게 마시면 한 번에 훅 가!"


"나는 알코올 따위에 지지 않는다."


"...고릴라도 이 정도로 멍청하진 않은데. 어? 안돼! 너도 그렇게 먹지 마!"


AK15가 한 번에 마시는 모습을 본 AN94는 그녀의 방식이 정석인 줄 알고 따라하다 AK12의 저지에 반 밖에 마시지 못했다. 그녀의 입 속에 있던 술은 그대로 식도로 흘러 넘어갔고, 높은 도수 때문에 AN94는 연신 기침을 해댔다.


"이, 이렇게 먹는게 아닌가...?"


"이건 조금씩 음미하면서 먹는거야. 안돼겠다, 남은건 이리 줘. 좀 더 부드러운 거 만들어 줄게."


"미안하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그녀는 목에서 느껴지는 작열감에 눈물을 찔금거리며 AK12에게 사과했다. 그리곤 시무룩해져 테이블에 올린 자신의 두 손에 시선을 두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AK12는 아무도 모르게 그녀의 사진을 찍었다. 안젤리아를 제외하고.


"으이그, 그새 또 사진을 찍어?"


"못 참겠어!"


AK12는 안젤리아에게 속삭이듯 말하곤 다시 한 번 칵테일을 만들었다

"이건 괜찮을거야. '블루 하와이'야. 천천히 마셔. 특히 너."


그녀는 AK15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두 인형에게 불투명한 푸른색 술을 건네주었다.


"오..."


시무룩하던 AN94의 낯이 밝아졌다. 달달한 과일향과 적당한 도수의 술이 그녀의 입맛에 딱 맞았다.


"맛있지? 그치?"


"맛있다...!"


"더 먹고싶음 말해. 계속 줄테니까."


"이제 얘기좀 하자, AK15, AN94. 너네 어디에 취업했어?"


"저와 AN94는 같은 경호 업체에 취직했습니다. 이 업체는 고객의 사회적 위치를 고려하지 않고 오직 돈에 의해서만 움직입니다."


"그럼 음지에서도 일했겠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모은 정보는 총 67건입니다. 현재 AN94가 문서화하여 정리, USB에 저장해 두었습니다."


"이 USB이다."


AN94가 소매 안주머니에서 USB를 꺼내 안젤리아에게 건네주었다.


"대충 어떤 일이었는지 설명해봐. 간략하게."


"총 67건 중, 카르텔과 광신도 집단의 인신매매와 인신공양에 간접적으로 관여한 일 7건, 직접적으로 관여한 일 4건, 나머지는 위협과 협박같은 자잘한 것들과 대형 제약 회사의 불법행위에 동조한 일입니다."


"대형 제약 회사라... 내가 보여준 마약하고 연관성이 있는거 같아?"


"몇 가지 부분에서 의심스러운 점이 있었습니다. 이 부분 또한 정리해 두었습니다."


"좋아. 손 많이 더럽혔겠어. 나중에 다시 한 번 확인해 볼게. 내일 마지막으로 RPK16을 만나서 정보를 얻은 다음, 작전 계획을 짜야겠어. 아마 한 두 달 정도 걸릴테니 그 사이에 언제든지 퇴사할 준비해 놔."


"알겠습니다. AN94, 2달 뒤 월세는 내지 않아도 된다."


"그럼 남은 기간 동안에는 괜찮은 식사를 할 수 있겠군. 좋은 소식이다."


"괜찮은 식사라니? 너네 뭐 먹고 사는데?"


"주로 통조림 식품을 소비하고, 특별한 날에만 가정식을 먹는다."


"너네는 그 돈 아껴서 뭐하게?"


"아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활비가 부족해진다."


"뭐? 아니, 얼마를 받길래..."


"시간당 550루블, 성과급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한 달에 약 11000 루블을 번다."


"...최저시급도 안 받고 일하니까 돈이 부족하지."


안젤리아는 AN94와 AK15를 안쓰럽게 쳐다보곤, 자신의 지갑에서 카드 한 장을 꺼네 AN94에게 건네주었다.


"밥은 이걸로 먹어. 부족하면 말 하고."


"어? 아, 아니다. 괜찮다. 부족한 건 없다..."


"괜찮습니다. 먹고 살 만 합니다."


"난 너희보고 사회에 적응하라고 했지, 궁핍한 환경에 찌들어 살라고는 안했어..."


그녀는 어떻게든 받지 않으려는 AN94 대신 AK15의 바지주머니에 카드를 쑤셔넣었다.


"야, 너가 도와줬어야지. 그래도 동료인데, 인마."


그리곤 AK12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했다.


"아이, 나도 몰랐지! 이런 생활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할 줄은 상상도 못했어. 그리고, 나도 도와주긴 했거든? 물론 여길 매일같이 찾아온 94한테만. 대부분은 거절하긴 했지만... 그래도 오늘은 내가 술 값 사잖아. 이 정도면 충분하지?"


"내 말은, 평소에도 돕고 살라는 말이지. 오늘만 말고..."



.
.
.



"벌써 3시야. 슬슬 갈 준비 해야지. 안젤리아, 걸을 수 있겠어?"


"난 멀쩡해. 쟤들이 문제지."


안젤리아는 두 인형을 가리켰다. AN94는 AK12가 주는 달달한 칵테일을 주는대로 받아마셨고, 결국 탁상위에 머리를 박고 새근새근 잠에 빠져있었다.

그와 달리 AK15는 깨어있었지만, 역시나 정상은 아닌 것 같았다. AK12가 한 번 당해보라는 속셈으로 AK15에게 높은 도수의 칵테일만 내놓았고, AK15 또한 그걸 모두 받아마셨기 때문이다.


"전 괜찮습니다, 안젤리아."


"자기가 괜찮다니까, 뭐. 계산은 다 했고, 이제 가자. 근처에 잘 만한 곳 하나 잡았으니까 거기서 자면 돼."


AK12는 쓰러진 AN94를 등에 업은 채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그 뒤를 따라 AK15가 걸어갔지만 안젤리아가 보기에 그녀의 걸음걸이는 매우 불안정해 보였다.


"야, 야! 정신차려! 그러다 넘어지면ㅡ"


안젤리아가 아차 싶어 AK15를 부축하려 했지만 때는 너무 늦었다. 거구의 몸은 자기 발에 걸려 넘어져 근처에 있던 술 진열대를 덮치고 말았다. 20병 정도의 술병은 바닥에 부딪쳐 유리조각이 되었고, 유리가 깨지는 소리는 가게를 뒤흔들어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뭐야! 강도라도 들었...어?"


결국 이 곳의 사장까지 나오게 만들었고, 그는 눈앞에 펼쳐진 참사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나 무어라 외칠 준비를 했다.


그러나 바닥에서 일어난, 자신보다 키가 큰데다 온 몸이 근육질인 사람이 그의 앞에 서서 차가운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니, 저절로 화가 가라 앉았다.


"미안하다. 내가 변상하지."


"...다치신 곳은 없으신가요?"


"없다."


총알도 못 뚫는 소체에 유리조각 따위는 생채기도 못 내는 건 당연했다.


"미안합니다. 청구서는 제 앞으로 보내주세요."


결국 안젤리아가 자신의 연락처를 알려주고 깬 술값을 선지불 하는 걸로 상황은 마무리되었다.


사장의 속도, 안젤리아의 속도 까맣게 타들어갔다.



.
.
.




"안제, 문 열어. 나 손 없어."


AK12가 열린 차 창문 사이로 운전석에 앉아 기다리던 안젤리아에게 냉커피 한 잔을 건네주었다. 


"그냥 집 갔다오지. 돈 낭비하는거 같잖아."


"한 시간 동안 술 냄새 맡으면서 가는 것보단 나아. 어제 AK15 옷 말리고 잤는데도 옷에서 술 냄새가 진동하더라."


그녀는 지독했던 술 냄새를 떠올리며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그리고 이내 평상시처럼 옅은 미소를 지은 뒤, 뒷자석에 탔다. 안젤리아는 차의 시동을 걸고 사이드미러를 슬쩍 보았다.


"안 그래도 남자처럼 보이는 애한테 남자 코디를 해주면..."


안젤리아는 거울 속에 비치는 청바지와 흰색 티셔츠를 입고, 그 위에 베이지색 셔츠의 팔 부분을 접어올려 입은 AN94가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말했다. 그녀의 옆엔 검은색 슬랙스와 야구점퍼를 입은 AK15가 AN94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어짜피 위장할 거 제대로 해야지. 한 쌍의 커플 같지 않아?"


AK12의 말을 듣고 한 번 더 둘의 모습을 본 그녀는 피식 웃었다.


"평소에 하는 일도 비슷하니, 어울리네."


잠시 후, AN94와 AK15가 차에 탑승했고 안젤리아는 네비게이션에 RPK16이 알려준 주소를 찍은 뒤, 천천히 엑셀을 밟으며 출발했다.


"옷은 어때, AK15?"


"위장으로는 괜찮지만, 불시에 대처하기엔 부적합합니다."


"그렇다고 항상 트레이닝 세트만 입는 것 보단 낫지."


"내겐 그 옷이 어울린다, AK12."


"답답아, 아무리 그래도 다른 사람을 만날 땐 적당히 꾸미는게 예의야."


"이해를 하지 못하겠군."


"나는 만족스럽다, AK12.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 같아 기쁘다."


자신을 향해 배시시 웃는 AN94를 본 AK12는 살짝 눈을 떠 그녀에게 윙크했다. 


[확인하지 않은 메세지 1건.]


차량용 충전기에 연결되어 있는 안젤리아의 휴대폰의 화면에 알림이 떴다. 그녀는 귀에 꽃은 블루투스 이어폰의 버튼을 한 번 눌러 TTS로 메세지의 내용을 들었다.


[안젤리아씨, 루치아가 일하는 바의 사장입니다. 오늘 새벽, 일행 중 한 분이 부순 술장은 더이상 못 쓰게 되어 불가피하게 새 술장을 사야 했습니다. 그 외 다른 부분에 대한 손실비용은 루치아의 지인 분들이니 크게 할인했습니다. 아래에 청구서를 첨부했으니 확인 부탁드립니다.]


"올게 왔구나."


그녀는 잠시 신호등에 걸린 사이 청구서를 들여다보았다. 사진 속에는 여러 항목과 비용이 적혀 있었고, 맨 아래에는 총 35000루블이라는 큰 금액이 큼지막하게 박혀 있었다.


[추신. 술장을 넘어트린 분에게 전 절대 화나지 않았다고 전해주세요.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부디 다시 이 곳을 찾아와주시기 바랍니다.]


사진 뒤에는 AK15의 모습에 겁먹은 사장이 덧붙인 글이 더 있었다.


"돌겠네. 12, 15가 술장 완전히 부숴버렸댄다. 35000루블 달래. 내 월급의 절반인데..."


"당분간 밀웜만 먹어야겠네. 걱정 마. 고소하대. 비주얼은... 우엑."


"...죄송합니다."


"괜찮아. 균형잡힌 식사 한다고 생각하면 돼. 그래도 이건 좀 아프네. 내 통장이 아파..."


다시 한 번 그녀의 속이 불타올랐다.





.
.
.







분위기메이커인 AK12는 목배게와 안대를 쓰고 잠들어버려 남은 세 명은 정말 필요한 말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AK15는 주변을 돌아보며 위협요소가 있는지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고, 안젤리아는 적적한 귀를 라디오로 달래며 운전했다. AN94는 열린 창문사이로 들어오는 포근한 봄바람과 꽃향기에 꾸벅꾸벅 졸았다.


RPK16이 일하는 곳까지 10분 정도 남았을 때, 갑자기 차의 위쪽에서 쿵 소리가 나더니 무언가에 의해 땅이 강하게 흔들렸다. 진동은 차를 흔들었고, 이내 앞에서부터 다른 차 여러 대가 길을 막고 있었다. 


"...폭발인가?"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AK15는 의자 아래에서 권총을 꺼내 허리에 숨긴 홀스터에 집어넣었다. AK12와 AN94도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잠에서 깨어나 혹시 있을 전투에 대비했다.


"잠시 여기에 있으십시오. 다녀오겠습니다."


AK15가 차의 문을 열고 나가자 AK12와 AN94도 그녀의 뒤를 따라 나섰다. 여차하면 생길수도 있을 총격전에 안젤리아도 방탄복을 자켓 안에 입고 안전벨트를 푼 채 권총의 안전장치에 손을 가져다 댔다.


잠시 후, AK12와 AN94가 한껏 풀어진 몸짓과 함께 차로 돌아와 안젤리아에게 뒤로 가라는 손짓을 했다. 


"어이 최씨, 긴장 그만하고 차좀 빼봐."


"무슨 일인데?"


"날이 따뜻해지니까 지반이 약해졌나봐. 약한 산사태 때문에 돌덩이가 도로를 덮쳤어. 치울라면 꽤 오래 걸릴 거 같은데? 크기도, 무게도 장난 아냐."


"안돼. 가는 길은 여기가 가장 빨라. 다른 길은 6시간씩이나 걸려."


안젤리아는 직접 나가 현장을 확인해보았다. 그 곳엔 도로 밖 절벽으로 거의 밀려나가기 직전인 검은 트럭과 6m 정도 돼 보이는 돌덩이, 그리고 안간힘을 쓰며 돌을 치우려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큰 돌 입니다. 저들의 힘으로 치우기엔 부족해 보입니다."


AK15가 팔짱을 낀 채 돌덩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음... 너가 저걸 한 번에 치워버리면 사람이 아니라는 게 들통날텐데."


"사람 서너 명을 더 데리고 오면 됩니다. 저와 AN94, AK12가 사람들 사이에 섞여 밀면 자연스러울 겁니다."


"그래? 그럼 뭐. 12, 따라와."


안젤리아와 AK12는 차 안에서 돌을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을 여러 명 더 불러왔고, 다행히 모두가 힘을 합쳐 돌을 치운 것처럼 속이는 데 성공했다. AK15의 옆에 있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그들은 그녀의 힘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는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두툼한 이두근과 전완근, 대퇴근, 그리고 몸집을 보곤 자연스레 납득했다. 


그녀가 다시 차로 돌아가려는 찰나, 절벽에 걸친 트럭의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


"저기, 미안하지만 트럭 좀 당겨줄 수 있겠나? 바위 때문에 트럭이 밀려서 바퀴가 절벽에 걸렸지 뭐야. 후진을 못해서 인력으로 빼내려고 했지만 우리 힘으론 역부족이야."


"왜 이리 늦어?"


안젤리아가 오지않는 AK15를 발견하고 다가와 물었다.


"트럭을 당겨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어떡합니까?"


"어짜피 치우는거, 조금만 더 고생하지. AK12, AN94, 트럭 뒤 잡아!"


"아이, 방금 안대 다시 꼈는데!"


AK15와 투덜거리는 AK12는 트럭의 뒤쪽으로 가 차체가 뜯어지지 않을만큼 힘조절을 해가며 트럭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안젤리아는 트럭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가 뒤에 밀려있는 차량들을 통제했다.


'...귀엽다!'


그녀의 다리 길이 정도의 키를 가진 어린 남자아이가 차량과 차량 사이를 비집고 안젤리아에게 다가와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여기까지 혼자 걸어온 건 아닐테고, 부모님 어디계셔? 어느 차에 있어?"


그녀의 질문에도 초록색 눈과 금발 머리카락을 가진 아이는 아무 말 없이 그녀와 눈동자를 마주치기만 했다. 마치 뭔가 바라는 것처럼.


"...음, 이거 잘 먹으려나. 자! 받아. 박하사탕이야. 너희 부모님 오실 때까지 이거 먹으면서 잠깐 여기에 있자."


아이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다행이 그는 그녀의 손바닥 위에 있는 사탕에 흥미가 갔는지 쭈뼛거리는 두 팔을 쭉 뻗어 동그란 사탕을 냉큼 입에 집어넣었다.


그 과정에서 아이의 팔 소매가 조금 내려갔다. 그러자 옷에 가려져 있던 여러 흉터와 상처가 드러났다. 안젤리아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려 했지만, 이내 바람에 휘날려 소매가 벗겨졌을 때 보인 수많은 멍과 움푹 패인 흉터들은 그녀가 날려보낸 의심들을 다시 잡아당겼다.


"빌어먹을, 여기 있었군."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쪼그려 앉은 안젤리아의 등 뒤에서 새까만 양복을 입은 거구의 남성이 나타났다.


"따라와. 도대체 애 관리를 어떻게 하는거야?"


그는 아이의 앞에 안젤리아가 있음에도 아이의 손을 거세게 잡아당겼다. 그녀는 다른사람의 일에 함부로 끼어들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무의식적으로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이봐, 아직 애잖아. 조심스럽게 다루지?"


"댁이 무슨 상관인데? 내가 내 애 만지겠다는데. 오지랖 부리지 말고 당신 할거나 해."


그 남자는 그녀를 위협적인 눈빛으로 쳐다보곤 그녀의 발 끝 바로 앞에 침을 뱉곤 아이를 짐짝처럼 질질 끌고갔다.


안젤리아의 입술 끝에서 경멸과 증오가 담긴 단어가 나오려 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그의 다리를 잡고 넘어트려 무릎을 부숴버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행히 돌을 치우고 돌아와 상황을 지켜보던 AK12가 안젤리아의 어깨를 꾹 잡아 말렸다.


"언젠가 저 놈들이 우리의 타겟이 되길 바래야지. 참아, 안제."


"...손목에 붉은 초승달 모양 타투면 어디 카르텔이야? 칼루쉬?"


"카스트로. 이 놈들은 마약만 취급하는데... 종목을 애들 납치하는걸로 바꿨나?"


"추측으로 끝나면 좋겠네..."





.
.
.





잠깐의 해프닝 후, 그녀들은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종점에 도착했다.
그곳은 도로의 마지막이었고, 넓은 잔디평원이 펼쳐지는 장소였다. 그리고 어느정도 규모를 갖춘 건물 여러 동이 주위환경과 어우러지게 서 있었다.
건물 주변은 무릎 높이의 아기자기한 울타리로 둘러싸여있어, 마치 큰 목장을 보는 듯 했다.


"조용하네. 남은 노후를 보내기 딱 좋은 곳인거 같아."


안젤리아가 차에서 내려 뻐근한 몸을 쭉 피며 말했다.


"꽁냥거릴 상대도 있으면 딱 좋지. 내가 생각해봤는데, 그리폰 지휘관이 당신에게 딱인거 같아. 얼마나 듬직해."


"나이 차를 생각해 봐, AK12. 걔랑 나랑 10살 정도 차이날 걸?"


"나이는 숫자일 뿐이야. 자신감을 가져. 음... 일단 마음에는 두고 있다는 소리지?"


"잠에서 덜 깼냐?"


"그리폰 지휘관님이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건 동의할 수 있습니다, 안젤리아."


"AK15의 말에 동의한다."


AK15와 AN94 또한 AK12를 거들어주었다.


"어제도 말했지만, 내 결혼은 내가 알아서 할게. 신경 꺼..."


그녀들이 안젤리아에게 어울리는 짝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울타리 안쪽으로 들어오자 한 건물의 문이 열리면서 아이들 수십명이 뛰쳐나왔다. 그리고 마지막 아이의 뒤로 귀여운 동물 마스코트가 박힌 앞치마를 입은 RPK16이 나타났다.


"어머, 오랜만이네요, 안젤리아."


그녀는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들을 반겨주었다.


"어린이집 교사로 들어온거야?"


"정확히 말하면 고아원 보조 도우미에요. 여러 곳에서 버려진 아이들을 받고 키우는 일을 돕고 있죠."


"그래? 지금은 무슨 시간인데?"


"점심 소화시킬 겸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시간이에요. 번데기에서 갓 나온 한 마리 나비처럼요. 낮잠시간까진 조금 시간이 남았는데, 오붓하게 이야기나 나눠볼까요?"


"그러지. 너흰 어떡할래?"


안젤리아가 의사를 확인하기 위해 뒤를 돌아보자 그녀들은 이미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호기심에 가득찬 시선을 받고 있었다.


"어... 포위당했는데?"


"여긴 우리가 맡겠다."


"다만, 시야가 닿는 곳에 위치해 주십시오. 만일을 위해서 입니다."


"그래, 그럼."


"이쪽으로."


그녀는 안젤리아를 근처에 있는 벤치에 앉히고 그녀에게 금방 타온 음료수 한 잔을 건네주었다.


"레몬에이드에요."


"고마워."


"애들이 참 밝아요. 부모를 잃었다고는 아무도 모를 정도로요."


"보통은 어떤 경우야? 붕괴 복사 감염? 아님 지병?"


"전자와 후자 둘 다에요. 혹은 부모가 그냥 버렸던가요."


"쯧, 저 어린 애들이 뭐가 죄라고. 낳았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지..."


그녀는 리벨리온 인형들에게 겁없이 달려드는 천진난만한 애들을 보며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다 무리에서 나온 한 아이가 조약돌만한 손에 꽃을 쥐고 안젤리아에게 다가와 그녀에게 꽃을 건네주었다. 그녀는 씨익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고, 아이들 무리까지 목마를 태워 데려다 주었다.


"아휴, 귀여워... 아차, 이럴 시간이 없는데. 지금까지 알아낸 거 다 말해봐."


"아쉽게도, 뿌려둔 통발엔 물고기 한 마리밖에 없었어요."


"하나? 단 하나?"


"네. 그래도 꽤 크답니다. 실망하지 마세요."


RPK16은 잠시 아이들과 놀아주는 리벨리온 멤버들이 바쁜 걸 확인하고는 그녀를 한 사무실 안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책상 서랍에서 종이 수백장이 묶여있는 파일 하나를 조심스레 꺼내놓았다.


"미취학 아동에 대한 인신, 장기매매 장부에요. 제가 취직한 날부터 지금까지, 모든 기록이 담겨져 있답니다. 마지막에 정리해뒀지만, 그 마약과의 관련성이 있어요. 대다수의 아이들이 카르텔 쪽으로 넘어갔으니까요."


안젤리아는 처음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아니, 귀가 잘못돼야 했다. 그러나 장부의 첫번째 페이지를 보자 의심은 사라지고 분노와 절망이 빈 자리를 채웠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애들이 잡혀간거야?"


"대략 100명 정도에요. 그 중 절반은... 추적이 불가능해요. 최선을 다해봤지만, 혼자서 흔적없이 뒤를 쫓는데엔 한계가 있어요."


그녀는 손을 파르르 떨며 여러 장을 더 넘겨보았다. 상세하게 적어놓은 글과 아무런 검열이 없는 적나라한 사진. 아무것도 없는 날것의 기록들이 안젤리아의 눈앞을 어지럽혔다. 그리고 다음으로 본 사진 속 트럭은... 그녀들이 도와준 놈들의 것이었다. 바로 30분 전의 일이었다.


"주로 이 트럭으로 여길 왔다갔다 해요. 짐칸에 애들을 잔뜩 싣고요."


"항상 나쁜 예감은 적중하더니... 빌어먹을."


그녀의 눈에 박하사탕을 오물거리던 작고 귀여운 아이가 아른거렸다. 지금이라도 출발한다면 그 애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급히 출구를 찾아 발을 옮겼지만, 몇 걸음 가지 않고 멈췄다. 이 곳에서 도심은 30분정도 거리였고 지금 쫒아간들, 놈들은 이미 빽빽한 빌딩숲 속, 자기만의 땅굴로 사라졌을 것이다. 그 사실을 그녀 스스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우유엔 캡사이신을 녹이는 성분이 있대요. 마침 빵도 있네요."


RPK16이 허탈하게 사무실로 돌아온 안젤리아에게 남은 간식과 우유 한 잔을 건네주었다.


"스트레스 받을 때 뭐 먹으면 안되는데. 습관 돼."


언행과는 다르게 그녀는 빵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조용히 화를 식혔다.


"나머지 절반은 이 파일 안에 있어요. 인신매매 트럭과 그 외 여러 의심가거나 확실한 전달책들의 이동경로에요."


그녀는 안젤리아 앞에 놓인 접시 바로 옆에 황색 종이파일을 밀어주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체첸, 그로즈니로 가는 전달책이 압도적으로 많아요. 그곳에 불빛이 있으니, 나방이 꼬이는거겠죠?"


"체첸... 그 근방은 레드존으로 지정하려고 논의중인 걸로 아는데. 확실히 뭔가 있나 보네. 고생했다. 한 두달만 더 하고 있어. 곧 작전 시작 할테니까."










리벨리온 대회때 쓴거 재탕했어
벌써 1년이나 지났네

어제 쓴 글도 사라졌는데 왜그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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