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다시 법률상담을 하러 찾아온 부부와 사무실 근처의 국수집에 갔다. 처음에는 의뢰인으로 만났지만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신뢰와 우정이 깊이 쌓였다. 나는 그의 아내의 남편에 대한 헌신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아내는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남편의 능력을 인정했다. 남편은 좋은 감독이 되고 싶었다. 아이디어도 참신했다.
그러나 영화는 혼자 하는 사업이 아니었다. 투자자의 탐욕을 채워주어야 했다. 관계되는 사람들 중에는 허위와 값싼 욕망으로 속이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내의 눈에 남편이 속을 수도 있다는 위험성이 보였다. 내면에서 남편을 유도하는 사람에 대해 원인모를 경고신호가 강하게 울리고 있었다. 쓰고 있는 웃는 탈 뒤에는 늑대가 있을 것 같았다.
남편은 돈이 필요했다. 아내는 전세보증금을 빼서 남편에게 건네주었다. 바닥인생으로 갈 각오를 한 것이다. 돈보다 남편의 기가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동네아이들 피아노 레슨을 해서 먹고 살면 될 것 같았다. 그 무렵 그의 아내가 나의 사무실에 혼자 와서 이런 말을 했었다.
“착한 우리 남편의 재능을 저는 알아요. 남편 옆에 다가온 사기꾼이 남편을 비웃는 걸 느끼기도 하구요. 그렇지만 저는 남편의 소망을 꺽지 않기 위해 전세보증금을 빼서 남편 손에 쥐어줬어요. 돈보다 더 귀한 게 남편을 인정하는 마음일 것 같아요.”
나는 그의 아내의 얼굴에서 얼음 아래로 지나가는 맑은 개울물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들 부부에게는 햇볕 밝은 날이 찾아오지 않는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르고 백발이 되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와 동업을 하던 사람이 그가 젊은 날 추구하던 사업의 실패내용이 담긴 영화를 만든다고 해서 그들 부부가 나에게 상담을 하러 왔다.
영화 시나리오에서 그는 실패한 조연이고 동업자는 주인공 이라고했다. 예민한 감성을 가진 그는 청력에 이상이 생겼다. 검사한 결과 모든 기능은 정상인데 들을 수 없는 것이다. 의사들은 정신적인 문제가 원인인 것 같다고 진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는 내게 사람 좋은 표정만 짓고 허허하며 공허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변호사가 보는 세상은 불공정했다. 고층빌딩의 양탄자 위에서 컴퓨터를 통해 세상의 돈을 쓸어 모으는 사람들이 있었다. 포식자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태어난 양 같은 존재들이 있었다. 그들은 죽는 순간에도 비명을 지를 줄 모르는 것 같았다. 성경 속에서 예수를 테스트 하는 악마는 세상의 부귀와 권세는 자기 소유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 앞에 무릎만 꿇으면 부귀와 권세를 주겠다고 예수를 유혹했다. 어떤 때는 정말 부귀와 권세가 악마의 소유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종업원이 하얀 도기그릇에 담긴 김이 나는 국수를 가져다 놓았다. 국수를 막 먹으려는 찰나였다. 그 부인이 갸웃하는 얼굴로 종업원에게 말했다.
“다른 국수에는 고명이 얹혀 있는데 왜 우리남편 국수에만 없죠?”
나는 국수를 다시 보았다. 나의 국수에는 고기가루와 채를 썬 계란이 올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의 국수위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상했다. 같은 값을 낸 같은 종류의 음식이었다. 종업원이 그릇을 들고 주방 쪽에 가서 확인한 후 국수를 다시 가져다주면서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런 경우가 없는데 주방장이 이상하게 국수에 고명을 놓은걸 빠뜨렸답니다.”
마치 그의 불운을 대변해 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노력도 돈도 다 지불했는데 그에게만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나는 그의 인생에서 그런 불공정을 여러 번 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해석은 달랐다. 국수를 먹고 난 후 그의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
“변호사님 저는 남편이 들리지 않게 된 게 하나님이 더 이상 세상에서 불필요한 소리를 듣지 말라고 은혜를 내리신 것 같아요. 듣지 못하는 정도면 암이나 뇌졸중으로 마비된 사람보다 감사하고 행복한 것 아니겠어요. 하나님이 우리 자식을 훌륭하게 잘 키워줘서 아이들이 가져다주는 돈으로 우리 부부 밥을 굶지 않아요. 우리를 이용하는 사람하고 싸우기 싫어요. 남편이 깊은 속에 응어리가 남아있는 것 같아 변호사님과 의논하는 모습이라도 보이기 위해서 온 겁니다.”
태극기 집회다 촛불집회다 하면서 증오와 분노가 미세먼지의 안개같이 세상을 뿌옇게 채우고 있다. 그런 속에서 가을 계곡물 같은 그런 부부를 볼 수 있다는 건 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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