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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 김 민 기

운영자 2011.04.07 12:07:40
조회 442 추천 0 댓글 1

  대학입시준비 시절 저녁이면 냄새나고 비좁은 독서실 복도에서 혼자 도시락을 까먹곤 했다. 썽그렇게 식은 딱딱한 밥안에 시큼한 김치가 반찬이었다. 그럴 때 열린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가슴 저미는 멜로디가 있었다. 가수 양희은의 노래 ‘아침이슬’이었다. 그리고 작곡을 한 김민기는 우리 또래의 우상이었다. 꼭 한번 보고 싶었다. 그는 암울한 시대에 먼저 가슴을 앓는 시인이었다. 혜안과 지혜를 간춘 천재였다.


  그로부터 27년이 흘렀다. 노래 ‘행진’을 히트시켰던 가수 전인권이 히로뽕을 복용한 죄로 재판을 받는 법정에 김민기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정상참작사유를 증명할 진술을 하기 위해서였다. 갈색 자켓에 헐렁한 골덴바지를 입은 그가 조심스럽게 증언석에 앉았다. 거무튀튀한 피부와 눈가에 새겨진 주름이 그가 진 세월의 무게를 알렸다.


  “가요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마약을 복용하는 이유가 뭐죠?”

  재판장이 진지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정직한 대답을 들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태도였다.


  “상품화된 노래로 급작히 인기가 오르는 가수들이 있습니다. 그런 상황의 거품이 걷혀지고 대중들로부터 소외될 때 느끼는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법정의 바닥을 잔잔히 흐르는 저음으로 그가 대답했다.


  “스트레스해소나 과중한 공연활동에서 오는 피로를 극복하기 위해서 하는건 아닌가요?”

  재판장이 보다 구체적으로 물었다. 법관으로서 보다 정확한 자료를 얻고 싶은 것이다.


  “물론 그런 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인기가 급격히 하락할 때 그 정신적 공허감을 메꾸기 위해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주전쯤이었다. 그와 초등학교시절부터 친구인 동아일보 이도성 정치부장에게서 이런 얘기를 들었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김민기는 대학시절부터 스스로 낮은데로 찾아갔다. 공장에 취업을 해서 노동자들의 상처받은 영혼과 함께 했다. 탄광 막장까지 들어가 광부노릇도 했다. 신분을 속인채 검푸른 바다 위에서 고깃배를 타기도 했다. 마지막에는 농부가 되었다. 암울했던 시대에 아픈 사람들과 영혼을 나누면서 그의 노래들은 탄생했다. 그의 노래 ‘아침이슬’은 애국가 보다 강한 비장한 무늬를 우리 가슴에 남겼다.


  “저기 서 있는 피고인 전인권이라는 사람의 본질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물었다. 법정에서 피고인측 증인의 대부분은 무조건 좋게만 말했다. 법원은 의례껏 그러려니 하고 가볍게 넘겨버렸다. 나는 한마디라도 그가 진주 같은 진실을 말하게 하고 싶었다. 겸손한 그는 묻지 않는 말에 입을 열지 않았다. 내가 던진 질문의 핵심을 알아채고 그는 잠시 바닥을 보면서 묵묵히 생각했다. 이윽고 침착하고 조용한 그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가수 전인권의 노래는 상품이 된 가요하고 다릅니다. 저 가수는 노래에 모든 것을 자기의 전 영혼을 쏟아 붓는 사람입니다. 저 사람은 음악밖에 모르고 또 음악을 통해서만이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약물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가수의 정의였다. 그리고 웅변이며 후배에 대한 가슴 끓는 변론이었다.


  로마시대의 관중같이 국민들이 잔인해지고 있다. 이름이 알려진 인사들의 부패가 알려질 때마다 광기가 번쩍인다. 언론과 국민의 가시돋친 눈은 먹이가 된 제물에게 날이 선 파란 불꽃만 보냈다. 그 서슬에 한 가수가 약물로 죽어가고 있었다. 대제사장도 레위인도 아닌 선한 사마리아인만이 쓰러진 사람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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