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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갤문학/크로스오버] 얼티밋 스파이더맨-프로즌 웹 18화

차빙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2.11 21: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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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가 비행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물어본다면 대부분의 경우 코웃음을 치며 하늘을 날 수 있는 거미 따위는 세상에 없다고 말할 것이다. 거미에게는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는 커녕 아무 것도 없으니까. 그러나 거미가 단순히 비행을 하는 것을 뛰어넘어 대륙에서 대륙으로 자유롭게 옮겨다닐 수 있기까지 하다고 말한다면 어떠한가?

'종의 기원' 이라는 책으로 인류사에 처음으로 생물종의 진화라고 하는 가능성을 제시한 영국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이 자신의 저서 '비글호 항해기'에 저술한 바에 따르면, 1832년 10월 비글호를 타고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항해하던 도중 아르헨티나 해안에서 100km쯤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를 항해하던 비글호 위로 수천 마리의 붉은 거미떼가 쏟아져내렸다고 한다. 다윈은 거미들이 실제로 100km 가량을 날아온 것이 아닌가 하고 추정했지만 그것을 증명할 학술적인 근거가 부족했고, 다윈 사후 현대의 과학자들이 2018년에 거미 비행의 메커니즘을 상세히 밝혀낼 때까지 어떻게 거미들이 하늘을 날 수 있느냐에 관한 논란은 계속되어왔다.

그걸 일일히 설명하려면 이 소설이 더 이상 재미로 보는 소설이 아니게 될 테니 제대로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일단은 거미의 비행은 정전기와 관련이 있으며, 스파이더맨은 결코 거미들이 하는 방식으로 비행할 수는 없다는 것 정도만 알아두기를 바란다. 정 궁금한 사람들은 구글에 '거미 비행' 이라고 쳐보도록. 관련 뉴스나 문서가 촤르륵 나올 테니까.

그리고 스파이더맨은 지금 비행을 하는 거미가 어떤 기분일지 뼈저리게, 그것도 아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CAAAAAW!!! CAAAAAWWWWWWWWWW!!!!"


다시 우리의 주인공들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강추위가 온몸을 감싸는 12월 초의 어느 날, 끝없이 맑고 청명한 하늘 안을 날고 있는 한 형체가 있었다. 약하게 내리쬐는 햇빛을 투명한 몸뚱아리 안으로 잔뜩 머금어 반짝반짝 빛나는 이 얼음 독수리는 멀찍이서 보면 매우 화려한 비행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자신의 몸에 달라붙은 거미 하나를 떼어내기 위해 전력을 다해 몸을 흔들고 뒤집으며 의도치 않은 에어쇼를 펼치고 있었다.

얼음 독수리의 양 눈은 이미 스파이더맨의 거미줄에 가려져있었고, 양 날개는 쉴새없이 퍼덕이며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하늘 위로 기류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스파이더맨은 얼음 독수리의 양 관자놀이 옆에 거미줄을 붙인 상태로 매달려 얼음 독수리가 아렌델 성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애를 쓰고 있는 중이었다. 얼음 독수리의 몸이 너무 심하게 흔들리는 탓에 스파이더맨은 마치 아메리칸 크래커처럼 독수리의 몸에 부딪혔다 하늘로 치솟아올랐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없던 멀미가 생길 지경이었다. 

 

"아아, 이걸 어째, 이걸 어째!"


그런 스파이더맨의 바로 아래쪽에서 계속해서 얼음 발판을 만들어내며 전속력으로 뛰어 얼음 독수리를 쫓아가고 있는 여성의 이름은 엘사, 아렌델의 여왕이었다. 비록 싸우는 방법도 모르고 자신의 얼음 마법은 아이스 몬스터들에게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여왕은 자신의 친구를 도와야 한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마른 하늘을 달리고 있었다.

스파이더맨에게 엑스맨 소속의 오메가 레벨 뮤턴트 아이스맨에 대해 전해들은 이후 엘사는 자신의 능력을 보다 많은 곳에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고심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가 아이스맨과 비슷한 형태의 비행 메커니즘이었다. 사실 비행이라기보다는 발 아래에 끝없이 이어지는 얼음 미끄럼틀을 만들어서 달리는 쪽에 가깝긴 했지만, 빠르게 비행하는 몬스터들을 추격하기에는 제격이었다. 다만 엘사가 이 비행법을 실제로 적용해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기에 아이스맨처럼 발판을 만들어내는 각도까지 계산해서 능숙하게 미끄러질 수는 없었고, 그냥 힐을 벗어던지고 전력을 다해 뛰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럼에도 엘사의 달리기 속도가 꽤나 빠르다는 것은 놀라울 따름이었지만, 엘사는 얼음 마법을 다룬다는 것만 제외하면 보통 사람에 불과했다. 실제로 엘사는 거의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수없이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그렇듯이, 미끄러운 얼음 위를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지치지 않고 수 킬로미터를 달린다는 것은 엘사에게 있어 불가능한 과제였다. 심지어 영웅들도 멀마 달리지 못하고 지쳐버리는 경우가 허다한데 엘사는 오죽할까.

스파이더맨은 얼음 독수리에 매달려 시계추마냥 흔들리면서도 엘사가 걱정되는지 계속해서 아래로 시선을 돌렸다. 돌릴 때마다 따라오는 아픔을 동반한 부딪힘은 덤이었다.


"아니 여왕님-아옥! 따라오지-으악! 따라오지 말라니까요!!" 스파이더맨이 연속해서 얼음 독수리의 단단한 등짝에 얼굴을 부딪히며 엘사를 향해 외쳤다. "이러다가 정말 큰일나요! 아이스 몬스터한테 당하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네가 그렇게 매달려있는데 나 혼자 도망가라고?! 안 돼! 절대 못 가!" 엘사가 숨을 헐떡이면서도 단호하게 외쳤다. "조금만 기다려, 스파이디! 내가... 헉헉... 내가 구해줄 테니까!"


"지금 누가 누굴 구한다는 거예요, 여왕님이야말로 숨 몰아쉬다가 꼴딱 넘어가게 생겼구만!" 스파이더맨은 간신히 줄을 타고 올라가 얼음 독수리의 머리 뒤에 양 발을 단단히 붙였다. "안나 공주님한테는 위험하다느니 어쩌니 하면서 잘만 혼내시더니 여왕님이 더 위험한 행동을 하고 계시면 어떡해요! 이 녀석은 저한테 맡기시라니까요!"


"너야말로... 으허억... 동료들과 함께 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면서! 내가 도와주면-꺄악?!"


"SQUAAAAAAKKKKKKK!!!"


시야가 봉인된 채로 발버둥치던 아이스 몬스터가 갑자기 땅으로 급강하하며 여왕이 만들어놓은 얼음 발판에 부딪혔다. 제법 두께가 있는 얼음 발판이 중력가속도가 더해진 얼음 독수리의 몸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콰장창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나자 그 위를 달리고 있던 엘사는 그대로 무력하게 숲 위로 곤두박질쳤다. 발판에 정면으로 충돌한 여파로 거미줄이 살짝 벗겨져 시야가 조금 드러난 얼음 독수리는 급강하를 하다 말고 다시금 위로 치솟아올랐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엘사는 비명을 지르며 팔을 버둥거렸다. "피터어어어어!!!"


"아이고 맙소사 내가 저럴 줄 알았지!!!"


푸슛. 스파이더맨의 웹 슈터 하나가 거미줄을 뿜어 자유낙하를 하고 있는 여왕의 발꿈치를 홱 낚아챘다. 떨어지다 말고 간신히 얼음 독수리의 꽁무니에 대롱대롱 매달리게 된 엘사는 두려움에 눈을 질끈 감으면서도 윗몸일으키기 하듯 허리를 위로 굽혀 거미줄을 꼭 잡고 버텼다. 한쪽 팔로 엘사의 무게를 지탱하던 스파이더맨은 팔 근육에 크게 힘을 주며 엘사가 매달려 있는 줄을 위로 홱 잡아끌어 엘사를 자신의 옆으로 끌어올린 뒤 거미줄을 촥 쏘아 엘사의 허리를 벨트처럼 묶어 얼음 독수리 날갯죽지 뒤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헉... 헉... 죽는 줄 알았어." 엘사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스파이더맨을 쳐다보았다. "고마워, 피터! 이제 어쩌지?!"


"어쩌긴요, 이 녀석 머리통을 박살내서 땅으로 추락시켜야죠! 머리가 워낙에 커서 언제 다 부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스파이더맨이 락클라이밍을 하듯 얼음 독수리의 머리 위로 기어올라가며 말했다. "여왕님, 이 녀석이 아렌델 성까지 가게 놔둬서는 안돼요! 이 병 안에 든 용액을 날갯죽지에 부으세요! 빨리요!"


스파이더맨은 엘사에게 손을 뻗어 미완성 히팅 웹 용액이 담긴 병을 건넸다. 여왕은 거미줄 하나에 의지한 채로 강한 바람에 비틀거리면서도 팔을 앞으로 휘저어 용액이 담긴 병을 받아들었다. 여왕이 뚜껑을 여는 순간, 얼음 독수리가 홱 방향을 틀자 병에 담긴 히팅 웹 용액이 주루룩 쏟아지며 독수리의 날갯죽지 대신 스파이더맨의 등으로 휙 날아들었다. 용액이 과열되기 시작하자 스파이더맨은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방수 기능 덕분에 용액은 단 한 방울도 슈트 속으로 스며들지 않았지만 용액의 뜨거움은 그대로 전해져왔다.


"으아아아악!!!"


"세상에!! 피터!!"


엘사는 깜짝 놀라 재빨리 손에서 냉기를 뿜어 스파이더맨의 슈트를 식혀주었다. 치이익 하며 등에서 김이 피어오르자 스파이더맨은 극도의 뜨거움과 차가움이라는 상반된 두 가지의 고통을 겪으며 이를 꽉 깨물었다. 얼마 안 있어 엘사의 냉기가 스파이더맨의 용액에서 나온 열기를 중화시켜주었지만, 여전히 등은 화상을 입은 듯 욱신거렸다.


"아이고고, 아파라. 여왕님. 안 다치셨어요?!" 스파이더맨은 고개를 뒤로 젖혀 엘사를 바라보았다. 엘사의 눈망울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혀 있었다. "여왕님...?"


"피터, 세상에. 피터...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러려고 한 게 아닌데 어쩌다 보니까..." 엘사의 눈빛이 크게 흔들리며 숨이 가빠지자, 스파이더맨은 안 그래도 쉽게 흔들리는 엘사의 멘탈이 무너지기 직전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다 나 때문이야. 내가 또 누군가를 상처입혔어. 내가... 내가...!"


"여왕님, 여왕님! 진정하시고 제 눈 똑바로 쳐다보세요!" 스파이더맨이 엘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외쳤다. "여왕님, 방금 그건 사고였잖아요. 여왕님 잘못이 아니예요. 지금은 자책하기보다는 이 녀석을 빨리 쓰러뜨릴 방법을 연구해야 해요!"


"이건 내 잘못이야. 나 때문에 네가 다쳤잖니! 이걸 어떡해. 빨리 치료해야-"


"지금은 아렌델 사람들의 목숨이 먼저예요! 우리가 머뭇거리고 있다가 이 녀석이 아렌델로 넘어가기라도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다쳐요!" 스파이더맨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 몸이야 치료하면 되지만 우리가 잘못해서 죽은 사람들은 누구도 되돌릴 수 없어요! 잘 아시잖아요!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 가지고 불안해하지 말아요. 당장 할 수 있는 옳은 일을 먼저 하자구요!"


스파이더맨의 말이 엘사의 정신을 퍼뜩 차리게 했다. 엘사는 가슴에 손을 얹고 심호흡을 깊게 내쉬었다. 깨끗하고 차가운 공기가 폐를 채우자 죄책감과 당황으로 헤집어졌던 머릿속이 찬찬히 정돈되기 시작했다. 그래. 마냥 당황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내게는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어. 피터가 내 책임인 것처럼 그들도 내 책임이야. 단 한 사람도 헛되이 죽게 놔둘 수 없어.

엘사는 눈을 감고 이 거대한 얼음 괴물새를 무찌를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스파이더맨의 편치력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건틀릿으로 때려부수기에는 독수리의 머리가 너무 크고 단단해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릴 터였다. 날개의 이음새 부분을 공격할까? 아니야. 스파이더맨을 여기까지 내려오게 하는 건 위험 부담이 너무 커. 이미 다친 상태인데 더 무모한 작전에 밀어넣을 수는 없어.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내 선에서 해결하는 방법이 없나? 내 마법은 효과가 없지만... 잠깐, 마법?


"스파이디, 방금 좋은 수가 생각났어!" 번쩍. 엘사의 머리 위에 깨달음의 전구가 떠올랐다.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니? 그 때 내가 날린 얼음 뭉치에 늑대인간 머리가 쪼개졌었잖아!"


"네 기억나요! 그게 왜요?" 강철 건틀릿이 머리를 연속으로 가격하자 얼음 독수리는 쾌애애액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며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스파이더맨은 다시 거미줄을 쏘아 반쯤 드러난 독수리의 시야를 다시금 완전히 차단한 뒤 얼음 독수리의 머리에 연신 주먹을 날렸다.


"아이스 몬스터들은 얼음을 흡수할 수 있는데 내가 던진 얼음뭉치에 머리가 쪼개지는 건 이상하지 않아?" 엘사가 얼음 독수리의 등짝에 몸을 딱 붙인 채로 말했다. "그 얼음 늑대인간은 자기를 공격한 게 얼음 뭉치인지도 몰랐던 것 같았어! 얼음 뭉치가 날아오는 걸 보지 못했고 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서 그걸 판별할 새도 없었던 거야!"


"그러고 보니... 그 때 늑대인간은 부하 늑대가 도와주고 나서야 얼음을 흡수할 수 있었어요. 저한테 당해서 완전히 박살났던 아이스 몬스터들은 눈이 잔뜩 깔려있는 땅바닥에 흩어져도 다시 부활하지 못했구요!" 스파이더맨이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렇다는 말은 이 몬스터들은 어떤 상황에서건 간에 얼음을 흡수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흡수하고자 하는 의도가 분명히 있을 때에만 흡수할 수 있는 거지." 엘사 여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처럼 아이스 몬스터의 신체와 얼음의 접촉 시간을 최소화하고 한방 한방에 강한 파괴력을 실을 수 있다면, 내 마법으로도 충분히 몬스터들을 상대할 수 있을 거야! 대놓고 앞에서 쓰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기습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좋았어!! 역시 여왕님이야. 진짜 천재적이라니까!" 스파이더맨의 환호에 엘사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근데 그걸 지금 어떻게 응용하죠??"


"걱정 마, 나한테 계획이 있으니까!" 엘사가 외쳤다. "조심히 뛰어내려야 해! 알았지?!"


"뛰어내려요? 왜요??"


엘사는 얼굴을 향해 불어오는 강한 바람에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손을 앞으로 뻗어 냉기를 쏘아냈다. 손에서 사라락 뿜어져 나온 냉기가 얼음 독수리의 머리에 매달린 스파이더맨의 오른쪽 어깨를 지나쳐 허공에 소용돌이의 형태로 뭉쳐졌다. 냉기 소용돌이 안에서나타난 것은 대장간에서나 쓸 법한 거대한 모루의 형상이었다. 실제로 저걸 열기로 가득한 대장간에서 썼다가는 금세 물바다가 되어 버릴 테지만. 아니, 애초에 모루 크기가 작은 초가집 하나만 하니 대장간에 들어갈 수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여왕님이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걸 만드신 걸까 하고 어리둥절해있던 스파이더맨은 자신들이 타고 있는 얼음 독수리가 모루의 밑바닥을 향해 빠르게 솟아오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엘사가 만들어낸 엄청나게 무거운 얼음 모루는 슈우우웅 하고 허공을 가르며 독수리의 머리, 다시 말해 스파이더맨이 매달려있는 그 위치를 향해 낙하하고 있었다!


"오 쉣-!"


찌리리릿 하고 스파이더 센스가 강하게 따끔거리자 스파이더맨은 단단히 잡고 있던 거미줄을 놓고 몸을 날려 공중제비를 홱 넘어 얼음 독수리의 머리에서 떨어졌다. 웹 슈터에서 쏘아진 거미줄 한 가닥이 얼음 독수리의 등에 딱 달라붙어있던 엘사를 낚아채 스파이더맨의 품으로 끌고 온 바로 그 순간, 앞을 볼 수 없는 얼음 독수리는 엘사가 만들어낸 얼음 모루에 머리부터 콰직 부딪히며 그대로 중력가속도가 더해진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온몸이 산산조각났다.

공중에 얼음 독수리의 잔해가 흩뿌려지며 햇빛에 비쳐 아름답게 반짝거렸다. 거대한 얼음 모루는 그대로 나무가 무성한 숲 한가운데로 쿵 하고 떨어졌다. 떨어진 자리에 솟아있던 수십 그루의 소나무가 콰지직 하며 짓이겨지자 스파이더맨은 한 팔로 엘사를 붙든 채로 다른 손으로 자신의 어깻죽지 한가운데를 탁 하고 쳐 그 부분에 숨어있던 거미줄 낙하산을 확 펼쳤다. 낙하산 덕분에 엘사와 스파이더맨의 낙하속도가 빠르게 감소하자 엘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먹혀서 다행이야. 갑자기 생각해낸 거라 좀 허술한 점이 많긴 했지만 이 정도면 괜찮았던 것 같아." 엘사는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소매로 닦아냈다. "미안해, 피터. 느닷없이 이런 계획에 끌어들여서. 위험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너 정도 되는 반사신경을 가진 아이라면 충분히 피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어느새 절 제대로 파악하셨네요, 여왕님. 물론 그 정도는 제가 잘 피하죠." 스파이더맨이 씩 웃었다. "그나저나 방금 그 계획 진짜 대담했어요! 모루를 떨어뜨린다니 무슨 옛날 톰과 제리 만화를 보는 것 같긴 했지만 확실히 효과적인 작전이었어요. 여왕님 최고!"


"어... 그, 그래. 그 톰과 제리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칭찬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거지?" 엘사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그럼요. 그나저나 환경보호를 해야 하는데 거꾸로 환경파괴를 하게 됐네요." 스파이더맨이 거대한 얼음 모루 때문에 부러진 수십 그루의 나무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저 박살난 나무들을 다 어떻게 하죠?"


"우리 왕국이 책임지고 유용하게 써주면 되지. 마침 유치원 보수공사를 할 목재가 부족하던 참인데 벌목의 수고가 줄어들었구나." 엘사가 말했다. "다 네 덕분이야, 피터."


"에이, 사고를 친건 여왕님인데 왜 제가 감사를 받아요. 히히. 농담이고, 저야말로 고마워요 여왕님. 여왕님이 아니었다면 이 녀석을 못 잡았을지도 몰라요."


스파이더맨이 헤실헤실 웃자 여왕은 입을 가리는 것도 잊고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은 어느새 엘사가 만들어낸 거대한 모루 위로 날아들고 있었다. 평평하고 매끄러운 모루 위로 발바닥이 닿자 스파이더맨은 바람에 온몸이 떠밀려가지 않도록 재빨리 낙하산을 어깨에서 분리해낸 뒤 엘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직 히팅 웹 용액이 입힌 화상이 남아있는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등이 쓰라렸다, 스파이더맨이 얼굴을 찡그리며 등을 문지르자 여왕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피터, 너 괜찮니?" 엘사가 스파이더맨의 등 뒤에 손을 가져다 대자 기분 좋게 시원한 냉기가 스며들었다. "이러면 좀 나아질까?"


"어휴. 휴우. 완전 좋아요. 피부가 계속 불에 덴 듯 뜨거웠는데 한결 낫네요." 스파이더맨이 마스크를 벗고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목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여왕님 덕분에 화상 자국이 안 남겠어요. 아. 아니, 그, 딱히 화상을 입었다는 건 아니고요."


엘사는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피터. 내가 좀 더 조심했어야 했어. 내가 좀처럼 이런 실수를 하는 사람이 아닌데..."


"에헤이! 괜찮아요. 이 정도는 별 거 아니라니까요. 제 몸에 이것 말고도 상처가 얼마나 많은데요." 스파이더맨이 환하게 웃었다. "죽을 뻔한 적은 있어도 절대 죽지는 않는 게 스파이더맨이라구요. 크게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어떻게 신경을 안 쓰니. 내 친구가 이렇게 다쳤는데." 엘사는 스파이더맨 등 부위의 슈트를 이불보처럼 꼭 쥐었다. "넌 네가 얼마나 많이 다치고 힘들어지건 간에 계속 신경쓰지 말라고만 하는구나. 내가 널 걱정하는 게 그렇게 싫은 거니? 그래서 지금까지 트롤 서식지에 다녀와서 들은 얘기를 안 한 거야?"


스파이더맨은 뒷머리를 긁으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왜 이 애기가 안 나오나 했네. "여왕님, 그런 게 아니란 거 아시잖아요. 이런 상황이 벌어질까봐 얘기하고 싶지 않았던 건데.... 보아하니 여왕님의 맘을 제가 슬프게 만든 것 같네요."


엘사는 아무 말 없이 스파이더맨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 맑고 푸른 눈빛은 조용하고 차분히, 그러나 매우 적극적으로 스파이더맨의 마음을 읽어내려 하고 있었다. 자신의 영혼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는 듯한 엘사의 시선에 스파이더맨은 맘이 복잡해졌는지 손바닥으로 맨얼굴을 냅다 비비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트롤들이 고대 문헌을 뒤져서 절 돌려보낼 주문을 찾아야 한다는데, 운 나쁘면 돌아갈 방법을 아예 못 찾을 수도 있대요." 스파이더맨이 얼음 모루 위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돌아갈 방법은 고사하고 제가 어떻게 여기로 왔는지도 알아낼 수가 없고요. 제 몸에 깃든 거미 토템인지 뭔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래요."


"세상에, 피터... 정말 유감이구나." 엘사는 슬픈 표정으로 스파이더맨의 곁에 앉아 허공을 응시했다. "설마 그렇게 절망적인 얘기가 나올 줄은 몰랐어. 다른 방법은 없는 거니?"


"없대요. 많은 걸 안다고 자부하시는 패비 장로님도 시간을 다루는 마법에 관한 건 모르시나 보더라고요." 스파이더맨은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차라리 잘됐죠 뭐! 아이스 몬스터들을 추적해서 때려잡는 데 더 신경을 쏟을 수 있게 됐잖아요. 나머지는 뭐 트롤들이 알아서 해 주겠죠. 전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돼요."


엘사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손을 뻗어 스파이더맨의 뒷머리를 가만히 쓸었다. "이런 때엔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네가 원래 시대로 안전하게 돌아갔으면 좋겠지만 나도 시간 여행에 대해서 아는 건 하나도 없고..."


"이래서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았던 거예요. 여왕님의 그런 표정을 보고 싶지 않아서." 스파이더맨은 고개를 푹 숙였다. "여왕님이 고작 저 같은 이방인 놈 하나 때문에 맘고생을 하신다는 게 싫었어요. 안 그래도 여러가지 일로 힘드신 마당에 더 부담을 안겨드리고 싶지 않았거든요. 되도록이면 아이스 몬스터 사태가 끝날 때까지 함구하고 있으려고 했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네요."


엘사는 짐짓 화난 척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스파이디-"


"알아요, 알아요. 멍청한 생각이라는 거. 죄송해요. 다시는 비밀 같은 거 숨기지 않을게요." 스파이더맨이 엄마에게 혼나는 어린아이같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이제는 진짜로 신경쓰지 않으셔도 돼요. 왜냐면 방금 전에 해답을 얻었거든요."


"해답을 얻었다고? 언제?" 엘사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제자리에서 일어나 지평선을 바라보는 스파이더맨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 가지고 불안해하지 말고 당장 할 수 있는 옳은 일을 먼저 하라. 제가 방금 한 말이죠?" 스파이더맨이 허리에 양 손을 짚으며 말했다. "전 원래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맘이 어지러워져 있었지만, 제 본능은 어느샌가 이미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었어요. 아렌델의 사람들을 돕는 거요. 너무 심하게 몰두한 것도 사실이지만 어쩌면 제 본능은 이성에게 그걸 일깨워주고 싶었던 건지도 몰라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답을 찾아놓고도 그걸 모르고 있던 거예요."


엘사는 스파이더맨의 말을 여러 번 곱씹었다. "당장 할 수 있는 옳은 일을 먼저... 옳은 말이구나. 하지만 네가 원래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잖니?"


"그렇죠. 하지만 제가 원래 시대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는 게 먼저잖아요. 저 혼자만의 걱정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그 좋은 사람들을 져버릴 순 없는 노릇이니까요." 스파이더맨이 여왕에게 고개를 돌렸다. "제가 어느 시대에 떨어졌건 상관없어요. 전 스파이더맨으로서 사람들을 구하고 그들이 삶을 이어가도록 도우면 되는 거예요. 항상 그래왔듯이 말이죠."


일순간 온종일 하늘을 뒤덮고 있던 뿌연 안개가 걷히며 스파이더맨의 머리 위로 햇살이 환하게 쏟아졌다. 밝은 햇빛이 스파이더맨의 몸을 뒤덮자 그의 미소가 더욱 빛나보였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엘사는 이 모습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네가 정말 그걸로 괜찮다면 나도 더 이상 말하지 않을게." 엘사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스파이더맨을 따라 일어섰다. "하지만 정말 견디지 못할 정도로 힘들어지는 때가 온다면... 우리가 옆에 있어줄게. 온 아렌델과 내가. 아렌델의 선왕이자 나의 아버지인 아그나르의 이름에 걸고, 절대로 네게서 등을 돌리지 않겠어."


"에이, 너무 오버하신다. 여왕님이 제 친구가 되어주시는 것만 해도 영광인데." 그저 가만히 미소를 짓는 엘사를 향해 스파이더맨은 부끄러움을 감추려 능청스럽게 말했다. "고마워요 여왕님. 저도 제 소임을 다해서 아렌델을 지키겠습니다. 자, 그럼 갈까요? 밀시아가 황금 드레스를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그래, 집에 가자. 근데 저기..." 여왕은 뭘 말하려는 건지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저, 저기 그게..."


"왜요? 또 무슨 문제 있어요?" 스파이더맨이 엘사를 향해 의문스러운 눈길을 주었다.


"...나도 그 웹스윙이란 거 한번만 해 보면 안될까?" 엘사가 초롱초롱한 눈길로 스파이더맨을 바라보며 물었다. "네가 맨날 거미줄에 매달려서 왕국을 날아다닐 때마다 엄청 재밌어보이고 그래서 혹시 나도 할 수 있을까 해서..."


"...........풋!!" 스파이더맨의 입에서 큰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곧이어 스파이더맨은 배를 잡고 깔깔 웃기 시작했다. "아하하하하!! 아 그 그게 그렇게 재밌어 보이셨구나! 그래서 평소에도 내가 날아다니는 뒷모습 그렇게 오랫동안 쳐다보고 계셨던 거예요?? 여왕님 은근히 스릴에 관심이 많으시구나. 아... 역시 자매는 닮는다더니. 이런 면은 안나 공주님이랑 똑같으시네!"


"놀리지 마! 진짜로 타 보고 싶어서 이러는 거란 말이야." 홍조가 번져 엘사의 귓볼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딱 한 번만 시켜줘. 응? 이런 부탁 다신 안 할게. 그러니까 딱 한 번만."


스파이더맨은 큰 미소를 그대로 간직한 채 마스크를 다시 뒤집어썼다. "여왕님이라면 한 번이 아니라 수십 번이라도 타게 해 드릴게요. 자자, 사양하지 말고 업히세요!"


"어, 으, 으응." 엘사는 혹시라도 떨어질까 스파이더맨의 어깨에 자신의 팔을 휘감고 딱 붙어 매달렸다. "너무 갑자기 출발하지만 마아아아아아아아아!!!!" 스파이더맨은 엘사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미 엘사를 들쳐업고 마치 다이빙 선수처럼 모루의 가장자리로 뛰어내리고 있었다. 지구의 중력이 자신과 스파이더맨을 아래로 끌어당기자 엘사는 자신의 호기심이 급속도로 후회되기 시작했다.




ULTIMATE SPIDER-MAN

FROZEN WEB

챕터 18 - 거미 대 독수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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