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응. 실례되는 생각이라 입 밖으로 꺼내기 망설여지지만."

"이카리 군을 험담하는 게 아니면 뭐든 괜찮아."

"그럴 리가 없잖아. 농담이라도 너무한걸."

"그래서 옷은?"

"아… 그 옷은 마치 아이를 품은 여성들이 입는 유형의 복장 같아서."

"그렇게 보여?"

"응, 곧 신지 군을 유혹한 뱀의 목을 비틀기 위한 성전을 벌일 텐데

그 옷은 너무 기동성에 방해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

"미안해, 퍼스트. 괜한 참견을 했나봐."

"괜찮아. 하지만 이 옷은 어쩔 수 없이 입어야 해."

"이유를 들려 줄 수 있을까?"

"이 안에 이카리 군의 아이가 있으니까."

"…………응?"

"이 안에 이카리 군의 아이가 있으니까."

"아니, 반복할 필요는 없어. …내가 뭐 잘못 들은 걸까, 퍼스트?"

"이 안에 이카리 군의 아이가 있으니까."

"…아까보다 실례되는 질문이 되겠지만, 하도록 할게.

너는 이 세계에서 먼저 신지 군과 접촉해서 그와 정을 통한 적이 있는 거야?"

"아냐. 이번이 처음 보는 거야."

"그러면 혹시 구세계의 잔재인가?

아니, 그렇다고 해도 구세계의 회임 정보가 여기까지 넘어올 수 있는 건가."

"저기."

"가능하다 해도 이미 세계가 고쳐 써진지 10개월은 지나고도 남았을 터.

설마 세계가 고쳐 써졌을 때 릴림들의 정보 전이에 시간차가 발생했나."

"피프스."

"내가 사도에서 인간으로 치환되었기에 읽을 수 없던 거라면 말은 되지만….

하지만 신지 군은 나에게 사이 좋아지는 주문을 걸어 줬는데.

그런 그가 나와 만나기도 전에 누군가, 하물며 여성에게 정을 줬을 리가 없어.

이건 대체…."

"나기사 카오루."

"…아, 미안, 퍼스트.

너무 충격적인 사실이라 그만 상념에 빠져들고 말았어.

…실례를 무릅쓰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게.

대체 언제 임신한 거니?"

"두 달 전."

"두 달 전… 그건 이 세계에서 벌어진 일이야?"

"응."

"하지만 신지 군과 만나지 않았다고 했잖아?"

"맞아."

"그러면 구세계의 잔재인 건가….

퍼스트, 네가 신지 군을 다시 떠올린 건 언제야?"

"세 달 전."

"역시 시간차가 있었구나.

세컨드 칠드런을 시작으로 나, 그 다음에 너였으니

각각 『고쳐 써진』시간 사이에 차이가 발생했어도 이상할 건 없지.

내가 신지 군을 떠올린 건 반년 전 쯤이었으니.

…퍼스트, 신지 군을 떠올리고 뭐 따로 취한 행동은 있었어?"

"이카리 군을 떠올린 다음엔 그냥 계속 이카리 군만 생각했어."

"나도 그랬었지. 그리운걸."

"한 달 동안 이카리 군을 내내 생각했어.

제 6 사도와 싸운 다음 『내』게 웃어도 된다고 해줬어.

제 10 사도에게서 나를 구하려고 싸워 줬어.

머리가 포카포카해졌어.

『나』를 위해 책을 가져다 줬어.

그리고 나를 다시 아야나미라고 불러 줬어.

가슴이 포카포카해졌어."

"역시 신지 군다워.

나 뿐만이 아니라 퍼스트, 너의 마음에도 확실히 낙원의 꽃을 심어 줬구나."

"응. 그리고 14년 동안 이카리 군을 그리워 하던 기억도 떠올랐어.

이카리 군이 그런 날 만나러 온 걸 떠올렸어.

배꼽 아래가 포카포카해졌어."

"……?"

"그리고 뱃속이 포카포카해졌을 때 알게 됐어.

이 안에 이카리 군의 아이가 생겼다는 걸."

"설마 그건."

"지금 이 포카포카는 나 혼자 만의 것이 아니야.

이 아이도ㅡ 포카포카해.

그러니까 이 두 사람의 포카포카를 이카리 군에게도 전해 줄 거야."

"……."

"나기사 카오루? 왜 우는 거야?"

"아, 아냐. 아무 것도 아니야.

햇살이 눈부셔서 그만.

응, 퍼스트. 그랬었구나.

답변해 줘서 정말 고마워."

"괜찮아."

"…퍼스트, 잠시 후에 저 뱀과 싸울 때는 뒤에 물러서 있도록 해."

"어째서? 나도 앞에서 싸울 거야."

"아이에게… 부담이 갈지도 모르니까.

AT 필드는 없지만, 뱀의 독니 쯤은 내가 앞에서 막아 줄게."

"고마워, 나기사 카오루."

"응. 괜찮… 아."

(신지 군.

너는 정말 죄가 많은 사람이야.

너에 대한 갈망, 너에 대한 사랑에 마음을 불태우며…

상상 속의 릴림을 품은 릴리쓰까지 만들어 냈으니까.

하지만 저 사랑을 폄훼할 마음은 전혀 솟아나질 않아.

나 또한 아담이 아닌 하와의 몸을 가졌다면ㅡ

그녀와 같은 길을 걸었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니까 반드시 이번엔 널 붙잡도록 할게. 신지 군.

이 가련한 릴리쓰에게 진짜 릴림을 품게 해 주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