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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와 스테이크

운영자 2017.05.04 12: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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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뽁이와 스테이크

  

서점의 서가를 둘러보다가 표지가 품위 있는 녹색으로 가득찬 예쁘장한 책 한권을 보았다. 작가 박노해의 ‘다른 길’이라는 제목의 사진에세이 집이었다. 박노해라고 하면 세상이 끼워준 선입견이라는 안경이 있었다. 소위 빨갱이라는 딱지였다. 열 여섯살의 그는 상경해서 낮에는 노동자로 생활하고 밤에는 야간상고를 다니며 틈틈이 시를 썼다고 한다. 그의 초창기 시들을 몇 개 읽은 적이 있었다. 그가 변두리 공장 앞 포장마차에서 떡뽁이를 먹는 공원과 명동에서 스테이크를 먹는 사람들이 다른 존재들인 것처럼 묘사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었다. 가난했던 소년시절 나도 그랬다. 고급호텔의 은빛이 나는 나이프와 포오크가 놓여 진 흰 테이블보가 깔린 호텔 레스트랑을 보면 다른 세계인 줄로 알았다. 행운의 여신 덕으로 정말 운 좋게 나는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질 수 있었다. 30여 년 전 변호사라는 직업은 젊어도 스테이크 정도는 먹을 수 있었다. 분위기가 은은한 불란서 레스트랑의 은촛대 아래서 고기즙이 알맞게 배어나오는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었다. 나는 경계를 넘어온 것이다. 그 경계를 넘기 전에는 가운데 굉장한 철벽이 놓여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막상 넘어오니 그곳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모든 인식들이 관념의 유희였다. 투명한 유리 글래스의 적갈색 와인은 영화화면 같은 곳에서만 그럴 싸 해 보일 뿐이지 아무런 맛을 느낄 수 없었다. 고기도 마찬가지였다. 하얀 접시위에 품위 있게 놓인 스테이크는 마치 종이라도 씹는 것 같을 때가 많았다. 대부분이 머릿속에서 치열하게 계산기를 두드리며 상대방과 비즈니스를 하면서 먹을 때 그랬다. 차라리 드럼통을 반쯤 잘라 만든 연탄화덕 위의 석쇠에서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곱창이나 돼지고기가 훨씬 입에 맞았다. 음식은 서로 마음의 창을 열고 나눌 때 그 진정한 맛이 우러나는 것이다. 나는 허위와 사기가 미세먼지 같이 꽉 들어찬 세상에서 사는 걸 깨달았다. 하루 종일 눈과 귀를 공격해 들어오는 광고는 명품 옷을 입고 좋은 차를 타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비천해 질 것 같이 사람들을 속이고 있었다. 그때그때 바뀌는 유행은 빌딩 꼭대기 양탄자 위에 숨은 자본주의의 장사꾼들이 뒤에서 만들어놓은 인위적인 흐름이었다. 그런데 현혹되면 속이 허한 사람이었다. 그 당시는 박노해라는 시인을 우연이라도 만나면 한번 스테이크를 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그가 세월이 흐르면서 혁명가에서 깊은 영혼을 가진 수도자로 바뀐 것 같았다. 시대의 불길이 만들어준 상처를 통해 그의 영혼은 이미 높은 산 정상위에 우뚝 올라서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민주화운동유공자로 복권됐지만 국가 보상금을 거부했다.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며 운동권출신들이 가는 길을 거부했다. 그가 사진기 한 장을 돌며 히말라야를 순례하면서 쓴 시들은 무서운 내공에서 나온 진리의 말들이었다. ‘다른 길’이라는 녹색표지의 그의 책을 보면서 삶의 의 최고의 불가마를 거친 그는 남들은 나타내지 못하는 고려청자 같은 비취빛 도기가 되었음을 감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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