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Go/https://아카이브ofourown.org/works/24280306
캣트라는 아도라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아도라는 캣트라의 머리를 부드럽게 안은 채로 둘은 오랜 시간 멈춰 있었다. 아도라는 행여 캣트라의 머리가 조이지는 않을까 조심하며 캣트라가 먼저 그녀를 놓기를 기다렸지만 캣트라는 좀처럼 그녀를 놔주지 않았다. 오히려 캣트라가 지나치게 세게 그녀를 안는 바람에 손톱이 아도라의 재킷을 뚫고 그녀
의 등을 조금씩 파고들기 시작했다. 마치 캣트라가 어린 고양이였던 시절, 손톱이 얼마나 아픈지 모르고 힘 조절을 하지 못했던 것처럼. 하지만 아도라는 캣트라가 이처럼 약한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도망칠까, 마법같은 이 순간이 깨질까 두려워 근육 하나,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으려 애썼다.
캣트라는 그녀를 놓지 않았고, 아도라도 그녀를 놓을 수 없었다.
글리머와 보우는 아도라와 캣트라가 둘 만의 시간을 갖도록 어느 순간 자리를 떠났고, 아도라는 앤트랩타와 일행들이 속닥거리며 방을 나가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차렸다. 시간이 지난 뒤, 보우가 돌아와 아도라 옆에 쭈그려앉으며 말을 걸었다.
“구금실에 있던 상자를 치우고 침대를 만들어놨어.” 보우는 최대한 목소리를 죽여 말했다. “캣트라를 거기로 옮기는게 어때?”
아도라는 구금실이라는 말에 움찔했다. 캣트라가 자신이 죄수가 됐다고 느끼길 바라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 곳이 함선에 있는 다른 방들과 별반 다를 것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구금실은 따뜻하고 어둡고 조용했다. 캣트라가 편안히 있기 좋은 곳이리라.
캣트라가 보우의 말소리를 들었는지는 모르나 그녀는 꼼짝도 않고 있었다. 아도라는 보우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였고, 오랜 시간 미동도 하지 않았던 두 다리에 힘을 주어 조금씩 일어서기 시작했다. “저기, 캣트라?” 그녀가 상냥히 속삭였다. 캣트라는 대답하지도, 움직이지도 않았다. 아도라는 그녀가 잠에 빠진 것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자신을 붙잡고 있는 손에 힘이 조금도 풀리지 않은 것으로 그녀가 잠들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도라는 다시 한번 그녀를 불렀다. “캣트라.” 그녀는 잠시 숨을 골랐다. “보우랑 글리머가 널 위해 침대를 만들었대. 거기서 쉬는게 좋지 않을까?”
캣트라는 한참을 잠자코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아도라는 그녀가 목덜미에 대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캣트라가 아도라의 재킷에 대고 웅얼거렸다. 그러나 아직 그녀는 움직일 기미가 없었고, 쥔 팔도 단단히 고정된 채 그대로였다. 아도라는 캣트라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며 머뭇거리다가 이내 힘을 쓰기로 했다. “내가 데려다줄게, 됐지?” 아도라는 캣트라의 머리 뒤에 손을 넣어 다정하게 그녀를 깨웠다. 캣트라는 힘없이 그녀의 어깨에 기대 고개를 흔들 뿐이었다.
“도와줄까?” 보우가 나섰지만 아도라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할게.” 그녀는 조심스럽게 캣트라의 오금과 등허리를 팔로 받쳤다. 캣트라는 여전히 손을 놓지 않았다. 그저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장소인것처럼 아도라의 품에 머리를 파묻을 뿐이었다.
아도라는 쥐가 나 흔들리는 다리로 최대한 부드럽게 일어서려고 애썼다.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그녀의 팔다리는 깊숙이 타는듯한 고통으로 피로해 있었다. 그녀는 그것이 쉬라의 치유 마법의 부작용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치열한 전투를 겪더라도 쉬라일 때 입은 상처는 변신이 풀리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아도라의 피부는 항상 깨끗했다. 하지만 뼈 속에서 느껴지는 고통의 잔재는 사라지지 않았고, 아도라는 가끔은 상처가 남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아도라의 옆에서 보우는 언제든 그녀를 거들고자 했지만, 아도라는 고집스럽게 직접 캣트라를 품에 안고 뒤뚱거리며 보우를 지나쳐 방을 나섰다.
구금실은 어두웠고, 벽에 새겨진 퍼스트원의 기술이 은은히 희미한 빛을 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곳은 함선에서 가장 작은 방이었지만 아도라는 그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협소함이 아늑함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온몸의 근육이 찌뿌둥했지만 그녀는 캣트라를 침대에 눕히고 이내 보우를 내보냈다. 그는 조용히 방을 나서며 문을 닫았다.
“도착했어.” 아도라가 캣트라에게 속삭였고, 캣트라는 그제야 팔에 힘을 풀고 조금씩 아도라의 품에서 떨어져나갔다. 캣트라의 손톱이 등을 살짝 스칠 때는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캣트라는 어둑한 방을 둘러보면서 희미한 빛조차 버겁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그녀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고 눈길은 혼란스러웠다. 그녀의 몸짓에는 힘이 조금도 들어있지 않았다. 아도라는 안타까워 어쩔줄 몰랐다. 자신은 좀 피곤할 뿐이지만 헤아리기 어려운 폭력과 고통을 겪은 캣트라는 열갑절은 넘도록 괴로울 것이다. 프라임의 함선의 차가운 바닥 위에 부서진 몸을 힘없이 늘어뜨린 캣트라의 모습이 떠올랐고, 아도라는 목에 걸린 응어리를 힘겹게 삼켜야만 했다.
오랫동안 캣트라와 함께하지 못하긴 했지만, 영영 그녀를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 일인지는 그 순간에야 깨달았던 것이다.
그때 캣트라의 손톱이 매트리스를 파고들었고, 신체는 경직되었다. 아도라를 올려다 보는 그녀의 눈동자는 바늘처럼 날카로워졌고 온 몸의 털은 일어서고 있었다. 아도라는 그것이 패닉의 첫 징조임을 알아챘다.
캣트라의 표정이 무너지며 곧 그녀는 귀신을 본 것처럼 아도라를 밀쳐냈다. “싫어!” 그것은 흐느낌이었다. 분노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순수한 공포와 절망의 비명. 캣트라는 침대에서 뛰쳐나오려 했지만 약해진 사지는 좀처럼 그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그녀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캣트라!” 아도라가 소리치며 그녀를 돕기 위해 나섰다. 하지만 캣트라는 소스라치며 벼랑에 몰린 동물처럼 거친 숨을 내쉬고 구석으로 쳐박히려고 했다. 그녀의 꼬리는 잔뜩 부풀어 있었다. 아도라는 어린 시절 이후로 이런 캣트라를 본 적이 없었다. 캣트라가 자신의 약한 모습을 무심한 듯한 가면으로 숨기는 법을 배우기 전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내 머릿속에서 나가!” 캣트라는 울고 있었다. “날 혼자 내버려 둬! 질리지도 않냐고!”
아도라가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이윽고 깨달은 두려운 사실에 그녀의 피가 얼어붙었다.
캣트라는 공처럼 몸을 말고 흐느끼며, 고통이 꿈을 깨게 한다는 것을 깨달은 듯 손톱으로 머리를 찢으며 자신의 정신 속에 있는 호르드 프라임의 망령을 긁어내려했다. 아도라는 그녀를 향해 몸을 날렸고 캣트라의 손목을 붙잡아 머리에서 떨어뜨렸다. “캣트라, 이러지 마, 여긴 현실이야. 이제 괜찮아, 넌 안전해, 내가 여기 있—”
캣트라는 몸부림을 치면서 무턱대고 그녀를 향해 주먹질하며 울부짖었다. “제발 개소리 그만해.” 그녀는 울고 있었다. “제발. 말했잖아, 아도라는 돌아오지 않아. 날 풀어줘, 제발.”
아도라는 이토록 애걸하는 캣트라를 본적이 없었다. 그녀는 호르드 프라임을 반드시 두손으로 없애버리고 기뻐하리라 다짐하며 분을 삭혔다.
아도라는 다시 캣트라 위로 몸을 날려 그녀를 붙잡아 바닥에 눌렀다. 캣트라의 손톱에 얼굴을 긁히고 나서야 기어코 날뛰는 손을 붙잡을 수 있었다. 캣트라는 눈을 질끈 감고 절박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가슴은 아직 흐느끼고 있었다.
“캣트라.” 아도라는 단호했다. “캣트라. 그만. 난 호르드 프라임의 속임수같은게 아니야. 난 진짜 여기 있어. 그리고 지금 네가 이러는 것 때문에 힘들어 죽을것 같아.”
눈을 뜬 캣트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아도라를 바라보았다. 미소 짓는 아도라의 키득이는 웃음소리가 갈라졌다. “너 때문에 온거라고, 이 바보야. 내가 널 구했다고. 아닌 척 시치미 뗄 생각은 하지도 마.”
캣트라는 머뭇거렸다. 그리고 눈물 맺힌 초점 없는 눈으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걔가 날 위해 돌아올리가 없어.”
“참, 안 됐네, 돌아왔거든? 그러니까 이제 손톱은 그만 좀 휘두르고 제발 망할 침대에 누워서 좀 쉬는게 어때?” 캣트라는 이제 싸우려들지는 않았지만 두 눈은 아직 믿을 수 없다는 듯 흔들리고 있었다. 아도라는 다른 전략을 쓰기로 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호르드 프라임 걔는 완전 찐따라니까? 나는 걔가 더 무서운 버전의 호닥일 줄 알았는데 말이야. 적어도 호닥은 언제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할지는 알았는데.”
캣트라가 키득 웃었다. 함선의 플랫폼 가장자리에서 비틀거리며, 프라임의 조종에 맞서 그녀가 가진 모든 것을 써서 맞서 싸우던 그 순간에 나왔던 억눌린 웃음과 똑같은 거였지만. 아도라에 깔린 채로 캣트라는 이제야 몸에 힘을 풀었다. 아도라는 천천히 캣트라의 두 손을 풀어주고 그녀의 옆에 주저앉았다. “가짜 아도라가 이런 말을 하겠어?” 그녀는 우쭐하며 말했다. 그녀는 캣트라를 안아주고 위로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캣트라에게 필요한 것이 다정한 손길이 아니라는 것 쯤은 알고 있었다. 그 손길이 호르드 프라임이 자신의 소유물을 향해 내밀던 그것을 떠올리게 할지도 모를테니.
캣트라는 오랜 시간 누워있었다. 아도라는 그녀의 거친 숨소리만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그녀는 옆으로 고개를 돌려 아도라의 얼굴을 못믿겠다는 듯이 살펴보았다. “진짜 너구나.” 그녀가 쉰 목소리로 속삭였다. “날 위해 돌아왔어.”
“응.” 아도라가 대답했다.
아도라는 캣트라가 앉을 수 있도록 일으켜 세웠다. 캣트라의 근육은 아직 경직되어 있었지만 털은 누워있었다. 그녀는 이것이 환상이 아닐까 꿰뚫어 보려는 듯 방을 샅샅이 살폈다. 이윽고 자신의 몸을 살펴보던 그녀의 손이 목 뒤로 다가갔다. 그 곳, 신경에 아직도 박혀있는 칩을 느낀 그녀의 귀가 접혔고, 그녀의 손톱이 피부를 긁어대며 옷을, 스스로를 찢어내려가며 피를 흩뿌렸다. 아도라는 순식간에 벌어진 일을 막을 수 없었다.
“캣트라, 그만! 그만해!” 아도라가 다시 캣트라의 손을 붙잡았지만, 이미 피부에 남긴 상처에서 맺힌 핏방울이 순백의 유니폼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발버둥치는 캣트라를 붙잡으며 아도라는 손에 힘을 단단히 주었다. “이거 놔.” 캣트라가 아도라와 힘을 겨루며 하악거렸지만, 아도라는 그녀를 풀어주지 않았다.
“나를 봐.” 아도라가 다그쳤다. 그녀는 캣트라가 자신의 말을 듣기까지 계속 기다렸다. “놔줄게. 하지만 스스로 상처내지 않겠다고 약속하기 전까지는 놓지 않을거야. 캣트라, 약속해.”
그녀는 약속이라는 말이 캣트라에게 닿기를 바랐다. 이윽고 캣트라는 손톱을 집어넣고 고개를 끄덕였다. 캣트라가 아도라의 손을 가볍게 잡아 끌었지만, 아도라는 아직 그녀를 놓을 수 없었다.
“벗겨줘.” 캣트라가 잠자코 부탁했고, 아도라는 그에 응했다.
그녀가 놓은 캣트라의 두 손은 지긋이 주먹을 쥔 채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녀는 캣트라 등 뒤에 섰다. 그녀는 캣트라의 등을 덮고 있는 하얀 유니폼을 벗길 지퍼나 단추를 찾아보았지만, 광택있는 천으로 만들어진 유니폼에는 이음매가 없었다. 아무렴, 프라임이 쉽게 벗겨지도록 만들지는 않았겠지. 아도라가 다소 머뭇거리는 틈에 그녀의 목에 거슬리는 그것을 견딜 수 없었던 캣트라는 곧 비명을 질렀다. “떼 줘! 아도라, 얼른 치워줘!”
아도라는 그녀의 절박한 목소리를 견딜 수 없었다. 더이상 망설임 없이 아도라는 유니폼의 가장자리를 잡아 힘껏 잡아당겼다. 유니폼은 뻣뻣하고 묵직했지만 작업이나 보호를 위한 것은 아니었던 만큼, 꽤나 쉽게 벗겨졌다. (아니면 그녀가 쉬라의 힘을 발동했거나.) 아도라가 유니폼을 완전히 찢어내자 캣트라의 떨리는 맨 등이 드러났고, 그녀는 캣트라가 마저 옷을 벗는 것을 도왔다.
옷의 속박에서 자유로워지자 마침내 캣트라는 진정한 듯 했다. 아도라의 가슴에 기댄 캣트라의 근육은 이완됐고, 호흡은 안정됐다. 아도라는 문득 캣트라가 너무 작게 느껴졌다. 분명 그녀의 기억 속에 캣트라가 커다란 존재로 자리매김한지는 오랜 시간이 지났다. 분노와 악의와 어둠으로 피어나는 그림자의 형체는 익숙해지기 어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이 모습. 작고, 둥글게 말린 캣트라의 이 모습은 그 어떤 것보다도 그녀가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불현듯 아도라는 자신이 캣트라의 벗은 몸을 바라보고 있음을 깨닫고, 이것이 매우 적절치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걸레가 된 유니폼을 꾹꾹 뭉치며 공처럼 만들었다.
‘’이것 좀 해치 밖으로 던져버리고 올게.” 그녀는 이렇게 말하는 자신을 향해 캣트라가 키득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도라는 캣트라를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일어섰다. “나한테 여벌 옷이 좀 있으니까, 그걸 가져다줄게. 혹시 목 마르지 않아? 물도 좀 가져올게.” 이내 아도라는 도망쳤다.
아도라는 함선 안을 쏜살같이 내달렸다. 그녀는 잠시라도 캣트라를 홀로 두고싶지 않았다. 다같이 침실로 쓰던 큰 방으로 돌진한 그녀는 보우와 글리머가 보우의 침대 안에서 서로 껴안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새빨간 홍조를 띄운 글리머는 소스라치며 보우의 어깨에 기대고 있던 머리를 쳐들었다.
그 뻔한 분위기를 읽은 아도라는 알겠다는 듯이 미소를 지어주고는 자신의 옷가방을 찾아 깨끗한 회색 탑과 반바지를 꺼냈다. 호르드에 몸 담던 시절 지급된 복장과 똑닮은 그것은 브라이트 문의 재단사에게 특별히 주문하여 제작된 것이었다. 그 익숙함은 그녀에게 안정감을 주었었고, 이제 캣트라에게도 그러리라고 믿고 있었다.
“별 문제는 없어?” 보우가 물었다.
“그럭저럭.” 아도라가 대답했다. “이 배에 소각로도 있었던가?”
“응, 창고 바로 바깥쪽에 있어. 뭘—”
아도라는 이미 밖으로 나서고 있었다. 침실에서 나오려던 그녀의 머리에 무언가 부드러운 것이 부딪혔다. 글리머가 그녀에게 이불을 던져준 것이다. “이것도 가져가.” 글리머가 소리쳤다.
아도라는 소각로로 향했다. 폐기물을 버리기 위한 복도에 있는 작은 사각형 투입구를 찾은 그녀는 호르드 유니폼을 집어넣었다. 그녀는 투입구를 닫으며 프라임의 잔인하고 진득했던 모든 손길과 그 흔적들이 유니폼과 함께 불타 재가 되어 사라지기를 바랐다. 옷이 타오르자 만족한 아도라는 물 한 병을 챙기기 위해 잠깐 멈칫했을 뿐, 캣트라를 향해 쉼 없이 통로를 달렸다. 구금실에 도착한 그녀가 본 것은 침대 위에 동그랗게 말려있는 캣트라였다. 기관실 바로 옆에 위치한 구금실은 함선에서 제일 훈훈한 장소였지만, 캣트라는 떨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깜짝 놀란 머리를 치켜든 그녀의 두 눈에는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었다.
“괜찮아, 나야.” 아도라가 나긋하게 속삭였다. 그녀는 침대를 향해 걸어와 캣트라 곁에 옷을 두었다. 그녀가 물병을 쳐다보는 것을 알아차린 그녀는 캣트라에게 병을 건냈고, 캣트라는 급하게 물을 들이켰다. 캣트라가 떨리는 손가락으로 어설프게 옷을 입으려 하는 것을 본 아도라는 그녀를 도와주고 다독이고 싶은 욕구를 참아야했다.
“기분은 좀 어때?” 아도라가 조심스레 물었다.
캣트라가 한숨을 내쉬고 매트리스 위로 머리를 누이며 대답했다. “좆같아.”
아도라는 졌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내가 잘못 했어. 마법이든 뭐로든 간에 치료는 힘이 들지. 한 숨 자는게 좋겠다. 아플 때는 자는게 최고니까.”
“내가 꿈을 꾸지 못하게 한다던가 하는 마법의 힘은 없지?” 캣트라가 투덜거렸다.
그녀는 아직 떨고 있었지만, 막 정신을 차린 직후보다는 차분해보였다. 그녀가 스스로 몸에 남긴 상처는 깊지 않았고 피는 멈춰 있었다. 특별한 치료가 필요한 것 같지는 않았다. 아도라는 그녀에게 다정히 이불을 덮어주고 그녀가 잠을 잘 수 있도록 방을 나서고자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캣트라는 아도라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아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이 아도라의 시선과 겹쳤다. 흐릿하고 초점없던 시선은 이제 맑고 날카로웠다. 그녀는 아도라의 눈을 날카롭게 직시하고 있었다.
“왜 나한테 돌아온거야?” 그녀가 물었다.
“내가—” 아도라의 말끝은 침묵으로 잦아들었다. 캣트라는 그녀를 놔주지 않았다. 오직 함선의 엔진이 작동하며 우주를 가로지르고, 호르드 프라임에게서 멀어져가는동안 낮게 웅웅거리는 소리만이 방을 채웠다.
“왜냐면...” 그녀는 다시 말꼬리를 줄였다.
무슨 말이 어울릴까?
“왜냐하면...넌 캣트라잖아.” 그녀의 말끝에는 자신이 없었다.
캣트라가 움찔했다. 아도라를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은 미끄러졌고, 이불 속에 다시 웅크린 그녀는 너무나 작아 마치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아도라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른 채 침묵 속에서 함선의 박동하는 심장소리만을 듣고 있었다.
“좀 자둬.” 아도라가 말했지만, 캣트라가 대답할 것이란 기대는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캣트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멀리 있지 않을게.” 아도라는 계속 말했다. “뭔가 필요하면 날 불러줘.”
여전히 응답은 없었다. 아도라의 가슴이 쿵쾅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캣트라를 홀로 두고싶지 않았다. 그녀가 다시는 자신이 볼 수 없는 곳에 있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녀는 매트리스에 누워 그녀를 가슴으로 껴안고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그녀가 잠들기 전까지 곁에 있고 싶었고, 그녀를 두 팔로 껴안아 그녀가 다시는 고통도, 공포도 느끼지 않도록 가슴으로 품어줌으로써 그녀가 안전하다고 느끼길 바랐다.
그러나 아도라는 그럴 수 없었다. 스스로가 그것을 간절히 원했기에, 그럴 수 없었다. 그녀가 그런 것을 시도할 때마다 상황은 안 좋아질 뿐이었기 때문이다.
아도라는 일어서 방을 떠났고, 패널을 조작해 문을 닫았다. 그녀는 캣트라가 자신의 발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들을 수 있을만큼 충분히 멀리 떨어진 다음, 신발을 벗고 발끝으로 조심조심 걸어돌아왔다. 그녀는 조심스레 주저앉으며 문에 등을 기대고 어떤 고통스런 신음소리가 들려오지는 않는지 귀를 기울였다.
캣트라에게 뭔가 필요하면 그녀가 가져다줄 수 있도록.
다시는 그녀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삐걱이고 덜컹거리며 함선은 우주를 가로질러 호르드 프라임에게서 멀어져갔다.
*****
캣트라가 방에 들어온 뒤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녀는 잘 수 없었다. 적어도 마음 놓고 자지는 못했다. 잠에 들면 끔찍한 것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녹색 액체로 가득한 탱크 속에서, 클론들의 어둠 속에서 빛나는 눈이 바다를 이루고, 프라임의 잔혹한 입술이 움직이며 그녀의 마음을 갈갈이 찢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목으로 들어오는 호흡관의 압박을 느끼고, 프라임의 억센 손이 그녀의 머리를 붙잡는 동안 칩이 이식되는 것을 느끼고, 타오르는 고통 이후에 뒤따르는 소름끼치는 무감각함을 느꼈다.
그러나 그런 끔찍한 환영들보다 더 끔찍하게 느껴진 것은, 계속해서 아도라의 희망으로 가득한 반짝이는 두 눈과, 뭐라도 도와주려고 바쁜 손, 그리고 그 어색한 웃음을 보는 것이었다.
캣트라의 방에는 창문이 없었지만, 창이 있었더라도 낮과 밤 같은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있을만한 지표가 있을리 없었다. 시간의 흐름을 느낀지도 오래되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우주에 있었던가? 얼마나 오랫동안 프라임의 손에 조종됐던가? 아도라가 그녀를 구한지는 얼마나 오래된건가? 차가운 공허함과 타는듯한 꿈, 그 모든 것들이 뒤섞였다. 캣트라는 침대의 양끝으로 굴러다니며 이불을 걷어차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머리를 쥐어 뜯었지만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아도라가 와서 뭐든 하려들테니까. 그녀는 아도라의 멍청하고 희망에 찬 얼굴을 다시 보고싶지 않았다.
한참 후(캣트라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는지 알지 못했다.), 아도라가 돌아와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캣트라는 잠든 척 했다. 그녀는 아도라가 침대 옆에 다른 물병을 두는 소리를 듣고, 이불을 다시 덮어주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화가 났다. 감옥의 창살 사이로 자신을 째려보지는 못할 망정 이렇게 친근함을 드러내는 것에 화가 났다. 그러나 그녀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아도라의 눈을 다시 마주볼 수 없었다.
아도라는 계속 그녀를 살피러 돌아왔고, 캣트라는 그때마다 자는 척을 했다. 그녀는 아도라가 그녀가 일어났음을 알게 될까봐 갈증으로 목이 탔음에도 물병에 손을 대지 못했다. 그러다 마침내 그녀는 얕은 잠에 빠져 꿈을 꾸기 시작했다. 녹색 액체, 프라임의 비웃음, 고통, 그 목소리. 그리고 그것은 하필 아도라가 그녀를 살피러 왔을 때였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소스라친 캣트라는 벌떡 일어났고, 그녀의 심장은 가슴을 뛰쳐나가려는 듯 고동쳤으며, 억누를 수 없는 비명이 입 밖으로 흘러넘쳤다. 그렇게 그녀의 위장이 들통났다. 그리고 캣트라가 그녀와 그녀가 사랑했던 것을 불태우려했던 수 년간의 시간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듯, 아도라가 그 멍청하고 희망에 찬 표정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캣트라는 항상 하던 짓을 했다. 스스로 친 벽 뒤로 도망가 주워담지 못할 말을 퍼부어 아도라가 가장 아파할,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그 부분을 찌르는 것. 그녀는 그런 존재였다. 썩어버린 심장과 본능 외에 아무것도 없는, 남들이 항상 그녀에게 말하던 그대로인 짐승. 그녀는 독이고, 불이었고, 깨진 유리조각이었으며, 아는거라고는 남을 상처주고 대가로 상처받는 것 뿐이었다.
아도라는 화를 내며 떠났다. 그때, 캣트라의 내면에 조금 남아있던 아이같은 부분이, 어쩐 일인지 완전히 짓밟혀 사라지지 않은 그 일부가 아도라를 불러세우기를, 그녀를 좇아 밝은 복도로 달려나가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러지 못했다. 그녀는 어둠 속에 남았다.
그녀는 어떻게 떠나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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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라가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그녀에게 선택의 기회를, 모든 것을 두고 떠나 다시는 자기를 볼 일 없을 것이라는 선택을 제시한 순간, 캣트라는 마침내 자신이 그럴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수년간 끊임없이 홀로, 텅 빈 마음으로 분노해왔다. 오직 그녀의 분노가 그녀에게 열의를 주던 것이었기에 그녀는 이제 추위만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뼛속까지 시리고 아팠다. 그리고 이제는 견디기 힘들었다.
그녀는 아도라에게 손을 뻗었다.
“있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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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떻게 하는지 봤어야 되는데.” 보우가 말했다. “뒤 쪽에서 두 대가 쫓아오는데, 앞에서 한 대가 길을 막는거 있잖아? 그래서 내가 막, 퓨퓽! 와! 배럴 롤! 그렇게 완전히 따돌렸는데, 나 진짜 멋있었다니까?”
“그럼, 그 와중에 소행성에는 세 번밖에 안 박았고.” 글리머가 히죽엿다. “그쪽을 그냥 대놓고 박아버렸었는데, 인상적이었어.”
“그래, 다음에는 니가 몰아보던가.” 보우가 투덜거렸다.
“감압으로 우리 모두 순식간에 즉사할 수도 있었지만, 달라의 보호막이 완벽하게 버텨줬어!” 앤트랩타가 거들었다. “아우, 정말 자랑스러워, 달라!”
캣트라가 다시 빵을 베어무는 모습을 본 아도라의 얼굴에는 기쁨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어때? 맛있어?” 그녀의 두 눈은 캣트라의 반응을 고대하며 빛나고 있었다.
“음...괜찮네.” 캣트라가 중얼거렸다. 정색하는 글리머를 본 그녀는 덧붙였다. “너무 맛있네. 고맙다.”
아도라는 조금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맛있다...가 다야?”
“이 반짝이가 오성급 요리사는 아니잖아?” 글리머가 비웃는 캣트라의 갈비뼈를 팔꿈치로 응징했다. “왜? 맛있다고 했잖아!”
“이것보다는 좀 더 근사한 리액션을 바랐는데.” 아도라가 웅얼거렸다. “전투 식량 말고 바깥 세상의 진짜 음식을 처음으로 맛 봤을때 나는 완전히 빠졌거든. 먹는걸 멈출 수가 없었어.”
캣트라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아도라, 내가 전에도 전투 식량 말고 다른 음식을 먹어봤다는건 알고 있는거지? 공포 지대에서도 구하는 곳만 알아낸다면 얼마든지 밀수품을 찾아볼 수 있었는데. 그런 생각조차 안 해보고 정직하게 배급만 받은건 아마 너 혼자였던 것 같다.”
보우와 글리머가 깔깔 웃자, 캣트라는 마음이 조금 따뜻해진걸 느꼈다. 남들이 자신 때문에 웃는 것은 낯선 경험이었다. 비웃는거라면 익숙했지만. 아도라는 뺨을 붉히며 부끄러워했다. “진짜?” 그녀가 중얼거렸다. “난 네가 반란군에 들어와서 음식다운 진짜 음식을 먹었을 때 그 반응을 보기를 몇 년을 기다렸는데. 너는 그동안 맛있는걸 잘도 먹고 있었다는거야?”
그리고 마음의 온기가 가셨다. 살을 에는 한기가 솟아올랐다. 보우가 또 다른 농담을 던졌지만, 그의 목소리가 그녀에게는 먼 곳에서 들리는 웅얼거림일 뿐이었다. 그녀는 심연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말 한마디 없이 그녀는 일어서서 그룹을 떠났다.
“캣트라…?” 아도라의 목소리가 웅웅이는 소음을 뚫고 그녀의 귀에 다다랐으나, 그녀는 돌아서지 않았다. 캣트라는 글리머가 뭐라고 웅얼거리는걸 들었고, 그것이 자신을 혼자 내버려두라고 하는 것임을 알았다.
방을 나서자마자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리고 말았다. 두 다리가 무너지기 직전에 그녀는 방에 다다랐고, 비틀거리며 벽에 기댔다. 마치 가슴 위에 무거운 것이 허파를 짓누르는 것처럼 느껴졌고, 온 몸에서 피가 다 빠져나간 것 같았다. 그녀는 벽을 타고 미끄러져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헐떡였고, 헐떡임은 이내 너무 낮고, 너무 무거워 무음으로 착각할만큼 비통한 절규로 변했다.
아도라는 별 것도 아닌 것처럼, 마치 그보다 더 쉬울 수 없는 일인 것처럼 말했다. 그저 캣트라가 원하기만 했다면 언제든지 공포 지대에서 겪었던 끊임없는 비극을 등지고 걸어나가 좋은 음식을 먹고, 아도라와 함께 행복할 수 있었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 그럴 수 있었을 것이다. 잠 못들던 수많은 밤, 쉐도우위버나 호닥이 주었던 모든 고통, 분노로 가득차 무너지며 벽에, 침대에, 자신에게 손톱자국을 남긴 모든 순간들. 전부 의미없었다. 내다버린 시간일 뿐이었다. 그녀는 스스로의 자만심과 분노, 파괴 욕구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됐었다. 그 대신 그녀는 그것들이 자신을 삼켜버려 지금까지 그녀 내면에 어떤 좋은 것도 남기지 못하고 그저 주변의 세상을 불살라버리도록 놔뒀을 뿐이다.
너무 늦은게 아닐까?
가슴을 짓누르던 압박은 이제 배 속에 들어앉았다. 그녀는 토할 것 같았다. 그녀는 숨을 쉴 때마다 헛구역질을 했지만 그저 흐느낌만 나올 뿐, 나오는 것은 없었다. 그녀는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캣트라는 텅 비어버릴 때까지 울었다. 눈은 아프고 몸은 쑤시고 무거웠다. 꼼짝도 못하게 된 그녀는 자리에 쓰러졌다. 그리고 복도의 골목을 지나 다가오는 누군가의 발소리에 그녀의 신경이 곤두섰다. 아도라가 이런 자신의 모습을 보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발소리의 주인은 아도라가 아니었다.
앤트랩타의 시선은 추적 패드에 꽂혀있었다. 그녀는 캣트라를 밟기 직전에 간신히 그녀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아, 미안.” 그녀가 명랑하게 말했다. “달라의 재부팅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러 가고 있던 참이었어.” 그리고 그녀는 캣트라의 눈물에 젖은 얼굴을 확인하고 놀랐다. “아, 음, 너어...괜찮아?”
캣트라는 바로 대답하지는 않았다. 앤트랩타는 굉장히 불편한 이 상황을 두고 꼼지락거릴 수 밖에 없었다. “의료행위가 필요해? 내가, 음, 가서 아무나 불러올…”
“앤트랩타.” 캣트라가 마침내 고개를 들고 입을 열었다. “어떻게 했어?”
앤트랩타는 약간 놀란 듯이 고개를 기울였다. “어떻게 했냐고?”
“어떻게—” 캣트라가 목을 가다듬었다. “...어떻게 쟤들이 널 용서해 준거야? 어떻게 너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었어?”
앤트랩타는 머리를 꼬며 대답을 궁리했다. “나도 잘 몰라.” 그녀가 인정했다. “아도라랑 보우는 내가 룬스톤을 가지고 몹쓸 짓을 했는데도 나를 구해주러 왔어. 내가 걔들을 해친 로봇을 만들었는데도. 내가 만든 포탈 장치가 현실을 거의 파괴해버릴뻔 했을때도.”
캣트라는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고, 떠는 몸을 말아 자리에 웅크렸다. 앤트랩타는 이 반응에 패닉에 빠졌다. 머릿속에 처음 떠오른 생각에 그녀는 캣트라에게 달려들어 두 손을 기괴하게 마주잡았다. 캣트라는 놀란 두 눈을 글썽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앤트랩타도 놀란 눈치였지만, 이내 하던 작업을 이어나가기 위해 캣트라의 손을 조금 더 단단히 잡아쥐었다.
“내 생각에 걔들은 내가 좀 더 나아질 수 있을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날 위해 돌아와준 것 같아.” 단어 하나하나를 고심하며 그녀가 말했다. “내가 떠나라고 했을지라도 걔들은 날 떠나지 않았을거야. 그래서 난 걔들이 생각하는 그 좋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지. 처음에는 어떻게 할 지 잘 몰랐어. 계속 망치기만 했지. 그래도 걔들은 날 포기하지 않았어. 내 생각에, 너도 걔네들이 포기한 것 같지는 않아. 그러니까 좀 더...노력해보는게 좋을거야.”
긴 침묵이 흘렀다. 앤트랩타는 머리가 타들어가는 것을 느꼈지만 캣트라를 마주보기 위해 악을 썼다. 마침내 캣트라가 떨리는 입으로 자그마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보답으로 손을 살짝 마주 쥐어주었고, 그녀는 캣트라를 놓을 수 있었다. 그녀의 몸짓에 만족한 앤트랩타는 방을 나서기로 했다. 캣트라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넌 진짜 먼 길을 왔구나.” 캣트라가 속삭였다.
“고마워!” 앤트랩타가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이 손으로 하는 행위는 보우한테서 배웠어. 사람을 위로하는데 정말 탁월한 효능을 지닌 것 같네.” 그녀는 캣트라를 살펴보며 열정적으로 고갯짓을 했다. “새 옷이 필요하겠다. 만들어줄게. 우주복도 같이! 헬멧에 귀가 있으면 좋겠어? 귀도 만들어줄게.” 그리고 앤트랩타는 그녀의 녹음기에 “또 한번의 성공적인 감정 교류!” 라고 외치며 복도로 달려나갔다.
캣트라는 더이상 서있기 힘들 정도로 지쳐있었다. 하지만 이제 가슴은 아프지 않았다. 배가 끊어지는 고통은 잦아들었고, 멍하고, 욱신거리고, 축쳐졌지만...동시에...왜인지, 나아진 것 같았다.
참으로 오랜만에 앞으로 나아가야할 길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녀의 눈이 감기고 이내 그녀는 문 앞에서 15ft(4.5m)도 떨어지지 않은 바닥에서 잠에 빠졌다. 깊은 잠에 든 그녀는 아도라가 돌아와 그녀를 안아들었을 때에도 깨지 않았지만, 아도라가 그녀를 침대에 조심스레 누일 때 조금 흔들린 그녀는 몽롱한 채로 눈을 떴다.
“헤이, 아도라.” 그녀가 우물거렸다.
아도라가 멍청이같이 해맑은 그 미소를 지었다. 바보라니까. “괜찮아?”
“응. 괜찮아졌어. 아직 무진장 피곤하긴 해. 좀 더 자야겠어.”
아도라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벗어나려 했지만, 이내 제자리에 멈췄다. 캣트라의 손톱을 집어넣은 손이 부드럽게, 하지만 단단히 그녀의 손을 감싸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도라를 마주보지도 않았지만, 그녀를 놓아주지도 않았다.
아도라는 모험을 하기로 했다.
“헤이, 캣트라?” 마침내 각오를 마친 아도라가 속삭였다. “오늘...오늘 밤에는 여기서 같이 자도 될까? 보우랑 글리머가 대합실에 방을 잡아서 다시 비집고 들어가기 싫거든.” 캣트라는 골골이를 하듯 숨죽인 소리로 키득이고 있었다. 아도라도 웃었다. 캣트라를 웃음짓게 만드는게 좋았다.
“마음대로.” 캣트라가 속삭였다. 아도라는 의기양양해 일어섰다.
“가서 이불 더 가져올게. 내가 바닥에서 자면 돼.” 문을 나서려는 그녀를 캣트라의 목소리가 멈춰세웠다.
“아도라.”
아도라는 의문스레 돌아보았다. 캣트라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파란 눈, 황금빛의 눈, 두 눈이 어두운 방에서 빛나고 있었다.
“바보처럼 굴지 마.” 마침내 캣트라가 입을 열었다. “이 침대 혼자 쓰기는 너무 커.”
'우와.'
천천히, 조심스레, 아도라는 캣트라의 곁에 누워 침대에 몸을 맡겼다. 그녀는 딱딱한 자세로 캣트라 옆에 누워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둘의 몸이 서로 닿게 하지는 않았다. 아도라는 혹시 너무 빨리 움직이면 놀란 캣트라가 도망가지 않을까 그녀를 커진 눈으로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긴장한 맥박이 요동치며 뛰었고, 이내 캣트라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 뾰족한 송곳니가 드러나는 미소를 만들었다.
“그 멍청한 포니테일 묶은 것 좀 풀어, 바보야.” 그녀가 말했다. “그렇게 하고 자면 30대에 대머리가 될거라고.”
아도라는 그녀를 쏘아보면서도, 이내 누그러뜨리고는 고무줄을 잡아당겨 손목에 감았다. 그녀의 땀에 젖어 엉망인 머리카락이 얼굴 위로 흘러내렸다. 그리고는 이제 만족했냐는 듯이 아도라는 캣트라를 째려보았다.
아도라도 피곤해보이긴 마찬가지였다. 캣트라는 그녀를 마주보았다. 그녀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고, 아도라가 그 의미를 기억하는지 궁금했다.
아도라가 불현듯 손을 뻗어 캣트라의 얼굴에 드리운 앞머리를 쓰다듬었다. 캣트라는 갑작스러운 손길에 놀라 움찔했다. 정신을 차린 아도라는 서둘러 손을 거두었다. “미안.” 그녀가 말했다. “그게...마음에 들어. 네 머리.”
캣트라는 눈을 굴리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이게 프라임이 나한테 저지른 유일하게 좋은 일인 것 같네. 머리 잘라주기.”
“아냐!” 아도라는 말 실수에 겁먹은 듯 했다. “내 말은—”
“아도라, 괜찮아.” 캣트라는 웅크리며 아도라에게 다가갔다. 아주 조금, 여전히 서로 닿지는 않았다. “그냥 농담한거야. 맘에 든다니 다행이네. 좀...가벼워진 것 같아.” 둘은 먼저 시선을 떼는 쪽이 되고 싶지 않다는 듯 서로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이제 무슨 얘기를 해야할까? 그럼...
“고마워.” 캣트라가 침묵을 깨고 속삭였다. “날 구해줘서. 돌아와줘서 고마워.”
아도라의 놀란 눈이 동그래졌다. 바보라니까. 그녀의 감정은 어떤 것이든간에 누가 봐도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자세히 표정으로 드러났다. 어쩌면 캣트라도 그런 면을 좀 닮을 수 있을지 모른다.
“널 내버려둘 수 없었어.” 아도라가 그녀에게 속삭였다.
“이제 좀 더 나은 사람이 될게.” 캣트라가 눈을 질끔 감으며 말했다. “네게 많은 상처를 입혔지. 미안해. 이제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 그렇지만 사과한다고 모든걸 용서받을 수 없는 것도 알아. 네가 만약 내가 떠나기를 원한다면, 떠날게.”
캣트라는 아도라가 매트리스를 들썩이며 얼굴에 숨결이 닿을만큼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가지 말아줘.” 그녀가 말했다. “네가 여기 있기를 원해. 나랑 같이. 네가 정말 그리웠어, 캣트라.”
그리고 캣트라가 마침내 간극을 메웠다. 아도라의 다리에 살며시 닿은 꼬리는 그렇게 엄청난 것이 아니었다. 실수가 아닐까 의심될만큼 가벼운 접촉. 하지만 그녀는 그 꼬리를 치우지 않았다. 아도라가 이해할 때까지, 그녀는 입 밖으로 나가지 못한 요청을 거기에 남겨두었다.
아도라는 캣트라에게 다가가 그녀에게 팔을 둘러 그녀를 끌어당기듯이 감싸 안았다. 캣트라는 아도라의 턱에 가만히 머리를 대고 아늑하고 따뜻한 그녀의 가슴에 안겼다. 조금은 어색할까? 둘이 어렸을 때 했던 것처럼 허물없고 가볍지는 않았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렇게 시작하는거니까.
캣트라는 더이상 눈을 뜨고 있기 힘들었다. 그리고 아도라는 아주 오랜만에 깊은 단잠에 빠진 캣트라의 가슴에서 울리는 부드럽고 어설픈 골골이를 느꼈다. 그녀는 이게 현실인지 믿기 어려웠다. 하지만 계속 의심하고 버티기에는 그녀도 피곤했다. 그녀는 캣트라의 머리에 얼굴을 파묻고 그녀의 골골이를 자장가 삼기로 했다.
조용하고 평화롭게, 함선은 우주를 가로질러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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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채점+2 정도
플마2점
전 작년에 오히려 1점 떨어짐 ㅋㅋㅋㅋㅋ 완전 칼채했다고 생각했는데..
난 젤 칼채한 점수보다 +3이었고 최대물채보단 좀 많이 낮게나옴 ㅋㅋㅋ
유붕는 갤러리에서 권장하는 비회원 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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