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마이너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변질된 쾌락의 기록-1

ㅇㅇ(14.38) 2020.09.07 01:01:36
조회 498 추천 12 댓글 8
														

 석양의 원리는 인간들에 의해 낱낱히 해부되어 명증되었다. 시시각각 하늘의 색이 변하는 기상 현상은 그저 태양 각도의 변화에 따른 빛의 산란의 결과일 뿐, 어떤 이적도 기적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끝이 보이지 않을만큼 하늘을 뒤덮은 불타듯 화려한 금빛 물결은 인간으로서는 경탄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공백의 안에서 아른거리는 석양은 비참하기 이를데 없었다. 금빛으로 타오르는 석양은 경계가 보이지 않는 반구체의 안에서 넘칠 듯 일렁였지만 끝끝내 탈출하지 못한 채 괴여있을 뿐이었다. 애처롭게도 공백의 일부로 전락한 낙조는 명칭 그대로 대지에 서 있는 인영의 금발을 타고 흘러내려 대지에까지 붉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붉은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덩어리들은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토막난 채였다.

 소울정크에게 잠식되어 그 일부로 전락해버린 인간이었던 것들을 자신의 발 아래에 둔 채 소녀는 웃고있었다.

 그 웃음을 보는 소년은 고소를 지었다. 익숙치 않은 패배로 인한 무력감과 탈력감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을 채우는 익숙한 달성감이 그를 채우고 있었다.

 소년의 쓴웃음를 만끽하며 신은 홍소를 터트렸다. 계획된 존재가 계획과는 다르게 움직였지만 결국 모든 것을 계획의 안으로 밀어넣은 승자의 미소였다.


 다들 제가 이긴 양 웃고 있지만 진정으로 바라던 것을 가진 자는 가장 강한 자 단 한 명 뿐.


 언제나 그렇듯이 관리하는 존재는 미진하고 강한 존재는 자신의 욕망을 따르기에 생겨나는 흔한 결말이었다.















"같은 느낌일 오프닝 스크립트는 스킵하고."


 서있던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은 어윈은 밀려드는 무수하고 상반된 감정을 추스르며 적당히 주워섬겼다. 몇주동안은 어떤 말을 해도 지나치게 진지하게 반응하는 대화상대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의 기대대로 시답잖은 대꾸가 들려왔다.


"엔딩 스크립트가 아닙니까?"

"엔딩에 출력할 메세지는 길면 안돼. 게임 스크립트도 제대로 안읽는데 다 끝난 이야기따위를 진지하게 보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어? 다음 게임을 뭘로 할까 고민이나 하겠지. 결판이 난 뒤에 주절주절 설명 붙여봐야 구차하기만 하니까 한 문장으로 끝내는게 최고야."


 언제부턴가 손아귀 안에서 느껴지던 쇳덩어리를 손 안에서 빙빙 돌리던 어윈은 총부리로 대화상대를 가리키며 그의 인생관을 피력했다.


"그들은 지금도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같은걸로."

"보통은 행복하게 아닙니까?"

"난 즐거울때 행복하거든."


 거 참 행복한 인생이겠군요. 하고 작게 볼멘소리를 한 켄트는 이 곳에서 가장 행복하게 웃고 있는 소녀를 흘긋 보았다. 그녀 또한 새롭게 쥐게 된 자신의 무기에 정신이 없어보였다. 제 몸 만한 크기의 쇳덩이인데도 이전에 쓰던 식칼을 휘두르는 것 마냥 가볍게 팔을 휘둘렀다. 그 움직임에 맞추어 그녀의 각성 재료들은 물론 애꿏은 대지까지 두부마냥 쩍쩍 갈라져나간다. 굳이 확인 할 필요조차 없는 성공작임에 틀림 없었다.

 그렇기에 켄트는 여전히 자신에게 성의없이 총구를 향하고 있는 어윈쪽으로 관심을 다시 돌렸다.


"잠시 확인 좀 해보겠..."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묵직한 쇳덩이가 두 사람 사이를 가르듯 날아들었다. 만약 켄트가 조금만 더 손을 뻗었더라면 거대한 날붙이가 둔해 보이는 외관과는 달리 얼마나 예리한지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정확한 투척이었다.

 그 상황에 당황해서인지 어윈의 손아귀 안에 있던 총이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부품의 형태로 조각나 와르르 쏟아졌다. 이내 그의 몸으로 스며들듯 사라지지 않았더라면 이능력자가 무기를 사용한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안정성이 떨어지는 상태다. 이를 확인한 어윈이 허탈한 표정으로 빈 손을 쥐락펴락했다.

 그러는 사이 무기보다 조금 늦게 소녀가 도착했다. 하루는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거대한 검을 뽑아들고는 어윈을 등진 채 자신의 무리가 아닌 자를 향해 겨누었다.


"쫒아온건가요."


 하루는 분노하지도 당황하지도 겁을 먹지도 않았다. 그저 죽일 생각 뿐이었다. 쫒아온 자가 이전에 그녀를 구속하는데 일조했던 자여서가 아니다. 도주를 방해해서도 아니다. 두 가지 모두 켄트를 적대시할 이유가 될 수는 있지만 죽일 계기는 아니었다.

 하루가 눈 앞의 사내를 죽이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저 그 또한 공백의 일부이기 때문이었다.

 아직 순서가 아닌 그녀 자신이나 어윈과는 달리 켄트를 죽이는 일을 꺼릴 이유는 없었다.

 그렇기에 하루는 실눈을 뜬 채 수상하게 미소짓는 장발의 남자가 누구든 칼을 내리 그을 생각이었다. 적어도 한 번 몸과 떨어진 적 있는 익숙한 팔이 정말로 내키지 않는다는 티를 노골적으로 내며 그녀의 앞을 가로막기 전까지는 그럴 용의가 있었다.


"이녀석은 필요해."

"제가 죽이고 어윈씨는 방향만 알려주면 되잖아요. 더는 필요 없어요."


하루의 단호한 말에 어윈은 한숨을 내쉬었다. 체념이나 달관이 아니라는 것은 그의 미소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어윈은 어깨를 으쓱였다.


"알다시피 공백은 무지 넓다고. 혼자 힘만으로는 방향을 가리킬 수 없을 정도로."















"쓸모없는 길잡이를 죽이는게 아니라 새로운 길잡이를 용인하다니 못본 새 하루씨가 제법 둥글둥글해졌네요."

"그 말 앞에서 하면 네모네모하게 썰어줄걸. 요즘 부쩍 복부나 다리 두께를 체크하던데."


 어이쿠 무서워라. 하고 너스레를 떨며 켄트는 자신이 만든 돔에서 손을 떼어냈다.

 다닥다닥 붙어 앉으면 네 명이 가까스로 들어앉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밖에는 되지 않지만 돔 밖의 상황으로 보아 오래 있을 필요는 없을 터였다. 결계의 중심에 이미 엉덩이를 붙이고 자리를 깐 어윈은 소울정크의 잔해와 빛의 굴절로 윤곽을 알 수 있는 투명한 반구 밖에서 진행중인 살육극을 뚫어져라 보고있었다.

 그러던 중 손바닥만한 소울정크의 잔해가 아랫부분에 달라붙었은 것을 본 어윈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생명을 모독하듯 꿈틀거리는 검은 물체는 그 역겨움과는 별대로 마치 제 뒤에 있는 학살자로부터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듯 했다.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익히 알 뿐 더러 이후에 일어날 일 또한 짐작한 어윈은 시선을 돌렸다. 예상대로 결계에서 떨어져있던 하루는 순식간에 그들의 인근까지 쇄도해왔다. 그 거침없는 행보와는 달리 소울정크를 결계에서 먼 곳에서부터 얇게 저미는 손속은 섬세했다. 마치 자신의 공격으로 인해 그 얄팍한 막이 부서지는 것을 염려하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집요한 작업을 끝낸 하루는 고개를 들었고, 그 상황을 빠짐없이 관찰하던 녹색 눈과 마추했다. 어윈이 빙긋 웃으며 손 흔들자 고개를 돌려 외면해버린 그녀는 그대로 다시 아까의 살육장소로 달려나갔다. 그에 맞추어 하루의 양쪽으로 검은 물결이 비산했다.


"...저거 소울정크들을 한번에 갈아버리려고 이동한거지?"

"뭐 어윈씨가 그렇다면 그런게 아닐까요."


모호한 켄트의 말에 어윈이 피식 웃었다.


"10대 소녀는 상대하기 어렵네. 역시 친밀도를 더 쌓았어야 했나."


 그는 볼멘소리를 하면서도 엉겨붙는 소울정크들을 호쾌하게 베어넘기는 하루의 움직임에 맞추어 양쪽에서, 혹은 머리 위에서 덤벼드는 가상을 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켄트의 결계를 넘어오는 적은 없었기에 희극적이기까지 한 동작이었지만 어윈은 줄곧 진지했다. 그녀와 자신의 능력 차이를 계산하듯 하루가 한 번에 쓸어버리는 적을 향해 여러 번 손가락을 까닥이거나 다른 쪽을 겨누던 팔을 모아 한 곳으로 일점사를 하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그의 시뮬레이션은 기존에 보았던 한 정의 총만을 전제로 하고 있지 않았다.


"총은 한 정뿐인게 아니었습니까?"

"반쪽짜리니까. 아직은."

"어느 쪽 반쪽인지 확인해보죠."


 켄트가 먼저 손을 내밀었고 어윈은 귀찮은 티를 대놓고 내며 대강 팔을 뻗었다.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거리를 유지한 채 내민 손등이 뜻하는 바는 명백했다. 그 이상의 접촉을 꺼리는 소심한 저항이었다. 물론 켄트는 어윈의 의사를 존중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맹금류가 발톱으로 사냥감을 채가듯 가차없이 움켜쥐었다.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익히 알고 있고 의도할지라도 쉽게 잊지 못하는 어윈의 몸이 긴장으로 굳는 것을 즐기며 켄트도 자신의 손바닥 안쪽에 집중했다.

 돔 밖의 하루가 사냥에 집중하는 대신 이 광경을 직접 보았더라도 둘 사이에 일어나는 일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일반적인 이능력자는 물론 소울워커도 이해할 수 없는 행위를 켄트는 하고있었다.

 그는 자신의 몸 안에 있는 소울 에너지를 어윈의 몸에 거부반응이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하지만 조금도 새어나가지 않도록 확실하게 밀어넣었다.


"흠. 에너지의 형태가 변했네요.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닌겁니까."

"하루가 소울 정크 잡는 거 구경도 좀 하고, 내 팔도 고치고, 미소를 보고싶은 나머지 사이비 종교에도 말려들었다가 분신이지만 한번 죽기도 했고. 생각해보니 꽤 바빴네."

"연애를 할 줄 알았더니 보호자 행세를 했군요."

"....그런가."


 처음에는 평소처럼 잘 돌아가던 입이었지만 밀어넣을수록 반론을 제대로 할 여유가 없는지 어윈의 목소리는 억눌려있었다.

 이전과는 달리 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용도라 많이 넣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윈은 그조차도 버거운 듯 했다. 애써 태연을 가장하고 있지만 몸은 솔직했다. 학질이라도 걸린 양 어윈의 몸은 잔경련을 일으키며 떨리고 있었다.


"어윈씨도 알고 계시다시피 이능력자가 소울워커로 각성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강대한 감정이 필요하지요."


 가늘게 뜬 눈 사이로 어윈을 관찰하며 만족스러운 기분을 숨김없이 드러낸 켄트는 떨리는 손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하루씨의 미소가 꽤나 절실했나보군요."


 확인도 떠보는 말도 아니었다. 정확하고 담담하기까지 한 상황 분석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어윈이 신에게 이길 기회를 열어준 가능성이었으며 승기를 잡았던 그가 최후에 지게 된 계기이며, 그럼에도 관철해 낸 목표이기도 했다. 이 장소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기에 새삼 대답할 의미조차 없었다. 그렇기에 어윈은 대답하지 않았고 켄트도 답을 요구하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패배자가 승자의 말을 못 들은 척 하는 것을 보고 넘길만큼 그는 관대한 존재가 아니었다.


"오랜만이라 어느정도까지 괜찮은지 모르겠는데요."


 어윈이 뭐라 말을 꺼내기 전에 켄트는 그의 몸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소량만 흘려넣고 있던 소울 에너지의 양을 대폭 늘렸다. 들어가는 에너지의 형태는 다르지만 방식은 같았기에 어색함은 없었다. 비유를 하자면 물이 차 있지만 덜 부풀어있는 풍선에 물을 더 흘려 넣어 크기를 키우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다행히도 상대는 예나 지금이나 당장의 그릇은 작을지언정 부풀리는 것을 버틸 수 있을 정도의 강도는 있었다.

 하지만 어윈은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변화를 감지하기 위해 미량의 소울 에너지를 흘려넣을때는 흔들릴지언정 태연을 가장하던 얼굴이 점점 하얗게 질려갔다. 그와 동시에 추운 곳에 있는 사람처럼 그의 입술에서 혈색이 사라져 퍼렇게 변하고 식은땀이 배어나오는게 보였다. 물이 나가면 끝인 수도꼭지와는 달리 늘어나는 풍선 입장에서는 물이 들어오고 가득 차오르는 느낌이 유쾌할 리 없다. 이를 증명하듯 어윈의 상체가 경직되었다. 살아있는 존재가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주입당할 경우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그동안 제법 여러 차례 겪었는데도 그동안 격조했던 탓인지 어윈의 반응은 신선했다. 데자이어 에너지가 무엇인지 느끼고 싶다기에 처음으로 주입했을 때보다도 더 극적이었다. 들어오는 대량의 에너지를 감당하느라 긴장했는지 딱딱하게 굳더은 몸이 균형을 잃고 기울어졌다.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는 듯 켄트에게 잡힌 팔에 매달린 어윈은 이미 동공이 풀린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자신의 소원을 이뤄주길 바라는 무력한 인간다운 모습에 기꺼워진 켄트는 어윈이 고꾸라지는 대신 드러누울 수 있게 친히 위치를 옮겼다. 어윈이 버틸 수 있는 한계까지 확장은 진즉에 끝나있었다. 새로운 목표가 육편이 되어 흩날리는 꼴을 볼 생각은 없었기에 흡족하지는 않지만 만족할 생각이었다. 켄트는 어윈의 머리가 바닥에 부딪치지 않게 조심스럽게 손을 뗐다. 배려가 무색하게도 어윈은 팔을 짚어 상반신을 지탱한 채 앉아있었다.


"그동안 노력은 하신 모양입니다. 그릇이 제법 커져있어요."

"일부러지. 너."

"그럴리가요. 그저 지금 보유한 소울에너지로는 확장하지 못할만큼 어윈씨의 '그릇'이 커져있어서 데자이어 에너지가 조금 새어들간 것 뿐입니다."


 심증은 있을지언정 물증은 없다. 받기만 할 뿐 주입해본적은 없는 어윈은 손을 떼기 직전에 켄트가 밀어넣은 데자이어 에너지가 고의인지 아닌지 알 수 없을 터였다. 돌아오지 않아 쫒아와 도망갈 길을 모두 차단하고서야 겨우 붙잡은 탕자가 괘씸했기에 무심코 벌인 짓일 뿐 고의는 아니긴 했다. 아마도, 단언은 못하겠지만.

 물로 가득 찬 풍선 안에 날숨을 한 호흡 불어넣는 심정으로 살짝 밀어넣은 에너지였지만 데자이어 중독증상으로 인한 흥분의 효과는 생각보다 뛰어났다. 사냥에 집중하던 하루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직감이 들었는지 결계 안의 상태를 봤지만 어윈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태연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보일 수 있었다. 평상시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어윈을 흘긋 본 하루는 재차 주저없이 소울정크의 무더기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그제서야 드러누운 어윈이 팔을 들어 이마를 가렸다.


"그나저나 아이러니한데요."

"뭐가?"


 웃는 잇새로 어윈이 으르렁거렸다. 너무하네요. 라고 말한게 들렸는지 팔 아래로 보이는 눈매가 한층 더 예리해졌다. 나름 안들리게 하려고 작게 말했는데도. 자신이 무심코 한 행동이 나쁘다고는 개미 발톱만큼도 생각하지 않기에 켄트는 억울했다. 병을 주긴 했지만 약도 주지 않았는가. 그래도 언급해봐야 자신이 잘못했다는 쪽으로 결말이 날 수 밖에 없다는 자각은 있었기에 그쯕으로는 입을 닫았다.

 어차피 켄트에게는 자신의 배려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의 태도보다도 더 서운한 일도 있다.


"그토록 공을 들였는데, 소울워커따위가 되다뇨. 배신감마저 느낄 지경입니다."

"반올림을 할 수 없는 이상 0.5든 0.8이든 0이나 마찬가지야. 뭐 0은 아니니 나름의 쓸모야 있겠지만."


 켄트가 아쉬움 섞인 불평을 해도 어윈은 심드렁했다. 데자이어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던 인간이 소울 워커로 반이나 각성했다면 더 흥분할만도 할텐데. 정작 당사자는 반밖에 각성하지 못했다며 투덜거리고 있었다.


"배신은 배신입니다. 어윈씨야 바라던대로 리스와 같은 능력을 얻었으니 기분은 좋겠군요."


 텐션이 떨어진 어윈을 자극해 볼 생각으로 켄트는 반농반진에 야유를 얹어 놀렸다. 지금껏 그가 봐온대로라면 이럴 때 어윈은 '내가 더 대단하다.'고 허풍을 떨거나 제 능력을 이용해 익살을 부릴 터였다. 그게 아니더라도 일단 어윈 아크라이트가 하는 모든 사고의 벡터는 확고하게 스스로를 향하기에, 그가 새롭게 얻은 능력 쪽으로 화제가 빠르게 이동할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켄트의 짐작대로 답변은 즉각적이었다. 하지만 화제는 예상과 달랐다.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도 스스로 정의내리지 못해서 안경의 정의를 지 정의로 여기고 남을 멋대로 정의하는 정의의 머시기 말하는거야?"

"뭐시기라니요. 소울워커라고 불러주세요. 잔디이불의 리더라는 직함보다도 더 제 팔의 흑염룡을 꿈틀거리게 하는 게 정의의 소울워커라는 이명이란 말입니다."

"정의의 소울워커. 라. 매번 들을때마다 생각하는 거지만 농담이야, 그거?"


 농담이나 비꼬는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말이지만 그런 감정은 전혀 실려있지 않았다. 그저 진심으로 궁금해하고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였다. 자꾸 예상을 벗어나는 반응에 켄트는 준비해 둔 답을 할 타이밍을 놓쳐버렸고, 자연스럽게 어윈이 제 주장을 이어갔다.


"애초부터 정의의 소울워커라는 것 자체가 이상하지. 정의는 절대 타인을 위한 감정이 아냐. 타인의 행동이 자신과 맞지 않으면 정의롭지 않은 거고 자신과 맞으면 정의로운거라고 하는데 그건 독선이잖아. 욕망에 가까우려나, 굳이 구분하자면."


 장황한 말은 고저없이 이어졌다. 목소리를 높이지도 크기를 키우지도 않았지만 고양된 상태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목에 돋아난 핏대를 굳이 확인할 것도 없이 이런 태도는 어윈 아크라이트 답지 않았다. 평소의 그라면 타인, 특히 남자에 대해서라면 간단명료하게 빈정거리거나 놀리는 걸로 이야기를 끝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평소의 상태가 아닌 것 같았다.

 원인은 자명했다. 데자이어 에너지 중독증상으로 인한 것일테다. 얼굴을 가리고 목소리를 가라앉혀 평상심을 가장하고는 있지만 오래간만에 주입받은 데자이어 에너지가 어윈의 몸 안에서 여러 효과를 내고 있었다. 이 또한 짐작하지 못한 일이었다.


"심지어 그 녀석은 자신의 정의에 따라 판별한 정의가 진짜 정의라고 믿고 타인을 몰아붙이는데 주저하지 않아. 원래 정의에는 자기반성이 없고 죄책감은 더더욱 없긴 하지만. 제어수단이 없는, 그런게 소울워커라고?"

"그렇기에 최강의 소울워커인겁니다. 주저하거나 망설임 없이 힘을 추구하니까요."

"그 결과가 저기에 있지. 네녀석이 유도한 결과기도 하지만."


 어윈이 가볍게 턱짓으로 돔 밖을 가리켰다. 팔로 눈을 덮고 있어 제대로 보이지 않을텐데도 그 끝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하루 에스티아가 있었다.


"제가 아무리 힘썼다한들 어윈씨의 활약엔 못미치죠."


 어윈은 켄트의 말을 못들은 척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안경도 아마 알고 있을거야. 하지만 그 점을 잘못 지적했다가는 '최강의 소울워커'님이 약해질 수 있으니 그저 둔하다고 은근슬쩍 야유만 하는걸테지."

"...그동안 어지간히 쌓인 모양이군요."

"당연하지. 그런 녀석을 기반으로 소울워커화의 실마리를 찾으려고 했으니 고배를 마신거라고 생각하면 울화가 치민다고. 뭐. 끝까지 컨셉을 버리지 않던 그 단순함은 인정할 수 밖에 없지만."

"그 단순함을 힌트로 삼아서 '하루씨의 미소'를 목표로 삼아 본 겁니까?"


 고저없는 요설이 멎고, 잠시 침묵을 지키던 어윈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식으로는 안된다는거 알잖아. 뭐 결과적으론 그런 셈이긴 하지만서도."


 체념과 만족이 공존하는 기묘한 말이었다. 그 말을 끝으로 어윈은 다시 입을 닫았다. 대화가 끊기고 길어지는 침묵에 도리어 안달을 내는건 켄트 쪽이었다.


"안심하세요. 어차피 소울에너지가 데자이어 에너지로 변환되는 일은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용이하니까요. 아시다시피 검은색을 파란색으로 바꾸는 것 보단 파란색을 검게 바꾸는게 더 쉬운법이죠."


 돔 밖으로 향하는 팔 밑의 시선을 의식하며 켄트는 설명을 추가했다.


"정 급하면 아까보다 조금 더 흘려넣으면 되는 일이죠. 당신이 바란다면 언제든 데자이어 워커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그것만큼은 보장할 수 있어요."

"딴거는 보장할 거 없냐."

"바라시는 거라도 있나요?"

"남정네한테 바라는건 하나 뿐이지."


 어윈이 그의 이마를 덮고 시선을 가리던 손을 들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두어번 손사래를 쳤다. 마치 날파리를 쫒아내는 것 같은 손놀림이었다.


"귀여운 아가씨라는 빛을 가리지 마."

"제가 알던 어윈씨가 돌아와서 좋군요."

"됐으니까 나오라고."


 어윈의 요청대로 자리를 옮긴 켄트는 실실 웃었다. 기대에 부푼 미소였다.


"그러면 앞으로 어윈씨는 어떻게 할 셈인가요?"

"넌 어쩔건데."

"저야 가장 큰 목표였던 하루씨가 성공리에 완성되었으니 새로운 목표를 찾아볼까 싶은데요."


 누구라고 밝힐 필요도 없었다. 언제나처럼 빙긋 웃으며 켄트는 가늘게 뜬 눈 사이로 목표를 보았다. 뻔뻔하다는 평을 듣는 어윈이라도 무시할 수 없는 노골적인 시선이었다. 사실상 켄트가 그를 죽이지 않은 시점에서 이미 짐작하고 있던 일이었다. 모른 척 넘어가기에는 둘 다 상대방의 사고방식과 계획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어윈은 팔짱을 끼고 드러누워 있다가 복근에 반동을 주어 상체를 일으켰다.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그는 마지막 덩어리를 터트리는 소녀를 보았다. 그 많던 소울정크들을 다 처리했는지 하루는 칼을 휘둘러 검은 액체를 털어내고 있었다.


"이런. 생각보다 정리가 빠르군요."


 그 말이 신호가 된 듯 소울정크들이 다시 몰려들었다. 마치 해안을 향해 연이어 밀려오는 파도처럼. 그 파도를 대적하는 하루의 모습을 어윈은 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주고받던 말소리가 사라지자 이를 대신하듯 돔 밖에서 하루가 끝없이 베고 썰어내고 자르는 소리와 쓰레기들이 내뱉는 의미없는 단말마만이 스러졌다.

 학살의 현장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어윈의 옆모습은 마치 그녀를 부러워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피상적인 관찰만 할 수 있는 일차원적 인간의 생각일 뿐이다. 켄트는 어윈의 시선이 검은 파도를 가르고 잠재우는 하루를 향할 뿐, 그의 의식은 내부로 침잠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집중할 수 없는 환경에서도 그는 골몰하고 있었다. 분명 그는 하루의 강함, 공백속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힘, 켄트의 의도, 그리고 어윈 자신의 상태와 성장 가능성에 이르기까지 고려하며 다음 행보를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어떤 답이 나오든 상황을 만끽할 수 있는 신은 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처리할 쓰레기들을 더 불러모아 생각할 시간을 더 확보해 줄 용의도 있었다. 하지만 어윈은 장고 없이 켄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제시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이었다.


"잔디이불로 돌아가야겠네."

"제정신입니까?"


 과부하라도 온 게 아닌지 의심스러운 결정이었다. 다른사람이 이런 결정을 내렸다면 자포자기했다거나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 오만한 결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윈 아크라이트는 거짓말쟁이일지언정 허풍쟁이는 아니다.

 켄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어윈의 반응을 관찰했다. 농담이었다고 말할 여지도 있었다. 어윈 아크라이트는 제 말을 믿냐면서 순진하다고 신을 웃음거리로 삼으려 들 수도 있는 사람이니 충분히 가능성은 있다. 앞서 말했듯 그는 허풍쟁이는 아니지만 능숙한 거짓말쟁이는 될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어윈은 어느때보다도 진지했다.


"안타깝지만 합리적인 선택지는 그것 뿐이야."

"지금이니까 하는 말이지만 그때 분위기 장난 아니었어요? 이번에야말로 네브씨나 로드씨, 혹은 둘 다가 어윈씨를 토막낼텐데요."


 켄트는 어윈을 향해 손가락을 세우고 그의 목에 맞추어 허공에 그었다. 연극이라도 하듯 과장된 움직임이기는 했지만 사실이기도 했다. 힘의 차이를 고려해볼 때 그 두사람이 진심으로 어윈을 배제한다면 토막 정도가 아니라 얼마나 남을지를 고민해야 할 판이다.

 하지만 그의 진심어린 걱정에도 어윈은 도리어 역정이었다.


"네가 떠벌리고 다닌 덕에 다른 캠프에 가도 하루는 들킬거야. 차라리 이번 유랑캠프처럼 대놓고 덤비면 다행이지. 우리 앞에서는 시치미 떼고 있다가 잔디이불쪽으로 연락이라도 넣었다가는 네 말마따나 '분노한 소울워커 두명'이 소울웨폰을 들고 찾아올거란 말이지."

"변명입니다만 뒤통수를 친 어윈씨 때문에 저도 혈압이 올라서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오죽하셨겠어. 라고 말하는 대신 어윈은 실소를 흘렸다. 욕망을 부추기는 신이 어윈에게 있어 좋은 점 중 하나였다. 끝까지 말하지 않아도 교활하고 눈치 빠른 신은 상대가 자신을 어떻게 여기는지 금방 눈치채고 그에 맞는 반응을 보이곤 했다. 신씩이나 되면서 인간에게 속고 진심으로 쫒아왔냐. 는 생략된 말까지 순식간에 간파한 켄트가 조용히 눈동자만 굴렸다.

 언제나 그렇듯 서툰 변명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기회마저 뺏기게 마련이다. 어윈은 단호하게 말했다.


"내뺄 순 없으니 들이 박는 수 밖에."

"캠프에 들어가는 대신에 공백 탐사에 집중하는건 어떻습니까?"


 기다렸다는 듯 켄트가 대안을 제시했다. 물론 어윈이 고려하지 않았을 리 없다. 공백 내에는 미답 지역이 많은 상태니 인적이 없는 곳만 골라서 다닌다면 얼마든지 다른 생존자들의 영향권 밖에서 맴돌 수 있는 것을 어윈도 익히 알고 있었다.

 유랑캠프조차도 이미 개척된 루트를 따라, 혹은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이동한다. 상대적으로나마 안전한 곳의 위치가 밝혀져 있는 이상 위험천만한 공백 속에서 하나뿐인 목숨을 던져가며 탐사하는 만용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강한 자라면 스스로 안전한 지역을 만들어 정착하는 것을, 약한 자라면 강한자가 확보한 지역 내에 소속되는 것을 택한다.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상황에 있으면서도 결국 다시 사회를 만들고 규범을 만들어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이 인간의 오래된 생존 방식이다. 극소수의 예외만이 그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고 그 중에서도 능력까지 갖춘 일부만이 사회 밖에서 생을 구가한다. 그리고 그 예외이며 일부가 이곳에 단 한 사람 있었다.


"모험을 좋아하는거지 방랑을 좋아하는게 아냐. 싫다는건 아니고.."


 잔디이불 캠프로의 귀환을 과감하게 결정하던 때와는 달리 어윈은 말을 어물거렸다. 애초에 어윈은 예외일지언정 아직 일부는 될 수 없었다. 하루라면 모를까.

 켄트는 그제야 깨달은 척 과장스레 제 손바닥에 주먹을 탁 내리쳤다.


"아차. 그러고보니 어윈씨가 약하단걸 간과했군요. 저정도 되는 존재가 이런 중대사를 깜빡하다니."

"....미약하나마 각성까지 해버렸으니 그대로 공백에서 정처없이 헤매고 다니다보면 금방 소울정크의 디저트가 되겠지."

"그냥 디저트가 아니라 초호화 디저트일겁니다. 맛은 소울워커와 비슷한데 힘은 터무니없이 약하니까 말이죠."


 스스로의 입장과 역량을 잘 알기에 애초부터 배제했던 선택지였다. 켄트를 설득하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자신의 입장을 입에 올리고 난 어윈은 다소 기가 꺾여있었다. 자각하고 있다고는 해도 인정하고 말로 뱉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인 것이다.

 켄트가 고민하는 시간이 짧아서 다른 가능성을 떠올리지도 못했던게 아니라 다행이라고 이죽거리자 어윈이 노려보았다. 하긴, 저 교악한 신이 상황 분석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리 없다. 그럼에도 굳이 '다른 경로'를 제시한 것은 그저 어윈을 놀리려고 언급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 어윈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상세한 분석 참 고맙기도 하네."

"아무리 고통스러울지라도 사실은 외면할 수 없죠."

"그렇네. 인간에게 속아넘어간 신의 말씀이라 그런지 귀에 쏙쏙 박히는데."


 다만 약간 놀리는 것 정도야 가능하지. 켄트의 미소에 균열이 생기는 것을 보며 어윈도 표정을 풀었다. 속 좁은 신을 너무 몰아가면 위험해진다. 주로 목숨적인 의미에서. 아끼던 애완견이라도 주인을 물면 살처분하는 법이다. 비록 어윈은 애완동물이 아니고 켄트는 주인이 아니지만 힘의 역학관계는 그 이상. 심지어 켄트는 사람이 반려동물에게 갖는 만큼의 애착조차 없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잔디이불 캠프에서 그와 가장 자주 어울린 어윈은 그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말이지."


 그래서 어윈은 불안한 속내를 들키지 않기 위해 태연하게 웃었다. 상대의 간파를 간파한 블러핑이 될 수 없는 블러핑이었다.


"내가 네 목적을 이뤄줬으니 내가 네 모판인 잔디이불캠프 정도는 써도 되잖아."


 뻔뻔스럽기까지 한 태도에 켄트는 백기를 들었다. 신이 피조물과 대등할 필요는 없다. 자라리 관대하게 허락하는게 보기에도 좋은 것이다. 특히 그것이 늦게라도 제 주제를 안다면 더할나위 없었다.


"쓰는건 자유입니다. 하지만.."


 캔트의 손끝이 어윈을 향했다.


"배신자에"


 직후 손 끝이 옆으로 미끄러졌다. 곧게 뻗은 손가락은 돔 밖에 있는 소녀를 가리키고 있었다.


"데자이어워커로 완전히 각성한 탈주자들이 어떻게 공백 내에서 가장 강한 소울워커와 두번째로 강한 소울워커가 있는 캠프로 돌아갈 생각입니까?"


 켄트가 더는 외면할 수 없는 현 상황을 대놓고 들이밀자 그제야 어윈은 인상을 찌푸렸다. 당장에라도 자신을 처리할 수 있는 상대가 앞에 있기에 까먹고 있던 것일 테다.

 어윈은 지금껏 켄트의 동의만 얻으면 잔디이불 캠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처럼 굴고 있었지만, 대외적으로 캠프의 리더는 정의의 소울워커인 테네브리스고 그와 함께 캠프를 이끄는 것은 구원의 소울워커인 로드이다. 그리고 배신자인 어윈에게 제일 큰 위협이 될 사람 또한...


"쟤도 데려가야하는거냐."


 어윈의 사고방식이 일반인의 그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는 켄트조차도 순간 말을 잃었다.


"......리스나 로드가 아니라 하루씨에 대한 걱정이 앞서다니...꼬시지 않는 여자는 만나지 못한 사람밖에 없다는 평을 듣는 어윈씨라도 하루씨는 무섭습니까?"

"설득이 될지를 걱정하는거야. 하루에게도 나름의 목적이 있으니까."


 어윈이 변명하듯 말했다. 그의 시선은 침대만한 크기로 뭉친 소울정크를 베어넘기며 활짝 웃는 하루를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공백 내의 모든 것을 죽인다는 욕망을 매 걸음마다 차곡차곡 이뤄내고 있었다. 갈라진 동체를 가까스로 연결하고 있던 진득한 액체까지 쳐서 날려내는 하루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워 보였다.


"캠프에 들어갈 방법은 이미 생각했고, 함께 움직이는 건 뭐..감수 할 수 있어. 설득이 문제라고."

"흠...글쎄요. 사실 저는 그 두개가 제일 걱정이었습니다만."

"내가 충분히 강해지기까지 얼마나 걸릴 줄 알고 따라와달라고 할 수 있겠어."

"의외로 쉬울지도 모릅니다?"


 빙긋 웃는 켄트를 본 어윈이 작게 구역질하는 흉내를 냈다. 그 행동이 거슬리긴 했지만 그보다 빠른 진행이 더 보고싶었기에 켄트는 애써 못본 척 넘어갔다.

그들의 대화가 끝나고도 조금 더 있어서야 기나긴 사냥이 종식을 맺었다. 소울정크는 다시 뭉치고 결합할 수 있는 만큼 진정한 의미에서는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복수가 끝나지 않았기에 그녀의 욕망도 끝없이 팽창하고 그에 따라 그녀의 힘 또한 더 강해질 것이다.

 반고체의 검은 덩어리들이 울컥거리며 저들끼리 뭉치기 시작해도 하루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윈이 구태여 알려주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힘에 대해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듯 했다. 그녀는 그저 조금 아쉬운 표정으로 칼면에 묻은 진액을 털어낼 뿐이었다. 하지만 그늘진 금갈색 눈동자는 전혀 다른 곳을 은근슬쩍 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의미를 깨달은 어윈은 씁쓸하게 웃었다. 안타깝지만 켄트의 말 대로 생각보다 상황은 쉬울 것 같았다.

 뒤에서 들리는 같잖은 응원을 무시한 채 어윈은 하루에게 다가갔다.


"할 얘기가 있어."

"무슨 얘긴데요?"


 하루는 무기를 사라지게 하는 대신 대지에 꽂아넣었다. 마치 허튼 짓을 하면 그대로 베어버리겠다는 의지 표명과도 같았다. 물론 그 대상은 어윈이 아니었다.

무표정하게 켄트를 경계하는 하루에게 어윈이 속삭이듯 말했다.


"지금은 약속은 지킬수 없어. 평생 이런 말 해보긴 처음인데..내 능력이 부족해서 말이야."


 그녀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 칼자루를 꽉 쥘 뿐이었다. 능력이 부족하니 대신 켄트를 죽여달라거나, 혼내달라거나 하는 말이 이어지길 기다릴 뿐이었다.

 하지만 하루의 예상과는 달리 어윈이 갑자기 눈 앞에서 사라졌다. 정확히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것이다. 당황한 하루가 다른 행동을 하기 전에 어윈이 공손히 오른손을 내밀었다. 자신을 향해 뻗어올라온 손을 앞에 두고서야 그녀는 움찔거리며 두어걸음 물러났다.


"솔직히, 지금 네게 나는 별 필요 없을거야. 너라면 혼자서도 네 복수를 이뤄내겠지."


 물러난 하루는 고개를 숙이고 제 치맛자락을 잡아당기며 고개를 푹 숙였다. 뒤에서 '설득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느니 '그래서야 하루씨에게 물리적으로 차여도 불평할 수 없다'느니 하는 잡다한 소음이 들려왔다. 말이 좋아 노력이지 서툴게 입에 발린 말을 했다가는 뒷감당이 불가능해진다. 그동안 쌓아둔 실낱같은 신뢰마저 다 끊어질 수 있는 것이다. 가려진 앞머리 사이로 설핏 보이는 얼굴을 애써 모른체하며 어윈은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능력이 닿게 되면 했던 약속은 반드시 지킬게."


 예상치 못한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생각에 긴장으로 입술이 말라가는게 느껴졌지만 그곳까지 신경 쓸 여력은 없었다. 안타깝게도 하루의 대답은 아직이었지만 다행히도 어느샌가 하루가 바닥에 꽂아뒀던 무기는 사라져있었다.

 금방이라도 무력시위를 할 수 있던 수단이 사라진 곳을 곁눈질하며 어윈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노력하는 것 만이 최선이었다.


"그때까지 같이 가줄래?"

"...요 없으니까요."


 깃털같은 속삭임이 연기처럼 스러졌다. 한편으로는 계속해서 새어나왔다.


"애초부터 어윈씨 힘은 필요 없었어요. 계속 말했잖아요. 혼자서도 할 수 있다고."


 가느다란 목소리와는 달리 내용은 단호했다. 아까 보이던 반응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거절이었다. 그 맥락을 어윈이 되묻기 전에 그의 손바닥 위에 온기가 와닿았다.


"...하지만....제 말을...들어 준 것도...믿어준것도...이룰 수 있다고 말해준 것도 어윈씨뿐이었죠. 그리고 어윈씨 덕분에 저는 제가 갈 길을 찾게 됬고요..."


방금 전까지의 전투 탓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하루가 끊어질듯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속삭였다.


"아마 앞으로도 웃는 모습은...보여드리지 못할거예요... 대신 어윈씨가 해주신 만큼은 돌려드릴게요."

























질렸다. 가 없던 일이 되버린 것 같아서 아쉬운 나머지 거기까지 가는 글을 쓰다보니 오류가 너무 늘어서 걍 던지려다가 겜내서도 심심하면 역사개변에 캐붕내는데 좋아서 쓰는 패러디에서 알게뭐야 하고 올림.

다 쓰면 올리려고 했는데 이대로면 섭종할때까지도 완성을 못할것 같아서 일단 쓴데까지만...

추천 비추천

12

고정닉 7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어떤 상황이 닥쳐도 지갑 절대 안 열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5/20 - -
AD 희귀 정령 획득 기회! <아스달 연대기> 출석 이벤트 운영자 24/05/23 - -
공지 어윈 아크라이트 플레이 영상 + 공략모음 - 2020.05.18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10.19 4472 11
13255 여기 다 죽음?? [1] 어갤러(106.101) 23.11.14 32 0
13254 “어윈 아크라이트. 내 삶의 빛이요, 내 생명의 불꽃. 나의 영혼" ㅇㅇ(110.8) 23.05.28 45 0
13253 일섭에 올라온 어윈짤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7.29 154 0
13252 어하만화 어디서봄?? [3] ㅇㅇ(61.84) 22.06.30 60 0
13251 새로운 좋은 소식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3.31 151 0
13250 반갑읍니다^^ [3] 직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3.24 99 0
13249 옛날이그립다 [1] 배고픈치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1.24 115 0
13246 갤 생존인증겸 좋은소식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2.24 141 0
13245 여기 사람있나요 [5] 배고픈치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1.30 102 0
13242 어윈새일러 배고픈치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0.22 111 0
13241 대문짤 변경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0.01 90 0
13239 정전갤에 새로운 짤 [4]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8.20 125 0
13238 정전갤 [3] 창섭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6.21 137 2
13237 어윈 새 소식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5.21 241 2
13236 어윈 관련 새 소식 woo12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5.14 123 0
13235 어윈 상의 , 하의 악단 흰색스염 판다.. ㅇㅇ(222.103) 21.05.13 63 0
13234 조금 늦어졌지만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5.12 79 2
13233 뒷북인 어하 키스짤 [2] woo12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5.03 148 1
13232 뒤늦은 어윈 젖소 모델링 woo12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30 139 2
13231 어윈 새 일러 [2] woo12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28 164 4
13230 갤 생존신고를 의미하는 따끈따끈한 어하짤 [2] woo12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26 105 0
13229 응애나아가어붕이 [2] ㅇㅇ(175.196) 21.04.17 84 0
13227 갤 살리기 프로젝트?.... [1] i이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5 84 1
13226 조금 늦었지만 대문짤 변경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4 83 1
13225 갤 살리기 프로젝트 3 [8] i이류(118.235) 21.04.10 137 2
13224 오랜만에 겜 접했는데 여기 망갤임?? [3] ㅇㅇ(175.196) 21.04.08 146 0
13223 갤 살리기 프로젝트 2 [3] i이류(118.235) 21.04.04 95 1
13222 갤 살리기 프로젝트 [2] i이류(118.235) 21.04.04 79 1
13220 스프링피크닉 어윈 [4] woo12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3.31 230 1
13219 만우절 어윈 [2] woo12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3.30 152 2
13218 리퀘로 받은 어하짤 woo12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3.28 85 0
13217 코튬팔라고 ㅋㅋㅋㅋ [2] ㅇㅇ(121.154) 21.03.25 77 0
13216 갤 안죽었다는 의미의 따끈한 어하짤 woo12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3.23 82 1
13215 망갤에 그나마 좋은 소식 [4] woo12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3.17 157 1
13214 올려달라고해서 올리는 어하그림 [7] ㅇㅇ(58.121) 21.03.09 318 5
13213 분위기 전환겸 따끈한 데자어윈짤 woo12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25 115 2
13212 인큐뿔 검스 ↔ 흰스 바꿀사람? [완] [13] 푸른어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5 152 0
13211 어하웨딩 배달왔어요. [2] woo12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5 225 1
13210 발렌타인을 그냥 넘기기엔 뭔가 아쉬워서 빠르게 갈긴 썰 [2] ㅇㅇ(14.38) 21.02.14 83 0
13209 방금 건진 어윈짤 woo12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0 141 0
13208 어하 좋아하는 분들을 표현한 짤 [2] woo12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06 137 2
13207 어느 어윈으로 고를지 고민하는 [6] woo12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04 176 4
13206 야한모래 코스튬 버그있음 [1] 애옹(203.170) 21.02.02 151 0
13205 어윈 sg수급 해결은 됐음? [3] 윙잉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01 138 0
13204 상황 좀 변했나 보러왔더니만 [1] 윙잉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1.31 119 0
13203 뒤늦게 올려보는 [2] woo12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1.30 115 1
13202 채널에서 퍼온 어윈 데자각움짤 [4] woo12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1.28 195 0
13201 의견이 부족하긴 하지만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1.27 108 1
13200 음머 [1] 푸른어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1.27 80 0
13199 어구밍 [4] ㅇㅇ(112.150) 21.01.24 295 6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