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색 형광펜으로 장식된 손편지.
누나에게서 온 물건이었다. 나는 삼등분으로 접혀져 있던 편지지를 펼쳤다. 그리고 천천히 읽어 보았다.

To_사랑하는 동생에게
From_동생을 무지 사랑하는 누나가
한국은 아마 가을이겠지. 하늘은 높고, 말이 살 찌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구나.
고등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넘어가는, 이 시기부터 겨울방학까지가 고등학교 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해.
이 시기에 손에서 펜을 놓게 되면 소중한 시간을 한없이 낭비하게 될 거란다.
물론 너는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시기를 달리고 있고, 청춘이니, 말도 안 되는 미사어구를 붙이며 시덥지 않은 연애질을 하고 싶어 하는 건 이 누나도 알고 있단다.
하지만, 방금도 말했지만 이 시기가 고교생활을, 그리고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시기란다. 이 편지를 읽고 있는 지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구나. 지금 이래도 괜찮을까를 말이지.
단도직입적으로 대답을 대신 말해주자면, 괜찮지 않아. 지난 번에 네 성적표를 받아 보았단다. 성적은 지각, 맨틀을 뚫어, 외핵, 그리고 내핵을 뚫고 있더구나. 과연 이래서 대학을 갈 수 있겠니? 잘 생각해보았으면 좋겠구나.
말이 너무 길어진 것 같네. 그러니까 요점은 공부를 좀 해라는 것이란다. 나는 네가 나이를 쳐먹어 집안에 기생해서 살며, 공무원을 준비하고 있다는 개소리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그럼 이만 말 줄일게. 아, 그리고 누나는 겨울방학이 되면 한 번 쯤 들릴 계획이야. 선물 사 갈게. 그럼 그 때 봐.

…….
길게 말할 필요가 없었다.
요컨대 공부하라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