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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주민의 겉과 속

운영자 2012.03.05 15:13:58
조회 276 추천 1 댓글 0

  몇 년 전 늦가을 혼자 금강산을 여행한 적이 있었다. 남북의 긴장관계로 인해 관광객이 거의 없었다. 한적한 온천장의 투명한 통 유리창을 비로봉이 깨끗하게 보였다. 탕 밖 휴게실의 대형 텔레비전에서는 남한드라마인 ‘제5공화국’이 방영되고 있었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명령으로 권총을 차고 선글라스를 쓴 심복 이학봉이 정권을 장악하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모자를 쓰고 옷을 풀어헤친 북한군인 몇 명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남한의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그들은 군사쿠데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독재가 세습되는데도 아무 의식이 없는 것일까?

 

  여성안내원과 함께 하얀 거품을 내며 흐르는 계곡물을 따라 올라갈 때였다. 안내원은 절대 김정일 장군의 비석을 깔고 앉으면 안 된다고 주의를 줬다. 붉은 글씨가 새겨진 자그마한 비석이 몇 개 보였다. 김정일이 현지지도를 했던 장소라고 했다. 여성안내원은 남조선에서는 대통령 욕을 막 하는데 그래도 되느냐고 물었다. 어떻게 집안의 어른 욕을 막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사회주의적 대가족주의를 부르짖는 북한에서 김정일은 왕이었다. 여성안내원의 질문에 옛날의 임금님도 뒤에서는 백성들이 욕을 했는데 뭐가 어떠냐고 되물었다. 그녀는 주위를 살피더니 욕할 자유가 있는 세상이 더 좋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단단하게 보이는 겉껍질 속에 들어있는 그들의 영혼은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부드러웠다. 여성안내원은 북한주민들 대부분은 남조선의 기업가에 대해 고맙게 여기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들을 먹여살려주는 걸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북경을 여행하다가 호텔식당에서 김일성대학 교수출신이라는 북한 학자를 만났었다. 그는 자본주의 경제역사를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나이도 나와 비슷했다. 내가 철원평야의 철책선에서 장교생활을 할 무렵 그도 그 반대편에서 인민군 군관으로 복무하고 있었다고 했다.

 

  자유롭게 사상서적을 읽은 내용을 그에게 얘기했다. 마르크스 레인주의부터 시작해서 모택동 사상 그리고 러시아의 고리키 등의 혁명소설을 대화의 소재로 삼았다. 서울의 어느 서점에 가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서적들이었다. 북한 출신 교수는 갑자기 침울해 졌다. 북한에서는 러시아나 중국의 혁명에 관한 서적을 제대로 읽을 수 없다는 것이다. 러시아와 관계가 악화되어 있을 때는 러시아에 관한 책들은 전부 자취를 감추고 중국과 불편할 때는 모택동 사상에 관한 책이 없어졌다고 했다. 그는 주체사상 밖에는 알지 못한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여행얘기가 나왔다. 그는 북한에서 중국이나 동남아시아를 간 걸 자랑했다. 나는 평범한 개인변호사로 세계여행을 한 걸 말해 주었다. 아메리카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탔었던 걸 알려주었고 크루즈선을 타고 태평양을 횡단한 걸 자랑했다. 티베트에서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 인도까지 간 걸 알려주었다. 그의 얼굴에서 부러운 표정이 역력히 나타났다. 그가 몰래 부탁했다. 평양에 있는 아들에게 선물할 전자사전과 러시아나 중국의 혁명을 다룬 사상서적을 구하고 싶다는 것이다.

 

  북한의 문을 굳게 닫아걸었던 김정일이 죽었다. 북한주민들이 눈을 떴으면 좋겠다. 정치지도자는 어버이가 아니라 국민을 섬기는 머슴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남한사람들도 천박한 교만에서 벗어나 그들과 진정한 소통을 했으면 좋겠다. 조금 도와주고 신문방송에 내며 생색내는 건 그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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