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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갔다온 수의사얘기 - 희랍인 조르바가 된 부자수의사

운영자 2011.06.30 12:31:16
조회 353 추천 0 댓글 1

  며칠 전 오십대 말쯤 되어 보이는 초라한 옷차림의 남자가 찾아왔다. 기름기 없는 푸석푸석한 백발에 주름이 굵은 얼굴이었다. 두툼한 안경 뒤로 보이는 눈빛만은 선량하게 느껴졌다.


  “감옥에서 나온 지 한달 됐습니다”

  법쟁이생활 이십 년인 나는 더러 인간의 냄새를 맡는다. 독을 품은 사람에게선 독 냄새가 나고 착한 사람에게선 향기가 느껴졌다. 감옥에서 나왔다는 그에게서는 어떤 회한의 냄새도  없었다. 이상했다.


  “도대체 무슨 죄를 지셨는데요?”

  내가 물었다.


  “거액의 당좌수표를 부도냈죠.”

  그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얘기를 시작했다. 그의 표정과 어조에는 정직이 묻어 있는 듯 했다. 명문대 출신 수의사인 그는 사료공장과 작은 목장을 가진 성공한 지방유지였다. 어느 날 그에게 큰 빌딩을 가질 기회가 왔다. 100억이 넘는 빌딩인데 마지막 공사비가 모자라 반값에 넘어가는 것이었다. 평생 한번일지 모르는 횡재의 기회에 욕심이 발동했다. 그는 가지고 있는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얻었다. 공장경영을 하는 관계로 우선당좌수표도 거액을 끊을 수 있었다. 그 돈으로 계약금과 중도금을 냈다. 잔금은 보험회사에서 융자해 줄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 마음이 흐뭇했다. 않은 자리에서 부자가 된 것이다. 빌딩임대료로 남은 평생을 즐기는 꿈에 부풀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상상하지 못한 IMF외환위기가 닥쳐왔다. 믿었던 잔대금 대출이 취소됐다. 도미노처럼 모든 게 무너졌다. 회사와 목장등 전 재산을 날리고 당좌수표를 막지 못해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천국에서 지옥으로 부자가 평생 빚진 거지로 전락한 것이다.


  “정말 그렇게 갑자기 무너져 내리는 수도 있군요”

  여러 불행을 전해듣는 변호사지만 나도 놀랐다. 성경 속의 욥이 겪은 악마의 시험과도 유사했다.


  “인생이 허무하지 않으세요?”

  내가 위로하고 싶은 마음으로 물었다. 늙은 그에게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정력도, 재산도, 가족마저 없었다.


  “그런데요 감옥에 있으면서 나보다 더한 사람이 있는 걸 알고는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게 됐어요. 이렇게 온 건 제가 아니라 함께 감옥생활을 한 무기수를 부탁하기 위해서예요.”

  깊은 인생의 골짜기에 빠진 그가 더 깊은 계곡에 있는 사람 얘기를 하러 온 것이다.


  “도대체 어떤 상황인데요?”

  “제가 교도소에서 죽 세탁 공장 일을 했거든요. 거기 살인으로 무기징역을 받은 젊은 반장이 있었는데 정말 여자 같고 천사예요. 고참반장이면 나이에 상관없이 욕하고 권력을 휘두르는 게 감옥입니다. 보통 속옷도 빨아 입지 않고 신입에게 시켜요. 그런데 그 젊은 반장은 입에서 험한 소리가 나오는 걸 못 봤어요. 징역고참인데도 말없이 재봉틀에 매달려 일해요. 저보고도 형님이라고 예의를 지켰어요. 자기 죄에 대해서도 침묵하다가 나중에야 혼잣말로 ‘살인누명이라도 벗었으면--’ 하고 고민하는 걸 봤어요. 지독한 고문으로 누명을 썼는데 고아출신이라 어느 누구도 도와줄 사람이 없었던 거죠. 옆에서 오래 지켜봤는데 그 사람 말이 틀림없어요. 그래서 석방이 되고 나서 온 겁니다. 제가 앞으로 고용 수의사를 해서라도  돈을 벌어 댈 테니까 도와주세요.”


  나는 정말 오랜만에 변화된 사람을 보는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감옥의 의리는 일회성이었다. 나오면 그 구덩이를 돌아보기도 싫어했다. 그러나 그는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그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보는 눈을 가지게 됐다. 되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을 도와주는 진정한 기쁨을 안 것 같았다. 인간은 이기적인 노예로 태어난다. 욕망과 육욕의 노예로 일평생을 보내는 게 내남 없는 보통사람의 인생이다. 태어나면서 젖 달라고 운 아기는 크면서 부자가 되고 싶어 안달했다. 부자가 되도 빌딩을 가지겠다고 그는 갈구했다. 그랬던 그가 변형이 된 것이다. 나만 힘들다고 가난하다고 생각하니까 고통이다. 더 힘든 사람을 보는 마음을 가질 때 고통은 사라진다. 돈이란 그에게서처럼 훌쩍 날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들으면서 난 돈에 대한 집착을 조금은 씻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맘속에 묻혀있던 보물을 캐낸 자유인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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