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빈 헌금주머니

운영자 2011.04.07 12:05:57
조회 241 추천 0 댓글 0

바람 같은 여행길에 두 번 만난 노인이 있다. 나이 칠십인 그는 뒤늦게 한을 풀 듯 세계 여기저기를 떠돌고 있었다.


“정말 돈에 혈안이 돼서 사업을 하다가 나이 오십에 부도가 났어요. 그때 생각하니 허망했어요. 인간성도 사람도 재산도 모든 것을 잃었어요…”

그에게 씌워진 멍에는 부정수표 발행범이었다. 도망을 다녔다. 피신할 곳도 도움을 청할 사람도 마땅치 않았다. 비로소 그는 스쿠리지 영감으로 살아왔던 과거를 느꼈다. 주위에 너무 인색했었다. 그는 자수를 하고 감옥에 들어가 6개월을 복역했다. 지명수배란 족쇄를 찬 상태에서는 죽을 때까지 도망자였다. 다시 일어설 실낱같은 희망도 없었다. 출소 후 나타난 그에게 아내는 생활비가 없다고 울상이었다. 아이들이 다 기가 죽어 있었다. 아는 사람들을 찾아가 그는 쌀값을 구걸하다 시피 했다. 두 번 찾아가면 안줘도 처음에는 약간씩의 성의는 보이는 게 그래도 세상인심이었다. 그는 낡은 봉고를 몰고 다시 공사판에 뛰어들었다. 나이 오십이 넘은 그가 재기하려는 모습을 보며 많은 사람이 혀를 찼다. 절망에 도전하려는 그가 측은했던 것이다. 그는 스스로 더 이상 떨어질 수 없는 바닥까지 내려갔다. 모든 것을 감수했다. 그리고 일어섰다.


“망하고 나니까 비로소 교회에 나가게 되더라구요. 하나님한테 내신용도를 평가받는 방법은 그 동안 얼마나 맡겼나 하는 건데 내가 하나님에게 낸 돈이 전혀 없었어요.”

노인이 씩 웃었다. 안경 뒤로 보이는 감긴 듯한 작은 눈에서 빛이 났다.


“나 교회에 나가서도 어떻게 사기친줄 아슈? 현금함이 올 때 맨손을 그 속에 넣었다 빼면서 돈 낸 것처럼 가장했지. 그래서 그걸 확인하지 않는 소망교회를 나갔지.”

그가 멋쩍은 듯 식 웃었다. 그가 덧붙였다.


“이제 언제 죽을지 모르는 거 아니요? 그래서 장학금도 조금 내놓고 이렇게 쫓기듯 여행도 다니지……”

그는 여행이란 단어조차 몰랐다. 일하고 또 일을 했을 뿐이었다. 어머니가 중풍으로 십년을 앓다가 돌아가셨다. 아내도 시어머니 병수발을 하느라고 지쳤다. 환갑이 넘었다. 난생 처음으로 자식들이 동남아를 다녀오시라고 주선했다. 처음으로 외국구경을 하고 돌아오면서 그는 ‘인생이 개미처럼 일만 하는 게 아닌데……’하고 느꼈다. 그의 삶의 태도가 달라졌다. 죽으면 이 세상은 다 없어지는 것이다. 그 전에 구경이라도 해야 세상을 살다간 게 되는 것이었다. 부부는 여행단 여기저기에 끼어 구경을 시작했다. 한 서린 여러 노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 한 육십대 중반의 남자 곁에 아무도 앉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의 허리 중간에는 창자를 빼고 똥봉지를 채워놓고 있었다. 악취가 심했다. 심지어 그의 부인마저도 옆에 앉기를 꺼렸다. 평생 먹지 않고 입지 않고 돈만 돈만 하면서 살아온 그가 병에 걸렸다. 국을 날이 멀지 않았다. 바닷가 모래알처럼 수없이 많을 줄 알았던 내일이 이제는 없는 것이었다. 그는 봉지를 허리에 차고 여행길에 올랐다. 그런 한풀이 여행의 노인들이 제법 많았다. 한 노인은 어울리지 않게 온갖 고급제품을 몸 가득 채웠다. 로렉스금딱지에 세계명품 옷들을 입었다. 알고 보니 그는 ‘아바이’라고 불리는 실향민이었다. 소주 한잔 값도 아끼면서 인생을 살아온 그에게 이제 남은 날이 얼마 안 된다는 자각이 들었던 것이었다. 그는 소중하게 모아둔 돈을 일부라도 쓰려고 악을 썼다. 그러나 몸과 세월이 그것을 허락해 주지 않았다. 그는 허둥지둥 많은 고급품을 사서 몸에 두르지만 그 효용과 가치를 느낄 수 없었다. 인간은 죽음을 앞두고 올가미에 걸려 당황하는 짐승보다 더 어쩔 줄을 모르는 것이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그때그때 인생을 즐기도록 하세요. 시간 역시 마찬가집니다. 허송세월을 보내지 마세요. 시간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더라구요.”

나는 그의 쓸쓸한 뒷모습에서 알 수 없는 회환의 덩어리를 느꼈다. 그의 여행은 여행이 아니었다. 차를 놓친 승객의 안타까운 달음박질이었다. 인생이란 무엇이 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삶은 하나의 과정이다.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강물 속에서 젖 냄새나는 아기가 학생이 되고 어른이 되고 주름살 많은 노인으로 변해간다. 따뜻하게 내려쬐는 햇볕을 보며 한 잔의 향기로운 차를 마시며 살아가는 고마움과 잔잔한 기쁨을 누리고 싶다. 행복은 결코 돈의 액수나 거창한데 있는 게 아니니까. 

추천 비추천

0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시세차익 부러워 부동산 보는 눈 배우고 싶은 스타는? 운영자 24/05/27 - -
3365 국민 앞에 사과하셔야죠 운영자 24.05.27 6 0
3364 절망감이 들었다 운영자 24.05.27 6 0
3363 능숙한 연기와 거짓말 운영자 24.05.27 6 0
3362 방송이 만든 가면들 운영자 24.05.27 6 0
3361 나는 세상을 속인 사기범 운영자 24.05.27 6 0
3360 귀신을 본다는 빨간 치마의 여자 운영자 24.05.27 6 0
3359 얼떨결에 성자가 된 도둑 운영자 24.05.27 8 0
3358 종교 장사꾼 운영자 24.05.20 58 2
3357 주병진 방송을 망친 나는 나쁜 놈 운영자 24.05.20 52 0
3356 대도를 오염시키는 언론 운영자 24.05.20 35 1
3355 세상이 감옥보다 날 게 없네 운영자 24.05.20 41 1
3354 악인은 변하지 않는 것인가 운영자 24.05.20 32 1
3353 서민의 분노와 권력의 분노 운영자 24.05.20 32 0
3352 쥐 같은 인생 운영자 24.05.20 35 1
3351 좋은 사람의 기준을 깨달았다 [1] 운영자 24.05.13 106 2
3350 너도 도둑이지만 윗놈들이 더 도둑이야 운영자 24.05.13 61 0
3349 국무총리와 도둑 누가 거짓말을 했을까. 운영자 24.05.13 86 0
3348 도둑계의 전설 운영자 24.05.13 49 1
3347 바꿔 먹읍시다 운영자 24.05.13 47 0
3346 반갑지 않은 소명 운영자 24.05.13 47 0
3345 대도 사건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 운영자 24.05.13 45 0
3344 재판을 흥미성 보도자료로 만듭니다. 운영자 24.05.06 75 1
3343 부자들의 비밀금고 운영자 24.05.06 81 2
3342 죄 값 이상을 강요할 권리가 있나? 운영자 24.05.06 64 0
3341 입을 틀어막히는 분노 운영자 24.05.06 66 0
3340 변호사로 정상이라고 생각합니까 운영자 24.05.06 69 1
3339 도둑 일기 운영자 24.05.06 84 1
3338 숯불 나르는 청년의 외침 운영자 24.05.06 74 1
3337 당신은 꽂히면 바로 내 지르는 사람이야 운영자 24.04.29 100 1
3336 아들의 좋은 친구가 되어 주세요 운영자 24.04.29 78 1
3335 도대체 저의가 뭡니까? 운영자 24.04.29 85 1
3334 기억 사진첩 속 어떤 재판광경 운영자 24.04.29 72 1
3333 내가 체험한 언론의 색깔 운영자 24.04.29 77 1
3332 변호사란 직업의 숨은 고뇌 운영자 24.04.29 84 1
3331 저세상으로 가는 법 운영자 24.04.29 91 1
3330 인권변호사의 첫걸음 운영자 24.04.22 106 1
3329 깨어있는 시민의 의무 운영자 24.04.22 95 1
3328 죄수가 전하는 사회정의 운영자 24.04.22 106 1
3327 이민자의 슬픔 운영자 24.04.22 106 1
3326 강도에게 성질을 냈었다. 운영자 24.04.22 100 1
3325 외국의 감옥 운영자 24.04.22 99 1
3324 벗꽃 잎 같이 진 친구 운영자 24.04.15 135 1
3323 조용한 기적 운영자 24.04.15 138 2
3322 감옥은 좋은 독서실 운영자 24.04.15 113 1
3321 앞이 안 보이는 사람들 운영자 24.04.15 115 1
3320 미녀 탈랜트의 숨겨진 사랑 운영자 24.04.15 133 1
3319 두 건달의 독백 운영자 24.04.15 119 1
3318 명품이 갑옷인가 운영자 24.04.15 108 1
3317 나는 될 것이라는 믿음 운영자 24.04.15 115 1
3316 오랜 꿈 운영자 24.04.08 125 2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