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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어떤 천사

운영자 2011.05.26 15:40:09
조회 307 추천 0 댓글 0

  동생의 변호를 맡기기 위해 찾아온 사십대 초의 여자가 있었다. 미인은 아니었지만 맑고 깨끗한 얼굴이었다. 변호사로서 매일 사람을 대하다가 보면 이상하게 마음으로 다가오는 느낌이 있다. 마음속에 원한이나 분노가 가득 찬 사람이면 아무리 얼굴이 예뻐도 좋아 보이지를 않는다. 내 마음의 눈은 원한이 차 있는 사람의 한꺼풀 속에 도사리고 있는 독한 기운에 질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를 찾아온 여자는 아주 힘든 환경에서 자랐다. 흉가를 떠올릴 정도로 불행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아들 세 명이 순차적으로 죽었다. 묘하게도 대학에 입학해서 큰 오빠는 등산을 갔다가 계곡에서 떨어져 죽었다. 둘째 오빠는 여름방학에 놀러갔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 셋째아들은 원인모를 병으로 저 세상으로 갔다. 가족에게 있어서 이런 겹치는 불행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없는 자에게는 그 마저 빼앗기는 게 세상이었다. 아버지가 암으로 저 세상으로 갔다. 어머니와 딸 그리고 막내아들만 남았다. 어머니는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면서 아이들을 키웠다. 그러나 어머니마저도 급히 체했다고 해서 병원에 갔는데 응급실에서 처치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죽었다. 의사들의 말로는 갑자기 체내의 전해질 밸런스가 맞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딸이었던 그녀는 상업고등학교를 나오자 마자 건설회사 경리사원으로 들어갔다. 억척같이 동생을 돌보며 일했다. 어머니가 어린 동생을 부탁한다고 평소 유언같이 말한 것을 그녀는 잊지 않았다. 그러나 외국어 고등학교에 다니던 착실한 동생마저 도중에 범죄세계에 휘말렸다. 동생은 고등학교 3학년때 잠시 가출을 했다. 잠을 자던 만화가게에서 알게된 형들과 술을 마시고 나오다 그곳에 왔던 다른 사람과 시비가 붙었다. 동생이 술에 취한 채 상대방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사이에 함께 갔던 아는 형들이 상대방의 주머니에서 지갑을 털어 도망친 것이다. 혼자 붙잡힌 동생은 꼼짝없이 강도범으로 되어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도망간 아는 형들의 정확한 이름도 주소도 알 수 없었다. 그의 무죄를 증명해 줄 것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그들 남매에게  암울한 검은색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녀의 얼굴에서 절망의 그림자를 발견할 수 없었다. 더구나 그녀는 동생 때문에 결혼까지 포기하고 혼자 사는 상태였다. 그렇게 시작된 동생의 범죄는 이상하게 마지막에는 징역형과 보호감호를 선고받고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까지 갔다. 보호감호는 같은 죄를 반복한 사람에게 내려지는 사회와의 단절처분이었다. 쉽게 말하면 덤으로 사는 장기징역이라고나 할까. 내가 그녀의 동생을 만나서 느낀 것은 이해 못할 휩쓸림이었다. 보통의 사람이면 그냥 넘어갈 일에도 동생은 꼭 법망에 걸리곤 했던 것이었다. 어느날 퇴근 무렵 그녀는 조심스럽게 몇 장의 서류를 들고 왔다.


  "밝히지 않으려고 했는데 동생 때문에 가지고 왔어요."

  그 서류들은 그동안 그녀가 여러 곳에 기부한 영수증들이었다. 몇만원씩 꾸준히 십여년 보낸 곳도 있었다. 10만원씩을 이따금씩 나환자촌에 보내기도 했다. 고아원, 양노원, 노숙자, 장애인 보호시설등 그녀가 조금씩이나마 돈을 보내지 않은 곳이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리직원으로 있을 때부터 길을 가다가 우연히 발견하거나 텔레비전에서 불쌍한 사람이 있는 곳들을 보면  돈을 보내고 싶었어요. 천원부터 시작해서 능력 닿는 대로 보냈어요." 

  그녀가 기부를 한 세월은 벌써 이십년이 넘고 있었다. 경리직원 당시의 만원은 그녀에게 큰돈이었다. 예수는 성전에서 동전 두닢을 내는 과부를 칭찬했다. 다른 사람은 여유 돈을 내지만 그녀는 전 재산을 낸 충성스런 믿음의 종이라고. 그녀가 바로 그랬다.


  "기부한 액수는 전부 얼마나 됩니까?"

  내가 물었다. 그녀가 겸손한 얼굴로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동생 탄원서를 쓰려고 할 수 없이 전부 합쳐보니까 1억원이 넘는 것 같아요-----"

  나는 깜짝 놀랐다. 가난한 그녀에게는 너무 큰 액수였다.


  "결혼자금도 있고 여러 곳에 쓸 곳이 많았을 텐데 어떻게?"

  내가 물었다.


  "자신만을 위한 예금통장보다 기부가 더 마음이 흐뭇했어요."

  그녀의 얼굴에서는 진심 어린 표정이 스쳤다. 처절한 환경 속에서도 하늘에 대고 주먹질하기 보다 남에게 사랑을 베푼 그녀는 천사였다. 나는 어떤 악마도 그녀의 사랑의 힘을 더 이상 괴롭히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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