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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대회 참가작] 녹지 못한 것들 -6-

hippocampu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3.19 20:3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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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얼음 성이 무너졌다. 언제? 그토록 큰 성이 산 위에서 무너졌는데, 나는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한 것이다. 바닥에 떨어져 깨진 유리잔같이 날카로운 파편들만 골짜기에 남아서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녹기를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 일어나지 않을 일이 일어났다. 여왕. 여왕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숲을 지나며 계속해서 귀에 머물던 목소리들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누구라도 알 수 있다. 무엇인가 좋지 않은 일이, 분명 그들에게 일어났다. 마법의 숲에서 일어난 건가? 사고? 어쩌면…. 노덜드라?


항해를 하면서 무력감을 느끼는 것은 흔한 일이다. 도저히 이 바다가 끝이 나지 않을 거라는 불안함, 나는 이 가운데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느낌이, 대양을 나설 때면 언제나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지금 이 배에 타고 있는 사람 모두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을 테다. 옳은 행동이 언제나 옳은 결과를 가져오진 못한다. 아토할란에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다. 몸을 떨면서 술을 가지러 갔던 녀석들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다. 내가 선실을 나설 때는 다들 침착하려 애쓰는 모습이었지만, 왕과 왕비에 눈에 어린 공포를 보면 애써 찾은 침착함도 얼마 가지 못할 것이다. 저 앞에 분명히 강이 보인다. 얼어 붙어있는 강. 헬렌, 미안해. 솔직하게 말할게.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 이번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혼란스러운 상황의 연속이 엊그제부터 끊이질 않는다.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지금 숲으로 달려간다고 해도 대여섯 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다. 여왕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는 모르지만, 마법의 숲에 도착할 때면, 어떻게 되든 한참 늦은 상황이겠지. 위험한 상황이라면, 내가 도착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저 아토할란에 가려는 미친 사람 한 명이 뭘 할 수 있겠어. 목이 간지럽다. 계속해서 기침이 나와. 순록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녹아내리고 있던 얼음 성을 뒤로 그저 계속 걸었던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내가 해야 할 옳은 일이 보이지 않았다. 신기루를 좇는 느낌이다. 처음 마을을 떠났을 때도, 트롤들을 만났을 때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버지라면 지금 어떻게 했을까.


안개가 진하게 낀 날이었다. 물론 그것 때문에 그 자식과 싸운 것은 아니었다. 그런 말을 듣고 어느 누가 주먹질을 참을 수 있었겠어. 

“빌렘,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니?”

“네.” 어머니는 약이 든 바구니들을 침대에 놓으셨다.

“얼굴은 봤어? 약을 발라도 멍들겠다.”

“네. 방금 봤어요.”

“그래서, 그 애가 뭐라든?”

“얘 아빠는 정어리 잡으러 갔다가 죽었다고, 정어리 먹을 때마다 아빠 생각나서 매일같이 감자만 먹는 거라고 그러던데요.”

“...때려 줄만 했네.”

“안 혼내시네요.”

“기분은 어땠니? 그 녀석 때려눕힌 다음에 말이야.”

“안 때린 것보단 낫던데요.” 어머니는 내 얼굴을 한 번, 벽을 한 번 보시고는 입을 여셨다.

“있잖아. 빌렘, 네 아버지가 매일같이 하셨던 말. 기억하니?”

“여보 미안해?” 답은 알고 있었다.

“그거 말고.”

“옳은 일을 하는 게 당연하다.”

“그래, 그런데 때때로는 대체 뭐가 옳은 일인지 감이 잡히지 않을 때가 있어. 내가 지금 뭘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를 때가 있지.”

“그럴 때 엄마는 항상 네 아빠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고 물어본단다. 물론 네 아버지도 예외는 있겠지만, 언제나 옳은 일을 끝까지 하던 사람이니까.” ‘그래서 당신을 버리고 도망쳤어요? 그게 옳은 선택이었어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었다. 오늘은 참기로 했다. 긁어 부스럼 만들 말은 접는 게 좋아.


이번만큼은 어머니가 틀린 것 같다. 아버지를 생각해봐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대로 마을로 돌아가 버리는 것이 옳은 일인 것만 같았다. 가는 방향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이 차다. 아렌델 성 앞에서처럼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순록도 몸을 떨었다. 그런데 차가움이 그때와는 조금 달랐다. 젖은 바람이야. 젖은 바람이 계속해서 내 몸을 돌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이. 물소리? 평범한 강물 소리가 아니다. 댐, 엄마는 아렌델로 연결되는 협곡에 댐이 있다고 했어. 루나드 왕이 우릴 위해 세웠다는 거대한 댐. “그치만 성의 사람들은 저쪽 언덕 아래로 내려가 있어! 여기는 좀 춥다나 봐.” 엄마. 지금 해야 할 일이 떠올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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