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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장편] 얼음꽃 (7)

서리나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0.24 21:4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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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링크] 얼음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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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꽃





(7)









11. 매티어스 / 아렌델(Arendelle)




오큰은 이제 막 잠을 청하려다 깬 표정이었다. 눈곱이 덕지덕지 붙은 눈을 비비며 그는 짜증스레 매티어스를 맞이했다. 아직도 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횡설수설했고 말투에는 날이 잔뜩 서 있었지만 매티어스는 그에게서 꽤 괜찮은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노덜드라 최북단 티빌섬 호수를 아시나요?”



티빌섬 호수라면 노덜드라 숲을 끼고 다크 씨와 맞닿은 작은 빙하호로, 오큰이 예전 무역사무소로 쓰던 오두막 및 인근 마을과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음에도 얼음 장수들이 잘 찾지 않는 기이한 곳이기도 했다. 매티어스는 대답하지 않았으나 오큰은 그가 듣든 말든 그 특유의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잠에 취해 혼자 계속해서 지껄여댔다.



“마지막으로 그가 아렌델에 왔을 때 말이에요우, 그는 티빌섬 호수로 간다는 말을 남기고 더 이상 항만을 찾지 않았어요. 마치 교역상 일을 그만둔다는 뉘앙스를 풀풀 풍기기에 저는 묻지 않을 수 없었죠. ‘벤자민, 자네 이제 이쪽 일에서 완전히 손 터는 게야?’ 그가 대꾸했죠. ‘개 버릇 남 주기 쉽지 않다네.’”


“초조해 보이지 않던가?”



뜻밖에도 그 질문에 오큰은 곧바로 부정했다.



“오우, 초조는 무슨. 전혀요. 초조보다는 오히려 조금 들떠 보였습죠. 마치....... 어디 여행이라도 가는 것처럼, 혹은, 곧 받을 생일 선물을 기대하는 아이처럼요.”


“평상시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자세히 이야기해보게.”



잠을 깨려 노력하면서도 금세 코를 골며 늘어지는 오큰의 어깨를 세차게 흔들어 매티어스는 억지로 대화를 끌어나갔다.



“미안해요우, 미안해요. 벤자민은, 음, 칼 같은 사람이었어요. 결벽증 수준으로 시간을 중시했습죠. 배가 제시간에 출항하지 못한다거나, 혹은 풍랑에 늦게 도착하기라도 한다면 저만치서부터 역정을 내기 일쑤였구요. 그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어요우. ‘시간은 돈이다.’”


“틀린 말은 아니군.”



잠시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다 매티어스는 물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아렌델에 왔을 때 별달리 이상한 점은 없었나?”



오큰은 두꺼운 눈꺼풀을 껌벅이며 그를 멍청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답답해하며 매티어스는 대답을 재촉했다.



“일정한 간격을 지켜 로윰과 아렌델을 오가던 사람이 왜 갑자기 아렌델에서 종적을 감추었는지, 자네의 생각이라도 말해 보란 말일세.”



졸린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고, 살로 퉁퉁 불은 미간을 좁히며 고심하다 오큰은 어물어물 답했다.



“으음, 짐꾼을 시켜 작은 상자 두 개를 옮겼다는 사실밖에 저는 잘 모르겠어요우.”



출입국 명부에 적힌 바에 따르면 마지막으로 벤자민이 아렌델에 왔을 때 그는 빈손이어야만 했다. 날카로운 눈빛과 당혹스런 눈빛이 허공에 교차했다. 의자가 넘어지고 램프가 쓰러지며 작은 소란이 일었다. 넘어진 램프에서 기름이 새는 것도 모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매티어스는 고압적으로 캐물었다.



“상자라니. 명부에는 적혀 있지 않은 사실이었는데?”



놀란 눈을 휘둥그레 뜨고선 오큰은 화들짝 움츠러들었다. 가슴팍으로 모은 퉁퉁한 양팔이 마치 수줍은 소녀처럼 가느다랗게 떨리고 있었다.



“ya? 사, 상자라뇨?”


“방금 자네 입으로 말했잖나. 상자라고.”



급기야 그는 크게 당황하며 허둥대기 시작했다.



“저는, 저는 아무것도.......”


“무슨 상자를 말하는 겐가? 허가받지 않은 물품을 들여보냈다 이 말인가?”


“제가 언제-”


“이놈 보게. 이제 와서 시치미라도 뗄 작정인가?”



촛불에 붉게 물든 매티어스의 눈은 금방이라도 오큰을 잡아먹을 기세로 타오르고 있었다.



“바른 대로 말하거나, 지하 감옥으로 끌려가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걸세. 밀무역꾼의 말로가 좋지 않다는 건 자네 역시 알고 있겠지.”



썩 기분 좋지 않은 대화를 마치고 매티어스는 터덜터덜 왕궁으로 돌아왔다. 오큰이 머무는 이층집을 나서는데 작은 기척이 일어 문득 뒤돌아보니 나무 노점상 옆으로 웬 길고양이 한 마리가 쥐를 쫓아 후미진 골목 속으로 후다닥 달음박질치고 있었다. 가로등마저 모두 꺼진 아렌델은 그 여느 때보다도 어두워 조그만 그림자 조각조차 볼 수 없었다. 바다가 수천 개의 눈을 뜨고 일제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스산한 느낌에 길을 걷다가도 그는 번번이 멈춰 서서 뒤를 한 번씩 확인하곤 했다. 사람의 기척인 줄 알았던 것은 짓궂은 바람의 흉내에 불과했다.



그제야 그는 게일이 오랫동안 아렌델에 자취를 드러내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바다에서부터 골목을 휩쓰는 바람은 그저 기단의 위치에 따라 대지를 훑는 공기의 흐름일 뿐 게일의 숨결은 아니었다. 경쾌하게 지저귀는 휘파람 소리가 사라진 피오르드는 너무도 쓸쓸해 보였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하던가, 저 먼 남쪽에서 불어닥치는 바닷바람의 온도는 결코 차갑지 않았으나 폐부로 스며드는 그 공기는 오늘따라 몹시 시렸다.



달이 피오르드 너머 모습을 감춘 새벽이건만 허니마렌은 여태 자지 않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확이 있었느냐며 표정으로 묻는 그녀에게 매티어스는 한숨으로 말문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아렌델에 왔을 때 통관 신고를 거치지 않은 상자 두 개를 들고 왔다는 얘기를 들었었네.”


“마법 물품을 취급하는 교역상이라고 했으니, 마찬가지로 마법 물품인 거겠죠?”


“오큰이 말하기를 둘 중 하나에는 겉표면에 성에가 잔뜩 끼어 있었다고 하더군.”



짚이는 바가 있는 듯 허니마렌은 한쪽 뺨을 구겼다.



“나머지 하나의 정체는 아직 모르고요?”


“직접 확인하러 가봐야겠지. 혹시 상자 안에 들어 있을 법한 게 무엇인지 짐작 가는 거라도 있는가?”


“추측에 머문 이야기일 뿐이에요. 가면서 말씀드릴게요.”



하며 허니마렌은 자연스럽게 군복을 갈아입고 그 앞에 나타났다.



“같이 가려고?”



당연한 것 아니냐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허니마렌을 매티어스는 난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위험을 초래할지도 모르네. 그냥 있어.”


“바로 인근이 노덜드라라면서요.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바로 숲으로 달려갈 테니 그렇게 아세요.”


“왕궁 밖에서까지 내가 자네 신변을 책임져야 할 의무는 없으니 그건 자네가 알아서 할 문제고, 시위대를 막아서는 아렌델의 장군이 노덜드라 인과 함께 다닌다는 소문이 돌면 처지가 곤란해지니 하는 말이네.”



비스듬히 매티어스를 꼬나보다 허니마렌은 퉁명스레 쏘아붙였다.



“저는 위험을 무릅쓰고 장군님의 부탁에 따라 이곳에 왔는데, 장군님은 자신의 평판이 나빠지는 걸 걱정하시느라 절 믿지 못하시는군요.”


“자넬 믿지 못하는 게 아니라-”



무어라 더 반박할 말이 없어 매티어스는 고개를 떨구었다.



“별 수 없지. 내 뒤에 바짝 붙어서 따라오게. 다만 자네가 그 호수에 가는 타당한 이유를 내게 설명해야 할 걸세.”



허니마렌은 곧바로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군모에 얼굴을 깊게 파묻고 둘은 마구간으로 몰래 다가갔다. 초조한 해변이 남색 동공을 들이밀고 그들의 자취를 좇았다. 고요한 아렌델에는 오직 둘의 말발굽 소리만 싸늘하게 울릴 뿐이었다. 허니마렌은 목을 꺾어 동녘에 어슴푸레 솟는 파스텔톤 여명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숙인 성은 슬픔에 잠긴 숙녀처럼 공허한 청초함으로 물들어 있었다.



“식생이 변화하는 또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에요.”


“상왕 폐하의 마법이 빠져나가는 것 이외의 이유라고?”


“네. 그저 추측에 머문 생각일 뿐이지만, 누군가 의도적으로 식생을 바꾸어놓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속도를 늦추어 매티어스는 물었다. 어느새 그들은 정령의 상징이 박힌 4개의 비석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의도적으로 식생을 바꾼다라. 노덜드라와 아렌델은 34년간이나 단절되어 있었으니, 아렌델의 식물이 노덜드라에 자라나게 된 것일지도 모르잖은가?”



허니마렌은 말에서 내려 웬 기다란 식물 하나를 잡아채더니 쭉 잡아당겼다. 마치 강아지풀을 닮은 꽃이 줄기에 온통 덕지덕지 붙은 잡초였는데, 약초 캐기라면 일가견이 있는 그녀조차도 제대로 뽑지 못할 정도로 그 뿌리가 너무도 굵고 깊었다.



“이 풀, 노덜드라에 살면서 보신 적 있으세요?”



매티어스는 머리를 긁다 어깨를 으쓱 들어올렸다.



“약초에는 조예가 없어서. 해란초인가?”



씁쓸하게 웃으며 허니마렌은 고개를 내저었다.



“피나물이라는 풀이에요. 저 역시 이 풀에 대해 자세한 건 거의 아는 바가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아렌델이나 노덜드라에서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식물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허니마렌 자네 주장에 따르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외래종을 퍼트렸다는 것이군.”


“이 풀은 고구마나 인삼처럼 굵은 뿌리를 중심으로 잔뿌리를 넓게 내려서, 제거하기도 힘들 뿐더러 다른 식물들이 영양소를 얻는 걸 방해해요. 숲이 자체적으로 마법 능력을 갖고 있다는 건 알고 계시죠? 나무며 풀이 죽어가며 마력도 더욱 빠른 속도로 소실되고 있어요.”



허리춤에서 작은 포대를 꺼내 허니마렌은 뽑은 잡초를 담았다.



“또 말씀해 드릴까요? 작은 초목이 말라 죽는 데에는 붉은소라진딧물과도 관련이 있어요. 피나물이 숲에 들어오면서 함께 달려온 녀석인데, 피나물은 이 진딧물에 면역이 있지만 토착 식물들은 그렇지 않아서 전염병을 쉽게 옮기고 다니죠.”



모든 내용을 이해할 순 없었지만 매티어스는 그 요지만큼은 대강 알아들었다.



“자네는 벤자민이 그랬을 거라 의심하고 있군.”


“정황상이요.”


“근거를 좀 더 자세히 들어볼 수 있을까?”


“벤자민이 아렌델에 들여온 책 중 피나물에 관한 내용이 상세히 적힌 게 있었거든요.”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고 보이는데.”


“장군님은 최근에 다크 씨나 티빌섬 호수에 가 본 적 없으시죠?”



인상을 찡그리며 매티어스는 질문의 의중을 찾아 더듬거렸다.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허니마렌은 재차 물음을 던졌다.



“티빌섬 호수가 다크 씨와 바로 인접해 있어, 담수호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계시겠죠?”


“그 호수가 담수가 아니라는 게 그렇게 큰 문제가 되나?”


“문제가 되죠. 최근 티빌섬 호수에서 제가 본 걸 장군님도 보셨어야 했어요.”



자신이 놓친 게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다 매티어스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뭘 보았기에?”



안장에 발을 걸치며 허니마렌이 대꾸했다.



“고래요.”









12. 카산드라 / 발데로스(Vardaros)




뜨거운 태양이 살가죽을 따끔따끔하게 두드리는 느지막한 오후가 되어서야 카산드라는 정신을 차렸다. 뻐근한 몸을 일으키려니 팔꿈치며 골반이 비명을 지르고, 무심코 오른팔로 바닥을 짚었다가 몸을 뜯어내는 듯한 통증이 어깨를 깊숙이 파고들어 침대에서 일어나는 그 간단한 일을 하지 못해 그녀는 꽤 애를 먹었다. 상체를 일으키자마자 몸을 덮었던 재색 담요가 힘없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주울 생각조차 않고 담요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 카산드라는 신발을 신고 창문가로 다가섰다. 사막 한가운데 흉터처럼 난 협곡 안에 자리 잡은 발데로스에 볕이 들 날이 잘 없건만 어째서인지 오늘만큼은 붉은 노을이 찬란한 손길을 이 거대한 빈민촌에 드리우고 있었다.



시계 초침 돌아가는 소리마저 무척 느긋한 오후였으나 카산드라는 그저 마냥 이 여유를 즐길 수만은 없었다. 먼지가 부옇게 낀 창문 너머 오가는 행인들을 하염없이 구경하다 카산드라는 문득 눈살을 찌푸렸다. 거리를 바삐 메우는 발걸음에서 느껴지는 건 경쾌한 즐거움이 아닌 삶에 찌든 황량함뿐이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황무지에 사는 이들은 마음마저 건조하게 말라붙은 모양이었다. 햇살을 타고 날아온 바람이 모래먼지를 풀썩 날렸다. 머리카락이며 옷이 온통 흙먼지로 푸석푸석해졌지만 사람들은 아무래도 그런 것 따윈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속눈썹에 낀 굵은 먼지를 털어내며 카산드라는 침을 삼켰다. 혀뿌리를 넘어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타액이 너무도 씁쓸했다. 아니, 어쩌면 뿌리부터 깊숙이 박힌 패배감에서 비롯된 씁쓸함인지도 모른다. 입술을 꽉 짓이기며 창턱을 쓸다 문득 손날에 닿은 차가운 금속성 물체에 카산드라는 고개를 떨구었다.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고급진 금빛 경첩이 달린 파란 상자. 태엽을 감으면 심장을 어루만지는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상자가 창틀 위에 외로이 몸을 누이고 있었다.



“캐스.”



그제야 엘사의 부재가 실감이 났다. 용암처럼 시뻘건 분노가 정수리에서부터 온몸에 샅샅이 퍼진다. 번들거리는 조롱으로 그녀를 능멸하던 발데마르의 낯짝과 타국의 땅에 군사를 몰고 와 일국의 상왕을 납치해 간 놈의 대범함이 자꾸만 심기를 건드렸다. 그녀는 실패했고 발데마르는 성공했다. 그녀는 육중한 중력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납작 짓눌려 있건만 발데마르는 까마득한 하늘 위에서 하찮은 벌레를 보듯 그녀의 발버둥을 관망하고 있었다.



상자 위를 느릿느릿 기어 다니는 웬 쥐며느리를 가만히 내려다보다 눈살을 찌푸리며 카산드라는 손바닥으로 대강 오르골에 쌓인 먼지를 닦아냈다. 손날에 밀려 바닥에 떨어진 쥐며느리는 한동안 수많은 다리를 휘저으며 몸부림치다 겨우 자세를 바로잡았다. 차가운 덩어리를 목구멍 너머로 삼키며 카산드라는 오르골 태엽을 만지작거렸다. 태엽이 헛돌며 불협화음이 상자 속에서 부서졌다.



엘사는 이곳에 없건만 그녀의 흔적은 사방에 있었다. 창문을 타고 새어드는 햇빛 화살에 상처 자국이 불에 덴 듯 뜨거워진다. 그깟 상처가 무슨 대수랴. 카산드라는 고개를 푹 떨구었다.



“캐스.”



낮은 목소리가 나지막이 그녀를 불렀다. 카산드라는 돌아보지도 않고 차갑게 대꾸했다.



“왜.”



굳이 표정을 살피지 않아도 카산드라는 그가 머뭇거리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곧 식사 시간이라서. 퀘이드 단장님이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너도 좀 들래?”



사방에 뒹구는 잡동사니에서부터 이가 나간 마루 바닥까지, 카산드라는 진즉 이곳이 퀘이드 단장의 자경대 대기실임을 짐작하고 있었다. 유진이 들어온 문으로 들이닥치는 온갖 음식 냄새에 카산드라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속이 메슥거려 카산드라는 차갑게 잘라 거절했다.



“됐어.”


“그렇지만 뭐라도 먹어야-”


“됐다고.”



아랫입술을 꽉 짓이기며 고개를 들다 카산드라는 깜짝 놀랐다. 붉은 석양이 푸른 땅거미로 녹아드는 유리창 위에는 샛노란 초상이 희미해진 바깥 풍경을 대신하고 있었다. 눈을 휘둥그레 뜨고 창문에 차츰 또렷해지는 제 얼굴을 이곳저곳 살피다 카산드라는 유진의 말을 따르는 쪽이 낫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불투명한 유리창에 드러난 제 얼굴은 황무지나 다름없이 황량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잘 생각했어.”



왁자하던 분위기는 카산드라가 응접실로 들어서자마자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입을 조잘거리던 카탈리나도, 전투에서 제 공이 지대했다며 잘난 체를 해대던 바리안도, 우울하게 한쪽 구석에 틀어박혀 류트나 만지작거리던 크리스토프도 그녀의 등장에 일제히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다물어버렸다. 얼굴에 와 박히는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카산드라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오래된 절임을 대충 버무려 만든 샐러드와 하몽, 소시지와 과일 잼, 이미 쥐가 절반 이상 파먹은 듯 이빨 자국이 난 치즈와 차갑게 말라비틀어진 빵으로 그들은 말없이 저녁을 먹었다. 식탁에 있는 음식의 거의 절반은 카탈리나의 차지였고, 카산드라는 입맛이 통 없어 식사 내내 남은 부스러기나 깨작거렸다. 피부에 닿는 모든 감각이, 이를테면 아래턱이 딱딱한 빵을 씹는 압각이나 혀가 짠 하몽을 굴리는 미각, 귓가에 와 닿는 속삭임과 눈앞에 어른거리는 인영이 모두 허공에 붕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그녀는 좀처럼 식사에 집중할 수 없었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패배의 감촉이 너무 깔끄러웠다. 그 생생한 감촉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으면서도 머리는 있는 힘껏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주변 모든 공기가 각진 모서리를 내세워 그녀를 찌르고 있었다.



그녀를 둘러싼 주변 모든 이들은 패배자들이었다. 그제야 가슴 깊이 겨우 묻어 두었던 굴욕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패배자들과 함께 앉아 있노라면 자신도 그들과 같은 신세인 것만 같아 카산드라는 얼른 식사를 끝내고 자리를 뜨고픈 마음이 간절했다.



버터와 잼을 발라 햄과 함께 목구멍 너머로 꾸역꾸역 밀어넣다 카산드라는 문득 바리안과 유진에게로 눈길을 던졌다. 둘은 크리스토프와 그녀 사이에 끼어 눈치를 보느라 바빴는데,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시선을 돌리며 식사에 집중하는 척을 해대고 있었던 것이다. 굳이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그 바보 같은 짓거리를 견딜 수 없었던 카산드라는 기어코 한 마디 쏘아붙이고 말았다.



“할 말 있으면 해, 답답하게 굴지 말고.”



무어라 입을 열려던 유진을 바리안이 손사래를 치며 얼른 가로막았다.



“할 말은 무슨, 우리가 무슨 할 말이 있다고 그래요? 형, 맞죠?”


“어....... 그렇지?”



유진은 떨떠름하게 동조했다. 하지만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 크리스토프 역시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그냥 말해 버려. 숨겨서 뭐 해?”



볼이 퉁퉁 부어올라 있는 탓에 크리스토프는 간단한 말을 내뱉는 것조차 몹시 힘들어했다. 아픈 뺨에 얼음 찜질을 해 가며 크리스토프는 열심히 음식을 씹었다. 독을 품은 그늘이 눈두덩 아래 잔뜩 드리워 있었다. 죽은 고목처럼 지치고 메마른 그의 모습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공허한 희망을 향해 손을 뻗는 걸인 같았다. 이마뼈 아래 그러데이션을 그리며 드리운 검은 음영에서 카산드라는 그의 심정이 자신과 같음을 확인했다.



“자네 둘이 말 안 하면 내가 말할 테니 그렇게 알아.”



하는 수 없이 유진은 입꼬리를 비틀다 눈을 질끈 감고 내뱉었다.



“라푼젤이 이곳에 곧 도착할 거야.”



카산드라는 제 귀를 의심했다.



“라푼젤?”



놀라움이 머릿속에서 한결 가시고, 모두의 시선이 제게 쏠린 걸 알아차린 후에야 카산드라는 제 목소리가 지나치게 컸음을 깨달았다.



“왜? 아니....... 이렇게 갑자기? 코로나는 어떡하고-”


“랩스 언니에게 다 생각이 있지 않겠어? 그나저나 캐스 언니, 밥이나 좀 많이 먹어두지 그래? 자고로 많이 먹어야 회복도 빨리 된다구. 그렇게 깨작깨작 먹어서야 배나 차겠어?”


“카탈리나.”



유진의 주의를 듣고도 카탈리나는 종알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하여간 이 동네는 나 없으면 제대로 뭐 하나 돌아가는 게 없다니까. 랩스 언니가 갑자기 불러서 솔스타드에서 발데로스까지 걸어온다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그러게 뭐라도 잡아타고 오지 그랬어. 비행선이나 배도 있고, 하다못해 열차도 있잖아?”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해 바리안을 잠깐 흘겨보다 카탈리나는 볼멘소리로 투덜거렸다.



“뭐 돈이라도 주든가. 일단 최대한 빨리 오긴 오라고 해 놓고 여비를 안 챙겨 주면 어떡해?”


“그동안 라푼젤 누나가 생활비를 얼마나 아낌없이 보내 줬는데, 그건 다 어디다 뒀는데?”


“난 늑대인간이라 식사량이 많다고.”


“그러니까 먹는 데 다 썼다 이거구만. 이왕 말하는 김에 한 마디 보태겠는데, 먹는 양 좀 줄여라.”


“바리안 오빠는 먹고 키나 좀 더 키우지 그래?”


“죽을래?”


“둘 다 닥쳐.”



카산드라와 크리스토프가 동시에 일갈하자 둘은 기 죽은 강아지처럼 슬며시 입을 다물었다. 다치지 않은 쪽 팔꿈치를 탁자에 비딱하게 올리고 카산드라는 생각을 차분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과거의 엘사를 좇기만 하면 모든 것이 쉽사리 끝나리라는 생각은 명백한 오판이었다. 코로나로 향한 한스와 호아킴, 엘사를 서던 제도로 데려간 발데마르, 그리고 이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난 라푼젤까지. 옳은 길을 찾았다고 자신할 때마다 운명은 짓궂은 손길을 들어 그녀를 새로운 길에 내던졌고, 낯선 길에서는 어김없이 새로운 갈림길과 장애물이 그녀를 괴롭혀댔다. 힘없는 장난감에 불과한 카산드라로서는 아무리 발악해봤자 그 주인을 거스를 수 없었다. 개구쟁이 운명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 자신이 카산드라는 다만 너무 분해 견딜 수 없었다.



거친 숨을 뱉으며 카산드라는 중심을 잡으려 애썼다. 패배자가 된 자신을 부정하고 무형의 계단을 딛고 하늘에 가까워지고자 발버둥쳤다. 그녀를 끌어당기는 대지의 힘은 너무도 거셌다. 그에 반해 그녀는 계단이 얼마나 더 남았는지 알지 못했다.



“이슈마엘.”



메마른 눈길로 탁자만 내려다보던 크리스토프가 문득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뭐라고?”



입술을 가볍게 깨물고 침음하다 카산드라는 말을 이었다.



“요지만 얘기할게. 엘사는 ‘얼음꽃’이라는 꽃을 좇고 있었어. 크리스토프 너도 일기를 대강 살펴봤으니 알고 있겠지. 내가 엘사와 코로나의 헌책방에 들렀을 때, 엘사는 ‘얼음꽃’에 관한 정보를 찾고 있었던 거야. 그런데 그걸 언급한 책은 모두 한 사람이 쓴 책이었어.”


“이슈마엘.”


“엘사는 ‘얼음꽃’이 자신의 저주를 풀 열쇠라고 생각했던 거야.”



정령의 껍질에서 탈피할 수단, 엘사는 얼음꽃이 그 역할을 해 줄 수 있으리라 여겼다.



“크리스토프, 너는 엘사를 무작정 아렌델로 데려가겠다고 했지만 하나 되묻자. 과연 네 아내는, 안나 여왕은 죽어가는 자신의 언니를 아렌델에서 마주하면 어떤 심정일까? 일의 순서를 생각해보라는 말이야.”



크리스토프의 미간에 고통스런 세로줄이 잡혔다. 한동안 입을 달싹이며 수없이 머뭇거리다 크리스토프는 이내 고개를 푹 떨구었다. 카산드라는 그의 몸이 가느다랗게 떨리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수심에 잠긴 크리스토프의 어깨는 오늘따라 너무도 작아 보였다.



“시간이 촉박해.”



부르튼 입술을 앙다물고 크리스토프는 슬픔을 삼켰다. 위로의 뜻으로 유진이 어깨 위에 손을 올렸으나 떨림은 좀처럼 멎질 않았다.



“며칠이나 남았지?”



끝이 꽉 잠긴 목소리에 문득 측은지심이 들어 카산드라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일주일 남짓.”


“일주일 안에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해. 서던 놈들에게서 엘사를 구해 내고, 얼음꽃을 구하고, 그 사용법을 알아 내어 엘사에게 적용시켜야 해. 그리고 아렌델에 도착하기까지.”


“잠깐, 잠깐. 그걸 한 번에 하자고?”


“그러면? 피츠허버트, 하나씩 해갖고는 안 돼. 모든 게 시한부야. 시간이 없어. 동시에 진행시켜야 한다고.”



유진은 침착하게 자신의 논리를 펼쳤다.



“한 사람이 동시에 모든 일을 잘 해낼 순 없어, 캐스. 그건 제아무리 유능한 의적이라도, 혹은 제아무리 유능한 경비대장이라도 불가능한 일이니까.”



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느닷없는 노크 소리에 막혀버리고 말았다. 식탁 위를 오가는 대화를 묵묵히 듣기만 하던 퀘이드가 손님을 확인하러 응접실을 나섰다. 검은 후드를 쓴 손님과 함께 돌아온 퀘이드는 퍽 들뜬 기색이었다. 정체 모를 긴장이 방 안에 감도는 가운데 소녀가 검은 후드를 천천히 벗었다. 카산드라의 동공이 삽시간에 커졌다.



5년.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 흘렀지만 카산드라는 소녀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환희에 빠져 자신을 바라보는 소녀를 마주하다 카산드라는 그만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태양처럼 밝은 얼굴이 머릿속을 새하얗게 닦아내고, 묵직한 백광이 심장을 짓누르는 순간. 세상 모든 것들이 오직 소녀를 위해 숨을 죽이고, 시간조차 멈춰버린 이 때. 햇살처럼 맑은 웃음이 카산드라에게 덥석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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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에 8, 9화로 1부를 끝내고 잠시 열흘정도 휴재를 할 생각입니다.


휴재 이유


전개 꼬인걸 해결해야 할 뿐더러 떡밥 정리도 좀 해야하고, 


횡단열차는 엘사 - 카산드라 위주로만 나왔다면 얼음꽃은 카산드라의 비중은 조금 줄어들고 크리스토프와 매티어스 입장을 서술할 생각이라


비축분을 쌓고 흐름 다듬기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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