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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문대회/순수문학] 크리스토프의 사랑 대소동

빛쫓는방랑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2.03 00:09:34
조회 387 추천 22 댓글 12
														

크리스토프는 다비드의 말을 순간 헛들었나 의심했다. 그러나 다비드는 천진난만한 아기 트롤의 눈빛으로 오히려 크리스토프를 보았다.

“왜?”

“아니, 잠깐만. 그러니까 4년 전에 파비 할아범이 왕자한테 마법을 걸었단 말이야?”

“응, 맞아. 할아범하고 다른 어른들이 얘기하는 걸 들었어. 왕자가 마법 때문에 파..파....”

“파멸?”

“맞아!”

다비드한테는 어려운 단어였다. 아기 트롤은 까먹지 않으려는 듯이 계속해서 단어를 되뇌었다. 크리스토프는 심장이 쿵쾅거렸다.

‘맙소사. 이게 무슨 말이야. 4년 전이라면 안나와 엘사가 마법을 사랑으로 극복했던 때잖아. 그리고 그 때의 왕자라면... 설마?!’

“다비드, 혹시 그 왕자 이름을 알고 있니?”

다비드는 해맑게 웃으면서 외쳤다. 그러나 이번에도 말을 버벅였다.

“응! 알고 있어. 이름이 하... 하ㄹ... 할스?”

“한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크리스토프가 정정해준 말에 이번에도 다비드는 맞다면서 이름을 반복해서 외웠다. 예전이었으면 그런 모습을 보며 귀엽다고 힘껏 들어 올렸을 크리스토프였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불현듯 그는 안나와 함께 트롤들에게 둘러싸였을 때가 기억났다. 그 때 그들은 안나가 크리스토프의 반려가 되기를 무척 기대했고 거의 확정된 것처럼 받아들였다. 그러다 안나가 약혼자가 있다고 말하자 트롤들은 그렇게 말했었다.

‘약혼자만 쫓아버리면 문제는 다 해결 돼’

“그게 사실이었다고?”

“응? 뭐가?”

그는 실수로 머릿속의 말을 입 밖에 낸 것을 깨닫고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

“크리스토프! 벌써 가니?”

불다였다. 크리스토프는 다시 한 번 불쑥 머릿속 말을 내뱉었다.

“안나랑 저는 정말 마법으로 만난 걸까요?”

그러자 불다는 고개를 갸웃하고 약간 생각하다가 끄덕였다.

“그렇지. 파비 할아범이 아직 말 안 해줬니?”

그 말을 듣자 크리스토프의 생각은 확신이 되어버렸다. 더 이상 그곳에 있을 기분도 상황도 아니었다. 그는 황급히 바위의 계곡을 떠났다. 아렌델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을 정리하려 애썼다.

파비 할아범이 한스 왕자에게 마법을 걸었다. 그 마법으로 인해 왕자는 파멸했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하지만 트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보다 더 솔직한 이들을 크리스토프는 본 적이 없었다. 특히 순진무구한 어린아이 트롤인 다비드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아아!”

크리스토프는 머리를 쥐어 잡으며 소리쳤다. 원래 친절했던 한스 왕자가 마법에 걸려서 안나와 엘사를 해치려고 한 것은 아닐까? 파비 할아범은 기억을 능숙하게 조작할 수 있는 수준급 이상의 마법사이시다. 그런 그가 사람의 정신이라고 조작을 못할까. 하지만 왜?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지만 그가 바위의 계곡에서 떠나기 전에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약혼자만 쫓아버리면 문제는 다 해결 돼’

자신과 안나를 엮으려고 막무가내로 고집 피웠던 트롤들.

“맙소사!”

그들은 그것이 선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함께 자란 양아들을 위해서 좋은 여자가 때마침 보였으니 결혼하기를 원했을 것이고 또 그렇게 만들어주고 싶어 했다. 그제야 크리스토프는 생각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안나와 크리스토프가 이어지기 원했던 트롤들은(어쩌면 특히 자신의 양부모님, 불다와 클리프일지도 몰랐다.) 파비 할아범에게 강력하게 요청했을 것이다. 자신들의 유일한 인간 구성원인 크리스토프에게 반려를 선물해달라고 말이다. 트롤이 얼마나 우직하게 밀고 나갈 수 있는지 그들과 함께 자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파비 할아범은 현명하지만 그 때처럼 대다수의 구성원들이 요청한다면 리더로서 외면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 할아범은 누구보다 크리스토프를 아끼고 그의 미래를 걱정했던 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그는 요청을 받아들여 한스 왕자에게 마법을 걸었을 것이다.

어렸을 때 부모님과 이웃 트롤에게 들은 무서운 이야기에는 사람을 죽게 만들거나 미치게 만드는 사악하고도 강력한 마법을 부리는 마법사의 이야기가 있었다. 어쩌면 파비 할아범은 그런 마법 중에서 가장 약한 형태로 마법을 건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한스 왕자는 다시 정신이 온전히 돌아와 마구간에서 반성하며 살고 있다고 얼핏 들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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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델이 곧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따스한 봄날 햇빛이 아렌델을 감싸고 있었다. 그러나 크리스토프에게 아렌델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감히 자신이 있으면 안 될 곳처럼 보였다. 이런 고민은 프러포즈를 하면서 떨쳐 버린 줄 알았는데.

‘만약 한스가 마법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안나는 그와 결혼하지 않았을까?’

‘그는 나보다 훨씬 지위가 높고 출신도 좋았고 고귀한 모습을 보였었지.’

‘이렇게 거짓으로 시작되었다면 내가 안나 옆에 머물러도 될까.’

크리스토프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래서 어느 순간 자신이 왕성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벤을 타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아렌델 사람들은 의아하게 쳐다보았지만 이내 자신의 일에 집중했다. 다름 아닌 여왕의 남편 아닌가. 그런 사람이 성 안에서 순록을 타는 것쯤이야 뭐.

“크리스토프!”

“넵!”

순간 들려온 자신의 이름에 소스라치게 놀란 그는 반사적으로 자세를 바로 하며 크게 외쳤다. 아렌델의 여왕, 안나였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어요?”

“아, ... 안나.”

그녀의 초록빛이 감도는 푸른 눈동자가 보였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그 눈동자를 쳐다볼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내가 그녀를 기만한 것이 아닐까.’

“무슨 일 있어요?”

“아뇨, 안나. 그냥 오랜만에 산에 올랐더니 피곤해서 그런가 봐요.”

“헤에? 크리스토프가요?”

안나는 의아하다는 듯이 그를 쳐다보았지만 크리스토프는 시선을 피하며 양해를 구했다.

“미안하지만 오늘은 먼저 들어가 쉴게요.”

“크리스토프! 모레...”

안나는 손을 들며 외쳤지만 이미 그는 황급히 건물의 문을 열고 사라진 뒤였다. 안나는 손을 내리며 작아진 목소리로 말을 마쳤다.

“언니가 오는데...”

그녀는 걱정스레 크리스토프가 들어간 문을 바라보았다. 혹시 무슨 문제가 생긴 걸까? 분명 평상시에 느꼈던 분위기와 많이 달랐다. 그가 자신의 눈을 쳐다보지 않은 것은 근래에 들어서 한 번도 없는 일이었다.

“여왕님. 집무 시간이십니다.”

“지금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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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으로 안나가 해야 할 일은 산더미였다. 아침마다 일어나느라 고생했고 수많은 외국 대사와 만나 경제적인 협약을 맺는 것과 무역 관계를 조정하는 것은 세밀함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또 지금처럼 왕국의 현안에 대해 결제해야 하는 서류 문건들은 넘쳐났다. 언니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새삼스레 실감하고 있었다. 이토록 업무가 과중한 것을 알았다면 더 도와줄 걸 하고 후회하기도 하였다.

‘언니 생각하니까 더 보고 싶네.’

기쁜 일은 바로 엘사가 모레 아렌델에 온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근처 숲 속에 있는 작은 호수에 다 같이 놀러가기로 약속했다.

‘크리스토프도 좋아할 텐데.’

내심 그가 좋아하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던 안나는 살짝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피곤하다니까.’

이내 곧 마음을 다잡으며 그녀는 서류를 살펴보고 서명하였다. 얼른 서류 작업을 마치고 그한테 가서 소식을 전해주리라.

그러나 그녀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크리스토프가 계속해서 피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왕성 복도에서 마주치면 갑자기 그는 스벤 당근을 챙겨줘야 한다면서 급히 자리를 떴다. 아마 그 말이 사실이라면 오늘 스벤은 정말 배터지게 먹었을 것이다. 함께 했던 식사 시간에는 얼음과 관련해서 문제가 생겼다며 나타나지 않았다. 이건 확실히 문제가 있었다. 함께 식사하지 않은 것은 아마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또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도!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아침 식사 때 잠시 마주친 그는 정말 피곤해보였다. 순간 그녀는 그가 아픈 것이 아닐까 고민했다. 그러나 그는 단지 피곤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빵 하나 집어 들고는 자리를 떴다. 그런 그의 뒷모습에 그녀는 엘사가 온다고 다 같이 호수에 놀러갈 것인데 어떠냐고 빠르게 물었지만 그는 잠시 흠칫하고는 ‘좋네요’라는 말 한 마디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리고 하루 종일 얼음 호수에 문제가 있다며 성에 들어오지 않았다.

안나는 속이 상했다. 언니가 아토할란에 머물면서 그녀에게 가족은 크리스토프와 올라프, 그리고 스벤이었다. 그 중에서 누구보다도 의지했던 한 사람이 자신을 외면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녀는 그의 모습에서 어렸을 때 언니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자신을 밀어내는 것. 그건 정말 참을 수 없었다.


그날 밤, 안나는 어머니의 스카프를 둘렀다. 흐릿하지만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 났던 향이 나는 것만 같았다. 따스함이 몸을 감쌌다. 언니도 문제가 있을 때마다 이것을 찾았던 이유가 이래서였을까. 따스함과 포근함 때문에? 그러나 충분하지 못했다. 그녀의 마음은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또 무언가를 잘못한 거 아닐까?’

그녀는 스카프를 꼭 두른 채로 잠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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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슷! 안나~”

“응?”

“일어나야지~”

“응... 조금만 이따가...”

“언니가 왔는데도?”

순간 안나의 눈이 번쩍 뜨였다. 엘사다! 하이얀 드레스에 빛나는 백금발의 머리칼. 안나는 빠르게 입가의 침을 닦고 머리를 매만졌다. 그런 안나를 보며 엘사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가볍게 웃었다.

“예쁜 옷을 준비해두었단다.”

엘사가 가리킨 곳에는 연한 보랏빛 드레스가 걸려 있었다. 드레스 끝에는 희지만 영롱하게 빛나는 기하학적인 문양들이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고 허리 부분에는 흰 천으로 가볍게 동여매어 있었다.

“와!”

안나는 얼른 드레스를 집어 들고 갈아입기 위해 드레스룸에 들어갔다. 그런 동생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엘사는 안나가 사라지자 걱정스레 스카프를 집었다. 어머니의 스카프. 그녀는 어떨 때 그것이 사용되는지 알고 있었다. 안나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걸까? 엘사의 살짝 찡그린 얼굴은 안나가 옷을 입고 나오자 빠르게 사라졌다.

“짠~ 어때?”

“와! 잘 어울려.”

안나는 괜시리 드레스를 살짝 흔들어보았다. 엘사는 미소 지으며 허공에서 이소토마 꽃으로 만들어진 왕관을 만들어 안나의 머리칼에 살포시 올려놓았다.

“고마워, 언니. 왕관보다 훨씬 가벼운 것 같아.”

그 말에 엘사의 눈에 안쓰러움이 잠시 스쳐지나갔다. 그런 엘사를 보며 안나는 꽃왕관을 조심스레 만졌다.

“이소토마, 정말 우리한테 맞는 꽃이야.”

꽃말을 알고 있는 자매는 서로를 보며 따스하게 웃었다. 이윽고 자매는 함께 손을 잡고 방을 나섰다. 식사하는 방 앞에서 올라프가 기다리고 있었다.

“올라프!”

엘사가 올라프를 안으려 두 팔을 벌렸다. 그러나 올라프는 오히려 뒤로 물러서며 고개를 숙였다. 처음에 엘사는 당황했지만 이내 궁중 예법에 맞는 자세임을 깨달았다. 고개를 너무 숙여서 이상하게 구부러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폐하를 뵙습니다.”

엘사는 눈을 크게 뜨며 안나를 보았다. 그러자 안나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대꾸했다.

“요새 예법을 공부하고 있거든.”

올라프는 자세를 바로 하고는 눈을 커다랗게 뜨며 두 팔을 벌렸다.

“어땠어요??”

엘사는 살포시 하얀 드레스 자락을 잡아 올리며 예법에 맞게 인사에 답했다. 그리고 올라프를 꼭 포옹했다.

“아주 멋지던데요, 신사님.”

올라프는 아주 좋아하며 식당으로 들어갔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엘사의 자리는 언제나 안나의 맞은편이었고 엘사가 없을 때에도 그녀를 위해서 그 자리는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이윽고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안나와 엘사 앞에는 수프가 놓였고 올라프에게는 아이스크림이 접시에 담겨 나왔다.

“크리스토프는?”

엘사는 안나 옆의 빈자리를 힐끔 쳐다보며 물었다. 안나는 수저를 괜시리 만지작거렸다.

“요새 바쁜 것 같아...”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지만 입가 끝이 살짝 떨렸다. 그리고 초록빛이 감도는 푸른 눈동자가 흔들렸다. 엘사는 어머니의 스카프가 다시 나온 이유가 크리스토프와 관련되어 있으리라 짐작했다. 행복하게 숟가락으로 아이스크림을 퍼먹는 올라프와 달리 안나는 몇 숟갈 뜨고서는 수저를 내려놓았다.

“배가 안 고파서.”

안나는 다시금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엘사는 그것이 의례적인 미소임을 알고 있었다. 안나의 눈매는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엘사도 수저를 놓으며 말했다.

“안나. 난 언제나 너를 도울 준비가 되어 있어.”

안나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옷을 갈아입기 전 유리창에 엘사가 비쳤었다. 어머니의 스카프를 집던 그 모습. 아마 언니는 이미 문제가 있음을 예상하리라. 그녀 역시 한 나라의 여왕이었으니까.

올라프도 식사를 중단하고 자매의 눈치를 보았다. 엘사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고 안나는 망설였다. 그러나 사랑하는 언니의 눈을 보았을 때, 푸르디 푸른 눈동자에서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여전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녀는 말을 시작했다.

“언니, 크리스토프가 이상해...”



  



크리스토프는 스벤과 함께 얼음호수에 와있었다. 산 깊숙이 위치하고 항상 눈이 쌓여 있는 이곳은 크리스토프에게 익숙한 곳이었다. 이곳에서 얼음을 캤으니까. 그 땐 참 간단했다. 얼음을 캐고 팔고 먹을 끼니와 잘 곳만 생각하면 되었다.

터벅. 터벅.

크리스토프는 호수의 얼음 위에 섰다. 그는 얼음 위에 쌓인 눈을 손으로 치웠다. 그러자 투명하고 순수한 얼음이 모습을 드러냈다. 차갑고 눈부신 아름다움. 이것을 보고 있노라면 세속에서의 모든 때가 씻겨나가는 것 같았다. 얼음은 인간과 다르다. 위험하지만 적어도 노력하는 이에게 보답하고 속이지 않는다. 그래서 좋아했다. 그렇지만 얼음에 비친 그의 모습... 좋아할 수 있을까?

크리스토프는 과거의 그가 그토록 싫어했던 사람이 되어버렸다. 속이는 인간. 그는 안나를 속인 것이다. 왕자에게 마법을 걸어 몰락하게 만들고 그 틈을 타 자신이 그녀에게 접근한 것처럼 여겨졌다. 그리고 어쩌면 안나에게 더 나은 사람을 만날 기회를 없애버린 원인일지도 모른다.

크리스토프는 차마 안나를 볼 수가 없었다. 어찌할 수 없는 진실과 그것을 전하고 싶어 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참기 힘들었다.

‘사랑한다면서 솔직하지도 못하고! 그녀가 걱정하던데 어떻게 외면할 수가 있지. 내가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하기는 하는 거야?’

거짓으로 시작된 사랑을 이어나가는 것이 맞을까? 더 나은 사람이 있지 않을까? 그는 지금 그녀를 기만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차마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다. 성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그녀의 맑은 눈동자를 보는 순간 그는 진실을 고할 수가 없었다. 혼란과 슬픔에 찬 눈동자는 절대로 보기 싫었다.

‘차라리 이대로 있을까.’

과거에도 안나는 크리스토프에게 과분하게 보였었다. 한낱 얼음 장사나 하는 자신이 어떻게 공주와 어울릴 수 있을까. 자신의 부족한 모습이 보일 때마다 그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고귀한 그녀에게 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그러나 지금은?

한 사람은 평생 자신이 한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며 벌을 받으며 살고 있다. 크리스토프 자신 때문에 한스 왕자는 마법에 걸려 반역을 했을 것이다. 그러니 반역의 책임은 사실 자신이 져야함이 마땅했다. 더불어 이런 사실을 밝히지 않고 안나 곁에 머무른다면 그것은 기만이다. 심지어 안나와 가까워진 계기도 그 때 그 사건 덕분이었을 테니 애초에 진실한 사랑도 아니지 않을까.

계속되는 생각은 결국 하나에 이르렀다.

‘나는 그녀의 곁에 있을 자격이 없다.’

얼음에 비치는 자신의 수척한 모습은 절망하고 있었다. 그는 일어섰다.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절대로 알리고 싶지 않더라도 알려야 했다. 그리고 그것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파란 하늘을 보며 마음을 다잡은 그는 뒤돌아서자마자 놀라 숨을 들이켰다.

“여기 있었네요.”

물의 정령, 녹스. 그리고 그 위에서 내려오는 새하얀 자연의 여왕. 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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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어떻게 알고 온 것일까? 설마 모든 것을 알고 나를 벌하기 위해서 온 걸까?’

순간 엘사가 차갑게 보이기 시작했다. 도도하고 고귀한 그녀는 싸늘하게 보였다. 그녀가 한 걸음 내딛자 그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그것은 자신의 죄가 빛 앞에서 까발려지는 것 같은 느낌을 피하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저토록 순수하고 아름다운 그녀에게 감히 자신이 다가갈 수 없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본 엘사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확실히 문제가 있긴 있네요.”

크리스토프는 그제야 자신이 뒤로 물러섰음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의 발을 잠시 보았고 엘사를 보았다.

‘그녀라면. 그녀라면 안나에게 진실을 아프지 않게 전해줄 수 있을 거야.’

엘사는 정의로우면서도 누구보다 안나를 위하는 이이니 그녀는 자신의 잘못을 단죄하고 그로 인해 안나가 받을 상처들을 잘 보듬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간절한 믿음 속에 그는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든 채로 그를 보았다.

“엘사, 해야 할 말이 있어요.”



  



“그러니까 정리하면 크리스토프가 원인이 되어 파비 할아버지가 한스에게 마법을 걸었고 그래서 반란을 일으키고 지금 벌을 받고 있는 거군요.”

“맞아요.”

크리스토프와 엘사는 얼음 의자에 앉아 얼음호수에 거닐고 있는 녹스를 보며 대화하고 있었다. 자초지종을 크리스토프에게 들은 엘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크리스토프는 조용히 기다렸다. 그는 자신이 내린 결론을 솔직하게 밝혔고 이내 그녀도 같은 결론에 다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조금 더 알아볼 필요가 있어요.”

뜻밖의 말에 크리스토프는 고개를 획 돌려 엘사를 보았다. 푸른 하늘을 닮은 그녀의 눈은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어떤 마법이었는지, 그런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당사자의 입으로 들어야겠어요.”

그녀의 말에 그는 시선을 떨구었다. 죄의 유무는 확정되었고 이제 형량을 결정하는 것만 같았다. 더 이상 그녀를 볼 수가 없었다.

“크리스토프.”

“네.”

그는 자신의 발을 보며 대답했다. 그러나 엘사는 다시 한 번 이름을 불러 눈을 보기를 요구했다.

“크리스토프.”

마음도 투명하게 들여다볼 것 같은 푸른 눈동자가 다시금 보였다.

“나는 우리가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가족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고 사랑하죠. 당신이 한 말 중에서 자격이 안 되어서 사랑하지 못한다는 말은 틀렸어요. 사랑하는데 자격은 필요하지 않아요. 오직 사랑하는 마음이 중요할 뿐. 그 때 당신이 안나를 구하러 왔을 때, 그리고 그 이후로 함께하며 사랑했던 마음은 거짓이었나요?”

크리스토프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가족.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고 사랑하는 것. 자격이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

엘사는 크리스토프가 과거를 되돌아볼 수 있도록 인내심 있게 기다려주었다. 그러나 한 순간도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마침내 크리스토프가 엘사를 보며 대답을 할 때에도 그녀는 여전히 그를 보고 있었다.

“아뇨. 그 때도, 지금도, 저는 그녀를 사랑합니다.”

더 이상 귀족적인 싸늘함이 감돌던 엘사는 없었다. 다만 크리스토프의 가족이 그곳에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잔잔히 웃으며 크리스토프의 손을 잡았다.

“그 마음 변치 않기를.”

크리스토프는 그 순간 안나를 생각했다. 세상 어떤 것보다 귀중한 그녀 아니었던가. 자신을 향해 환하게 미소 지어준 사랑스러운 이 아닌가. 적어도 그녀를 위해서 이렇게 문제를 놔둘 수는 없었다. 그녀에게 모든 것을 설명하고 용서를 구해야 하리라. 설령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녀를 위해 바로잡아야 한다.

“4년 전 내가 배운 점은 문제를 회피해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제 당신은 돌파할 준비가 되었네요.”

크리스토프는 일어났다. 엘사가 한 말처럼 정보가 더 필요했다. 사건의 전말을 모두 밝히고서 안나에게 가야 했다. 그래야 아렌델의 여왕은 올바른 선택을 내릴 수 있으리라.

“가봐야겠어요.”

엘사는 크리스토프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일어서며 부드럽게 손짓했다. 그러자 그들이 있는 곳으로 녹스가 달려왔다.

“도와줄게요.”

엘사의 눈짓에 녹스는 크리스토프에게 와서 머리를 숙였다. 크리스토프는 약간은 어설프지만 스벤 위에 타는 것처럼 올라탔다. 출발하기 전 엘사가 녹스와 머리를 맞대었다. 그리고 시선을 올려 크리스토프를 보았다.

“물의 정령은 마음속에 진실이 없는 이를 태우지 않아요. 오히려 물에 빠뜨리죠.”

엘사는 지금 녹스가 크리스토프를 마음에 들어 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물의 정령은 아무 사람이나 태우지 않는다. 녹스가 크리스토프를 태운 것도 그가 진실을 밝히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만약 트롤들이 말해주지 않는다면 어떡하죠?”

그가 갑자기 걱정된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자 엘사가 한 손으로 입을 막고 가볍게 웃었다가 이내 자세를 바로하며 턱을 치켜세웠다.

“다섯 번째 정령이 보낸 이에게 감히 그럴 리가요?”

“그, 그렇겠죠?”

크리스토프는 어색하게 웃었다. 척 보기에 그는 엉성하게 말 위에 올라타 있었다.

“너무 늦지 마요.”

엘사의 마지막 말과 함께 녹스는 달리기 시작했다.

“워우!”

얼마나 빠른지 그는 있는 힘을 다해서 녹스의 목을 감싸 안아야 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크리스토프는 너무 빨라서 고개를 처박고 들지 못했다. 덜덜 떨다가 녹스가 잠시 쉬려는 듯 멈추자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

놀랍게도 그는 바위의 계곡에 이미 도착해있었다. 말 위에서 내려온 그는 옷매무세를 바로 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졌다. 대체 왜 파비 할아범은 왕자에게 마법을 건 것인지, 어떤 마법을 걸었는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안나에게 말해 바로잡아야 한다는 마음까지.

그는 당당히 걸음을 옮겼다.



  



안나는 그녀의 방에 있었다. 그녀의 언니인 엘사가 모든 일정을 연기할 것을 피터센 경에게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오늘 아침 엘사 앞에서 눈물을 보일 정도로 힘들었지만 지금은 여왕의 일에서 해방되니 그저 편하고 좋았다. 물론 마냥 편한 것이 아닌 가슴에 묵직한 돌이라도 있는 듯 무거운 편안함이었지만. 크리스토프를 생각하니 안나는 다시 울적해졌다. 만나서 얘기라도 했으면 이렇지는 않았을 텐데. 직접 그를 잡아 세워서 얘기하고도 싶었지만 그가 자신을 피한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런 상황에 계속해서 밀려드는 여왕의 일은 안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어떻게 보면 오늘만큼이라도 쉬어야 한다는 엘사의 판단은 정확한 것이었다.

안나는 침대에 누워 팔로 눈을 가렸다. 얼마만의 휴식일까. 잠시 후에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달콤한 향이 났다.

“안나~ 초콜릿 먹지 않을래? 주방장의 특별 초콜릿이라던데.”

눈이 번쩍 뜨이는 소리였다.

“언니, 잠시 가볼 곳이 있다면서? 잘 해결됐어?”

“물론이지. 게일이 많이 도와줬어.”

엘사의 머리카락이 살짝 흩날렸다. 어디선가 까르륵 소리도 들렸다. 안나는 가볍게 웃으면서 일어났다.

“고마워, 게일.”

“와, 근데 냄새 좋다.”

자매는 사이좋게 같이 초콜릿의 향을 깊이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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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초콜릿.”

“으흥~ 초콜릿.”

여전히 같은 모습에 서로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하나씩 먹기 시작했다. 초콜릿으로 가득했던 접시가 거의 다 사라질 때쯤 엘사가 말을 꺼냈다.

“안나, 오늘 오후에 나랑 같이 약속했던 호수에 가지 않을래?”

“그건 원래 내일 가기로 했었잖아.”

“맞아. 근데 오늘 왠지 느낌이 좋아. 같이 가자~”

달달한 맛에 기분이 좋아진 안나는 크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같이 샌드위치 만들러 갈까?”

“와, 언니. 그거 좋은 생각이야.”



  



그 시각 크리스토프는 파비 할아범과 대면하고 있었다. 자갈 수프를 끓여 주겠다는 불다의 제안을 거절하고 불꽃 수정과 버섯을 자랑하는 사촌들을 뒤로한 채 제일 먼저 찾은 이가 파비 할아범이었다. 때마침 할아범은 깨어 있었다.

“그래, 크리스토프. 묻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

“파비 할아범, 밖에 물의 말, 아니 그러니까 녹스 보이시죠?”

“그래, 정령님이 보내신 게로구나.”

“맞습니다. 어, 그게... 녹스가 진실을 알아보는 말이라고 하던데, 음.”

“그렇지.”

크리스토프는 긴장하면 말을 더듬고 횡설수설했다.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이미 글렀음을 깨달은 그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파비 할아범. 있는 그대로 얘기해 주세요. 4년 전 한스 왕자에게 마법을 건 게 정말 사실인가요? 왜 그러신 거에요? 어떤 마법을 쓴 겁니까?”

그러자 파비 할아범은 고개를 갸웃했다.

“한스 왕자?”

“예, 한스 왕자요. 한 때 안나와 사랑에 빠졌었지만 반역을 저질러서 왕국에서 쫓겨난 이죠.”

그제야 파비 할아범은 기억이 난 듯 가볍게 이마를 쓰다듬었다.

“그래. 이제 기억이 나는구나. 한스 왕자. 그래. 그랬었지.”

할아범의 말을 빠르게 크리스토프가 채며 다시 물었다.

“마법을 왜 사용한 거죠?”

그러자 파비 할아범은 옷의 노란 보석을 바로 잡으며 가볍게 웃었다.

“네가 오해하고 있는 게 있구나. 누구한테 그 말을 들었느냐?”

“다비드와 불다 어머니요...”

“그래. 나이가 어리더라도 트롤은 거짓말하지 않지. 그리고 불다의 말도 사실일 게다. 그러나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있구나.”

“그게 뭐죠?”

크리스토프는 긴장하며 침을 꼴깍 삼켰다. 할아범은 두 손을 펼쳐 허공에 마법을 부렸다. 그러자 한스의 모습이 나타났다.

“내가 마법을 건 것은 한스가 아니었단다.”

한스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타난 것은 놀랍게도 안나였다.

“안나?”

“오히려 나는 안나 공주에게 마법을 걸었지.”

“뭐라구요?!!”

크리스토프는 무례하게도 파비 할아범한테 소리쳤다. 그러나 할아범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해서 허공의 영상은 바뀌었다. 안나의 심장에 엘사의 마법이 박혀 도움을 요청하러 이곳에 왔을 때였다. 그 때 안나가 쓰러지고 할아범이 나타나 안나의 양손을 붙잡는 것이 보였다.

“보이니?”

할아범은 붙잡은 손을 확대해서 보여주었다. 자세히 보니 정말 미세한 정도로만 구분되는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나는 안나 공주에게 마법을 사용했지. 내가 사용한 마법은 해가 되는 마법이 전혀 아니란다. 오히려 도움이 되는 마법이지. 왜냐 하면 마법에 걸린 사람이 주변 사람들을 좀 더 알아보기 쉽게 만들어주기 때문이지.”

“알아보기 쉽게요?”

이해가 되지 않은 크리스토프가 인상을 찡그렸다. 파비 할아범은 다시 손을 휘저어 허공의 마법이 사라지게 하였다.

“그래, 크리스토프. 나는 그 마법을 ‘진실의 마법’이라고 부른단다. 진실의 마법은 다가오는 사람들이 마음속에 깊이 숨긴 것을 보여주지.”

“그러니까 진실의 마법이 설마 안나한테 해가 되는 건 아니죠?”

“그렇지. 오히려 지금은 여왕이 되었으니 더 도움이 될게다. 불순한 의도로 접근하는 이들을 구분하기 훨씬 쉬워질 테니까 말이다. 아렌델을 위한 나의 작은 선물이지.”

“그러면 할아범은 정신 마법을 쓴 게 아니었네요?”

“정신 마법?”

“그 막, 정신을 잃게 만든다거나 어, 아니면 막 미치게 만든다거나 음... 하여튼 그런거요.”

그러자 파비 할아범은 다시 껄껄 웃었다.

“아니란다. 진실의 마법은 그런 종류의 마법이 아니지. 단지 사람의 마음을 좀 더 드러내게 해주는 것뿐이란다.”

“그렇군요.”

크리스토프는 말이 없어졌다. 예상한 것과는 다른 결과가 나왔으니 당황스러웠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파비 할아범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가 생각한 정신을 조종하는 마법은 상당히 난해하고 제약 조건이 많지. 그것은 사람을 바꾸기에 나조차도 쉽지 않은 일이다. 반면에 진실의 마법은 사람의 정신을 조종하거나 바꾸지 않는단다. 단지 그것을 드러내게 할 뿐이지. 한스 왕자가 반란을 일으킨 것은 내가 시전한 마법에 의한 것이 아닌, 단지 그의 탐욕스러운 마음의 결과일 뿐이야.”

“아...”

수많은 생각이 오갔다. 크리스토프는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것을 물었다.

“왜 그렇게 하신 거예요?”

“마법을 사용한 것 말이냐? 글쎄, 나도 잘 모르겠구나. 지금의 여왕께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고나 할까. 흠, 아니면 이것은 어떠냐? 늙은이의 변덕?”

할아범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그러고는 다시 진지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자매에게 너무나 고통과 시련이 많이 주어졌었지. 아렌델 역시 마찬가지였고. 나는 이 땅의 평화를 바랐단다. 그래서 이곳을 통치할 이에게 선물을 준 것 뿐이란다.”

“하지만 그 때의 안나는 여왕이 아니라 공주였던 걸요.”

“그래, 그랬었지. 흠, 아마도 그 때에는 공주라 할지라도 가까이서 여왕을 보필할 테니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 같군. 이왕에 여기까지 온 김에 해주는 것도 있었고. 하지만 지금 보면 내 선택이 옳았다는 것 아니겠느냐?”

가장 큰 웃음소리가 울러 퍼졌다. 크리스토프는 웃음을 들으며 생각을 정리하였다.

파비 할아범이 사용한 마법은 진실의 마법이었다. 안나가 그 마법을 받았고 그래서 안나 주변의 사람들은 마음속에 숨긴 것을 드러내게 되었을 것이다. 한스 왕자는 그 마법의 힘으로 자신의 마음 속 깊숙이 숨겼던 권력에 대한 야망을 드러내며 반란을 저질렀다. 그러나 그것이 크리스토프의 책임은 아니었다. 마법은 드러낼 뿐이지 바꾸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언젠가 일어날 일이 좀 더 빨리 일어났을 뿐이었다. 애초에 한스는 안나의 옆에 있기에 부적합했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자신은 안나를 기만하거나 속인 것도 아니었다.

그 순간 크리스토프는 벌떡 일어났다.

“벌써 가보려는 게냐?”

“죄송해요! 다음에 빨리 찾아뵐게요!”

크리스토프는 빠르게 인사하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녹스를 향해 달려갔다. 파비 할아범은 홀로 남겨진 채 미소를 지었다.

“녀석, 그리도 좋을고.”

크리스토프는 녹스에게 가 말했다.

“안나가 있는 곳으로 데려다 줄 수 있겠어?”

그러자 녹스가 고개를 숙였다. 크리스토프는 이번에도 엉성하게 말 위에 올라탔다. 그가 타자마자 녹스는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불다가 벌써 가냐고 외치는 것에 답하지도 못했다.



  



호수에 온 안나는 어느덧 기분이 나아진 것을 느꼈다. 옆에서는 언니가 간이 의자에 앉은 채 양산 그늘 아래에서 쉬고 있었고 올라프는 돗자리 위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 엘사와 함께 돌아왔던 스벤은 약간 기운이 없어 보였다. 그의 순록을 보며 안나는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느라 옆에 없는 것인지 생각하였다.

‘크리스토프와 함께 왔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안나가 다시 시무룩해지자 엘사는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잘 해결되어야 할 텐데. 조금 늦네.’

안나의 기분을 전환할 샌드위치도 이미 먹은 후였다. 아름다운 호수 풍경은 이제 살짝 시들해졌을 테고 말이다. 엘사는 어떻게 해야 안나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좋게 만들지 열심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언니, 고마워.”

“응?”

엘사가 쳐다보니 안나가 쑥스러운 듯 살며시 웃고 있었다. 아직까진 완전히 그늘이 가시진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펴진 듯한 얼굴이었다.

“오늘 언니가 나를 위해서 신경 많이 써줬잖아.”

순간 가슴이 뭉클해진 엘사는 안나를 꼭 껴안았다.

“오, 안나. 우리는 가족이잖아.”

“응.”

안나도 엘사를 꼬옥 껴안았다. 그 때 명랑한 웃음소리가 들리며 자매의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게일?”

안나가 허공을 바라보자 또다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게일은 허공에 맴돌다 안나를 지나쳐 엘사의 어깨 위에서 맴돌았다. 그러다 마지막엔 다시 안나의 머리칼을 흔들고 사라졌다. 갑자기 나타난 게일에 의아한 안나는 엘사를 쳐다보았지만 엘사는 잔잔히 기쁜 미소만을 띈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금 뒤에 숲 속에서 다그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세상에서 누구보다 강력한 언니와 함께하는 나들이였기에 그 소리가 무엇인지 알려줄 수행원이나 경호를 담당하는 군인은 동행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안나는 이번에도 엘사를 쳐다보았지만 엘사는 장난스레 어깨를 으쓱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소리의 주인공은 크리스토프와 녹스였다. 크리스토프는 당당한 자세로 녹스를 타고 있었다.

“크리스토프!”

안나가 이름을 외치며 벌떡 일어섰다. 보고 싶었던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안나.”

크리스토프도 이름을 부드럽게 말하며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엘사는 그들에게 가려던 올라프의 손을 잡으며 다른 손가락을 입술 위에 올렸다.

“쉿.”

올라프도 제법 태연하고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헛.”

멋있게 내려오려던 크리스토프는 발을 살짝 헛디뎌 넘어질 뻔 했지만 다행히 타고난 감각으로 위기를 넘겼다. 빠르게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리한 크리스토프는 안나의 앞에 섰다.

“안나, 할 말이 있어요.”

순간 불안함이 안나의 눈가에 내려앉는 것을 그는 보았다.

‘내가 그녀를 힘들게 했구나.’

크리스토프는 미안한 마음에 안나의 두 손을 꼭 잡았다.

“미안해요, 안나. 나 때문에 힘들었죠?”

진심어린 말을 들은 안나는 순간 가슴의 응어리가 사르르 녹는 것 같았다.

“아니에요.”

“안나. 저번에 내가 살아있는 바위의 계곡에 간 거 기억해요?”

“네. 왜요?”

“그 때 난 엄청난 걸 들었었죠. 4년 전에 한스 왕자가 마법으로 인해서 파멸했다는 것이었죠.”

순간적으로 안나의 눈가가 찌푸러졌다가 이내 의아한 듯 반문했다.

“마법으로 파멸했다구요?”

“네. 나는 그 말을 듣고 정말 놀랬어요. 왜냐 하면 어렸을 때 나는 옛날의 뛰어난 트롤 마법사가 정신을 조작해서 사람들을 괴롭힌다는 무서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요?”

“그래서 나는 한스가 정신을 조종하는 마법이나 하여튼 그런 정신 마법에 걸려서 반역을 저지른 줄 알았어요.”

안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계속해서 말하라는 눈치를 주었다.

“파비 할아범이 나와 당신을 이어주려고, 그 때 당신도 기억하겠지만 트롤들 모두가 나와 당신을 이어주려고 고집을 피웠었잖아요. 여튼 그렇게 하려고 한스에게 마법을 건 것인 줄 알았죠.”

“맙소사! 그게 사실이에요? 아니, 그래서 당신이 나를 피한 거였구요? 죄책감에?”

“안나. 나는 괴로웠어요. 거짓으로 우리의 사랑이 시작되었을까봐, 내가 당신을 기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 말하고 싶지 않다는 이기적인 내 욕심까지. 나는 그것들을 가지고서 차마 당신을 볼 수가 없었어요.”

안나의 눈에 혼란이 깃드는 것을 크리스토프는 보았다. 그녀 역시 많이 아팠구나. 그래서 더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

“하지만 회피한다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죠. 엘사가 용기를 내어 직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어요.”

“언니가요?”

안나는 고개를 돌려 엘사를 쳐다보았다. 엘사는 차분하지만 분명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나는 바위의 계곡에서 돌아오는 길이에요. 파비 할아범한테서 모든 것을 듣고 온 길이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생각했던 것들은 사실이 아니었어요. 파비 할아범이 마법을 건 것은 맞지만 그건 한스가 아니라 안나, 당신이었어요.”

“저요?”

“안나라구요?”

안나와 엘사가 동시에 되물었다. 크리스토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파비 할아범은 아렌델의 평화에 도움을 주고 싶었고 또 두 분께도 도움이 되도록 선물을 주고 싶어 했어요. 그러다 4년 전 안나와 함께 계곡에 찾아갔을 때 때마침 타이밍이 맞아 안나에게 선물로 할아범이 ‘진실의 마법’을 주신 거죠. 진실의 마법은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드러내게 한데요. 그러니까 안나의 곁에 있었던 한스 왕자는 자신의 마음속에 숨긴 야욕이 마법에 의해 드러나 반역을 저지른 거였죠.”

“오!”

문득 크리스토프는 어떻게 자신이 이렇게 말을 잘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에게는 진실을 전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나는 당신에 대한 나의 마음에 대해서 깊이 고민해봤어요. 정말 깊게 말이에요. 내가 내린 결론은 이래요. 안나, 당신은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특별한 사람이에요. 안나, 온 마음을 다해 진정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크리스토프는 안나의 눈동자를 보며 흔들림 없이 말했다. 끝까지 들은 안나의 입가와 눈이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갑자기 그를 와락 안았다.

“고마워요, 크리스토프.”

갑작스런 포옹에 깜짝 놀라기는 했지만 크리스토프는 그녀의 몸에서 느껴지는 떨림을 느끼고는 부드럽지만 단단하게 안아주었다.

“나는 당신마저 나를 떠나는 건 아닌가 하고...”

크리스토프는 미안한 만큼 힘껏 그녀를 안았다 다시 풀고는 눈을 마주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말했다.

“나는 여기 있어요. 항상. 미안해요, 안나.”

그는 사랑스러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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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더 컸다. 안나가 자신에게 실망해서 상처를 받는 것은 정말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괜찮아요?”

“뭐가요?”

“그게, 그, 그러니까 그런 일이 있었는데 음.. 나를 여전히..”

“크리스토프. 내가 받은 마법이 진실의 마법이라고 했죠?”

“네, 네! 맞아요.”

“그렇다면 당신 역시 진실한 마음을 드러낸 것이겠네요.”

순간 크리스토프는 누군가가 머리를 내려친 것처럼 충격을 받았다. 한스가 마법으로 인해 자신의 야욕을 드러냈다면 크리스토프는 어떠했는가? 그는 안나를 구하기 위해 달려갔다. 같은 ‘진실의 마법’이었지만 각자가 품은 진심은 달랐다.

“내가 본 당신은 나를 아껴주고 사랑하면서 행복해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지금도 그렇구요. 그거면 나에게 충분해요.”

그 순간 옆에서 좋아하는 눈사람의 감탄소리와 벅차올라 눈물을 흘리는 순록의 숨소리가 들렸다.

“이제 말해도 돼요?”

올라프가 조심스럽게 물어본다고 목소리를 줄였지만 그마저도 모두가 듣기에는 충분했다. 말하고 싶어 안달하는 눈사람의 모습을 본 모두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이지, 올라프!”

“아, 나는 포옹이 너무 좋아요!!”

그 말과 함께 올라프는 안나와 크리스토프에게 달려갔다. 엘사와 스벤도 함께 다가갔다. 그리고 모두가 서로를 사랑하는 만큼 힘껏 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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