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요즘 나한테 불만있냐 이 개x끼야."
팍팍한 담배 연기가 콧구멍을 자극한다. 도무지 여고생의 취향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쌉쌀한 도라지 담배의 향이다.
색기어린 누님의 눈매가 살짝 찡그려진다.
내
여자친구지만 조금 무섭다. 아니, 진짜 가끔씩은 목숨의 위협을 느낀다. 그런데 왜 사귀냐고? 이 고교생답지 않은
파격적인
행동거지, 그리고 그와 약간의 갭을 만드는 청순함, 그리고 아주 가끔씩 터지는 귀여움...때문이라고나 할까나.
"아하하하하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전 언제나 순종적이고 지고지순한 현대적인 남성상 그 자체인걸요!"
"...어려운 말 쓰지 마. 못 알아듣겠으니까."
이 얼마나 청순한 뇌인가! 역시 전지현 뺨치게 청순하다, 내 여친님!
"예? 아 그러믄요. 쉽게 말하면 전 호구새끼란 뜻이죠!"
"죽을래."
여
친님이 날 노려보는 눈빛이 두배로 무서워졌다. 히이익! 대체 왜요? 설마 이것도 어려운 말인가요? 그 정도면
아무리 관대한 내
시선으로 봐도 너무 심하게 청순한데요! 그보다 이건 진짜 무섭다. 심지어 죽을래? 도 아니고
죽을래. 다. 말투에 억양이 없다.
"내 남친이란 새끼가 지 입으로 호구새끼라고 씨부리고 다니면 내 면상에 똥칠하는건거 모르냐. 새끼가 빠져가지고."
"아... 그런가요? 그럼 죄송함다, 누님!"
"아, 좀! 너 진짜 나한테 불만있지? 내가 너보고 누님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몇번 말했어?"
"어...그러니까...한 서른마흔다섯번쯤 될까요?"
"서른마흔다섯번이란 숫자가 말도 안 되는건 나라도 알거든?"
빡! 결국 한대 맞았다. 근데 이유가 왜 이렇게 비참해?
"으으...농담이지 말입니다."
"누가 너보고 농담하래? 너 내가 우습냐? 불만있어서가 아니라 우스워서 그래? 그래, 나 무식하다. 그래서 놀리면
재밌냐? 재밌어?"
"어...조금? 그러니까 어...우스운건 아닌데 좀 재미는..."
빡! 또 맞았다. 그런데 누님 눈가가 조금 빨간게, 진짜 화난거같다. 농담인데, 그게 그렇게 심했나?
"너 어제, 초콜릿 받았어, 못 받았어?"
누님이 화를 참는 듯 씨근거리며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어본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올 것이 왔다는 것을 느꼈다.
어
제, 그러니까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 날이었다. 날이 날이니만큼 누님과 나란히 등교하고 싶은 게 나의 마음이었지만,
누님은 보통
9시가 넘어서 중역출근을 하시는 고로 나는 어쩔 수 없이 외로이 홀로 등교했다. 누님의 귀엽고 깜찍하고 섹시한
얼굴을 떠올리며
느긋하게 일찍 학교에 들어섰는데, 나를 기다리던 것은 재앙이었다.
커다랗고, 예쁘고, 섬세하게 잘 만든 수제 초콜릿이 화려한 포장 속에서 그 매끈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이
렇게 말하면 "부럽다! 리얼충 폭발해라!"라는 반응을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이미 여친이 있는 몸이다. 거기다
그 여친이 어지간한 남자들 정도는 손가락 하나로 쳐발라버리는 켄시로 뺨치는 파이터라면, 외간 여자의 초콜릿은 흉기다.
나를 차도살인하려는 흉악한 술수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위기의식에 사로잡힌 나는 박스 째로 사물함에 집어던지고, 자물쇠로 사물함을 잠가버렸다. 그 재앙의 씨앗을 최대한 빨리
남들의 눈에서 감추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그게 들통났다. 이제 나는 어떻게 될까? 죽는건가? 천사와 선녀 중 누가 날 데리러 올까? 악마가 데리러 올 거라는
생각은 안 하냐고? 서큐버스라면 대환영.
"초콜릿 받았지."
"예...받았지 말입니다, 누님."
누님이 박력 넘치게 벽을 후려치며 물어본다.…벽에 금갔는데요. 아니, 서큐버스 대환영이란 소리 취소할게요! 인큐버스
대환영! 토츠카닮은 인큐버스 나와라!
"그럼 맛있었으면 맛있었다, 고마우면 고맙다. 뭔 말이 있었어야 될 거 아니야, 이 둔탱이야! 내가 그거 만드느라고 새벽부터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그냥 먹고 땡이냐?"
"네?"
뭐라구요? 지금 뭔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씨...진짜. 너 어떻게 하루 종일 한 마디도 안 해줘? 오늘도 내가 안 말했으면 그냥 넘어갈 생각이었지?"
"누님!"
나는 누님의 탄탄한 어깨 사이로 몸을 날렸다. 누님의 말랑말랑한 가슴이 내 얼굴을 파묻는다.
"뭐...뭐하는거야, 이 바보 자식아! 그리고 누...누님이라고 부르지 말랬잖아"
"그럼 뭐라고 부를까요?"
"그정돈 니가 생각해, 바보야."
"넵. 사랑합니다, 여왕님."
"뭐야, 그건! 엄청 센스없어!"
"둔팅이니까 어쩔 수 없죠. 거기다 호구새끼고."
빡! 누님이 한동안 안 때리시다가 다시 내 머리통을 후려쳤다.
"자꾸 자기비하 좀 하지말라니까!"
"에헤헤, 버릇이 되버려서리. 그럼 뭐라고 하죠? 등신과 머저리?"
"...왕자님?"
"뭐라고요?"
그렇게 작게 말하면 안 들린다니까요.
"몰라 이 멍청아!"
누님이 버럭 화를 내며 다시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나는 오른손이 내 머리통을 때리기 전에 슬쩍 머리를 앞으로 내밀었다.
상대방과
거리를 좁혀서 공격 범위를 좁게 만드는건, 누님이 전에 가르쳐준 전투비법. 거기다 이 전투비법은 상당히 유용한
반격기를 가지고
있다. 상대방의 전의를 상실하게 하고, 화해의 계기를 마련하는 기술.
말이 길었지만, 나는 냅다 누님에게 박치기를 해 버렸다. 입술로.
읽으면서 느낀 점은 그저 그랬다는 것. 기껏 힘들게 썼는데 기꺾는 거 같아 미안하지만 진짜 느낌이 그랬다. 어차피 문단 간격이 긴 글이니 들여쓰기는 필요없다 치지만 대화문이 그저 나열되었을 뿐이고, 소재는 특출난 것 없지만 군데군데 보이는 "켄시로" "리얼충" "토츠카" 같은 무언가에 비유한 것의 대상이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아는 사람들은 알테니 실소를 지을테지만 모르는 사람 입장에선 그저 문맥 형성에 따라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
조금만 더 다듬어주었더라면, 조금 뒤에서 생각해보고 썼더라면 재밌었을 것 같은 글. 쓰느라 수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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