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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승 김상협 - 경주 최부자와 고창 김부자

운영자 2016.03.15 15:01:35
조회 1008 추천 0 댓글 0
조선조 존경받는 부자를 꼽자면 경주 최부자와, 후기에 부를 이룬 고창갑부 김경중이 있다. 

경주 최부잣집은 조선시대 12대를 거쳐 만석을 한 집이다. 조선조 5백년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부를 누린 집안으로 거의 3백년의 세월이다. 조선 시대 이래 진짜 부자의 기준은 상당히 까다로웠다. 재물만 있다고 단순히 부자라는 명예가 오는 게 아니었다. 당시사회에서도 부자가 부자다워야 부자로 인정받았다. 자산규모로 따지자면 최씨 가문이 당시 조선의 제일의 부자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씨가문이 부자로 존경받는 이유는 한가지였다. 그것은 부를 잇게 한 진짜 부잣집의 부자다움 때문이다. 

경주 최 부자의 유서 깊은 고택에는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최부자 집은 과객들을 후하게 대접했다. 요즘같이 여관이나 호텔이 많지 않았던 사회에서 여행을 하는 나그네가 전혀 알지도 못하는 양반집이나 부잣집의 사랑채에서 며칠씩 몇 달씩 머물다 가는 일이 흔했다. 그들 과객들의 성분은 다양했다. 몰락한 잔반으로 이 고을 저 고을의 사랑채를 전전하면서 무위도식하는 고급룸펜이 있는가 하면, 학덕이 높은 선비나 시를 잘 짓는 김삿갓 같은 풍류객이 있고 무술에 뛰어난 협객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풍수와 역학에 밝은 술객들도 있어서 주인집 사람들의 사주와 관상을 봐주기도 하고 정감록이란 참서로 세상의 변화를 예측하기도 했다. 주인은 온갖 종류의 과객을 접촉하면서 새로운 정보를 수집하고 다른 지역의 민심을 파악했다. 교통이 발달하지 못해 여행이 어려웠던 조선시대에 이들 과객집단은 다른 지역의 정보를 전해주는 메신저 노릇을 했으며 여론을 조성하기도 했다. 경주 최부자집이 과객대접에 후하다는 소문은 시간이 지나면서 입소문을 타고 조선팔도로 퍼졌다. 강원도 전라도는 물론 이북지역까지 최부잣 집의 명성이 퍼졌다. 영덕출신의 의병장 신돌석이 이 집에 피신해서 보호를 받았었다. 최익현도 의병을 일으킬 때 수 백 명의 수행원을 데리고 이 집을 방문하여 며칠을 묵었다. 일제시대 구스타프 스웨덴 왕세자가 경주를 방문했을 때 최부잣집에 묵었다. 

그러면 고창 갑부 김경중의 집안은 어땠을까. 김경중은 밥을 항상 세 개의 가마솥에 해서 셋으로 구분했다. 하나는 부모를 모시는 밥이었다. 다른 하나는 가족을 먹이는 것이고 나머지는 세상의 배고픈 사람들에게 줄 밥이었다. 김경중은 조선말부터 일제 시대까지 수많은 조선인들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임꺽정을 쓴 홍명희가 다녀가고 갑신정변의 박영효를 그가 죽을 때까지 경성방직의 사장으로 임명해 도왔다. 정치인 송진우와 하와이에 있던 이승만을 지원했다. 중앙학교를 설립해서 한국의 인재들이 모이게 했다. 조선과 만주에 거대한 농장을 개척해서 수많은 유랑농민들을 불러들였다. 

경주 최부자는 대구대학을 설립하고 고창 김씨가는 고려대학을 세우게 된다. 경주 최부자집은 백산상회라는 무역회사를 대구에 설립해서 운영했다. 3.1운동 직후 고창 김갑부와 경주 최부자는 동아일보설립에 함께 발기인이 된다. 경주 최부자는 일제 말 무역회사의 실패로 그 부가 없어지고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 후손이 판사로 마지막에 방배동에 살았다는 얘기만 전해지고 있다. 고창 김갑부는 오늘날도 삼양사 그룹과 동아일보 그리고 고려대학으로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학자 에거트는 그의 논문을 통해 조선말 김경중가의 재력을 보여주는 상징이 인촌리의 김씨가 저택이라고 했다. 오늘날도 주변의 농가를 압도하는 그 저택을 순차적으로 건립했다는 것은 19세기말과 20세기초 동안 김씨가가 갈수록 번영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라고 했다. 김씨가는 집도 단번에 짓지 않았다. 최초의 건축은 1861년 1대 김요협이 터를 잡았다. 1881년 작은 안방이 2대인 김경중대에 와서 큰 사랑방의 행랑채를 증축했다. 그런 성격의 집안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김씨가의 구체적 사업 확장 과정과 손자인 김상협의 성장을 순차적으로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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