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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러진 화살’을 보고

운영자 2012.03.05 15:14:55
조회 509 추천 0 댓글 0

  며칠 전 재미있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대법원장이 아내가 운전하는 작은 차를 타고 네거리에 정차했을 때라고 했다. 업무시간이 아니라 관용차를 타지 않은 것이다. 옆에 서 있던 덤프트럭의 젊은 운전기사가 차창에서 내려다보면서 “양승태 대법원장님 아니세요?”라고 묻더라는 것이다. 대법원장의 소박한 삶은 재판보다 더 많은 향기를 사회에 내뿜는 것 같았다.

 

  몇 년 전 토요일 오후였다. 변재승 대법관이 택시를 타고 용인의 결혼식에 참석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업무시간이 아니니까 대법관차를 타서는 안 된다는 자기원칙이었다. 원래가 그런 분인걸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훌륭한 재판장이었다. 한사람 한 사람에게 세심하게 재판절차를 안내 해 주었다. 나는 그의 인내심에 더 박수를 보냈었다. 정말 머리가 숙여지는 법관들이 밤하늘의 별 같이 많다. 당사자들이 제출하는 요령부득의 어떤 글도 빠짐없이 읽는 판사의 인내심은 존경할 만 하다. 박시환 대법관은 모두 퇴근한 밤중에 몰래 사무실로 들어가 기록을 읽었다.

 

  그런데 이런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반란의 파도가 다가오고 있다. 영화 ‘부러진 화살’이 개봉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정지영 감독은 감탄할 정도로 현실법정을 자기 것으로 소화시킨 후 작품을 만들었다. 일반 드라마에서 발견되는 날것의 냄새가 전혀 없었다. 판사의 독단으로 증거들을 외면하면 실체적 진실이 왜곡될 수 있다는 게 감독이 던지는 메시지였다. 오랜 변호사 생활을 하다보니까 재판장이 증거신청을 기각해도 그러려니 하는 타성이 붙었다. 그러나 영화감독은 날카로운 눈으로 법조인들의 그런 타성을 질타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판사의 모델이 된 실제인물로부터 재판을 받아본 적이 있었다. 자기 생각과 다른 증거신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변호사 중에는 선입견을 가지고 그렇게 해도 되느냐고 항의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당사자가 자료를 제출해도 그걸 읽지 않겠다고 재판장은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안 읽으면 그만인데도 굳이 그렇게 말해 상처를 주었다. 그의 착한 결벽증 때문이라고 좋게 해석했다. 증인신청을 한 적이 있었다. 그는 공증진술서로 내라고 했다. 내가 항의했다. 재판장인 당신은 진술서의 행간에서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보듯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가졌느냐고. 그는 뼈 속까지 석회질 같은 판사가 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보는 건 사건과 정확한 진행, 명쾌한 논리인 것 같았다.

 

  피레네 산맥의 이쪽에서의 정의가 저쪽에서는 불의가 될 수도 있다. 법적인 관점이 인간을 보는 데는 맹점이 되기도 한다. 영화 도가니가 이 사회를 들끓게 했다. 이어서 ‘부러진 화살’이라는 영화는 사법부를 향해 석궁을 겨누고 있다. 무조건 영화를 부인하면서 사실을 폄하하기 이전에 다시 한 번 사법부 자신이 스스로를 냉정히 되돌아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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