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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인이 보여준 삶의 진리

운영자 2012.03.05 15:05:35
조회 361 추천 2 댓글 0

  얼마 전 봉천동 달동네 임대아파트를 찾아갔다. 죽음을 기다리는 폐암말기의 강태기 시인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는 혼자 누워 있었다. 그를 돌보는 친구가 내게 급한 도움을 청했다. 한 달에 40만원의 극빈자 지원금이 그의 생존의 바탕이었다. 인근 중학교 급식반에서 누룽지를 보내주고 성당에서 된장국과 나물을 반찬으로 가져다주고 있었다. 자동차 정비공이던 그는 낮에 일하고 밤에는 글을 써서 열여덟살 때 한국일보와 대한일보 두 신문의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받은 상금으로 김삿갓같이 전국을 떠돌며 시를 짓고 소설을 썼다.

 

  평생을 수도승같이 문학에 전념하기로 했다. 돈이 떨어지면 일을 했고 비용이 조금 생기면 인도 전역을 구름같이 방랑했다. 그의 운수행각(雲水行脚)은 문학적 내공을 쌓기 위한 치열한 행위였다.

 

  그는 환갑부터 본격적인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어느 날 갑자기 기침에 콩알 만한 핏덩이가 섞여 나왔다. 병원에 가 봤다. 폐암말기라면서 의사는 죽음을 준비하라고 알려주었다. 이상했다. 그 전의 신체검사에서 아무 이상이 없다는 통보를 받았었다. 의사가 암의 발견을 놓쳐 버렸고 그게 급속히 전이된 것이다.

 

  그는 내게 의료소송을 부탁했다. 죽음을 준비할 약간의 시간마저 빼앗은 의사가 원망스러운 것 같았다. 그와 대화를 하면서 많은 걸 깨달았다. 그에게 가난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임대아파트를 고요한 절집 같다며 감사하고 있었다. 거기서 글을 쓰고 싶었는데 기운이 없는 걸 아쉬워했다. 그는 평생 책을 모았다. 그러다 삶의 종착역에 이르자 두 권의 책만 남기고 모두 남을 줘버렸다. 성경과 논어만 그의 옆에 있었다.

 

  그는 내게 호박꽃에 매달린 아침이슬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누가 호박꽃을 밉다고 했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3분 이상 계속 얘기하지 못했다. 목에서 바람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는 그에게 당신은 이 세상에서 무엇이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나는 文人이었어요”라고 말했다. 말 속에 강한 자부심이 들어있었다. 돌아가려는 내게 그는 소중하게 보관했던 오만원권 지폐 한 장을 주려고 했다. 없어도 주려고 하는 그는 부자였다.

 

  잠시 후 나는 땅거미가 짙은 산동네 비탈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수은등이 묵묵히 오래된 동네의 길바닥을 비추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삶은 시한부 인생이다. 나는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사랑한다는 말을 주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본다. 그 시인처럼 “나는 변호사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떠올랐다. 변호사라는 직업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화학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것 같다. 조직이나 돈이 없어도 혼자 이만한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이 없다. 힘든 사람을 찾아 지식과 재능의 일부를 기부하기가 어렵지 않다. 그 과정에서 얻은 삶의 향기를 이렇게 글로 알릴수도 있다.

 

  돌아와서 의료전문 신현호 변호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아무래도 소송경험이 적기 때문이다. 그는 흔쾌히 무료로 협조하겠다고 했다. 예리하게 논쟁하는 변호사란 직업도 같은 방향으로 가자고 하면 기쁨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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