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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의사들의 모습

운영자 2011.04.22 14:53:05
조회 497 추천 2 댓글 0

  소아과 의사인 고교동창이 소송을 의뢰하러 왔다. 명문의대를 나온 전문의인 그는 자그마한 의원을 하다가 지방으로 내려가 취직을 했다. 그는 강직한 의사였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의사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일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였다. 대형병원을 욕심내던 지방도시의 원장은 그에게 일단 뇌막염같이 부모들이 걱정하는 진단을 내려줄 것을 은근히 강요했다. 그건 진료가 아니라 사기였다. 그는 다른 취직자리를 알아보았다. 다행히 한 곳에서 소아과 의사를 초빙한다는 광고를 보고 그곳으로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그의 강직성은 부모의 유산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청렴한 소신 판사였다. 보호할 가치가 없는 정조는 법이 보호하지 않는다고 선언해서 엄청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주인공이었다. 박정희 정권의 고등학교시절 나와 그를 포함한 친구들 몇 명이 잡지를 내기로 했다. 손으로 써서 제본한 몇 부 안 되는 장난 같은 잡지였다. 그는 박정희의 3선 개헌 독재야욕을 원색적으로 질타하는 글을 써냈다. 당시는 말 한마디 잘못해도 정보부에서 잡아가던 공포정치상황이었다. 만약 그 글이 발각됐다면 그는 부모와 함께 고통을 받았을 것이다. 새로 옮겨 일하기로 한 전날이었다. 그 병원의 원장은 그의 근무를 거절했다. 의심스럽고 막연한 이유였다. 이미 사표를 내고 집도 옮긴 그는 갈 곳이 없었다.


  그는 내게 그의 정직이 왜 피해를 봐야 하는지 변호사인 내가 그를 법의 심판대에 올려달라는 것이었다. 어느 일요일 한 시골 의사부부를 몇 분간 소개한 텔레비전을 보았다.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낡은 기와지붕을 한 옛날 단층집이 그 노 의사의 의원이었다. 서울의대를 졸업한 그는 6.25전쟁 탓으로 그 지방도시에 우연히 눌러앉아 지난 40년 간 청춘을 흘려보냈다. 인터뷰에 응하는 칠십대의 그의 얼굴을 깡마르고 볼은 움푹하게 들어갔다. 그의 주변을 가난기가 감도는 느낌이었다.


  “예전에 밤에 와서 문을 두드리면 가방에 도구를 넣고 십리 들길도 걸어가고 이십리 산길도 넘어가서 일했죠.”

  그의 단순한 말을 들으면서  의사출신 영국 소설가 크로닌의 왕진을 묘사한 소설내용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시골마을에 노의사가 있었다. 비가 내리는 진흙길을 걸어 환자를 보고 밤중에 돌아왔다. 춥고 떨렸다. 눈도 붙이고 싶었다. 난로 앞에 앉아 몸을 녹이고 차 한잔 마시려는 순간 다시 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또 환자 가족이 달려온 것이다. 지친 그는 비바람이 부는 어둠 속으로 다시 나가기 싫었다. 그렇지만 가야했다. 그는 또다시 축축한 비옷을 걸쳐 입고 나간다. 결국 그 자신도 어느 날 과로로 죽게 된다. 동네구석에 남아있는 쓸쓸한 묘비 하나만이 그 의사의 일생이었다. 그 장면에서 나는 왕진의 수고를 깨달았었다.


  “서울에서 잘 된 의대동창생들을 보면 부러웠어요. 시골의사를 하니까 환자들이 전에는 모두 ‘이거 외상이야 추수할 때 치료비 줄께’가 보통이었어요. 가을에 곡식이나 채소를 받는 게 시골의사의 수입이었죠. 떠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어느집이고 모르는 사람 없이 친해지고 또 나 아니면 의사가 없어 그냥 지금까지 왔어요.”

  이제 그가 살던 곳이 시가 되고 큰 병원들이 섰다. 그 바람에 그의 의원에는 하루에 열 명 정도밖에 환자가 없다고 한다. 세상이 변하고 세월도 간 것이다. 옆에 있던 그의 부인이 끼어 들었다.


  “저 양반은 성격이 환자가 회복되기 전까지는 집을 뜨지 못했으니까요. 평생 환자를 위로하면서 산 인생이예요.”

  그는 그 시골뿐 아니라 그의 집도 뜰 수 없었던 것이다. 특이한 것은 그 노의사는 지금도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돋보기를 쓰고 최신의 의료잡지와 논문들을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었다.


  “나를 필요로 하는 환자가 있는 한 의업을 계속할 예정입니다.”

  그 노 의사의 마지막 말이었다. 나는 한국 최고의 명의라는 큰 병원장들을 본 적도 있다. 또 수백 병상의 병원을 이룩했다고 자랑하는 의사들도 보았다. 군기가 바싹 든 수십 명의 부하의사들을 대동하고 사령관같이 환자를 회진하는 당당한 의사의 모습도 보았다. 그들에게서는 백색의 탑과 기술이 보인다. 그러나 탄광 마을에서 또 대양을 항행 하는 유조선 속에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일하는 의사들에게서는 따뜻함과 친근감을 느낀다. 수백미터 땅속의 암흑 같은 탄광의 막장 속으로 내려가 바위에 눌려 뼈가 부러지고 핏줄과 근육이 짓이겨진 광부의 다리를 응급 조치하는 의사에게서 숭고함을 느낀다. 전문직업인의 가치 중에 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을 얼마나 적극적 사랑 했느냐일 것이다. 그런 천사들이 곳곳에 숨어서 미소짓고 있다. 의뢰인으로 인연을 맺었던 대학병원의 신경외과 의사는 수술 전에 환자를 위해 혼자 열심히 기도한다는 것을 주위사람들에게 전해듣기도 했다. 내게 소송을 맡겼던 의사친구가 이메일로 최근 자신의 소식을 전해왔다.


  “ 종교단체에서 경영하는 바닷가에 있는 병원에 취직하게 됐네. 여기서는 다행히 교과서적인 진료를 할 수 있는 행복을 찾았네. 그 돈 독이 오른 원장에게 거절 당한 게 오히려 축복이었어. 잔잔한 파도에 부서지는 햇살을 보면서 난 이렇게 원칙대로 사는 게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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