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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벌레 같은 여자

운영자 2011.04.13 15:01:02
조회 397 추천 0 댓글 3

스산한 바람이 불던 3월초순의 오후였다. 나는 구치소 접견실의 유리박스 안에서 변호를 맡은 여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려진 전과자들에게 밥과 잠자리를 제공하는 임목사가 부탁한 사건이었다.

 

이십년 전부터 그곳의 일을 해 왔다. 세월이 가면서 그 일도 시큰둥해졌다. 음습한 동굴 속 같은 구치소가 싫었다. 곰팡이 냄새와 땀 냄새가 증오와 섞여 소용돌이치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난장이를 연상케 하는 키가 작고 머리통이 큰 여자가 나타났다. 가난을 상징하듯 앞 이빨의 틈새가 많이 벌어져 있었다. 상습절도범 박정자였다.

 

“담당 계장이 막 때려요. 너 같은 쓰레기는 세상에서 없어져야 한 대요. 여태까지 여러 수감자를 다뤘지만 너 같이 평생 도둑질만 한 년은 처음 봤대요. 그래서 나도 소리쳤어요. 왜 나만 맞고 살아야 하냐고.”

 

그녀는 항아리 속의 방울벌레 같은 운명이었다. 어둠속에서 태어나 그곳이 전부인 줄 알다가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그런 존재 같았다. 그녀가 계속했다.

 

“아버지는 어린 저를 혁대를 뽑아서 막 때렸어요. 계집년이 학교는 가서 뭐하냐고 해서 학교도 못 갔어요. 여덟살 때 아버지가 때리고 발가벗겨 밖에 내놨을 때 지나가던 남자애 세 명이 저를 강간 했어요. 크면서 도둑질을 해서 먹고 살았는데 잡혀서 경찰서를 가면 형사들도 때리고 발가벗겼는데 요즈음은 안 때려요. 세상이 많이 좋아졌어요”

 

그녀의 기구한 인생역정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석방됐을 때는 뒷골목의 건물 밑에서 잠을 자고 때가 되면 길거리에 모아놓은 쓰레기봉지를 뒤져서 먹었어요. 페트병에 음료수 남은 걸 마시고 먹다버린 빵을 먹었어요. 그런데 힘든 건 거지들이 강간하는 거계요. 그놈들에게 싫다고 했다가 맞아서 얼굴이 뭉개졌었어요. 그래서 병원에서 코를 세우고 입술을 꿰맸는데 그것도 모르고 담당 여자 계장은 저보고 너 훔친 돈으로 입도 고치고 코도 올렸지? 라면서 괴롭혀요.”

 

여죄수와 여교도관 사이의 시각의 차이였다.

 

“강간당할 때 지나가던 사람들이 가만있어요?”

 

내가 물었다.

 

“모두 그냥 구경만 하고 가던데요.”

 

세상은 그랬다.그들에겐 소리 한번 쳐 주는 이웃이 없다.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마지막 보루는 그곳이었다.

 

“어려서부터 경찰한테도 도움 받은 적이 없어요.

 

의사가 희귀병 환자를 보듯 변호사인 나는 법의 보호 밖에 내동댕이쳐진 사람들을 종종 본다. 그들은 처벌을 받을 때만 날카롭게 벼린 법의 칼날을 받았다. 그녀의 재판 기록 안에는 정신분열증 진단서가 있었다.

 

“정신병 증세가 있어요?”

 

내가 물었다.

 

“혼자 있을 때 뭐가 나보고 막 박아버린다고 해요 그럴 때는 무서워서 뛰쳐나가기도 해요. 약을 안 먹으면 나를 잡아먹는다는 소리도 들리고 물건을 가져가라는 소리도 들려요.”

 

강간은 그녀의 육체는 물론이고 영혼마저 갈가리 찢어놓은 것 같았다. 망가진 그녀는 아이를 가져보지도 못했다. 그런 증세가 범죄의 동기였다. 그러나 정신병이 참작되어 형이 감경된 적은 없어 보였다.

 

“소원이 뭐죠”

 

내가 물었다. 종종 그렇게 했다. 가장 처절한 사람들의 소원은 보통사람들이 가진 행복이 뭔지를 알게 해 줬다.

 

“가족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간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솔로몬은 가족과 함께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게 최고의 낙이라고 전도서에 적고 있다. 나를 소개할 때가 됐다.

 

“엄상익 변호사라고 합니다. 임목사 부탁을 받았습니다.”

 

갑자기 그녀의 얼굴이 환하게 빛나면서 소리쳤다.

 

“엄 변호사님 이름을 여러번 들었어요. 임목사님이 전과자 들이 모인 예배당에서 엄변호사님 머리부터 발끝까지 건강하게 해달라고 항상 기도하세요. 그러면 우리들 중 정신병자까지도 모두 무릎을 꿇고 따라해요. 엄 변호사님이 아니면 누가 우리같이 쓰레기 취급을 받는 사람들을 대해 주겠느냐구요.”

 

그녀는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기도하는 모습을 흉내 냈다. 갑자기 울컥했다. 그들이 아니라 내가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나는 주차장에 세워둔 차 안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녀보다 위선이 가득 찬 내가 더 나쁜 놈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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