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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갤문학/크로스오버] 얼티밋 스파이더맨-프로즌 웹 15화

차빙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1.29 23:3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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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벤! 달려! 더 빨리!!" 안나가 크리스토프 대신 한 손에 고삐를 잡은 채로 다른 한 손으로 류트를 붕붕 휘두르며 외쳤다.


"스벤한테 함부로 명령 내리지 말라니까요!" 뒷좌석에서 스파이더맨과 함께 서 있던 크리스토프가 소리쳤다. "그리고 그 류트 함부로 휘두르지 마요! 비싼 거예요!"


협곡 안으로 들어서자 높게 솟은 나무들이 햇빛을 가려 주위가 어둑어둑해졌다. 스벤이 온 힘을 다해 전속력으로 눈길을 달리자 썰매가 아까보다 심하게 덜컹거렸다. 양 갈래로 묶은 안나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리며 시야를 가리자 안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아예 쓰고 있던 가죽 모자 안으로 땋은 머리 양쪽을 집어넣었다. 크리스토프와 스파이더맨이 뒷좌석에 버티고 서 있는 가운데 올라프는 상황 파악을 전혀 하지 못한 듯 앞좌석 위로 고개를 내밀고 깔깔 웃었다.


"우와하하하하! 완전 신난다!!" 올라프가 놀이기구를 타는 것처럼 양 팔을 위로 올리며 즐겁게 비명을 질렀다. "엘사가 만들어준 얼음 미끄럼틀 타는 것 같아!"


"와아우. 그, 그래! 완전 신나지? 그치만 위험하니까 여기 아래쪽에 들어가 있자!" 안나는 류트의 뭉툭한 끝부분을 사용해 앞좌석 아래의 빈 공간에 올라프의 몸을 욱여넣었다. "내가 신호할 때 까지 거기서 나오면 안 돼, 알았지?"


올라프는 순진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안나!"


스파이더맨은 흡착 능력으로 덜덜덜 진동하는 썰매 밑바닥에 양 발바닥을 단단히 붙이고 썰매의 뒷꽁무니를 쫓아 달려오는 아이스 몬스터들을 주시했다. 눈을 부릅뜨고 포효를 내뱉으며 튼튼한 다리로 눈길을 박차고 자신들을 쫓아오는 아이스 몬스터들은 총 다섯 마리의 사자 형상을 하고 있었다. 몬스터들은 무리를 통솔하는 역할을 맡은 듯한 수사자를 네 마리의 암사자가 둘러싼 형태로 진형을 이루어 쫓아오고 있었다. 수사자의 목덜미에는 풍성한 갈기를 조잡하게 따라한 형상의 얼음덩이가 매달려 있었다.

좀 평화로운 날인가 싶었는데 몬스터라니. 거기다가 이번에는 다섯 마리? 아이고, 내 팔자가 그럼 그렇지 뭐. 스파이더맨은 얼굴을 찡그리며 썰매를 끌고 달리는 스벤에게 잠시 눈길을 돌렸다. 스벤은 세 사람과 눈사람 하나의 체중을 잘 버티며 달리고는 있었지만 갈수록 지쳐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평소처럼 몬스터들에게 거미줄을 걸어가며 싸웠다가는 온통 얼음으로 이루어져 무거운 몬스터들의 체중을 버티지 못하고 스벤이 넘어지거나 썰매가 뒤집힐 수도 있었다. 최대한 신중하게, 스벤에게 무리를 주지 않는 선에서 동료들을 지키며 싸워야 했다.


"스벤, 내가 신호를 하면 그 방향으로 썰매를 이동시켜!" 스파이더맨이 다시 아이스 몬스터들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힘들다는 건 알고 있지만, 지금은 네 역할이 가장 중요해! 알았지?"


"푸르륵!" 미친 듯이 질주하던 스벤은 비장한 표정으로 거칠게 콧김을 내뿜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너까지 스벤한테 명령을 내리는 거야??" 크리스토프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스파이더맨을 쳐다보았다. "내가 그랬잖아. 스벤의 주인은 나라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전장에서 위계서열 일일이 따지면서 누가 명령을 내리네 못 내리네 하고 왈가왈부하면 못 싸워요! 형님은 물론이고 동료들까지 모조리 죽는 수가 있다고요!" 스파이더맨은 주머니에서 특수한 재질로 만들어진 작은 약병을 꺼내 크리스토프에게 건넸다. "자요, 이거 받아요!"


"어? 이게 뭔-으갸갸갹!" 크리스토프는 병을 받아들려다 썰매가 덜컹거리는 바람에 병을 거의 놓칠 뻔했다. "휴우... 놓칠 뻔했네. 이게 뭔데 그래?"


"제 실험작이예요. 아마 녀석들을 상대하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왼쪽!" 스파이더맨이 신호하자 스벤이 몸을 왼쪽으로 틀었다. 얼음 사자의 발톱이 아슬아슬하게 썰매 끝부분을 스쳐 지나갔다. "위쪽의 버튼을 누르면 여기 작은 구멍으로 용액이 나와요! 이걸 칼에 바르세요! 최대한 빨리요! 절대로 용액이 몸에 닿으면 안 됩니다!"


"어, 아, 알았어!"


크리스토프는 버튼을 눌러 병 내부의 용액을 칼날에 촤아악 도포했다. 몇 초 뒤 도포된 용액이 고열을 내뿜으며 칼날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하자 크리스토프는 경탄하는 표정으로 입을 쩍 벌렸다.


"우와... 검이 한순간에 뜨거워졌어!" 크리스토프는 검을 몇 번 휘두르고 자세를 잡았다. "이렇게 좋은 게 있으면 진작 꺼내지 그랬어?"


스파이더맨은 마스크 너머로 씨익 미소를 지었다. "양이 얼마 안 되거든요. 아껴서 써야죠!"


스파이더맨은 아렌델로 오기 전 자신의 거미줄을 좀 더 다양한 환경에서 쓸 수 있게 만들기 위해 웹슈터를 개량하는 실험을 하던 중이었다. 물론 스파이더맨에게는 이미 자신이 개발한 576가지의 다양한 거미줄 조합 사출 방식 이외에도 전기를 내뿜어 상대를 감전시키는 테이져 웹, 섬광탄처럼 강한 빛으로 상대의 시각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는 플래시 웹, 물을 흡수하고 방출하는 워터 웹, 적을 얼려버리는 크라이오 웹 등 다양한 종류의 특수 거미줄 용액 카트리지가 있었지만, 왜 다다익선이라고들 하지 않는가. 빌런을 상대하는 방법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이니까.

아렌델로 오기 전까지 스파이더맨이 연구하고 있던 특수 거미줄은 붙인 물체를 초고열로 달구는 히팅 웹이었고, 이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은 다름 아닌 사냥꾼 크레이븐이었다. 크레이븐이 사용하는 사냥용 그물의 내부에는 히팅 코일이 내장되어 있어 포박한 '사냥감'의 살갗을 고열로 지져 큰 고통을 줄 수 있었다. 물론 스파이더맨은 이 히팅 웹을 크레이븐처럼 악독하게 사용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쏘면 해가 되겠지만 서리 거인들이나 얼음 능력자들을 상대하는 데엔 제격일 테고, 또 자물쇠로 잠긴 문 같은 경우에는 굳이 힘쓰지 않아도 손쉽게 녹여서 열 수 있을 테니 만들어만 두면 여러모로 편리할 터였다.

문제는 용액이 자체적으로 초고열을 내뿜게 할 방법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었고, 또 반드시 웹 슈터에서 발사되고 난 이후에 온도가 올라가게 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스파이더맨의 거미줄은 기본적으로 불타지 않는 재질로 되어있지만 열 전도성은 낮았기 때문에 고온을 전달할 수 있으면서도 장력과 탄성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재질로 조합법을 바꾸어야 했다.

이에 고심하던 스파이더맨은 시행착오를 거쳐 용액을 직접 웹 슈터에서 발사하는 것이 아닌 작은 캡슐을 사출해 상대에게 부착시켜 터뜨리는 형태로 최종 디자인을 정하고 캡슐 내부의 거미줄 용액이 히팅 코일 역할을 할 수 있게끔 조합법을 바꾸기 시작했다. 만일 히팅 웹이 완성된 채로 아렌델에 올 수 있었더라면 더없이 좋았겠지만, 이 아이디어를 낸 것은 아렌델로 오기 불과 2주 전이었다. 히팅 웹 용액은 아직 시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라 열은 낼 수 있었지만, 점성이 없어 거미줄 형태로 만들 수 없었다. 용액을 쓸만하게 만들려면 더 연구할 시간이 필요했다.

연구할 시간을 내기도 전에 아렌델로 불려 오긴 했지만, 운좋게도 피터는 시험작 용액 샘플 몇 개를 가방에 넣어서 다니는 습관이 있었다. 비상시에 아이스 몬스터들을 상대하려면 이보다 더 좋은 아이템이 없었다.


"우와, 그걸 뿌리면 무기가 뜨거워지는 거야?" 안나가 신기한 표정으로 열기가 올라오는 크리스토프의 검을 쳐다보았다. "나한테도 주면 안 돼? 나도 검 가져왔는데!"


"지금 가져온 게 한 병밖에 없어서 안 될 것 같네요. 대신 이거 쓰시는 건 어때요?" 스파이더맨은 뒷좌석에 놓여있던 횃불을 안나에게 건넸다.


"와, 횃불이네! 무게도 나름 나가는 게 둔기로 쓰기 딱 좋겠어!" 안나는 좌석 아래에 숨어있는 올라프에게 류트를 건네주고 썰매 앞에 달린 램프를 이용해 횃불에 불을 붙였다. "올라프, 그 류트 좀 갖고 있어!"


"오우 오우! 나 연주해도 돼? 진짜 멋있게 연주할 수 있는데!" 올라프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안나는 마치 귀여운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처럼 웃으며 올라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알았어 올라프. 대신에 그 아래에서만 연주해야 돼?"


크리스토프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 뭐라고? 올라프, 너 류트 교습받은 적 없잖-"




BGM: Roundtable Rival -Lindsey Stirling HQ [audio]


크리스토프의 말을 무시한 올라프는 어디서 가지고 왔는지 얇은 줄이 팽팽하게 매어진 나무 막대기를 꺼내들고 마치 바이올린 연주하듯 류트 줄을 문지르며 매우 빠른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오우, 얘가 음악에 재능이 있는지는 또 몰랐는데. 스파이더맨은 어느새 발을 탁탁 구르며 박자를 맞추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야 올라프! 그렇게 연주하면 줄 다 망가지잖아!" 크리스토프가 울상을 지었다. "그거 당장 이리 내!"


"크형! 사자!!"


"ROARRR!!"


스파이더맨은 크리스토프를 옆으로 밀쳐내고 괴성을 내뱉으며 달려드는 암사자의 얼굴을 주먹으로 퍽 강타해 뒤로 날려보냈다. 산길을 따라 저만치 굴러떨어진 암사자는 잠시 머리를 세차게 저은 뒤 재빨리 일어나 속도를 높여 금방 썰매를 따라잡았다.


"우와, 죽는 줄 알았네!" 크리스토프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고마워, 피터."


스파이더맨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또 한 마리의 사자를 주먹으로 쳐날린 뒤 크리스토프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천만의 말씀! 배경음악도 깔렸으니까 이제 제대로 한번 싸워 보자구요!"


스파이더맨의 웹 슈터에서 촤라락 뿜어져 나온 거미줄이 마치 볼라와 같은 형태로 변해 날아가 암사자 한 마리의 앞다리를 휘리릭 휘감았다. 앞다리가 순식간에 묶여버린 얼음 사자는 그대로 중심을 잃고 고꾸라지면서 눈바닥에 머리를 우스꽝스럽게 콱 박아 머리가 쩍 갈라져 커다란 금이 생겨났다.

스파이더맨이 바닥에 쓰러진 암사자에게 거미줄을 쏘아 끌어당겨 공중으로 확 띄우자, 크리스토프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기합을 내지르며 온 힘을 다해 달구어진 칼을 휘둘렀다. 뜨겁게 달아오른 칼날이 몬스터의 머리에 난 금을 스르륵 파고들자 치이익 하고 얼음이 녹는 소리와 함께 몸뚱어리 전체가 세로로 쩍 갈라졌다.


"방금... 방금 내가 한 거야?!" 크리스토프는 양 손을 위로 올리고 승리의 함성을 내질렀다. "워후우우! 안나! 방금 봤어요?!"


안나는 호응하듯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손에 든 횃불을 붕붕 휘둘렀다. "봤어요! 우리 자기 최고다!!"


"크리스토프도 이제 잘 싸우네! 라그나르 장군님이 기뻐하시겠어!" 올라프가 계속해서 류트를 연주하며 외쳤다. 


"그러게 말이야. 그럼 이번에는 제가 멋진 모습을 보여드릴 차례네요!" 이렇게 말한 스파이더맨은 갑자기 썰매에서 홱 뛰어내렸다. "스벤, 난 신경쓰지 말고 계속 달려!"


"뭐?! 아니 잠깐만!!" 크리스토프가 다급하게 외쳤다. "뭘 어쩌려고?!"


"이러려구요!" 스파이더맨은 가장 덩치가 큰 수사자 위에 사뿐히 내려앉아 수사자의 눈에 거미줄을 쏘아붙인 뒤 길게 잡아늘여 임시 고삐를 만들었다. "혹시 로데오라고 들어 보셨나 모르겠네?"


갑자기 시야가 차단되자 크게 당황한 수사자는 속도를 전혀 늦추지 않고 계속 썰매를 쫓아 달리면서도 몸을 거칠게 흔들어 스파이더맨을 떼어내려 발버둥쳤다. 스파이더맨은 수사자의 거센 몸부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미줄을 단단히 잡고 버티며 고삐 한쪽을 홱 잡아당겨 수사자의 방향을 틀었다. 수사자의 큼직한 통짜 갈기가 바로 왼쪽에서 함께 달리고 있던 암사자와 쾅 부딪혔다. 수사자는 잠시 몸을 휘청거릴 뿐 별 탈 없이 계속 달렸지만, 갈기에 얼굴을 박은 암사자는 그대로 비탈길에 굴러떨어져 바로 아래에 있는 돌무더기에 부딪혀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하하! 좋았어! 맛이 어떠냐! 좋은 분위기 다 망친 벌이야!" 크리스토프가 얼음 사자의 잔해들을 향해 혀를 쏙 내밀었다.


"이야 교통사고 한 번 거 하게 나셨네! 보험금은 들어놓으셨나 모르겠어?" 스파이더맨은 쿡쿡 웃다가 갑자기 웃음을 멈추었다. "우와. 내가 이런 고약한 농담을 하다니. 마치 데드풀 같잖아."


"데드풀은 또 누구야? 히야앗!!" 안나는 횃불을 휘둘러 가까이 따라붙은 암사자 한 마리를 뒤로 쳐낸 후 어깨를 삐끗했는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잇. 아이고 어깨야..." 


"쉴 새 없이 나불거리는 못생긴 용병 녀석 하나 있어요! 어휴, 그 녀석 얘기하려면 정말 끝도 없을걸-훠우!!"


수사자 오른쪽에서 달리던 암사자가 수사자 위에 올라탄 스파이더맨에게 달려들었다. 스파이더 센스로 위협을 감지한 스파이더맨은 잠시 거미줄 고삐를 놓고 제자리에서 홱 뛰어올라 자신에게 닿기 직전의 공격을 가볍게 회피했다. 스파이더맨을 할퀴려던 암사자의 발톱이 얼음 살갗을 쭉 찢자 수사자는 고통스러운 포효를 내뱉었다. 암사자가 수사자의 몸뚱아리에 깊이 박힌 자신의 발톱을 빼내려 안간힘을 쓰는 동안 암사자의 하반신이 바닥에 질질 끌렸다.


"웃차, 어이 거머리 씨? 동족을 사냥하려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은데?" 다시금 수사자의 등 위에 가볍게 착지한 스파이더맨이 쭈그려 앉아 암사자를 내려다보았다. "아니면 뭐야, 부부싸움이라도 한 거야? 하긴 뭐 남자가 이렇게 애인을 많이 데리고 있는데 화를 안 내는 게 이상한 거지만."


"ROAAAAARRRRR!!!" 수사자의 몸뚱이에 위태롭게 매달린 암사자는 스파이더맨의 얼굴을 향해 포효를 내뱉었다.


"으르렁 으르렁 으르렁 대기만 하고, 좀 다른 방법으로 위협해 보면 안 돼? 너희는 할 줄 아는 말이 그것밖에 없어?" 스파이더맨은 오른손의 강철 건틀릿을 고쳐맸다. "아 맞다, 너흰 말할 줄 모르는구나. 그럼 내가 말하는 법 가르쳐 줄게. 따라 해 봐. 아야!"


스파이더맨은 암사자의 콧잔등을 향해 연속해서 주먹을 날렸다. 한번, 두번, 세번. 퍽 퍽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암사자의 얼굴이 우그러지며 얼음 조각이 팍 튀었다. 튀어 오르는 것이 얼음 부스러기가 아니라 피라고 생각하면 꽤나 잔인한 장면일 것 같다고 스파이더맨은 생각했다. 이 괴물들이 정말로 살아있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 데드풀이란 사람이 얼마나 말이 많은지는 몰라도 너보다 말이 많지는 않을 것 같은데!" 크리스토프가 킥킥 웃으며 암사자 하나에게 검을 휘둘렀다. 뜨거운 칼날에 코를 살짝 베인 암사자는 얼굴을 찡그리며 대열의 맨 뒤로 밀려났다.


"아 크형! 진짜! 제가 가장 싫어하는 게 데드풀이랑 비교당하는 거라고요!" 스파이더맨은 짐짓 짜증난 척 외치며 계속해서 암사자의 얼굴을 가격했다. "그나저나 이 암사자는 그렇게 맞아놓고도 아직도 붙어있네? 너 그냥 거머리가 아니라 찰거머리구나! 찰거머리랑 찰떡의 공통점이 뭔 줄 알아? 메쳐야 제맛이 난다는 거!"


스파이더맨은 두 손을 모아 깍지를 낀 뒤 그대로 암사자의 머리를 힘있게 내리찍었다. 이미 잔뜩 우그러진 암사자의 머리가 완전히 산산조각으로 흩어지며 남은 뭄뚱이가 축 늘어졌다. 수사자의 몸에 박힌 발톱 몇 개 만으로 위태롭게 매달려 있던 암사자의 몸뚱이가 마침내 떨어져 나가면서 수사자의 얼음 살갗을 다시 한 번 쭈욱 찢었다. 수사자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동안 머리를 잃은 암사자의 몸뚱아리는 그대로 땅바닥에 굴러떨어져 바로 뒤에서 몸을 추스르던 암사자를 들이받고 함께 큼직한 얼음덩이로 분해되었다.


"사실 찰거머리는 먹는 게 아니고 메친다고 맛이 좋아지지도 않지만... 뭐 아무렴 어때." 스파이더맨은 수사자의 등에서 튀어 올라 다시 썰매 위에 올라탄 후 어깨를 으쓱했다. "일단 찰진 건 둘이 똑같잖아."


"우와... 혼자서 셋을 쓰러뜨렸네! 역시 스파이더맨이야!" 올라프가 신들린 연주를 계속 이어가며 말했다. "이제 저 덩치 큰 수사자만 해치우면 되겠어!"


스파이더맨은 올라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 녀석은 제일 덩치가 크니까 부수는데 좀 시간이 걸릴 거야. 일단은 넘어뜨리는 것부터 시작할까?"


촤락. 다시금 스파이더맨의 웹 슈터가 거미줄을 뿜었다. 두 가닥으로 분리되어 날아간 거미줄은 산길 양옆에 세워진 커다란 나무 두 그루에 착 달라붙어 딱 걸려 넘어지기 좋을 만큼 팽팽해졌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태로 미친 듯이 머리를 흔들며 달리던 수사자는 바로 앞에 장치된 팽팽한 거미줄을 미처 보지 못하고 그대로 뒷다리가 걸려 제자리에 엎어졌다. 수사자의 무거운 몸이 지면을 강타하자 산길에 쌓인 눈이 팍 튀겼다. 마치 눈으로 만든 분수를 보는 느낌이었다. 


"야호!! 잘했어 피터!!" 스파이더맨이 봤느냐는 듯 팔짱을 끼며 거만한 웃음을 짓자 안나는 잔뜩 신이 난 표정으로 스파이더맨의 등을 주먹으로 퍽 치며 모두와 함께 환호했다. "백수의 왕이 넘어지는 꼴이라니! 완전 이미지 추락이-아이고!!"


"푸히이이잉?!?!"


숨을 헐떡이면서도 힘차게 달리던 스벤이 무슨 이유 때문인지 갑자기 화들짝 놀라 땅바닥에 발굽을 끌며 제자리에 급정거했다. 그 여파로 썰매가 크게 덜커덩거리자 스파이더맨 일행의 몸이 거칠게 흔들렸다. 뒷좌석에 서 있던 스파이더맨은 흡착 능력으로 중심을 잡고 간신히 버텼지만, 그 옆에 서 있던 크리스토프는 중심을 잃고 넘어져 눈이 쌓인 흙바닥에 푹 고꾸라졌다.


"으윽." 크리스토프가 눈 위에 얼굴이 파묻힌 채로 말했다. "참 고맙구나 스벤."


"크리스토프!" 다급히 썰매에서 내린 안나는 크리스토프를 부축해 일으켜 세우고 얼굴에 묻은 눈을 털어내 주었다. "크리스토프, 괜찮아요?"


"크응. 전 괜찮아요." 크리스토프가 새빨개진 코를 문지르며 말했다. "그나저나 스벤, 너 왜 멈춘 거야?"


"잠깐만 있어봐. 내가 가서 볼게!" 연주를 멈춘 올라프가 류트를 든 채로 스벤의 등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무언가를 발견한 올라프는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스파이더맨 일행을 돌아보았다. "얘들아! 트롤들이 드디어 인간들처럼 집 짓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나 봐! 벌써 이렇게 멋진 돌담을 만들었어!"


크리스토프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돌담이라니, 트롤들이 그런 걸 만들 리가..."


스파이더맨이 고개를 돌리자 과연 숲길을 가로막고 있는 높은 돌담이 보였다. 크기가 제각각이지만 공통으로 동그랗고 뭉툭한 형상을 한 돌덩이들이 일정한 배열로 놓여 빈틈없이 탄탄한 방벽을 완성하고 있었다. 곳곳에 녹색 이끼가 잔뜩 껴 있고 심지어 틈새마다 민들레와 버섯들이 자라고 있는 것도 눈에 보였다. 잠깐, 버섯이 자랄 정도면 세워진 지 꽤 됐다는 얘긴데? 그냥 숲 속에 굴러다니는 돌을 가져다 만들었나?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잘 만들었는데. 거 참 신기할 노릇일세.


"언제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길이 막힌 건 맞네요. 아무래도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스파이더맨은 크리스토프와 안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크형, 혹시 그 협곡까지 가는 다른 길 알아요?"


크리스토프는 스파이더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당황한 표정으로 달려가 돌담에 손을 짚었다. "얘들아! 왜 이러고 있는 거야? 혹시라도 아이스 몬스터들이 너흴 다치게 하면 어쩌려고 그래? 싸우는 방법도 모르면서. 어서 집으로 돌아가! 어서!"


"어.... 지금 저 형님 돌담이랑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스파이더맨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난 크형이 순록 말만 알아듣는 줄 알았는데."


"응! 크리스토프의 가족들은 몽땅 돌덩이들이야!" 올라프가 바보처럼 함박웃음을 지었다. "신기하지! 나도 처음엔 크리스토프가 미친 줄 알았다니까."


"미쳤다는 거 아니야. 좀 별나다는 거지. 생물 말 알아듣는 거야 이해가 가는데 저 돌들은 무생물이잖아. 무생물이 말하는 거 본적 있... 아 맞다 따지고 보면 올라프 너도 무생물이지 참."


안나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쿡쿡 웃었다. "다 설명해주려면 얘기가 길어. 실은 저 돌담은 무생물이 아니라-"


"ROARRRR!!!"


갑자기 들려온 포효 소리에 놀란 스파이더맨 일행은 일제히 포효 소리가 난 곳으로 몸을 돌렸다. 방금 거미줄 함정에 당해 넘어진 수사자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온몸에 상처를 입은 수사자의 몸 여기저기에는 조금 전에 넘어진 충격 때문인지 자잘한 금이 잔뜩 생겨나 있었다. 약이 잔뜩 오른 얼음 수사자가 날카로운 발톱으로 눈을 가린 거미줄을 우두둑 뜯어내고 스파이더맨을 노려보며 매우 길고 시끄러운 포효를 내뱉자, 스파이더맨을 제외한 나머지 일행은 일제히 수사자로부터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스파이더맨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고작 그 정도로 포기하면 맹수라고 할 수 없지. 날 죽이고 싶은 마음 알아. 충분히 이해해! 아니 근데 그대로 좀 가만히 누워있어 주면 어디가 덧나니? 왜 자꾸 일어나서 매를 더 버는 거야?


"쟤 진짜 뿔난 것 같아." 올라프가 매우 큰 소리로 속삭였다. "딱 봐도 널 잡아먹고 싶어서 안달이 나 보이는데?"


"누가 그걸 모르냐..." 스파이더맨은 엄지와 검지로 미간을 비볐다. "혹시 모르니까 다들 내 뒤에 있어요. 온몸에 상처를 입었다고는 해도 사자는 사자예요. 언제 두 분에게 해를 끼칠지 모를-"


"나한테 맡겨!! 히야아아아아아!!!"


안나는 마치 신화 속 바이킹 여전사 같은 용맹한 포즈로 달려가 아직까지도 손에 들고 있던 뭉툭한 횃불로 수사자의 머리를 퍽 내리찍었다. 그러나 손상을 입은 것은 수사자가 아닌 횃불이었다. 재질이 약한 탓이었을까, 불이 붙어 밝게 타오르던 횃불은 수사자의 얼굴을 깨부수는 대신 우지끈하는 소리와 함께 부러져 차가운 눈바닥 위에 툭 떨어졌다.

난데없이 벌어진 상황에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간 스파이더맨은 나머지 일행들과 함께 넋이 나간 표정으로 안나를 쳐다보았다. 얼굴을 얻어맞은 수사자는 포효하는 것을 멈추고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로 매서운 눈길로 안나를 노려보았다. 그 눈빛에 주눅이 든 안나는 부러진 횃대를 내려놓고 항복한다는 듯 양손을 위로 올렸다.


"아하하, 하하, 하하하하.... 그, 그냥 장난친 거야! 너도 알지? 설마 내가 진심으로 그랬을까." 안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주절주절 변명을 늘어놓다가 반쯤 깨진 수사자의 코를 발견했다. "코가 망가졌구나! 나 때문이야? 미안해. 내가 다시 만들어줄게!"


안나는 바닥에 쌓인 눈을 집어다 대충 뭉쳐서 수사자의 코 부위에다 아주 조심스럽게 붙였다. 사실적인 사자의 얼굴에 동그란 눈뭉치 하나가 붙은 것이 마치 광대 코를 매단 사자의 얼굴 같은 형상이었다. 맙소사. 저게 지금 뭐하자는 거야. 스파이더맨은 골치가 아픈 듯 이마에 손을 짚었다.


"GRRRRRRRR....." 수사자가 더 화가 났는지 이빨을 드러내고 그르렁거렸다.


"우와, 딱 맞네! 완전 멋있다. 역시 백수의 왕이야, 뭘 달아도 다 잘 어울리네!" 안나는 이제 슬슬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그... 난 지금 좀 바쁜 일이 있어서 가 봐야 할 것 같거든? 혹시라도 나중에 찾아오면 내가 더 예쁜 코 만들어 줄 수 있는ㄷ-"


"ROARRRRRRRRR!!!"


"으히이이이익!!!"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오른 수사자가 안나를 향해 발톱을 세우고 달려들자, 스파이더맨은 재빨리 거미줄을 쏘아 안나를 홱 끌어당겨 공격의 사정권에서 벗어나게 만듦과 동시에 바닥의 눈을 집어 수사자의 얼굴에 뿌렸다. 흙먼지가 섞인 눈 부스러기가 안구로 날아들자 수사자는 무의식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스파이더맨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격을 가하려는 순간-


"지금이다! 공격!!"


"((우와아아아아아아!!!))"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와 함께 올라프 엉덩이만 한 돌덩이들이 수사자를 향해 날아들었다. 돌담 너머에서부터 무더기로 쏟아져 들어온 무거운 돌덩이들이 얼음으로 이루어진 몸뚱어리를 강타하자 수사자는 아무런 저항도 해 보지 못하고 그대로 수사자였던 것이 되어 얼음 부스러기의 형태로 짓이겨졌다. 먼지가 가라앉자 수사자가 있었던 자리에는 거대한 돌덩이들로 이루어진 돌무덤이 대신 세워져 있었다.


"아니 이게 대체 뭔 상황이래...?"


스파이더맨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자 조금 전까지 세워져 있던 높은 돌담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요상한 모양의 바위들이 늘어서 있는 것이 보였다. 헤, 참 요상한 바위들이네. 손발도 달리고 이끼로 된 옷을 입은 것처럼 보이는 게 꼭 난쟁이들처럼 생겼.... 아니 잠깐만. 난쟁이들처럼 보이는 게 아니라 진짜 난쟁이들이잖아?!


"영웅이 왔다!!" 똘망똘망한 눈길로 스파이더맨을 쳐다보던 바위 인간들 중 붉은 크리스탈 목걸이를 한 바위 인간이 정적을 뚫고 크게 환호했다.


"((영웅이 왔다아아!!))"


다른 바위 인간들이 이 환호성을 그대로 복창하며 스파이더맨 일행을 에워쌌다. 마지막 아이스 몬스터를 산산조각냈던 바위 무더기들도 어느새 바위 인간으로 변해 스파이더맨을 향해 일제히 달려들어 시끄럽게 떠들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연속해서 일어나자 안드로메다에서 정신이 오백 광년 더 날아가 버린 스파이더맨은 자신도 깨닫지 못한 사이 바위 인간들에게 헹가래를 당하고 있었다.


"으아 우와 우와 우와ㅏ아아?!?!" 급작스런 헹가래에 당황한 스파이더맨은 자신 아래에서 요동치는 바위 인간들의 움직임에 영혼까지 털리는 기분이었다. "저 저기요?? 이건 또 무슨 상황이래?? 누가 설명 좀 해 줘봐요!!"


"우와, 다들 엄청났어요!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이런 전술을 준비해두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네." 크리스토프가 환하게 웃었다. "내 가족들을 소개할게! 피터, 트롤들이야. 트롤 여러분, 피터예요!"


"트롤이요??" 스파이더맨은 더욱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생각한 트롤들 생김새랑은 좀 많이 다른데요??"


"다들 바위 트롤들이거든! 평범한 트롤들하고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착하고 맘씨도 좋아." 안나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그랬지? 다 설명해주려면 얘기가 길다구."


"어디 좀 보자, 근육으로 꽉 들어찬 체형에, 양손에 낀 강철 무기, 쫙 달라붙는 빨간 의복에, 가슴에 그려진 하얀색 거미 문양까지!" 붉은 크리스탈의 트롤이 스파이더맨을 찬찬히 뜯어보며 말했다. "패비가 말씀하신 그대로야! 우리를 이 얼음 지옥에서 구해줄 영웅이 바로 여기에 나타났어!"


"다들 내가 올 걸 미리 알고 있다는 듯 얘기하고 있는데요??"


"왜냐면 알고 있으니까!" 올라프가 태연하게 트롤들과 어울리며 말했다. "트롤들의 장로이신 패비 장로님은 모든 걸 볼 수 있거든!"


"그럼 그럼! 분명히 패비 장로님도 영웅의 얼굴을 보고 싶어하실 게 틀림없어!" 푸른 크리스탈의 트롤이 힘차게 외쳤다. "친구들, 앞으로 전진! 영웅의 행차시다! 정중히 모셔라!"


"아니 잠깐만요?! 어디로 가는데요?? 저기요! 아무도 내 말은 안 들어 주나요?? 여보세요!! 어이!!"


스파이더맨은 트롤들의 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쳤지만 이미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트롤들은 스파이더맨을 둘러업고 보폭을 맞추어 깊은 협곡 안으로 걸어들어가고 있었다. 어느새 썰매 위에 올라탄 안나 일행이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배를 잡고 깔깔 웃는 모습이 보였다. 이렇게 정신없는 친구들을 만나게 될 줄은 또 상상도 못 했네. 더군다나 바위 트롤이라니? 아렌델이 나한테 숨기고 있는 비밀이 대체 얼마나 많은 거야??

스파이더맨은 체념한 듯 온몸의 힘을 뺐다. 에효, 나도 모르겠다. 될 대로 돼라지.


ULTIMATE SPIDER-MAN

FROZEN WEB

챕터 15 - 첫 번째 노래, 첫 번째 단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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