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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갤문학/크로스오버] 얼티밋 스파이더맨-프로즌 웹 11화

차빙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1.12 13:5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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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델 왕국, 외곽 성벽 근처]


촤라락-휙.


스파이더맨의 거미줄이 11월 막바지의 차가운 공기로 가득 채워진 아렌델의 하늘을 가르며 날아갔다. 아렌델에 온지 겨우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직은 형형색색으로 알록달록하게 칠해진 바이킹 양식의 건물들 사이로 웹스윙을 하는 것이 낯선 느낌이었다. 엘사 일행과 함께 아렌델을 구경했을 때부터 느낀 거긴 하지만 건물들의 높이도 대체적으로 높지 않고 아기자기한 것이 마치 동화 속 나라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하. 동화나라에 들어온 현대의 슈퍼히어로라니. 안 어울려도 너무 안 어울리는데.


촤라락-휙.


성벽을 향해 날아가던 스파이더맨은 시민들이 모두 대피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거리를 훑어보았다. 다행히 아직 길거리에 남아있는 사람은 없었다. 행여나 아이스 몬스터가 자신들을 해코지할까 두려워 문을 꼭꼭 걸어잠그고 집 안에 숨은 아렌델 시민들이 창문을 통해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어떤 사람은 매우 작은 옷장 안에 몸을 욱여넣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십자가를 손에 쥐고 기도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상황파악을 못 하며 더 놀고 싶다고 칭얼대는 아기들을 달래고 있었고, 어떤 아이는 부모님의 품에 안긴 채로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이가 살고 있는 집 바깥에는 여전히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아이스 몬스터가 뚫고 지나갔던 바로 그 집이었다.


촤라락-부웅-휙.


아이와 부모의 얼굴에 짙게 드리운 슬픔과 두려움을 발견한 스파이더맨의 가슴이 답답해졌다. 스파이더맨은 아이가 자신을 잘 볼 수 있게끔 부숴진 집으로 가까이 다가가 자신의 몸이 하늘 위로 치솟는 타이밍을 노려 거미줄을 놓고 공중에서 서너 바퀴를 도는 묘기를 펼치고는 아이에게 한 손으로 V자를 그려보인 뒤 다시 성벽 쪽으로 웹스윙을 하기 시작했다. 멀리서도 아이를 포함한 가족들의 얼굴이 확 밝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스파이더맨이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은 자신에게 계속해서 찾아오는 죽음의 위협도, 슈퍼빌런들의 끊임없는 공세도 아니었다.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시민들이 두려움과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는 것. 그것이 스파이더맨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자 피터 파커라는 남자가 스파이더맨이라는 슈퍼히어로가 된 수많은 이유들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는 이 땅을 걸으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소소하지만 행복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사람들이 불행에 빠진다면 아무리 자신이 부와 명예를 얻는다 하더라도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스파이더맨에게 있어 가장 큰 보상은 성과급 같은 게 아닌 저 아이의 미소였다. 저 미소야말로 그가 지키고자 하는 모든 것을 대표하고 있었다. 스파이더맨의 이런 마음가짐은 비단 뉴욕의 시민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아렌델도 그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지켜야 할 도시였고, 그가 있는 곳은 어디든 스파이더맨의 영역이었다. 그리고 스파이더맨의 영역에 함부로 쳐들어와 스파이더맨의 시민들을 슬프게 만들고자 하는 빌런들에게는-


"-그에 걸맞는 대접을 해줘야겠지!"


스파이더맨은 마치 깡충거미에 빙의한 듯 높게 쌓인 외곽 성벽을 단숨에 뛰어넘어 거대한 성문 앞에 쿵 안착했다. 성문 앞에는 날카로운 말뚝과 함께 나무로 만들어진 방벽들이 두껍게 포진해 있었다. 이 방벽들 중 몇 개는 저번 습격으로 이미 박살나서 너덜너덜해져있는 상태였다.

크리스토프와 라그나르가 도와주러 올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방벽이랑 쇠말뚝도 소용이 없다면 이렇게 된 이상 자신이 정면으로 나서서 아이스 몬스터들을 막아내는 수밖에는 없었다. 다행히 곳곳에 방벽의 잔해물들이 아직 남아 있어 거미줄을 이용해 싸우기에는 딱 좋은 상황이었다. 스파이더맨은 성벽 위로 총포를 든 아렌델 수비대가 이미 포진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들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스파이더맨이 왔다! 전투 준비!"


병사 하나가 외치자 모든 근위병들이 동시에 저 멀리서 달려오고 있는 불곰들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단단한 얼음으로 이루어진 불곰들의 몸뚱아리를 보자 주먹이 살짝 아릿해왔다. 이런, 기왕이면 건틀렛을 다 만들고 나서 와 줬다면 좋았을텐데.

스파이더맨이 주먹을 조심스레 문지르자 병사들 중 하나가 그 모습을 보고는 성벽 아래로 번쩍이는 금속제 건틀렛 한 짝을 던졌다. 어제 내가 몬스터들이랑 싸우고 나서 주먹이 아프다고 말했던 걸 들었던 모양이네. 이야, 눈치도 빠르셔. 스파이더맨은 건틀렛을 거미줄로 낚아채 양 손에 철커덕 끼우고 손가락을 이쪽저쪽으로 움직여보았다. 보호구가 장착된 건틀렛 위에 그대로 끼워서인지 손가락의 움직임이 불편했지만, 다행히 손바닥 부분은 뻥 뚫려있어 특유의 손동작을 취하기 딱 좋았다. 스파이더맨은 건틀렛을 던져준 병사를 향해 감사의 표시로 가볍게 경례를 한 후 불곰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제서야 외곽 성벽에 도착한 얼음 불곰들은 광란의 질주를 멈추고 급하게 자리에 서서 살기 가득한 눈으로 스파이더맨을 노려보았다. 얼음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그런지 불곰들의 입에서는 침이 아니라 자잘한 얼음 조각들이 후두둑 떨어지고 있었다. 워우. 보고만 있어도 입안에 날카로운 게 박히는 느낌이네. 절대로 흘리고 싶지 않은 침이군.


"안녕 어른이 친구들! 아렌델에 온 걸 환영해." 스파이더맨이 얼음 불곰들을 향해 팔을 벌리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자기소개부터 한 번 해볼까? 내 이름은 스파이더맨이야. 이 왕국의 뉴페이스지. 너희는?"


"GRRRRRRR...." 얼음 불곰들은 두 발로 일어나 스파이더맨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안 그래도 덩치가 큰데 허리까지 쭉 펴니 마치 거대한 산맥을 쳐다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르르르. 거 참 특이한 이름이네. 너희 넷이 전부 똑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 거야? 아니면 그냥 대답하기 싫어서 얼버무리는 거야? 뭐 나야 어느 쪽이건 상관 없어. 어차피 신경도 안 쓰거든."


스파이더맨은 일부러 말을 질질 끌면서 등 뒤로 양 손을 돌려 굳게 닫힌 성문 틈새 사이로 거미줄을 두껍게 도포해 아무도 열 수 없도록 했다. 지속시간을 알맞게 조절해 두었으니 전투가 끝날 때 쯤이면 거미줄은 녹아 사라질 것이다. 남은 것은 제시간 안에 얼음 괴물들을 처리하는 것 뿐이었다.


"그건 제쳐두고, 아렌델로 이민 와준 건 정말 환영할 일이지만 당장 우리 먹고살기도 바쁜 상황이라서 말이야. 미안하지만 돌아가 줬으면 좋겠는데." 스파이더맨은 가장 작은 얼음 불곰이 자신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는 것을 보고 쿡쿡 웃었다. "어우, 그런 눈으로 보지 마, 꼬마 친구. 분명히 저 밖에 너희 가족이 살 만한 좋은 곳이 있을거야. 저어기 멀리 있는 저 산은 어때? 너희 덩치에 딱 맞는 집이 될 것 같은데."


"ROARRRRRRR!!!" 불곰들은 대답 대신(불곰들이 대답을 할 수 있을 리 만무했지만) 크게 울부짖으며 스파이더맨을 향해 돌진했다. 불곰들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쿵쿵 지축을 울렸다.


"아, 힘으로 밀고 들어오시겠다? 그래 그럼. 나도 봐주지는 않을 거야." 스파이더맨이 양손을 뻗어 거미줄을 촤악 쏘았다. "어디 실력 좀 볼까? 날 실망시키지 말아줬음 좋겠어!"



~~~~~~~~



[아렌델 왕국, 군사 훈련장]


"정말 실망이야, 안나."


"실망? 뭐? 실망했다고? 난 언니한테 더 실망했어.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나 때문이란 거니 지금? 애초에 네가 그렇게 싸우고 싶다고 고집부리지만 않았어도-!"


"애초에 언니가 나한테 기회만 줬어도 이렇게 되지는-!"


엘사와 안나는 거미줄에 의해 손과 발이 결박당해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말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두 사람이 제자리에 딱풀처럼 딱 달라붙어버린지도 벌써 30분이 흘렀지만, 어느 누구도 입을 다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치 지금까지 쌓아왔던 울분을 모조리 털어내듯, 막아뒀던 댐의 봇물이 터지듯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온갖 말을 쏟아붓고 있었다. 두 사람의 말싸움 방식은 완전히 상반되어 있었지만 언쟁의 열기는 여느 때보다 더 뜨겁게 타올랐다.

안나는 흥분에 휩싸여 목소리를 높여가며 악을 썼고, 그녀가 화를 참지 못하고 몸부림 칠수록 스파이더맨의 거미줄은 그녀의 몸을 더욱 휘감아왔다. 엘사는 언제나 그렇듯 침착하게, 그러나 차가운 분노를 가득 품고 제자리에서 전혀 미동도 하지 않은 채로 언쟁에 임했다. 그러나 아무리 엘사라도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살벌하기 그지없는 언쟁이 오가는 와중에 유일하게 평화로운 것은 손에 달라붙은 스파이더맨의 거미줄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올라프 뿐이었다.


"아 진짜! 이 거미줄은 왜 이렇게 질겨!!" 있는 힘껏 손발을 잡아당겨 거미줄을 뜯어내보려 했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안나는 엘사에게 괜히 성질을 냈다. "언니, 뭐하고 앉아있는 거야? 얼음 마법을 가졌으면 이 망할 거미줄을 얼려서 깨뜨리던가 뭐라도 해 봐야 될거 아니야!"


"안 돼." 엘사가 흙바닥에 앉은 채로 단호하게 말했다. 계속 서 있는 것도 힘들었다. "피터의 판단이 옳아. 넌 여기 있어야 해. 피터는 네가 말로 해서는 안 들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널 이렇게 붙잡아 둔 거야. 네 고집이 보통 고집이니?"


"세상에,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서도 대관식 날까지 내 얼굴 한 번 안 봐준 사람이 누구더러 고집이 세다고? 언니 참 웃기네! 코미디언 해도 되겠어!" 안나가 계속해서 거미줄을 잡아당기며 빈정거리듯 내뱉었다.


안나는 바보야. 엘사가 생각했다.


"엉뚱한 데로 새지 마, 안나. 우린 지금 너 때문에 여기 묶여있는 거야." 엘사가 안나를 째려보며 말했다. "몇 번이나 안된다고 말했는데도 끝까지 밀어붙인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너야. 나야 언제라도 이 거미줄을 풀고 나갈 수 있지만, 네 언니이자 네 여왕으로서 난 너와 함께 벌을 받기로 결정한 거야. 왜냐면-"


"함께 벌을 받아?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안나가 목구멍에서 목소리를 쥐어짜내듯 말했다. "난 언니를 도와주려 한 것 뿐이야. 항상 국민들을 위해서 모든 짐을 떠안는 건 언니잖아. 난 예전부터 그게 맘에 안 들었어. 도와줄 사람이 옆에 널리고 널렸는데 왜 언니 혼자만 고생해야 돼? 언니는 심지어 자기가 저지르지 않은 일도 책임을 떠안으려 하잖아!"


"왜냐면 그게 국왕이라는 직책이 해야 하는 일이니까." 엘사가 무슨 당연한 소리를 새삼스럽게 하냐는 듯이 말했다. "난 단순히 한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 이 자리에 서 있는 게 아니야. 아랫사람들의 책임을 대신 맡아주는 것도 내 일이야."


언니는 바보야. 내 맘도 몰라주고. 안나가 생각했다.


"아랫사람? 언니한테 난 그냥 아랫사람이야? 내가 그 정도밖에 안 돼?" 화가 잔뜩 난 안나가 소리쳤다. "우린 가족이야! 다른 사람을 그렇게 못 믿겠으면 적어도 가족에게는 신뢰를 보내줘야지! 내가 도와주겠다고 말했잖아! 근데 왜 계속 날 내치는데?! 난 언니가 그 사건 이후로 나한테 맘을 연 줄 알았어!"


"내 마음은 언제나 열려 있어, 안나. 특히나 너를 위해서라면 더욱." 엘사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안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제 말싸움을 끝낼 타이밍이 찾아온 것일지 몰랐다. "하지만 이건 아니야. 넌 하나밖에 없는 내 가족이잖아. 엄마 아빠가 돌아가신 뒤로 나한테 남은 유일한 혈육은 너뿐이라고. 더없이 소중한 내 유일한 가족을 전쟁터로 내몰 수는 없어."


"유일한 가족? 아, 그러세요? 그렇게 내가 소중해?" 안나가 엘사를 차갑고 매서운 눈길로 쏘아보았다. 안나의 눈길은 여지껏 본 적이 없었던 적의를 담고 있었다. "그럼 크리스토프는? 크리스토프도 우리 가족이야. 잊었어? 크리스토프가 다치는 건 괜찮다는 얘기야?"


역효과였다. 엘사는 자신의 말을 수습하기 위해 재빨리 입을 열었다. "맙소사, 안나. 내 말 왜곡하지 마. 그 뜻이 아닌 거 알잖-"


"그 뜻 맞잖아!!" 안나가 엘사의 말을 가로챘다. "언니는 크리스토프가 다쳐서 돌아왔을 때 내가 밤새 울었던 거 모르지? 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어. 언니가 그 기분을 알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몸에 상처가 나고 고통스러워하는 걸 계속 지켜봐야 하는 내 심정이 어떤지 아냐고?!"


"알아. 충분히 이해해! 나도 거기 있었으니까!" 엘사의 목소리가 덩달아 높아졌다. "하지만 크리스토프는 오랫동안 얼음 장수 일을 하면서 몸이 단련되어 있었어. 그래서 전쟁터에 나가는 걸 허락한 거야! 하지만 넌 그냥 보통 사람이잖아! 크리스토프처럼 신체능력이 좋지도 않고, 나처럼 마법을 쓸 줄도 모르잖아!"


"그게 무슨 상관이야?! 힘만 세다 뿐이지 크리스토프도 보통 사람이야! 저 괴물들 앞에선 언니도 마찬가지고!" 어이가 하늘로 승천할 지경에 이르른 안나의 말투가 더욱 공격적으로 바뀌었다. "잊었어? 저 괴물들은 눈이랑 얼음을 흡수할 수 있다잖아. 이젠 언니도 아무런 도움이 안 돼! 아 맞다, 원래부터 아무 도움이 안 됐지? 겁이 나서 성 안에만 틀어박혀있던 주제에!"


아픈 곳을 찔린 엘사는 살짝 움찔했다. 화가 치밀어올랐지만 맞는 말이었다. 얼음성에서 한스의 부하들을 죽일 뻔 한 이후로 엘사는 싸우는 것을 극도로 꺼리게 되었고, 자신의 힘으로 누군가를 공격한다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가지고 두려워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엘사는 아이스 몬스터에게 습격당했을 때 난생 처음으로 죽음의 위기를 느꼈고, 그 길로 트라우마가 생겨버리고 말았다. 밤마다 아이스 몬스터의 얼굴이 떠올라 공포에 질려 악몽을 꾸게 되는 일이 요즘에도 빈번했다.

패닉에 빠져 3일을 앓아누운 후, 쉽게 흔들리는 엘사의 멘탈이 전투상황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한 라그나르는 그녀가 전장에 들어오는 것을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엘사는 그 의견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라그나르는 아렌델에서 제일 현명한 사람이었고, 그가 하는 말은 언제나 사실이었으니까. 어제는 안나의 설득과 노력 덕에 겨우 몬스터들을 마주 볼 수 있었지만, 그 정도로 용기를 내기까지 몇 개월을 노력해야 했는지 모른다.


"언니는 책임 책임 하지만 정작 책임을 회피하고 있었던 건 언니였어! 항상 그랬잖아! 왕국에서 도망쳤을 때도 그랬고!" 안나는 또다시 아픈 곳을 찔렀다. "그래서 내가 책임을 나눠지려고 하는 거야! 왕한테만 책임이 있는 게 아니야! 나한테도 큰 책임이 있어! 공주로서 아렌델을 지켜야 할 책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야 할 책임!!"


"넌 그 책임을 지킬 힘이 없어! 방금 전에도 말했잖아!" 엘사가 애원하듯 말했다. 빨리 이 말싸움을 끝내고 싶었다.


"언니가 그 힘을 가질 기회를 안 주잖아!!" 안나는 끈질기게 엘사의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졌다. "들어봐. 난 언니를 찾으러 북쪽 산에도 올랐어. 언니 마법에 맞아서 얼어죽을 뻔 했을 때도 살아남았고! 이 정도면 충분히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이제 날 좀 믿어줄 때가 되지 않았어? 그렇게 내가 못 미더워? 그렇게 날 짐덩이로 만들고 싶어?!"


"짐덩이라니? 넌 짐덩이가 아니야, 안나. 왜 그런 말을 하니? 난-"


"내가 보기엔 짐덩이 같은데?"


끊임없이 이어지던 말싸움의 소리로 가득 차 있던 훈련장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두 사람은 입을 다물고 지금 이 순간 말을 꺼내리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올라프...?" 안나가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 방금 뭐라고..."


"안나는 짐덩이야. 엘사도 그렇게 생각하지?" 올라프가 평소의 커다란 미소를 그대로 간직한 채로 말했다. "안나는 엘사보다 훨씬 못해. 안나가 얼마나 노력해도 엘사를 따라잡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거잖아. 왜냐면 안나는 그냥 보통 사람이고 엘사는 특별한 사람이니까."


엘사의 얼굴이 새파래지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아니야!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정말이야!" 올라프가 이런 말을 하다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당황한 엘사의 얼굴을 본 올라프는 오히려 자신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엘사를 바라보았다. "그래? 그렇구나. 근데 참 이상하네. 난 엘사가 안나를 무시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 안나도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지 안나?"


"난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올라프가 안나에게 고개를 돌리자 안나는 고개를 끄덕여 긍정의 뜻을 보냈다. "왜 아까도 날 못 믿는다고 말하기도 했잖아. 참나."


"그렇지 그렇지! 왜 우리 두 사람이랑 엘사의 생각이 서로 다를까? 참 이상하다. 그치!" 올라프가 짐짓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사각사각 머리를 긁었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말인데, 엘사는 누구도 믿지 않는 것 같아. 그래서 누구한테 의지하는 것도 싫어하는 거고. 안나를 못 믿으니까 안나한테 의지하고 싶어하지도 않는 거야."


엘사의 눈동자가 당황스러움으로 흔들렸다. 마치 뒤통수를 거하게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얘들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있는 거지? 누구도 믿지 못한다고? 내가? 아니야. 말도 안 돼! 왜 내 생각을 이렇게 꼬아서 받아들이는 거야? 엘사의 억울한 심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지만 올라프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계속 이어갔다.


"안나는 엘사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고 믿고 있는데 엘사는 그게 아닌가 봐. 헉! 혹시 안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있나? 아니면 처음부터 안나가 귀찮다고 생각한 건가? 아니면-"


"아니야... 아니야! 아니라고!!" 엘사는 크게 고함을 질렀다. 눈에서 또다시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난 안나를 사랑해, 올라프! 세상 누구보다도 더! 안나를 위해서라면 내 목숨 따위는 가볍게 내던질 수 있어! 왜 그런 말을 하니? 너라면... 너라면 날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엘사는 언제나 안나를 짐짝 취급했잖아?" 올라프의 왼팔이 거미줄에 달라붙어 쏙 빠지자 올라프는 으흐흥 웃으며 다시 왼팔을 끼워넣었다. "사랑한다면서 항상 애정을 표시하곤 했지만, 정작 안나를 믿지는 않았잖아? 안나가 뭔가 해보고 싶다고 말하면 먼저 반대부터 했고, 안나가 널 위해서 뭘 해주려고 하면 고맙다고 말하기 전에 먼저 잔소리부터 했어. 왜 그걸 만졌니, 다치면 어쩌려고 그래, 내 속 터지는 꼴 보고 싶어서 이러니, 하면서!"


올라프의 말이 가슴에 비수가 되어 박히자 눈물이 쉴새없이 터져나왔다. 곱씹어 보니 하나하나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엘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안나를 자신이 지고 나아가야 할 짐으로 분류해놓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 자신을 포함한 다른 모든 사람들이 보지 못했던 것을 올라프는 지금껏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었고, 그 결과가 지금 이렇게 눈앞에 있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엘사를 향해 올라프는 말을 이어갔다.


"난 있지, 피터가 두 사람을 여기에 묶어놓은 게 안나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해. 물론... 안나는 건강하기만 한 보통 사람이지. 미숙하고 어리석어서 아이스 몬스터들이랑 싸우기에는 아직 부족한 게 사실이고. 피터도 그걸 알아."


"엄..." 느닷없는 인신공격에 안나는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말이야, 안나는 보기보다 훨씬 강하고 똑똑해. 내가 옆에서 봐서 알아." 올라프가 아직 달라붙지 않은 한 손으로 엘사의 거미줄로 뒤덮인 손을 부드럽게 쥐며 말했다. "다른 나라 말도 할 줄 알고, 어려운 책도 많이 읽고, 또 검술도 쓸 줄 알아! 또 항상 먼저 나서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세상 어디를 뒤져봐도 안나처럼 멋지고 대단한 사람은 없을 거야. 너도 이미 알고 있지?"


올라프의 나뭇가지 손을 붙잡은 엘사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알아. 너무.... 너무 잘 알지."


"그걸 아는데 왜 못 믿어?" 올라프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안나는 엘사 너를 지키고 싶어서 싸우고 싶어하는 거야. 엘사 네가 안나를 지키고 싶어하는 것처럼 말야. 안나는 끊임없이 너한테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 뭘 하든지 너랑 함께하고 싶어하고. 근데 그런 마음을 모조리 무시하고 안나를 짐덩이로 만들고 있는 건 엘사 너야."


올라프가 또다시 아픈 곳을 찌르자 엘사는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어, 언니!" 올라프가 자신을 대변해준 덕에 이성을 되찾은 안나는 놀란 표정으로 재빨리 무릎을 꿇고 엘사에게 손을 뻗으려 했지만 손에 달라붙은 거미줄이 더욱더 몸을 휘감아왔다.


"내가... 난... 으흐흑..."


엘사는 이제 엎드린 자세 그대로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후회와 자기혐오가 밀물처럼 몰려와 엘사의 마음을 가득 채웠다. 또 이러는구나. 또다시 안나에게 상처를 줬어. 난 구제불능이야. 이래놓고서 좋은 언니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니. 이래놓고서 다시는 안나를 외면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었다니.


"언니, 고개 들어." 안나가 엘사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고개 들고서 내 눈 똑바로 봐."


엘사는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들어 안나를 쳐다보았다. 눈물 때문에 시야가 흐릿해져서 사랑하는 동생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내가 안나를 바라보았던 시선도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구나. 내 동생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지 전혀 보지 못했어. 엘사는 마음속으로 또다시 스스로를 탓했다.


"미안해. 전부 내 잘못이야, 안나. 진작에 네 맘을 헤아렸어야 했는데...." 엘사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널 지키고 싶어서 한 행동이 오히려 널 내게서 더 멀어지게 했어. 네 말이 다 맞아. 난... 난 부모님이랑 하등 다를 바가 없어."


"언니. 그건 내가 화가 나서 그냥 튀어나온 말이야. 진심은 아니었어." 안나는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나도 미안해, 언니. 내 멋대로 고집부려서. 나도 내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건 알지만 어떻게 해서든 언니한테 도움이 되고 싶었어."


"아니야. 아니야. 그게 다 맞아. 13년 동안이나 나 때문에 갇혀있었으면서도 계속 날 위해서 문 두드려준 거... 날 포기하지 않았던 거... 너무 고맙고 미안해서... 이제는 내가 널 지키려고 했는데... 그래서 그런 건데... 그게 널 이렇게 옭아맬줄은 정말 몰랐어." 엘사는 세차게 고개를 휘저었다. "아니야, 알면서도 외면하고 싶었던 건지도 몰라. 네가 내 품에서 떠나는 게 두려워서-"


"언니, 난 언니만 내버려두고 떠나지 않을 거야. 절대로." 안나는 엘사에게 다정한 눈길을 보냈다. 이제 그 모습에서 아까의 적의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해가 가고 모든 게 서서히 변해간다 해도, 혹시 언니가 날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된다 해도, 난 항상 언니 곁에 있을 거야."


"널 사랑하지 않게 된다니, 말도 안 돼!" 엘사는 손을 뻗어 안나를 안으려 했지만 몸에 달라붙은 거미줄이 엘사의 양 손을 바닥으로 잡아당겼다.


"나도 알아, 언니. 그냥 해 본 말이야." 안나는 그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화해할까?"


엘사는 그제서야 눈물 범벅이 된 얼굴 위로 미소를 띠었다. 엘사의 마법이 두 사람을 휘감고 있던 스파이더맨의 거미줄을 스르륵 얼리자, 두 자매는 얇고 나약한 거미줄 얼음을 가볍게 부수고 속박에서 풀려난 서로를 힘껏 껴안았다. 엘사는 아무런 말 없이 안나가 갑옷 위에 두르고 있는 망토 위로 한참 동안 눈물을 쏟아냈고, 안나는 그런 언니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달래주었다. 양 팔이 다시 자유로워진 올라프는 그 모습을 보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두 사람에게 달려가 안겼다.


"올라프, 우리 아가. 정말 고마워." 마침내 울음을 그친 엘사는 올라프를 들어올려 꼭 껴안고 얼굴을 부볐다. "네 덕분에 우리가 화해할 수 있었어."


"에히히, 아니야. 내가 뭐 한게 있다구." 올라프는 수줍게 몸을 배배 꼬았다.


"그래서... 음...." 엘사는 올라프를 살며시 내려놓고 성벽 쪽과 안나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그... 아직도 도와주러 가고 싶니? 아니, 딱히 못 가게 막고 싶다는 건 아닌데, 가면 아직 위험할 것 같기도 하구 그래서..."


"아니야. 피터 말이 맞아. 지금 가면 죽는 건 몬스터들이 아니라 나일 거야. 제대로 준비가 되기 전까진 언니 곁에 꼭 붙어 있으려고." 안나는 무거운 갑옷을 벗어던지고 한숨을 푹 쉬었다. "어휴우. 무거워서 혼났네. 그래도 훈련은 시켜 줄 거지?"


"그럼. 그래도 너무 무리하진 말고." 엘사는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살짝 웃었다. "일단은 같이 안전하게 성에 가 있자. 피터가 있으니까 크리스토프랑 라그나르 경은 무사할 거야."


"응! 가서 초콜릿 먹자! 실컷 운 다음에는 초콜릿이 짱이야. 어때?" 안나가 생각만 해도 기분 좋다는 듯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말했다.


"새삼스럽게 그러기는. 넌 어떤 일을 겪든 마지막엔 항상 초콜릿을 먹잖아."


"그래서, 싫어?"


"아니." 엘사는 안나의 팔짱을 끼고 어깨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완전 좋아."


서로를 향한 분노를 가득 담은 말싸움과 울분의 외침으로 가득 찼던 훈련장에 드디어 평화가 찾아왔다. 안나와 엘사는 마치 언제 싸웠냐는 듯 서로에게 다정하게 꼭 달라붙어 성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보폭을 맞춰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이 두 사람의 머릿속에는 더 이상 아무런 불만도, 근심걱정도 존재하지 않았다.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고 나니 이렇게 후련할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올라프가 저렇게 똑똑할 줄은 전혀 몰랐지 뭐야." 안나가 말했다. "항상 혼자서 장난치면서 노는 모습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나 봐."


"나도 그렇게 생각해." 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 지금까지 그걸 못 보고 있었는지 모르겠어."











해맑은 표정으로 두 사람을 따라가던 올라프의 발길이 훈련장 문턱에서 멈춰섰다. 두 사람은 올라프가 더 이상 자신들을 따라오지 않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걸음을 옮겼다. 제자리에 우뚝 서서 멀어져가는 안나와 엘사의 등을 가만히 바라보는 올라프의 얼굴에서는 어느새 밝은 미소가 사라져 있었다.


"왜냐면 그래야 하니까." 올라프가 무표정한 얼굴로 작게 중얼거렸다. "난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 눈사람이여야 하니까.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편이 제정신을 유지하기엔 딱 좋거든."


올라프는 길바닥에 쌓인 눈을 살짝 집어올렸다. 어디선가 불어온 찬바람이 올라프의 손에 놓여있던 눈을 하늘 높이 흩뿌렸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난 미쳐버릴 테니까." 올라프가 말했다.





ULTIMATE SPIDER-MAN

FROZEN WEB

챕터 11 - 사전 준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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