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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승 김상협 - 문교부 장관

운영자 2016.10.14 16:17:35
조회 197 추천 0 댓글 0
문교부 장관

  

1961년7월3일 오후 국가재건 최고회의에 의장으로 박정희장군이 취임했다. 국가재건 최고회의는 한국의 10대 기업인을 모조리 구속하고 수사를 시작했다. 은행을 움직이는 정치인들과 유착해서 외화대부를 받은 기업인들이었다. 삼양사 그룹의 김연수 회장은 구속되지 않았다. 박정희 의장은 김연수 회장을 불러 경제를 일으키는 방법에 대해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 박정희 의장은 김연수 회장에게 아들인 김상협 교수를 입각시킬 것을 부탁했다. 말이 부탁이지만 사실상 명령이었다. 박정희 의장은 이어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앞으로 출범할 민정의 형태와 시기에 대해서 분명히 할 것을 선언했다. 그 며칠후였다. 박정희 의장은 사람을 보내어 김상협 교수에게 문교부장관을 맡을 것을 타진했다. 김상협 교수는 거절했다. 그해 여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이 김상협 교수를 의장실로 불러 말했다. 

“문교부 장관을 하시오”

“제가 뭘 알겠습니까?”

김상협교수는 그렇게 말하며 사양했다.

“발령을 냈으니까 다른 소리 말고 내일부터 나오시오.”

박정희 의장의 명령이었다. 박정희 의장은 이미 아버지 김연수회장에게 통보했다. 김상협교수는 저녁에 아버지 김연수 회장과 상의했다. 김연수 회장은 아들에게 그 분이 부탁하니 장관을 3개월만 맡아 도와주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했다. 기업의 현실을 감안해서 권력과 대립각을 세울 수는 없었다. 타협책으로 잠정적으로 장관직을 맡은 것이다. 

  

김상협은 1962년1월9일자로 문교부장관이 됐다. 혁명실세들이 잡고 있는 상황에서 민간인 출신 장관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많지 않았다. 일은 문교부가 아니라 국가재건최고회의 문교사회분과등에서 실세들이 이미 다 벌여놓은 상태였다. 혁명의 실세들은 대학을 대폭 줄이거나 없애려는 계획이었다. 다만 대학정리에 군인보다 덕망 있는 대학교수출신을 앞장세우는 게 낫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서울시내 대학의 절반이 퇴출운명에 놓여 있었다. 군인들의 대학정책은 너무 얕은 발상에서 나온 조치였다. 농촌의 부모들이 고리채를 쓰고 고통 받는 이유가 자식들 대학공부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대학을 없애면 시골부모들의 고통도 사라진다는 논리였다. 군정은 이화여대의 경우는 농담같이 유한마담을 만들어 내는 대학이라며 학교가 명맥을 간신히 유지할 만큼만 학생 수를 줄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농담 속에는 뼈가 들어 있었다. 연세대는 미국인이 만든 미국대학이라고 해서 학생정원을 줄이라고 했다. 코미디 같은 얘기지만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혁명의 실세들이 많이 있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하는 혁명실세들도 있었다. 하루는 혁명 실세중의 한 사람이 문교부 장관실로 찾아왔다. 군복을 입고 권총을 찬 위압적인 모습이었다. 그가 김상협장관에게 다짜고짜 확인했다.

“경복궁이나 창덕궁 같은 문화재가 문교장관 관할이라면서요?”

“그렇습니다.”

“그럼 부탁하나 합시다.”

“뭡니까?”

“세계적 명물이 될 30층짜리 최신식 관광호텔을 경복궁 안에 지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와 연계해서 창덕궁 안에는 오락장을 짓고 창경원에도 빌딩을 지어 관광자원을 확보하자는 계획이요.”

김상협 장관은 말 같지 않은 소리를 당장 눈치 챘다. 군인들의 맨털리티는 단순했다. 혁명이 제일이니까 혁명의 일환으로 무엇이든지 밀어붙이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뒤에서 노련한 장사꾼들이 군인들의 그런 맨털리티를 이용하려는 것 같았다. 그들의 안중에 이미 문교장관은 없었다. 혁명실세가 덧붙였다.

“최고회의 의장이 이미 알고 계시는 사안이니까 장관이 싸인만 하면 됩니다.”

문교장관의 싸인은 통과의례일 뿐이라는 얘기였다. 김상협 장관은 고민이었다. 고궁 쪽의 땅을 거저 달라는 얘기였다. 그들의 뜻대로 진행하면 서울의 고궁들은 전부 손상되어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없어질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거절하면 혁명의 실세들이 벌떼같이 달려들게 틀림없었다. 김상협 장관은 웃으면서 생각해 보겠다고 그들을 달래서 돌려보냈다. 그리고 서류를 책상 속에 넣어버렸다. 성질 급한 그들이 다시 독촉하러 오면 “네, 네”하고 바보 같은 웃음을 흘리면서 다시 깔아뭉갰다.

​ 힘든 장관자리였다. 그러나 일단 맡았으면 열심히 역할을 해야 했다. 어느 날 동아일보 유혁인기자가 장관실을 들어가 보았다. 유혁인 기자는 학창시절 김상혁 총장의 책을 통해 사회관과 국가관을 형성한 제자이기도 했다. 김상협 장관은 교육제도 전반에 관한 개혁을 위해 밤늦도록 고심하고 있었다. 당시 김상협 장관의 교육에 대한 고민은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유럽의 학교들은 극소수의 엘리트 최고지도자를 배출하는 학교와 서민교육을 시키는 학교로 나뉘어 있는 시스템이었다. 예를 들어 영국의 이튼스쿨은 엘리트지도자를 양성했다. 그러나 아핑검 스쿨은 전형적인 평민을 교육하는 학교였다. 그 학교에서는 자기 생활을 즐기도록 한 가지 취미와 생업에 관련된 교육만을 시켰다. 그렇게 철저히 분류되고 격리된 교육구조였다. 대학도 마찬가지였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는 엘리트 교육의 산실이었다. 한편 미국대학은 다수의 전문직을 길러내는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대학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한국의 교육열은 거의 맹목적이었다. 부모들은 자식들의 대학졸업장에 목숨을 걸었다. 대학이 늘어나면서 저질상품이 공급되는데도 부모들은 그걸 모르고 마구 사들이는 상황이었다. 국가적 요청이나 사회적요청과는 무관하게 저질대학이 양산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어떤 특수부문에 중점을 두는 게 아니라 대학마다 잡화점식으로 모든 학과들을 다 가지려고 했다. 정부는 기껏해야 대학설립의 인가나 과를 늘리는 것, 증원등에만 관심을 두어왔다. 김상협 장관은 대학의 질을 높이는 게 백년 앞을 내다보는 교육정책의 과제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질적 향상을 위해서는 유럽식의 극소수 엘리트를 교육하는 지도층 양성기관이 맞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내 자식만은 대학가서 출세해야 한다는 부모들의 열망에 비추어 그건 무리였다. 차라리 미국식으로 다수중간지도층 배출기관으로 장기간에 걸쳐 부분개조를 해 가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했다. 그는 대학의 질을 높이는 구체적 방안으로 대학들 사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하고 기존 대학의 노화를 방지하기 위해 새로운 인재들이 대학에 들어올 수 있도록 제도화 할 것을 고민하고 있었다. ​


그는 장관으로서 그런 생각을 배경에 깔고 ‘사학육성법’을 추진했다. 교수인 그는 대학 내의 문제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사학은 무엇보다 대학의 자주성과 교권이 확립되고 교원의 신분이 보장되어야 했다. 족벌경영에서 오는 비리도 제도적으로 방지해야 했다. 교사생활을 한 박정희의장도 문교부를 시찰하는 자리에서 교육계의 파벌을 없애야 교육계가 정화된다고 했다. 학교에서 잡부금을 징수하는 일도 없애라고 했다. 김상협 장관은 자신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했다. 부당하게 구속되었던 서울대 윤태림교수 정병조교수, 정범모교수의 구속이 풀리도록 노력했다. 문교부장관을 찾아온 이화여대 김옥길총장의 말을 듣고 대학 정원을 오히려 두 배로 늘였다. 그리고 연대도 학생정원축소를 취소하고 재조정했다. 그런 것들을 개혁의 후퇴라고 생각한 5.16혁명의 실세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김상협 장관은 최고회의에 불려가 권총을 찬 군인들에게 반혁명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당시 무소불위의 권력이었던 김형욱도 권총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이상한 문교부 장관이 들어와 망쳤다고 소리쳤다. 만정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장관취임 3개월이 됐을 때 김상협은 대통령에게 사표를 제출했다. 아무 연락이 없었다. 위에서 좀처럼 놓아줄 기미를 보이지 않자 김상협은 적극적으로 사임운동을 벌였다. 아내를 통해 육영수여사의 사촌오빠인 육지수씨를 찾아가 장관을 그만 하게 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남들은 남편 장관시켜달라고 이사람 저사람 찾아다니느라고 야단인데 남편 장관 떨어뜨려 달라고 사람을 찾아다니느냐---”

육지수씨가 껄껄 웃으면서 한 말이었다. 김상협은 9개월 만에 장관에서 풀려나오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 이제 다 끝냈다. 샴페인 뜯자”

며칠 후 장관시절 그의 집을 감시하던 사람이 와서 이런 말을 해주었다. 

“장관님 댁을 늘 감시했는데 장관이 되기 전이나 장관이 된 이후나 이 댁이 정육점에서 사다 잡숫는 것은 늘 고기 반근이더라구요. 옆집 은행장 댁은 시도 때도 없이 갈비짝과 과일상자가 들어오고 손님들도 성시를 이르는데 너무 대조적이었습니다.”

바늘방석 같은 장관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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