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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도 이 밥을 잡수시는데

운영자 2017.05.03 09:3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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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도 이 밥을 잡수시는데

  

오후 3시의 태양이 지하철 3호선 종점인 오금역 주변에 내리쬐고 있었다. 나는 성동구치소를 가는 길을 몰라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었다.

“죄송하지만요, 성동구치소로 가려면 어디로 갑니까?”

며칠 전 아내에게 배웠다. 잠시 지나치는 사람에게 길을 묻더라도 먼저 죄송하다고 전제를 하고 말을 하라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남의 시간을 뺏는 건데 죄송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금 더 가시다가 왼쪽을 보시면 구치소 담이 멀리 보일겁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변호사로 오랜만에 구치소에 접견을 갈 일이 생겼다. 형사사건은 특히 신중하게 맡아야 했다. 거짓말을 해달라는 사건은 사양했다. 비록 속아서 거짓말을 해 준 경우도 뒷 맛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범죄를 저질러 놓고 변호사를 돈 몇 푼으로 사려는 사람의 형사사건도 맡지 않았다. 나는 고용된 양심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자본주의의 첨병노릇을 하기도 싫었다. 그러다 보니 내게 의뢰하는 형사사건은 점점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내가 스스로 찾아가 도와줄 사건은 있었다. 돈 없는 친척이나 친구들이 법의 그물에 걸리는 수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철조망과 담쟁이덩굴이 무성한 블록담을 끼고 돌아 정문을 지났다. 우중충한 구치소의 건물들은 변호사를 시작한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바뀐게 있었다. 그동안은 몇 번이나 통과해야 하는 철문 옆에 곤봉을 찬 교도대원이 지키다가 쇠빗장을 풀어주었다. 그런데 지금은 전자출입증을 내가 철문 옆의 카드인식기에 대면 철문이 아리바바 동화에 나오듯 스르륵 저절로 열렸다. 26년 전 부도를 낸 친구가 해외로 도망을 갔다가 돌아와 감옥에 들어간 것이다. 부도가 날 것을 사업가들은 알고 있다. 그런 상태를 숨기고 남에게서 돈을 끌어들이거나 약속어음 지급을 연기시키는 것은 사기죄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법은 갚을 의사나 능력이 없이 남의 돈을 얻는 행위를 사기로 보기 때문이다. 해외에 도망가면 공소시효는 정지됐다. 늙어 할아버지가 되도 죄 값을 치러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는 뒤늦게 죄 값을 치르더라도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살아야겠다며 돌아온 것이다. 구치소 접견실 유리박스 안에서 친구를 만났다. 짙은 갈색의 죄수복을 입은 육십대 그의 얼굴이 메말라 있는 것 같았다.

“구치소 안에서 지내기가 어때?”

내가 위로조로 입을 열었다.

“한 달쯤 되니까 이제 그럭저럭 적응이 되어가는 것 같아.

같은 방에 있는 다섯 명이 모두 육십이 넘었어. 내가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데 나보다 위인 사람은 횡령죄로 들어오고 나같이 사기가 한명 더 있고 다른 한 사람은 폭력 그리고 또 한사람은 음주운전이야.”

“하루를 어떻게 보내?”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면 공동으로 쓰는 방을 청소해. 그런 다음 다섯명이 성경을 펴들고 자체 예배를 봐. 전부 믿는 사람들이야. 그리고 아침을 먹고 책을 보던지 하다가 오후 한시가 되면 한 시간 운동을 할 수 있어. 그리고 오후에 다시 책을 보고 저녁이면 텔레비전시청을 하다가 잠자는 거지. 뭐.” 

“밥이나 반찬은 먹을 만해?”

“우리끼리 박근혜 대통령도 이 밥을 드시는데 뭘 하고 서로 위로해. 먹을 만 해. 그리고 저녁에 틀어주는 법무부 채널 한 개인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이 방송을 서울구치소에 계시는 박근혜 대통령도 보시는데 우리는 그저 감사하고 봐야지 하고 위로를 받아.”

그가 씩 웃으면서 말했다. 그는 밖에서 혼자 도망자생활을 할 때는 불안하고 괴로워했다. 가을밤 낙엽 떨어지는 소리만 들려도 일어나 도망치고 싶어 했다. 비슷한 처지의 남들과 함께 있으면 위로가 되는 것 같았다. 특히 대통령의 구속은 많은 죄수들의 고통을 없애주는 것 같았다. 무슨 모순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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