걍 써봄.

1. 선협소설은 무엇인가?

시작하기 전에, 다들 '협' 자 들어가니까 으윽 틀딱내 하겠지만 의외로 중국에선 현재진행형 최신식 유행이다 롤 불멸의 영웅 스킨 컨셉이 이 선협소설임

엄밀히 따지자면 선협 소설은 무협소설의 그것보단 2세대 판타지 소설처럼 양산형 먼치킨 요소가 강한 장르소설에 더 가깝다.

심지어 무협소설 독자들 중에는 선협 소설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들도 수두룩하리라 여겨지는데 그 이유는 후술함.

각설하고 선협소설의 기본 골자는 '주인공이 수행을 쌓아 신선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소설' 이다.

으에 딱봐도 개노잼 이러는 사람이 많다는 거 안다. 왜냐면 우리네 한국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신선의 이미지는 무위자연, 무릉도원 등등 속세에 초탈하여 도를 중시하고 자연과 하나되는 씹노잼 개틀딱 이미지이기 때문.

근데 이 선협 소설은 탄생지가 중국이고 주 수요도 중국에서 이루어지니만큼 역시 '중국' 스러운 요소가 한껏 담겨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중국 선협 소설의 신선들은 장붕이들이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전검 옛 지배자 내지는 가즈나이트 쉬프터/사냥꾼 과 같은 놈들이다.

엥 저게 왜 신선임 물어본다면, 중국에서 신선을 보는 관점이 우리나라랑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모든 생물에겐 수명이 있고, 인간 역시 제 수명대로 살다 끽 하고 죽는 게 자연의 이치인데, 이 신선이 된다는 건 이런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고 불로불사 영생불멸하려는 역천(逆天)의 짓거리라고 보기 때문. 따라서 대부분의 선협 소설에서는 천겁(天劫)이라는 요소가 등장하는데 쉽게 말하면 천벌이다.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려는 쌍놈에 대한 하늘의 벌인 셈이라 보통 경지(레벨)을 올릴 때 존나 센 천둥번개가 내리치는 걸로 묘사되는데 아무튼 이 정도로 신선이 된다는 건 세상 이치에 대한 도전이나 마찬가지인 셈. 당연히 선협 소설의 신선이 되려는 수행자들은 자연과 하나되어 도를 깨닫는 게 아니라 산삼 등으로 대표되는 귀한 자연지물들을 갈갈해서 만든 영약을 쳐먹어서 자기들 레벨(경지)를 높이는 약쟁이들 내지는 사람을 죽이고 도살해서 모은 영혼을 자양분으로 삼는 미친 흑마법사 같은 새끼들이다.

그리고 이런 신선의 세계는 일반인들이 완전 범접할 수 없는 영역으로 묘사되는데, 기본적으로 중국에서의 신선은 말 그대로 신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아무리 지랄염병을 해도 신선들에게 닿을 순 없다. 타고난 자질이 없으면 아예 신선이 되기 위한 수행을 시작도 못한다고 묘사되는 경우가 많음. 정확한 비유는 아니지만 D&D로 치면 디바인 랭크 있는 신격이랑 디바인 랭크 없는 필멸자들 사이의 관계 정도가 그나마 비슷하겠다. 따라서 일반인들이 익히는 무예(무공)이 신선(수행자)들에게 1도 안 먹히는 묘사가 왕왕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렇다보니 신선이 되려는 수행자들은 일반인들에 대해 엄청난 우월의식과 선민의식을 갖고 그야말로 벌레 이하의 취급을 하며, 이 신선이 되려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레벨, 즉 경지를 올려주는 자원이 필요한데 그 자원이 한정되어 있고 그 자원으로 만든 영약도 약빨이 잘 받는 체질(보통 자질이 좋다고 묘사됨)과 그렇지 못한 체질이 있기 때문에 지들끼리도 아주 피터지게 싸운다. 그리고 이런 사건들이 시시때때로 일어나기 때문에 약하면 죽고 강하면 살아남아 대접받는 미친 약육강식의 마인드가 대부분의 등장인물 마인드다.(주인공 포함) 약하면 뒤통수 쳐맞아서 죽어도 아무 말 못하는거임.

특이한 점은 수행자들은 템빨로 강해진 걸 전혀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음. 오히려 더 좋은 템을 가지고 더 기량이 높은 상대를 꺾을 수 있다는 걸 자랑스럽게 여기는 템귀적인 성향이 두드러짐. 이런 면에선 게임 판타지적인 요소도 엿보인다.

2. 화신기 원영기 하는 이상한 용어는 뭘까?

수행 수준에 따른 레벨(경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환생좌 칠색지대같은 거다. 환생좌는 적색 지대, 주황색 지대를 올라갈수록 더 올라가기 힘들어지지만 아랫 지대에 비해 월등한 수준으로 강해지는데 선협 소설의 경지도 똑같은거다. 경지가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갈 때마다 그 아랫경지 애들은 떼로 덤벼도 그냥 도살해버리는 게 가능하고 경지가 두세단계 차이 나면 같은 사람으로 안 볼 수준의 차이가 나는 거다. RPG로 따지면 1차 2차 3차 전직같은 거임. 전직 한번씩 할때마다 기본 스탯이 올라가고 뎀지 계수 더 높은 스킬 얻는 것처럼 경지가 올라갈 때마다 아랫 경지 애들은 절대 못하는 윗경지만의 능력을 쓸 수 있고 아이템 제한도 해제됨. 수명도 백년 이백년 천년 이렇게 올라가고. 보통 아랫경지부터 응기기(학사신공에서는 연기기)-축기기-결단기-원영기-화신기는 어느 선협 소설에서나 볼 법한 아키타입이고 대충 설명하자면

응기기(연기기)는 신선이 되기 위한 수행에 처음 들어선 단계이고, 제일 낮은 단계지만 그래도 일반인하고는 비교도 안 됨.

축기기는 진짜 제대로 수행하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단계.

결단기는 금단, 불교로 치자면 사리 같은 기로 만들어진 동글동글한 단을 단전에 만드는 단계인데 여기서부턴 절대적인 기준에서도 신선급의 능력임. 산을 뒤집고 바다를 가름.

원영기는 금단이 응애 애기 모습의 원영으로 변한다. 이 원영은 리치의 라이프 베슬 같은 거라 원영이 터지면 죽고 반대로 원영만 살면 다른 사람 몸 뺏어서라도 살아남을 수 있음. 원영만 몸에서 빼내서 유체이탈 비스무리한 것도 할 수 있고 이쯤 되면 수행하는 애들 사이에서 고인물 취급함.

화신기는 원영이 성장해서 몸뚱이랑 똑같은 모습의 화신(化身)이 되는 단계임. 이쯤 되면 원영기 이하 애들 다 벌레취급하면서 학살 싑가능.

근데 위에서 언급했듯이 신선이 되려는 수행자들은 각자의 자질과 재능에 따라 영약 혹은 공법(무협소설로 치면 심법같은 거임)이 잘 받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이렇다보니 한 놈은 아무리 수련을 해도 지지부진 제자리인데 어떤 놈은 수련을 하면 할수록 사이어인마냥 성장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심지어 제자가 스승보다 자질이 뛰어나 스승의 경지를 초월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보이다 보니 선협 소설은 곧 죽어도 항렬 더럽게 따지는 무협소설이나 우리네 족보랑은 달리 경지(레벨), 즉 힘에 따라 대접한다. 내가 삼백살이어도 열다섯살짜리 애가 나보다 경지 높고 쎄면 내가 더 경험이 많은데도 대가리 박고 선배님 선배님 하면서 알아 모셔야 함. 이렇다보니 먼저 강해지면 장땡이라 같은 편, 동맹끼리도 서로 배신 존나하고 뒤통수 존나 후려댐.

근데 주인공이 재능충 천재면 읽는 독자들이 감정이입이 안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선협소설들은 주인공이 자질이 ㅆㅎㅌㅊ 아니면 좋게 봐도 평균을 못벗어남. 대신 장르소설답게 치트키 하나씩 가지고 시작함.

3. 화신기 이후, 선협 소설 간의 차이

근데 알다시피 모든 선협 소설의 지상목적은 신선이 되는 건데 화신기는 아직 신선이 아니다.

어 근데 위에서는 원영기 화신기는 고인물이랬는데? 이래서 선협 소설 작가들은 대부분 '아 화신기는 좆밥들 리그 짱인거고 이제 더 높은 단계랑 비교하면 잽도 아님 ㅎ' 같은 설정을 시전한다.

대표적인 선협 소설인 학사신공의 경우

'아 화신기는 가장 아래 수준 세계인 인계(人界) 짱인거임. 인계 위엔 영계(靈界)가 있고 이 영계엔 화신기가 인계 축기기 결단기만큼 있고, 이 영계에서 짱 먹어도 아직 신선 아님 ㅎ 영계 위인 선계(仙界)까지 가야 신선이 될 수 있음ㅎㅎ' 이러면서 마블 유니버스 수준의 세계릭트를 시전하고

무갤에서 레전드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선역의 경우

'ㅎ 화신기는 다섯 가지의 큰 단계 중 가장 낮은 첫 번째 단계의 다섯 번째 경지고 첫 번째 단계엔 그 이후로도 경지 두 개가 있음 ㅎㅎ 그 이후 첫 번째랑 두 번째 단계 사이에도 두 개의 경지가 있고 두 번째 단계에도 세 개의 경지가 있음 ㅎㅎ 그 이후 두 번째와 세 번째 단계 사이에 경지 다섯 개가 있고 세 번째 단계에도 네 개의 경지가 더 있음 ㅎㅎ' 이러면서 릭트에 릭트에 릭트를 시전함.

RPG로 따지면 레벨 제한 구역 해금하듯 하나하나 풀려가는 거임, 일반인들의 눈엔 신선으로 보일지라도 정말 세상과 수명을 같이 하는 선인들 눈에는 다 똑같이 필멸하는 벌레임

4. 파워 밸런스

아까 위에서 무협소설 독자 중 선협소설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그랬는데 그 이유임.

기본적으로 아무리 낮은 단계의 신선이 되려는 수행자라도 일반인과는 차이가 현격하게 난다는 게 선협물 기본 틀이기 때문에

선협물 대표작 학사신공에서는 무림 대문파 태상장로 수준이 가장 최하 단계에서도 최하 수준의 신선 수행자 털끝 하나 못 건들고 그냥 줘털림. 그냥 신선 수행자 아님=벌레라는 공식이 선협 읽으면 읽을수록 암암리에 뇌리에 박히게 됨. 이래서 순혈 무틀딱들은 선협소설 극혐하는 사람 많음. 무림인들이 거의 참피 취급을 당하는데 그럴 만도 함.

이런 공식에 걸맞게 위에서 말한 결단기쯤 되면 싸우면서 산을 무너뜨리고 바다를 가르는데 이게 전체적인 소설의 흐름에서 보면 초반부에서 벌어지는 일임.

결단기 이후 원영기 수준이면 손가락만 까닥해도 산이 토막나고 화신기쯤 되면 하늘이 진동함.

이런 애들이 치고박고 싸워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세계도 엄청 커서 학사신공 인계는 사람 사는 행성인데 목성만한 사이즈를 자랑하고 그 위로 넘어가면 아예 천문학적인 영역으로 넘어감. 나중 가면 한발자국에 수백만 리(100만 km, 지구랑 달 사이 거리의 두세배) 이동하고 싸움의 여파만으로 수천만리(1000만 km)가 개작살이 나는 묘사를 보여줌. 레전드라고 불리는 선역은 한술 더 떠서 아예 손짓만 해도 우주가 흔들리고 별들이 개작살남. 진짜 전검이나 가즈나이트급 지랄들이 따로없음.

정리하자면 선협 소설은 신선이라는 간판 단 존나 세고 선민의식 가진 싸이코패스들이 오래 살고 더 강해지려고 도덕 규칙 다 줘까고 무한경쟁 약육강식 개판을 벌이는 걸 담은 소설장르다.

5. 선협 소설 작품 추천좀

우리나라 국산 선협 작품은 얼마 있지도 않고, 그나마 중국에서 번역돼서 들어온 건 그리 많지는 않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추천을 해 보자면

1)학사신공(왕위)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선협물의 바이블. 이거 읽고 나면 대충 선협물이 어떤 장르라는 걸 파악할 수 있어서 선협소설 아다떼기 좋음. 장점은 작가의 뛰어난 상상력과 체계적인 구성이고 단점으로는 좆같은 번역과 씹노잼 파트가 거의 다 잊어갈만하면 한번씩 나옴.

같은 작가 소설로 현계지문이랑 대몽주가 있는데 개인적으로 학사신공에 비하면 재미가 덜한듯.

2) 선역-구마(아직 번역 안됨)-일념영원-아욕봉천-삼촌인간(이근)

이근 작가의 소설은 각 세계관이 연결되어 있어서 전에 읽었던 소설에서 나온 애가 다른 작품에서도 등장함. 장점은 뽕차오르는 장면이 잊을만하면 한번씩 나오고 어지간한 사이다패스들이 주모 사이다좀 그만줘 할 정도로 싸---이다 스러운 장면이 많다는 거지만 단점은 문체가 존나 장황하고 이해하기 힘든 설정이 빈번하게 등장하고 도(道) 타령하는 씹소리가 많음. 우리가 생각하는 신선의 득도한 이미지+장궤 선협소설스러운 테에엥 똥닝겐상 신선을 알아서 받드는데수웅 이 합쳐진 느낌

이 두 작가 작품들 외에는 취향에 안 맞거나 파쿠리친 것 같아서 추천을 안 하겠음. 더 찾아 읽고 싶다고 하면 의외로 잘 읽힐수도 있음 ㅇㅇ

글 잘 읽었으면 다들 추천 한번씩 눌러주셈

*학사신공 읽을 사람들은 아래 링크 글도 한번씩 읽어주면 좋음 장붕이들 정서랑 중국 선협 정서랑 안맞을수도 있다고 생각함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junseng&no=24983&exception_mode=recommend&search_pos=-33917&s_type=search_subject_memo&s_keyword=%EB%B3%84%EC%B2%98%EB%9F%BC+%EB%A7%8E%EC%9D%80&pag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